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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01 우리 시대에 관한 중대한 이야기 02 사실상 모든 면에서 사정은 나아지고 있다 03 사람들은 왜 좋은 소식을 두려워할까 04 카펫이 깔린 휴대용 강아지 계단 05 행복을 제외한 모든 것 06 스트레스, 그것은 자연의 계획이다 07 제정신을 유지하는 방법 08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기적 이유 09 신용카드와 SUV를 넘어서 10 우리의 세상 바꾸기 11 그들의 세상 바꾸기 12 절대로 늦지 않았다 감사의 글 주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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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 : 풍부한 먹을거리, 자동차, 주택 등 물질적인 면에서 엄청나게 발전했음에도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중세 유럽인들은 코케뉴(Cockaigne)라는 무릉도원을 꿈꿨다고 한다. 저 멀리 섬으로 존재한다고 전해지는 코케뉴는 원할 때마다 음식이 한없이 나타나는 장소이다. 오븐에 구운 고기, 석쇠에 구운 생선, 소를 넣은 거위 요리, 과일 파이를 단지 떠올리기만 하면 생겨나기에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강에는 와인이 흐른다. 몇 번을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마셔도 컵은 맥주로 가득 찬다. 심지어 몇몇 건물은 음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잠도 원하는 만큼 잘 수 있다. 원하기만 하면 해가 진다. 임신이나 그 어떤 법적 말썽 없이 상대방이 동의만 한다면 원하는 만큼 누구와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화려한 색상의 고급 원단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는다. 사람들의 호주머니는 금으로 불룩하다. 무엇보다도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음식은 저절로 생겨난다. 접시는 저절로 닦인다. 불은 알아서 피워지고 꺼진다. 또 다른 유토피아를 꿈꿨던 사람들도 있다. 1516년 저서를 통해 ‘유토피아’란 개념을 창시한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란 조용하고 수수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회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매우 기분 좋게 수행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대하게 교환하기 때문이다. 호화로운 옷차림도 없다. 진귀한 옷감, 화려하게 염색한 옷감을 누가 더 싫어하는가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길 원하기 때문이다. 불행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재산이나 지위에 대한 흥미를 잃고 따라서 욕망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난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르카디아(Arcadia)라는 장소를 꿈꿨다. 그곳은 폭력이나 질병이 존재하지 않는 낭만적인 시골로 씨만 뿌리면 곡물이 잘 자라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주로 자연, 음악과 시를 감상하며 산다. 아르카디아 주민들은 오전에 잠깐 일을 하고 농사를 지은 후 성대한 점심식사를 하고 긴 낮잠을 잔다. 저녁에는 노래 부르고 춤추고 술을 마시며 보낸다. 다음날 새벽이 되면 절대로 숙취에 시달리지 않고 잠에서 깨어나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매일의 기적을 바라보면서 감사 기도를 올린다. 그곳에는 왕자나 부자가 없고, 무엇보다 어느 누구도 왕자나 부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가고, 책상마다 컴퓨터가 놓였으며, 물론 전화기도 놓여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은가? 출퇴근은 자가용으로 하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고, 여름 휴가에는 우리나라의 좋다는 바다와 산으로 여행을 가고, 또는 해외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는 않는지……. 집에는 냉장고와 TV, 세탁기 등 온갖 가전제품이 우리에게 편리를 제공하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당신은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위의 내용을 다 충족하는 사람 중 “나는 행복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50여 년 전만 해도 위의 내용을 충족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저런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물론 아직도 뙤약볕에 힘든 노동을 하며 단칸방에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점점 살기 힘들다”, “예전이 살기 좋았지” 하며 한숨을 내쉰다. 저자는 이를 ‘진보의 역설’이라고 한다. 물질적인 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하였고, 따라서 훨씬 편리한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더 힘들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이유가 무엇이고,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모색한다. ▣ 이 책의 내용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 -현대 미국인과 유럽인의 삶에서 거의 모든 경향선이 긍정적인 상태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과정. -정부 정책에서부터 개인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경향선을 긍정적으로 만든 행동 요인.