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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창업 황제
첫번째: 용인의 달인 한 고조 유방 두번째: 대중선동과 여론 조작의 대가 신왕조의 왕망 세번째: 내성적이고 착실했던 청년 광무제 유수 네 번째: 권모술수에 뛰어난 '난세의 간웅' 위의 조조 다섯 번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촉의 유비 여섯 번째: 속임수로 천하를 제패한 진의 사마의(중달) 일곱 번째: 문학적 소양이 풍부하고 불심이 깊었던 양무제 소연 여덟 번째: 중국 3천년 역사 속 단 한 명의 여자황제 측천무후 아홉 번째: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번득였던 송태조 조광윤 열번째: 걸식 탁발승에서 난세를 평정한 영걸 명태조 주원장 2부 수성 황제 열한 번째: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지만 수성에는 실패했던 진의 시황제 영정 열두 번째: '웅재대략' 타고난 전제 군주 한 무제 유철 열세 번째: 처음은 좋았으나 어리석은 판단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전진의 선소제 부견 열네 번째: 자기 조절에 실패한 폭군 수의 양제 양광 열다섯 번째: 자기 조절에 철저했던 수성의 명군 당의 태종 이세민 열여섯 번째: 양귀비와의 사랑에 빠져 추락한 당의 현종 이융기 열일곱 번째: 두려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일대의 영주 후주의 세종 시영 열여덟 번째: 기리독무한 원의 세조 쿠빌라이 열아홉 번째: 대외활동으로 자신의 오명을 씻으려 한 영걸 명의 영락제 주체 스무 번째: 3000년의 토양에 꽃 핀 이상적인 지도자상 청의 강희제 아이신줴뤄 현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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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는 연일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수많은 전략을 세우고 사람을 모으며 민심을 얻어 한 표라도 더 얻어보려는 대선주자들의 몸부림을 각 언론을 통하여 접하고 있다.
권력의 정점으로 치닫기 위하여 서로 물고 뜯는 이전투구 양상을 보며, 과연 정치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축제가 끝났을 때,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기까지하다. 과연 그들은 수많은 공약을 남발하고 자신의 장점과 배경을 부각시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조절과 희생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중국의 대표적인 성군으로 대표되는 당태종 이세민이나 청나라 강희제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하여 그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먹는 것, 입는 것, 심지어 사소한 취미까지 늘 백성들을 염두에 두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자신을 조절하며 희생으로 일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제에게 길을 묻다"<등대출판사 간>는 중국의 대표적인 창업황제 10인과 대표적인 수성황제 10인- 20인의 삶을 맥점을 짚어 스피디하게 조명하고 있다. "한권으로 읽는 중국 황제서"라고 해도 무방하며 <중국 3천력 인간력>으로 필력을 인정받은 저자 모리야 히로시의 명쾌한 해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자기계발서의 역할까지 톡톡히 해준다. 중국의 창업황제 중,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청년기가 될 때까지 온갖 협잡을 마다않고, 아버지에게 '집안을 위해 농사를 짓는 네 형들의 반만 닮아봐라'는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던 건달 유방이 한의 고조가 된 이유는 사람을 낚아 확실한 내 편으로 만드는 용인의 대가였기 때문이다. 내성적이고 착실했던 청년 유수는 묵묵히 농사일에만 전념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려 후한의 초대황제가 된다. 그가 황제가 되어 고향을 방문했을 때 동네 아낙들이 "세상에~그렇게 얌전하고 샌님이었던 유수가 황제가 되다니~'하며 놀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성공비결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튀는 행동을 자제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처세 덕분에 라이벌들이 적의 타깃이 되어 죽거나 도중하차한 반사이익을 본 것이다. 중국 역사 속 단 한명의 여제는 측천무후이다. 한의 여후나 청의 서태후 역시 황제를 제치고 그녀들이 국정을 좌지우지 했지만 황후로 머무르며 스스로 '황제'자리에 오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여성의 인권 따위가 전혀 없던 시기에 14살 어린 나이에 태종의 후궁인 재인으로 들어가 여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교묘하면서도 슬기로우며 권모술수에 능했다'는 역사가들의 판단과 더불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실천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후궁의 여인들과의 암투 끝에, 황후에 오르고 또 남편인 고종까지 허수아비로 만들며 황제가 되는 그녀의 삶을 접하며 '천리 길도 한걸음' 이라는 우리네 속담과 '독해야 성공한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중국 역사상 탁발 걸식승이라는 가장 비천한 신분에서 명 태조가 된 주원장은 그야말로 먹을 것이 없어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참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함께 사고를 저질러도 본인이 그 죄를 뒤집어 쓸 정도로 책임감과 의리가 강했다고 한다. 그가 맨몸뚱이 하나로 천하를 거머쥔 성공 포인트는 의리와 불굴의 의지라고 분석된다. 이렇듯, 중국의 창업황제 10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나마 태생이나 물질로 부모의 덕을 보았던 사람은 진의 사마의, 위의 조조, 양무제 소연, 여제 측천무후이지만 조조는 환관의 자식이라는 신분상의 제약이 있었고, 측천무후는 황제의 총애를 받기까지 시기와 모함이 난무하는 후궁에서 맨땅에 헤딩을 하며 전쟁터보다 더 살벌한 싸움을 해야했다. 또한, 대부분의 창업황제들은 성장기에 학문을 열심히 닦고, 장래가 촉망된다는 평가를 받기는커녕 놀기 좋아하고 온갖 협잡을 마다않는 한량 스타일이 많았다. 