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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윤용이
돌베개 200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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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일반/예술사 top20 2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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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의 글
한국인의 삶과 문화가 깃든, 우리 옛 도자기

1부 질그릇, 한민족이 빚어낸 질박한 아름다움
1장 질그릇이란 무엇인가
한국인의 삶과 질그릇 | 질그릇의 기형과 장식무늬, 색깔 | 세계의 질그릇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삶을 이해하다 | 도기와 토기 | 최초의 그릇
2장 질그릇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선사시대, 질그릇의 탄생 | 최초의 그릇, 덧무늬질그릇 | 신석기 시대의 대표 유물, 빗살무늬질그릇 | 청동기시대의 질그릇 | 고조선과 질그릇 제기의 등장
3장 다양한 문명의 등장, 개성 있는 그릇의 제작
초기철기시대, 고대국가의 기틀을 세우다 | 철기시대, 다양한 그릇이 등장하다 | 가마와 물레의 사용
4장 실용미와 세련미, 고구려와 백제의 질그릇
고구려의 전성기, 문화가 활짝 꽃피다 | 아차산에서 출토된 고구려의 질그릇 | 수, 당과의 전쟁으로 쇠퇴한 고구려의 문화 | 한강 유역에서 꽃피운 백제의 역사 | 사비시대의 백제, 중국·일본과의 활발한 교류
5장 빼어난 조형미, 가야와 신라의 질그릇
520년의 역사를 가진 가야의 질그릇 |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신라의 질그릇
6장 고요한 불교의 세계, 통일신라와 고려의 질그릇
신라의 삼국 통일과 화엄사상 | 통일신라, 불교의 유행과 뼈항아리의 제작 | 선종과 질그릇 | 9~10세기, 사각병과 완 등 실용기의 등장 | 불교의 영향과 귀족 문화의 취향이 반영된 고려시대의 질그릇 | 고려시대 질그릇의 흐름 | 『고려도경』에 나타난 고려의 질그릇
7장 단순하고 소박한 조선의 질그릇
조선시대 질그릇의 흐름 | 자연을 닮은 조선시대 질그릇의 소박함

2부 자기, 한국 미의 정수
1장 자기란 무엇인가
도기와 자기, 질그릇과 사기그릇은 어떻게 구분하는가 | 자기의 색깔과 유약의 상관관계
2장 청자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고려 청자의 시원을 알려주는 초기청자 가마터 | 선종과 차의 만남, 청자완의 유행 | 월주요 청자 장인의 유입으로 시작된 고려 청자의 기원
3장 고려의 비색청자가 완성되다
문화적 성숙의 토대 위에 활짝 꽃핀 고려의 귀족사회 | 중국의 3대 발명이 이루어진 송대 문화의 힘 | 12세기, 고려 청자의 전성기
4장 갓맑은 빛깔을 띤 상감청자의 탄생과 분청자로의 이행 과정
고려 도자의 특징이 가장 도드라진 13세기 청자 | 청자 장식무늬에 반영된 고려인의 마음 |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상감청자에서 분청자로
5장 임금에서 백성까지 폭넓게 사용된 조선의 분청자
분청자와 분청사기 | 뚝배기에 끓여낸 된장 맛 같은 분청자의 매력 | 15세기 분청자의 다양한 장식기법 - 상감 인화기법 | 조선 왕실의 그릇으로 사랑받은 청화백자 | 개성 넘치는 분청자의 멋과 매력 - 선각?박지기법
6장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자유로운 분청자의 세계
분청자, 자유로운 선의 세계를 표현하다 | 일본인이 사랑한 조선의 분청자
7장 백자를 선택한 조선의 마음
조선 초 주자학의 유입과 백자의 확산 과정 | 15세기 중반, 관영 사기공장 분원이 설치되다 | 청화백자의 틀이 성립되다
8장 가장 조선적인 백자의 아름다움
전쟁 후 조선 사회의 변화, 실학의 발전 | 다양한 지방색을 드러내는 백자의 제작과 철화백자의 유행 | 이마리 도자기의 대량 수출로 다져진 일본 근대화의 초석
9장 조선 후기 다채로운 백자의 세계
순박하고 고아한 품격의 아름다움, 달항아리 | 멋과 풍류가 녹아든 다채로운 도자 문화를 꽃피우다 | 18세기 분원의 정착, 후에 조선 왕조의 몰락과 함께 사라지다