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서구의 삶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 사실조차 부정하는 이유. -풍요롭고 자유로우며 기본적으로 꽤 훌륭한 미국과 서구 유럽에서 너무도 많은 불행한 사람들이 생겨나는 이유. -오염과 범죄 같은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을 극복하며 지금까지 이룩해온 빠른 발전에 견주어 지구 온난화와 저개발국가의 고통 같은 현재의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 -존재하는 모든 문제를 극복했는데도 더 많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낙천적인 사회적 환경과 개인의 불행이 오버랩되는 현대 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 그러한 몇 가지 중요하고 새로운 이론이 과거의 이론을 대체하고 있다. -선택 불안: 사회적 힘에 구속되어 선택해야 할 사항이 지나치게 많은 현재 상황을 갇힌 듯이 느끼기 때문에 선택 그 자체가 고통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뜻한다. -풍요 부정: 자신이 가난하다는 교묘한 정신적 논리를 꾸며내고 그렇게 믿음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붕괴 불안: 경제 불황, 환경오염, 자원 고갈, 테러리즘, 인구 증가 또는 다른 재난으로 인해 세상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연해 현재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 -충족된 기대의 혁명: 우리가 꿈꾸고 간절히 원했던 것들을 실제로 얻게 된 현실에 동반되는 불안한 감정을 뜻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수준이란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적이지만 삶에서 의미가 결핍되었다고 느낌에 따라 우리 사회는 ‘물질적 욕구’에서 ‘의미의 욕구’로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물질적 욕구’에서 ‘의미의 욕구’로 변화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이상 물질을 탐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사회적 지표도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안락한 생활과 동시에 삶의 의미까지 기대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의미는 물질적인 소유보다 손에 넣기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수백만 명이 우울함을 호소할 수 있도록 사회가 여가 시간과 풍요를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 것이다. 다른 상황보다는 차라리 풍요롭고 자유로우면서 행복하지 않은 편이 낫기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려는 새로운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용서하고 감사하고 낙천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스스로에게 유익하다’고 한다. 이러한 이타적이라 여겨지는 특성들은 실제로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긍정 심리학 : 낙천주의, 용서, 감사 긍정 심리학 운동은 1990년대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 새로운 생각은 ‘굿 라이프(good life)’ 운동이라 불렸으며, 첫 번째 목표는 어떻게 어떤 사람들―디트리히 본회퍼, 엘리너 루스벨트―은 본받을 만한 훌륭한 삶을 살았는지 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앞장에서 잠깐 언급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심리학 교수 마틴 셀리그만과 다른 초기 ‘굿 라이프’ 주창자들은, 심리학이 왜 일부 사람들이 정신병에 걸리는가를 분석하는 데에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한 반면 왜 다른 일부 사람들이 이타적이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숭고한지를 밝혀내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굿 라이프 운동가들은 심리학이 부정적인 측면에 집착한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20세기에 ‘분노’란 주제에 관하여 총 8166건의 심리학 논문이 발표된 반면 ‘용서’란 주제에는 총 416건의 논문만이 발표되었다. 정신과 의사들이 자주 참고하는 《인간 감정에 대한 백과사전(Encyclopedia of Human Emotions)》의 경우 거의 모든 쪽마다 유해한 감정 상태가 빼곡히 적혀 있지만 ‘감사’라는 표제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정신과 의사라면 누구나 참고하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은 열네 가지 주요 정신병, 수십 가지의 신경증과 다른 심리학적 질병에 관하여 자세히 논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매뉴얼에 필적하는, 셀리그만이 ‘온전한 정신(sanities)’이라 일컫고 심리학자들이 권장해야 할 긍정적인 상태를 목록으로 만든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부정적인 면에 집중하는 심리학은 현대 의학의 질병 치료 경향을 반영한다. 내과 의사가 정상적인 체온이 섭씨 36.5도이고 거기에서 벗어나면 질병의 신호로 간주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정신과 의사들은 정상적인 사람은 정신적인 문제가 없으며 거기에서 벗어나면 질병에 걸렸다는 뜻으로 여긴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적인 전후 심리학자들은 거의 배타적으로 부정적인 측면, 전문가들이 정신의 ‘병리학적 모델’이라 일컫는 것에만 집중했다. 사람들은 정상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아프다. 긍정 심리학 운동을 창시한 이론가들은 그러한 주장이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느꼈다. 행복하거나 훌륭한 사람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행복하거나 훌륭해지도록 무엇인가가 원인을 제공했다. 왜 엘리너 루스벨트는 그렇게 고결했는가? 그녀가 훌륭해지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역시 적용될 수 있는 어떤 영향력이 있는가? 육체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몸에 좋은 식품을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등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어쩌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 역시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일 수 있다. 긍정 심리학계의 연구 결과 1.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9세기 영국의 평론가 존 러벅(John Lubbock)은 “행복은 바이올린처럼 연습을 통해 가능해진다”고 썼다. 현대의 연구 결과는 이러한 관점을 확증한다. 미주리 대학교 심리학과 로라 킹(Laura King) 교수는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쉽게 불행의 늪에 빠진다. 그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긍정 심리학 이론가들은 전반적으로 사지마비자들이 복권 당첨자들보다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복권 당첨자들은 물질주의에 휩쓸렸다가 버림받는 반면 사지마비자들은 자신의 상황에 적응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매일 삶과 투쟁해야 하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반면 복권 당첨자들은 손가락을 두드리며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만족을 제공하기만 바랄 것이다. 2. 