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 학교란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곳
01. 뇌 속으로의 여행 02. 서로 따르며 함께 이끄는 관계 03. 언제나 함께라는 것 04. 지식을 쌓는 것이 곧 투자입니다 05. 동등하게 가르침을 받도록 해야 06. 나는 체벌을 반대합니다 07. 교실을 학교의중심에, 교육의 중심에 08. '규율 위반'은 순종을 배우기 위한 예외적 규칙 09. 권위는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10. 청소년 세계의 탐험가 11. 학교는 사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12. 그대의 제자들은 유약합니다 13. 자기 존재의 의미 14. 규칙 없는 교육은 불가능합니다 15. 선생님들의 초상 16. 청소년들은 상상을 해야 합니다 17. 나도 선생님이라면 좋겠습니다 18. 선생님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19. 성장에 필요한 것들 20. 사춘기 이전 시기의 교육 21. 19세 이후, 경쟁과 대학 생활의 시기 |
|
금전적인 이익만을 따지고 아무 생각 없이, 문화와 상관없이 행동을 하게 되면 (…) 인간관계가 종국에 이르게 되건 말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일들만 하게 됩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생산에만 미친 듯이 매달린 광기 어린 행동들이 (…)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을 무시한 채 기계를 위한 공간만 확장시켜 우리로 하여금 자연 공간, 푸른 공간을 아예 잊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p.47
현대 사회가 어리석은 자들에게 힘을 부여하고, 사고력이나 지식에 대한 명상이 아니라 실용주의만 치켜세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결국 학교는 하루아침에 출세하기만을 기다리는 신데렐라 등용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p.48 거북이들을 기다리느라고 멈춰 서 있을 수는 없다면서 우등생들의 리듬을 따라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 이 거짓말은 개개인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 교실 안에서 하나로 뭉쳐야 하는 학급 전체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거북이 학생들을 기다린다고 해서 수업의 수준이 낮아지거나 심화학습이 불가능해질까요? 결코 아닙니다. ---p.55 호감과 비호감, 이 두 가지 감정은 인간이 무의식중에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어 시스템의 일부이자 즉각적인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첫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섰을 때 제자들의 얼굴과 신체적 특징, 태도 등을 보고 이미 호감과 비호감인 학생을 구분한다고 합니다. ---p.60 체벌의 두려움은 ‘미리 느끼는 고통’을 낳지만 경험의 즐거움은 모험을 상(賞)으로, 학습을 자기혁신으로 받아들이고 항상 새로운 경험과 모험을 기다리게 합니다. 경험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사람은 항상 새로운 상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서 이를 기다리고 있으며 지식은 부상이 됩니다. ---p.65 문화는 끊임없이 실수를 고쳐 나가는 연장입니다. 누군가가 풀어낸 해답에서 의문스러운 점을 발견하면 그에 대해 새로운 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새로운 실수가 발견되지요. ‘실수와 수정’이라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어느 한 가지에 맹목적으로 달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p.123 스포츠 단체들은 스포츠와 투혼을 이용해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데 스포츠만큼 좋은 경험도 없지요. 단순히 경기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승리를 거둘 수 있는지만 가르친다면 약물 복용이나 사기의 늪 속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축구 경기나 자전거 경주도 하나의 인생 경험입니다. 가족이나 학교와 형태만 다를 뿐이지요. ---p.125~126 (TV와 컴퓨터와 이동전화)의 데이터와 뉴스창고에는 선생님보다 훨씬 더 풍부한 자료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학교는 정보전달 기능을 잃었습니다. 대신에 ‘사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될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 어떤 신과학 기술로도 할 수 없는 기능입니다. ---p.128 Ipse Dixit(입시 디크시크. 독단적인 전달)와 ‘함께 배우고 공부한다’는 개념을 혼합하여,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수업을 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참여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선생님 또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새로운 자극제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p.201 사춘기는 새로운 자아가 생기는 시기입니다. 그 전까지의 시기가 ‘나’에 대한 것을 익히고 자아성찰의 능력까지 습득하는 시기였다면, 사춘기부터는 그런 것들이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모험을 하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당연히 잃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요. ---p.244 |
|
이 세상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
청소년들에게 학교란 처음으로 단체생활을 경험하는 장소다. 따라서 학교는 아이들이 이성적 능력을 키우고, 기분과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면서 그들이 활개칠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곳이어야 한다. 안드레올리는 예의바르고 성숙한 사회, 젊은이들을 광활한 세상 속으로 이끌 줄 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라는 직업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하고 신성한지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학교라는 교육기관은 교과수업 내용만 가르치면 되는 곳, 수업 내용만 전달하면 되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학생들에게 교과목 수업뿐 아니라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내면 깊은 곳까지 파악해 가르쳐야 하는 곳으로, 그리고 그 역할을 ‘교사’가 맡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교사는 이 세상의 이상형,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학교라는 단체생활 속에서 학생들이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인간관계를 맺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라들이며, 좀더 역할을 확대시키면 현시대의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교사들은 학급이라는 단체를 작은 오케스트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하곤 한다. 