저자 소개 1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을 역임했고, 2007년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로, 그리고 문화예술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도자사연구』,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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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9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664g | 153*224*30mm
ISBN13
9788971992869

출판사 리뷰

1. 역사의 숨결을 따라 읽는 우리 옛 도자기 이야기
- 선사시대의 질그릇부터 조선시대의 백자까지


오랜 역사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순박하고 고아한 품격을 지닌 우리 도자기는, 올해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달항아리전’이 열리는 등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는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있는 도자기에 대한 책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도자기 애호의 저변 확대를 위해 일반인을 위한 도자기 강좌와 출간 작업을 꾸준히 해온 한국 도자기 연구의 권위자인 윤용이 교수는, 이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아 ‘한국 도자사’ 입문 교양서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선사시대의 질그릇부터 조선시대의 백자까지, 각 시대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 도자기의 발달사를 구어체로 흥미진진하게 서술한 한국 도자사 개설서이다.
약 1만여 년의 역사 동안, 그릇이 어떻게 처음 만들어졌는지, 가마터와 유물을 통해 청자의 탄생 시기를 어떻게 추적해나갔는지, 분청자가 왜 일본인에게 그토록 사랑받고 있는지, 상류층에서 청자와 백자를 향유하는 동안 백성들은 어떤 그릇을 사용했는지, 중국과 일본에서 채색자기가 유행할 때, 우리나라에선 왜 순백의 백자만 주로 만들어졌는지 등, 도자기의 형식 설명만 나열하지 않고 동아시아의 역사 안에서, 또 한국의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우리 도자기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 쇠퇴하였는지를 필자 특유의 구수한 문체로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동안 청자, 백자를 중심으로 하는 자기의 역사만을 강조하다보니,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자기만이 제작되어온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또한 자기의 역사만을 다룬 책들이 대부분이어서, 이 책에서는 청자와 백자에 비해 그 가치와 역사가 등한시되어왔던 도기(흔히 말하는 토기, 즉 질그릇)를 보다 집중조명하여 그 내용을 충실히 포함시킴으로써, 도기부터 자기까지 도자기 전체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도기와 토기, 분청자와 분청사기, 도토와 자토 등 일반인들이 헷갈려 하는 도자기의 기본 용어부터 친절히 설명하였고, 한자투의 도자기 용어를 되도록 쉽게 풀어놓아 일반인들과 학생들의 도자기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배려하였다. 감성적이면서도 친절한 유물 설명 캡션과 230여 컷의 도판은 도자기 감상의 맥을 잡아주어,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읽는 눈을 길러줄 것이다.

이 책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연구반에서 진행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 도자사’ 강의를 녹취해서 푼 원고를 바탕으로, 도자기에 관한 학술적인 정보와 흥미로운 생활사적인 이야기를 첨가?보완하여 출간한 것이다.