긍정 심리학은 또한 회의주의자보다는 낙천주의자가 더 성공한다고 주장한다. 유타 대학교 심리학과 리사 애스핀월(Lisa Aspinwall) 교수는 수명, 소득, 결혼 기간과 다른 지표를 기준으로 측정했을 때 대개 낙천주의자들이 회의주의자들보다 더 잘산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주었다. 애스핀월의 발견에 따르면 낙천주의자들은 부정적 경험을 극복하는 데 회의주의자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낙천주의자들은 계속 의기소침한 상태에 머물지 않고 금방 회복하기 때문이다. 긍정 심리학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재정비할 것인가에 대해 무엇이라고 충고하는가? 여기 두 가지 중요한 조언이 있다. 즉 더욱 감사하고 더욱 너그러워지라는 것이다. 연봉이 5만 달러지만 연간 5000달러씩 인상하는 조건과 결코 인상 없이 연봉 25만 달러를 받는 조건? 사회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관계 불안(reference anxiety)’ 때문에 소득 증가가 반드시 행복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가정해왔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은 ‘집이 우리 가족에게 적당한가?’ 하는 생각을 접고 ‘내 집이 이웃집보다 더 좋은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은 이런 전통적인 가정이 옳지 않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빈호벤은 이웃에게 지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릴 경우에 생길 위험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현대 심리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거보다 잘살게 되었음에도 불만족스러워하는 원인은 이웃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의 방식에 있다고 한다. 또 불만의 핵심 요소는 더 많은 것에 대한 기대라고 한다. 소득이 증가하는 중산층이, 소득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상류층보다 더 행복하다. 작은 집에서 중간 크기의 집으로 이사할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이, 큰 집에 살지만 그보다 더 큰 집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보다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현재 연봉이 5만 달러지만 연간 5천 달러씩 인상하는 조건과 결코 인상 없이 연봉 25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후자의 경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너와 다른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자를 선택할 때 행복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보통 수준이지만 소득이 증가하면 매년 삶이 이전보다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진다. 반면 소득이 높아도 정체되어 있으면 매년 삶이 작년과 같은 것처럼 보인다.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듯한 기분은 불만족으로 이어진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기 때문에.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에게 유토피아를 그려보라고 하면 빈곤 없는 세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는 모든 사람이 커다란 집과 자동차를 가진 세상, 돈 걱정 없는 세상, 뚱뚱해질 걱정 없이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세상, 수명이 150년인 세상, 세계 평화 그리고 비행기 좌석이 더 넓어지는 세상 등등. 어느 누구도 우리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확신할 수 없다. 핵전쟁, 새로운 독재 정치, 유전공학의 무시무시한 오류, 혜성과 지구의 충돌, 그 밖의 다른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위에서 그린 유토피아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모든 국민들이 전쟁 없는 세상에서 오락과 연애를 즐기며 건강하게 아주 오래 살면서 돈 걱정 없이 원하는 물질을 얻는 날이 올 것이다. 발전의 화살은 이미 그런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볼 때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사회가 발전한다 해도, 그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미한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역사의 패턴에 따르면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새로운 문제가 늘 발생하여 과거의 문제를 대체하고 각각의 세대는 다음 세대에 또 다른 도전 과제를 건네준다. 우리 기준에서 유토피아인 미래 사회도 분명 나름대로의 문제를 갖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만족하거나 슬퍼할 것이고, 재능이 있거나 평범할 것이며, 인기가 있는 사람이 있고 인기 없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삶에서 의미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인류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기에 절대로 늦은 시기는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시대의 ‘절대’ 풀 수 없는 ‘불가능’한 문제들―오염, 범죄, 가난한 노년층, 냉전―은 이제 줄어들거나 사라졌다. 눈부신 개혁과 발전이 더욱 빠르게 이뤄졌다. 오늘날의 문제들―여전히 존재하는 빈곤층, 온실가스 등―이 ‘풀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기에 아직 늦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곤은 끝날 수 있고 잊힐 수 있다. 인공적인 온실효과는 예방할 수 있다. 수십억 명이 살고 있는 지구촌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가 될 수 있다. 미래의 모습을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다. 우리가 현명하게 결정한다면 미래는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의 후손들은 여전히 불평하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