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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며
첫 번째 이야기| 아이는 창, 미술은 창 통한 세상 늘 처음처럼 / 장 프랑수아 밀레 감동의 바다 / 강요배 - 순간들 1. 부끄러운 아침 아빠 사랑해요 / 얀 페르메이르 생활의 발견 / 라울 뒤피 - 순간들 2. 아버지 참관 수업 나는 요리사이다 / 피터르 아르천 나는 천사를 보았다 / 귀스타브 쿠르베 - 순간들 3. 우울한 날의 승전보 행복한 감염 / 강익중 무엇이 들었을까? / 안규철 이야기 속 이야기 /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콜리 두 번째 이야기| 아이는 희망, 미술은 희망에 바치는 찬가 사랑의 유효기간 / 가브리엘 메취 달콤쌉사레한 / 장 앙투안 와토 - 순간들 4. 입학식 단상 잘 먹겠습니다 /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미혹하지 않는 / 김덕용 - 순간들 5. 커피 브레이크 신발을 찾아서 / 김혜련 원더풀 아빠의 청춘 / 구본주 - 순간들 6. 프랑스 파리, 모네의 <수련> 행복한 반전 / 석철주 침묵하게 하소서 / 한애규 진짜는 따로 있다 / 얀 스테인 이야기 속 이야기 / 이중섭의 가족 세 번째 이야기| 아이는 질문, 미술은 해답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진정한 평형 / 켕탱 마시 - 순간들 7.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나눔 가득, 돼지 저금통 / 장 루이 앙드레 테오도르 제리코 핑크와 블루 사이 / 정경자 - 순간들 8. 부치지 못한 편지 고무줄 같은 / 김선두 내 삶의 축복을 찾아서 / 박형진 키스, 키스, 키스 / 구프타프 클림트 - 순간들 9.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고기를 사던 날 이야기 속 이야기 / 이종구의 서른 즈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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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젖은 몸을 그렇게 꼬옥 안은 아이는 울고 있었다. 엄마가 많이 그리웠구나.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는 아이를 이번에는 내가 힘껏 보듬은 채 부그로의 「조개껍질」의 엄마처럼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키를 낮추는 다정함이고 싶었는데, 아이와 조개껍질 속을 여행하는 즐거움이고 싶었는데, 아이에게 깊고 고운 사랑을 전하는 따사로움이고 싶었는데...... 비록 나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고, 내 무릎이 닿은 곳 또한 푹신한 양탄자 바닥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향한 내 사랑만은 그 못지않음을 체온으로 전하며 스스로를 아프게 벌하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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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해서 특별한, 큐레이터 엄마의 그림일기
『아이와 함께한 그림-큐레이터 엄마의 특별한 그림일기』는 학고재 화랑 큐레이터이자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공주형의 세 번째 책이다. 앞서 펴낸 두 권의 책에서 편안하고 감성적인 글쓰기를 선보이며 ‘다정한 큐레이터’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 그는 자신의 삶을 투영한 특유의 ‘사람 냄새’ 나는 그림 읽기로 많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신간 『아이와 함께한 그림』은 삶과 그림이 한 몸이 된 전작들과 연장선상에 서 있으면서도, ‘다정한 큐레이터’일 뿐 아니라 두 딸의 ‘엄마’인 자신의 삶을 좀더 내밀하게 녹여내 한층 깊어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큐레이터 엄마의 이야기라고 해서 특이한 영재 육아법 같은 것을 기대해선 안 된다. 이 책은 엄마로 사는 매일의 기록이며, 특이점이 있다면 그림이라는 무대에서, 그림을 연필과 노트 삼아 쓴 일기라는 점이 유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화랑이나 미술관 같은, 큐레이터의 일터를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지도 않았다. 오히려 미용실과 공중목욕탕, 부엌과 혼잡한 출퇴근 버스 안, 산책길 같은 일상의 공간이 이야기의 물꼬를 터준다. “이 책이 엄마의 부재, 그 그리움의 시간들에 대한 작은 변명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책 첫머리에서 지은이가 밝혔듯 이 책은 전작들과 달리 큐레이터인 자신이 아니라 그의 두 딸, 수민과 수완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며 마음이 무거웠고 그래서 아이들을 글감으로 삼기 시작했다고 지은이는 말했지만,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언제나 그림이 아니라 두 딸에게 쏠려 있다. 각 이야기의 발단 역시 언제나 아이들을 둘러싼 사소한 일화들이다. 인형극을 앞두고 30초 공연을 위해 서른 날을 꼬박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며 서른 살 뒤피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아이가 병째 쏟아버린 참기름 냄새에 아르천이 그린 억척스런 요리사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대로 그림 읽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생애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장밋빛 인생’으로 추억한 뒤피에게서 최선만이 최고임을 새삼 배운 그는 아이의 서른 날을 마음으로 응원하고, 아르천이 그린 요리사의 질서정연한 삶의 모습에 감동하며 지우개, 머리 방울, 인형 따위로 만든 아이의 음식에 새로운 희망을 품어본다. 