2. 도자기가 전하는 우리 역사와 생생한 삶의 이야기
한국인이 살았던 삶의 현장 어디에서나 발견되어 가장 많은 수의 유물을 자랑하는 도자기는,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통시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이며, 삶의 증거이다. 옛 사람이 추구했던 삶의 모습과 미학이 도자기의 기형이나 색깔, 장식무늬에 오롯이 나타나 있어, 도자기를 통해 우리는 한국인의 삶과 그 속에 녹아든 정신과 삶의 지혜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 선사시대, 최초의 그릇이 탄생하다 (1부 2장 39~43쪽 참조)
신석기시대 농경과 목축을 통해 정착 생활을 하게 되고, 흉년을 겪으면서 곡식 저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는 곧 그릇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최초의 그릇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대체로 발鉢의 형태가 많은데, 처음에는 점력 있는 흙을 강가로 가져다가 손장난하듯이 조물거려 조그만 그릇을 만들어 사용한 듯하다. 그러다 큰 그릇이 필요해지면서 흙을 길게 엿가래처럼 말아서 한 줄씩 쌓아 빚는 방법을 궁리해냈다. 나중에 불에 익으면 흙이 단단해지는 성질을 발견하고는, 그릇을 만들어 굽는 과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 빗살무늬질그릇을 통해 본 신석기시대의 생활 (1부 2장 48~50쪽 참조)
신석기시대의 대표 유물인 빗살무늬질그릇은 주로 우리나라의 강가에서 발견되는데, V자형의 형태를 띠고 있어 땅을 파서 세워놓고 식량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발굴된 그릇 안을 보면 탄화된 쌀이나 보리씨, 돼지나 닭, 오리 등의 뼈가 발견되지 않고, 단지 조개껍질과 물고기 뼈, 사냥한 사슴 뼈나 고래 뼈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채집과 어로 활동을 주로 하고 농경 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상류층에서 청자를 향유하는 동안 백성들이 사용한 질그릇 (1부 6장 137~147쪽 참조)
고려인들은 도기를 무덤에 부장하는 용도보다는 주로 생활용기로 사용했다. 고려 중기, 청자의 발달과 함께 질그릇도 기형과 장식무늬가 더욱 세련되어진다. 병이나 매병, 편병, 항아리 등 청자의 기형을 본받은 형태들이 보편화되었고, 동일한 기종이 도기, 자기, 금속기 등으로 목적과 수요층에 맞게 차등적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서긍의 『고려도경』에 과일이나 식초를 담는 데 쓰였고, 배에서 식수를 담을 때도 큰 독이 유용했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저장용기로서 독 종류의 도기가 많이 만들어진 듯하다.

◎ 청자의 장식무늬에 담긴 고려인의 마음 (2부 4장 230~239쪽 참조)
중국 문화의 영향을 벗어나 독자적인 길로 접어든 13세기 고려 청자의 장식무늬에는 고려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상감청자의 술잔과 술병에 주로 베풀어진 들국화무늬는 15세기까지 줄곧 사랑받던 소재로, 당시 고려인들에게 자연합일自然合一의 의미로 다가왔다. 도교에서 학은 신선을 태우고 선계를 나는 영물로 여겨져 도교사상이 퍼지면서 운학무늬가 유행했다. 포도와 포도줄기에 매달린 동자무늬로 나타난 다산의 상징은 몽골인의 침략으로 인한 전쟁의 상처를 씻기 위한 고려인들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다.

◎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분청자 (2부 6장 276~283쪽 참조)
16세기 후반에는 소박한 조선 다완이 일본 다인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이는 일본의 다성茶聖이라 일컬어지는 센 리큐의 다도 이념, 즉 자연 상태로 돌아가야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일본 사회에 유행하면서 조선 다완이 미감에 들어맞아 사랑받게 된 것이다. 16세기 이후 오늘날까지 조선의 사발이 일본의 다도茶道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은 일본인들의 가치관과 관계가 있다. 조선 다완은 약간 어리숙하고 모자라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정감이 드는 순박함이 있다. 조선 사회가 추구했던 성리학의 청빈하고 소박한 미감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일본인들도 공감했던 듯하다.