구성원(학생) 한 사람마다 자신이 맡은 악기로 어떤 음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데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오랫동안 교사들을 관찰하면서 안드레올리는 그들의 초상화를 10가지로 나눠 그려보았다. “객관적 시선뿐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비뚤어진 시각으로”, 그리고 “오목거울이나 볼록거울을 들여다볼 때 우리 모습이 더 잘 보일 때가 있는” 것처럼, 다소 엉뚱해 보이고 또 본인들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10가지 타입으로 나눠본 선생님들의 초상 1. 피고(Figo) 선생님 ‘피고’는 이탈리아 말로 금단의 열매, 무화과라는 뜻으로 학생들이 선생님을 이성으로 생각하여 연인의 감정을 품는 것을 말한다. 보통 ‘잘생긴 남자 교사’가 이 범주에 속한다. 저자는 이 부류를 “유미주의 심판관”이라 부르며 다소 진부해 보이는 교사의 이미지를 “화려한 치장을 중시하는 소비사회 속으로 끌어들였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런 스타일의 교사를 달가워하지는 않지만, “호감과 매력을 이용해 학생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다”며 부분적으로 옹호한다. 2. 체쏘(Cesso) 선생님 이탈리아 말로 ‘변소’라는 뜻. 형편없는 패션 감각, 매력 없어 보이는 외모 등 ‘피고 선생님’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종종 제자들에게 수다와 오락거리의 대상이 된다. 피고와 체쏘 두 스타일은 모두 외형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저자는 행동양식과 이미지를 바꿔 교육해보라고 충고한다. 충고의 내용은 이렇다. “한 사람의 이미지는 개인의 역사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면의 모습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즉 육체와 사람은 다른 것”이며, “신체적인 조건이 인간을 연구하기 위한 출발점은 될 수 있겠지만, ‘사람’ 은 겉으로 드러나는 육체, 피부 껍데기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 3. 무대형 선생님 나르시스 형(자아도취형) 선생님. 남들에게 감탄을 들어야만 하는 존재. 보통 여성들에게 나타나며 남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 타인과 접촉이 거의 없는 고립형 인간. ‘놀리메 탄게레(나에게 손대지 말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가 부활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한 말) 신드롬’에 시달리는 인물. 적대감정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에 대해서도 다른 청소년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대한다. 그러다보니 호감이나 비호감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4. 사마리아 선생님 선하고 이해심 많고 사명감으로 가득 찬 선생님. 항상 남을 도와야 한다고 인식하며, 이를 위해 정신적?사회적인 힘을 필요로 한다. 개입해야 할 사건과 사고가 항상 존재해야 하고, 개선해야 할 불의가 없으면 절망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불의가 사라지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할 일이 없어지니까. 분주하게 활동함에도 정작 제자들과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는 소홀하다. 학교나 제자들과의 관계를 상담소 정도의 일로 여긴다. 절대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항상 해결만 하려 든다. 박애주의적인 것이 아니거나 자기 관심 밖의 것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저자는 이 타입을 “개인만 영웅이 되고자 하는 개인주의”라고 평한다. 5. 희생양 선생님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하고, 지금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이 모양이며 자신을 비극의 상징이라 간주한다. 저자는 “이런 가짜 천재는 선생님 자격이 없다. 또 학생들은 무조건 이 가짜 천재를 칭찬해줘야 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 ‘쓸모없는’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허비한다”고 지적한다. 6. 나쁜 선생님 학생들을 때리거나 벌을 주면서 즐거워하나 그 이면엔 학생들 장난의 대상이 되거나 웃음거리가 될까봐 항상 두려워한다. 이들의 고약한 성질은 권위의 침범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에 비례해 나타나며, 이러한 나쁜 특징들 때문에 내재해 있는 능력이나 장점이 가려진다. 속으로는 자유를 갈구했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쌓인 욕구불만과 중압감을 학생들을 상대로 해소하려 든다. 7. 최소주의자 선생님 체벌도 없고 그렇다고 제자들에게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이는 일도 없다. 애착도, 욕구불만이나 명예욕도 없으며,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조차도 중요하지 않다. 수년간 반복해온 수업내용을 그대로 읊을 뿐이며, 문장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 누가 불평하지 않는 한 만족하는 이런 ‘냉담함’은 비단 교실에서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8. 불공평한 선생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들은 궁지에 몰아넣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대놓고 편애한다. 제자들이 어떤 집안의 자식이냐에 관심을 기울인다. 부유층 자녀에게는 노예근성을 드러내며 애정을 쏟다보니 그들은 굳이 자신의 잘못을 감출 필요도 없다. 꾸지람이 필요 없으니까. 심하게는 경제상황과 집안사정 등을 따져 ‘편애 학생 리스트’를 만드는 선생들도 있다. 주변에서 뭐라고 그러건 말건 꿋꿋이 잘 버틴다. 9. 전설적인 선생님 긍정적이며 일관성을 갖춘 선생님. 추종자들이 많고 수업은 즐겁고 재미있다.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 관대하지만 제한할 줄 알고, 착하지만 교칙을 준수하도록 설득하는 능력이 있다. 학급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나로 뭉치게 하는 법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위험성이 존재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선생님들이 설자리가 없어 학생들로부터 거부당하는 사태를 일으키게 한다. 이런 타입이 ‘이상적인 선생님’이라는 견해에 대해 안드레올리는 부정한다. 안드레올리는 이상적인 선생님은 상상 속의 인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교사들도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학생들도 이상적인 선생님에 대한 열망을 계속 키워갈 수 있을 것이므로. “신화(전설)는 학생들을 감정적으로 끌어들이지만, 학생들이 나이가 들면 빛을 잃을 수 있다. 그러니까 성장기 동안에만 감동을 받는 것이다.” 10.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선생님 한마디로 이상적인 선생님 상이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하도록 자극을 주지만, 자신은 중심이 아닌 ‘촉매’ 역할을 하는 선생님. 기본 물질을 새로운 물질로 변환시킬 때 꼭 필요하지만 그 자신은 물질의 일부가 되지 않는 ‘효소’ 같은 역할을 하는 선생님. 중심(본질)이 언제나 학생과 학생들의 단체에 놓여 있는 선생님. ※ 이상, 상세한 설명은 제16장 '선생님들의 초상'(173~198쪽)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