처음도 끝도 언제나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림에서 세상을 읽고, 희망을 발견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엄마’ 공주형의 아이 사랑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깊어진다. 그렇게 사소해서 특별한 그의 그림이야기는 독자들의 마음속에도 감동의 자리를 조금씩 넓혀간다. 큐레이터의 눈, 엄마의 가슴 이 책 속에는 세 가지 유형의 엄마가 등장한다. 첫 번째, 그림을 통해 스스로 되돌아보는 엄마이다. 밀레가 한국에 오던 해, 그는 「우물에서 돌아오는 여자」를 만났다. 「이삭 줍는 여인들」이나 「만종」처럼 밀레의 유명한 그림들과는 또다른 감동이 마음을 울렸다. 표정하나 흩트리지 않고 노련한 몸짓으로 무거운 물통을 들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을 보며 지은이는 깨닫는다. 세상에는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무게도 있음을. 그리고 여인의 힘겨움이 절정에 달한 순간, 즉 가족을 향한 여인의 사랑이 최대한 부각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로 한 밀레의 마음을 되짚어본다. 그리고 일련의 그림들을 통해 발견한 밀레 예술의 열쇳말 ‘더불어’를 그 그림에서 재발견하고 새로운 깊이로 마음에 새겨본다. 그동안 자신은 얼마나 ‘더불어’ 살아왔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 두 번째는 그림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엄마이다. 아이가 아빠 생일에 선물한 가족 그림은 뭔가가 잘못되어 있었다. 웃는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시커먼 동그라미 네 개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그려놓은 아이가 걱정이 되어 연유를 찾아 혼자 헤매었다. 그러나 곧 그는 음악이 아니라 사랑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여인의 뒷모습을 그리기로 한 페르메이르의 「음악수업」을 보고는 마음을 쓸어내린다. 아이 또한 아빠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가족의 뒷모습을 생각해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그림에서 깨달음을 얻는 엄마이다. 부쩍 궁금한 게 많아져 이것저것 물어오는 아이가 조금 귀찮아진다. 그러나 이내 무릎을 굽혀 키를 낮춘 채 아이의 귀에 소라를 대어주고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부그로의 「조개껍질」 속의 엄마를 보며 그는 엄마의 역할을 새삼 깨달으며 윽박지르지 말고 친절히 답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어느 날 산책길 엄마의 작은 키를 문제 삼은 아이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김선두의 「검정 고무줄에는」을 보고는 아이가 문제 삼는 것은 작은 키가 아니라 엄마의 모자란 존재감임을 깨닫고 넉넉한 ‘고무줄 같은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여기에는 ‘엄마’로서의 생생한 삶의 과정과 직접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림 속에 담긴 서사나 역사 배경, 화가의 예술세계 등 학습을 통해 습득한 전문 지식은 물론, ‘내’가 직접 경험하고 발견하고 느낀 이야기들이 함께 담겨 있다. 이는 그림을 보는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주는 것은 물론, 그림을 담아내는 기억 속 그릇의 크기 자체를 달리하게 한다. 큐레이터여서 볼 수 있는 그림의 의미와, 엄마여서 불러낼 수 있는 그림의 깊이가 독자의 그림 읽기를 좀더 풍부하고 농밀하며 가슴 따뜻한 경험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공주형의 그림이야기는 ‘감동’을 준다. 왜일까. 그 속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그것을 어떻게 들려주든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그의 그림이야기가 유독 감동적인 이유는, 또 그림이 유독 그에게만 거울처럼 세상을 보여주고, 희망을 얻게 하고, 답을 찾게 하는 이유는 그에게 그림은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경험한 사람살이의 무게와 삶의 굴곡이 그림에 더해지면서 화가의 숨이 떠나고 차갑게 식어버린 그림에 다시 온기가 감돈다. 우리 몸속 붉은 피가 힘차게 헤엄쳐 만드는 건강한 삶의 온기이다. 온갖 상처와 절망, 안간힘으로 끝까지 버텨내는 의지, 최선을 다하면 모두 좋아지리라는 믿음과 긍정……. 사람이어서, 사람으로 살아내야만 얻을 수 있는 ‘생의 주름’이 그림에 더해지는 것이다. 이런 ‘생의 주름’은 그림 속 등장인물과 소재들에 숨을 불어넣고, 소리를 갖게 하고, 붉은 피를 펌프질해 내보내는 뜨거운 심장을 이식해준다. 여기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국적 불문하고 세상 누구나 공감할 엄마의 삶과 아이를 향한 조심스럽고 간절한 마음이 더해져 더욱더 큰 울림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어색하거나 억지스럽게 여겨질 만큼 지나치게 뜨겁지도, 거창하지도, 갑작스럽지도 않아 “어느 날 돌아보니, 그림 속에 아이들이 있었”던 지은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그렇게 우리 마음속에 둥지를 튼다. 처음부터 늘, 우리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가 그렇듯이, 줄곧 그 자리에 있어왔던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