◎ 다채로운 도자 문화가 꽃핀 조선 후기 (2부 9장 337~342쪽 참조)
한글 소설과 판소리의 유행, 진경산수화의 등장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철이 든 조선이 자아를 찾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 18세기에 조선적인 문화가 꽃피게 된 것이다. 다양한 문화 현상에 따라, 도자기의 장식무늬와 기종, 기법도 다양화를 이루었다. 도자기가 생활 속 깊이 파고들면서 문방구류 등 생활 전반에 사용되는 자기의 형태가 새로이 만들어진다. 19세기에 조선 문화가 보수화되고, 근대적인 사실주의 정신이 퇴조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도자기들의 종류와 장식무늬를 살펴보면 더욱 다양하게 발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흐름과 상관없이 도자 문화가 더욱 풍성해지면서 일상생활과 떨어질 수 없을 만큼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3. 우리 도자기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 ‘도기’가 아니라 ‘토기’가 맞는 용어이다? (1부 1장 33~35쪽 참조)
미국인들은 번조 온도를 기준으로 600∼700°C 사이에서 구운 그릇을 ‘Earthenware’라고 했는데, 19세기에 일본인들이 이를 토기라고 번역하였다. 미국과 유럽의 기준으로 볼 때 신라와 가야의 도기는 1,000∼1,200°C 사이에서 구워졌으므로 석기stone ware라고 불러야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는 굽는 온도의 구분 없이 토기라고 불러왔다. 필자는 국적불명의 토기土器라는 말 대신에 ‘도기’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마땅하다고 하며, 도기의 순우리말인 ‘질그릇’을 추천하였다.

◎ 옹기는 조선시대에 새로 등장한 형태이다? (1부 4장 79~81쪽 참조)
널찍하고 풍만한 장독과 똑같은 형태로, 바닥은 편평하고 몸체는 길쭉하게 잘생기고 뚜껑이 있는 한국 옹기의 원형이 고구려의 아차산 유적에서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조선의 옹기와 똑같은 기형이 5세기 후반∼6세기에 아차산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동안 옹기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형태라고 생각해왔으나, 고구려의 질그릇이 결국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 유물로서 명확하게 증명되었다.

◎ 분청사기는 질 낮은 그릇인가? (2부 5장 245~246쪽 참조)
일반적으로 분청사기라고 하는 분청자는 거친 질감과 ‘사기’ 라는 꼬리표 때문에 질이 낮은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은데, 분청자도 왕실에서 사용했던 고급 제품이 있었고, 백자나 청자에도 질이 낮은 하품下品이 있었다. 우리 옛 문헌에 등장하는 자기와 사기는 서로 같은 의미를 가진 용어로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분청자는 전국에 설치된 139개소의 자기소에서 구워졌으므로, 분청자는 자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도자사에서 일반적으로 청자를 청사기, 백자를 백사기라 칭한다면, 분청자 또한 분청사기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청자나 백자를 청사기나 백사기라고 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지금처럼 청자, 백자라는 용어를 그대로 쓴다면 분청사기 또한 ‘분청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 우리나라의 도공들이 대거 일본에 끌려가면서 분청자가 쇠퇴하였다? (2부 6장 275~276쪽 참조)
임진왜란 당시 분청자를 만들던 도공들이 모두 일본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분청자가 쇠퇴했다는 설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일본의 규슈 지방에 끌려간 사기장들이 조성한 대부분의 가마터에서는 백자를 만들기 위해 주력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일본의 가라츠唐津에서 일부 분청자를 만들었던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후대에 분청자를 만들어달라는 일본 내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임진왜란 직후에 형성된 가마에서 분청자를 만들지는 않았다. 민간에까지 백자가 확산되면서, 분청자는 백자를 선호하는 수요층의 취향 변화에 따라 임진왜란 이전인 1570∼1580년경 사이에 자취를 감춘 것으로 여겨진다. 분청자는 백자를 닮기 위해 분장하는 것에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자 자연적으로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백자의 확산이 분청자 소멸의 주된 이유인 것이다.

◎ 우리나라는 채색자기의 제작기술이 없어 순백의 백자만 주로 만들었다? (2부 8장 311~313쪽 참조)
백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성리학이 정착되고, 유교의 덕목들이 생활 속에 뿌리내리면서 강조된 청렴결백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의 사대부들은 아름답고 화려한 옷에 현혹되기보다는 소박하고 흰 무명옷을 즐겨 입었는데, 이는 성리학의 청렴결백 사상과도 일치한다. 이러한 성향은 자기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특별한 장식무늬 없이도 그 외형과 백자 고유의 빛깔에서 나오는 새하얀 아름다움을 추구한 듯하다. 16세기에 만들어진 도자기 중 화려한 예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그릇들은 주로 백색을 지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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