지금 시대에도 큰 사업을 일군 사람들 중에 뭐가 찢어지게 가난해 입에 풀칠은 커녕 공부도 제대로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살벌한 세상에서 불굴의 의지야말로 가장 큰 성공의 요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례로,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이 박근혜를 누르고 대선후보가 되었는데, 이명박 역시 20살이 될때까지 자신과 가족들에게 천형처럼 달라붙어 있는 가난이 제일 무서웠다고 한다. 환경미화원을 하며 독학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시국사범이라는 이유로 취직에 실패했을 때도 청와대를 찾아가 끈질기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해 현대건설에 입사해 샐러리맨의 신화가 되고 대선후보가 되는 과정을 보면 노력과 불굴의 의지야말로 인간이 가진 능력 중 가장 큰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음은 중국의 수성황제들 중 역사에 길이 남은 두명의 성군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첫번째, 이세민은 수를 무너뜨리고 당을 건국할 때부터 일등 공신이었고, 형제들을 암살하는 '현무문의 변'을 일으키고 황제에 오른 후 "정관의 치'라는 태평성세를 연출했다. 우리들도 익히 알고있는 '정관정요'를 통해 본 그의 제왕학의 핵심은 아주 단순하다. 먼저, 좋은 인재를 등용하여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자신의 자세를 바로잡고 사치를 멀리하며 민생안정을 위하여 주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를 잘 실행하기 위해서는 '셀프 매니지먼트', '자기 조절'이라는 열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세민은 본인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냥조차 신하들이 만류하자 딱 끊었다고 한다. 천하를 거머쥔 중국의 황제가 무엇이 부족해 신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유일한 취미조차 포기했을까? 이는 당태종 이세민이 황제의 자리에 있으며 철저히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공인'으로서만 생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성을 위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이세민이 신경통으로 고생할 때, 신하들이 기후가 좋은 곳에 고전을 지어 황실을 옮길 것을 간언하자, 막대한 비용과 백성들의 부역을 걱정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는 수나라 양제와 비교해보면 하늘과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수양제의 대운하 건설로 수나라 백성들은 굶주리고 당나라 백성은 그 편리함에 어쩔 줄 몰랐다는 기록이 있다고는 하지만, 양제는 재위 기간 중 운하, 도로, 궁전, 누각 등 끊임없이 건설을 일으키고 고구려 침공이라는 명분없는 전쟁을 감행해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주지육림 속에 파묻혀있다 살해된다. 똑같은 황제라도 그 마음가짐과 처신에 따라 폭군과 성군이 되어 역사에 남는다는 것은 주지해야 하는 사안이다. 두번째, 중국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상으로 꼽는 인물은 청의 강희제 아이신줴러 현엽이다. 현엽은 청의 제4대 황제인데 8세에 황위에 올라 61년이라는 최장의 황제 재위 기간 중 완벽한 명군의 자세를 유지한 인물로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더군다나 청은 한족이 아닌 이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나라였으니 강희제의 통치집념은 놀라운 일이라고 보여진다. 강희제의 성군으로서의 성공비결을 압축해보면 그의 꼼꼼한 성격과 끝없는 독서열, 그리고 심지어 전쟁 중에도 백성들에게 세금 감면 정책을 펼친 것이라고 판단된다. 강희제는 "옛 사람들은 '군주된 자는 큰 줄기만을 다뤄야지 자질구레한 일을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지만 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한가지 일을 경계하지 않으면 천하의 걱정거리를 남기고, 한때를 경계하지 않으면 천백세의 우환을 남기는 법이오. 그리고 작은 행실을 조심하지 않으면 큰 덕에 상처를 입는 것이오."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위의 말에서 강희제의 정무자세가 보태고 뺄 것도 없이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중국 본토의 한족이 봤을 때 무식하다는 만주족 황제로서, 그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하고 세상의 모든 지혜를 책에서 얻었다고 역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이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와 매우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외에도 중국의 대표적인 수성황제로,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지만 수성에는 실패했던 진의 시황제 영정, '웅재대략'의 타고난 전제군주 한무제 유철, 처음은 좋았으나 어리석은 판단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전진의 선소제 부견, 양귀비와 사랑에 빠져 추락한 당 현종 이융기, 두려움과 존경을 한몸에 받았으나 단명한 후주의 세종 시영, 대외정벌로 자신의 오명을 씻으려 한 명의 영락제 주체 등이 열거되어 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중국의 황제들을 공부해볼 필요가 있고, '황제'라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들의 성장과정과 처세를 살펴봄으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보다 나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비결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황제'라 해도 우리네 범부와 똑같이 '생로병사' 라는 틀에서 꼼짝할 수 없는 존재지만...그렇다고 해도, 인간으로 태어나 부든 명예든 행복이든 그 무엇이라도 거머쥘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일이다. 일화 중심이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읽을 수 있는 <중국 황제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