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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여자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간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 길을 네 번이나 건너고,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리기도 한다. 책가방은 무겁고, 발목도 아프다.
아이가 집으로 가는 길은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멀고 위험하다. 그러나 아이가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혼자만의 상상을 하는 것이다. 아이는 시멘트 바닥을 뚫고 나온 나무뿌리들을 보며 그 밑으로 잔뜩 부푼 혈관들이 흘러가고 있다고 상상한다. 거인 심장의 박동이 느껴질까 봐 손을 대지 못한 채. 지그재그 모양의 고랑도 그려 넣고, 언덕이 보이면 올라가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위험한 함정들을 요리조리 피해서 걷는다. 낯익은 골목길, 차고 색깔과 정원 모양새까지 훤히 알고 있는 집들 사이사이를 지나 어린 소녀는 집으로 간다. 비록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 혼자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지만 어린 소녀는 길을 걸으며 조금도 슬퍼하거나 의기소침해하지 않는다. 아이의 시선이 가 닿는 곳 모두가 상상의 세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이 혼자만의 상상의 날개를 펴면서 걷다보면 어느 새 집 가까이 와 있다. 분홍색 덧문이 달린 커다란 집 앞에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꼬부랑 할머니도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이제는 아무 말 없이살짝 미소만 짓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따뜻한 온정을 느낀다. 친절한 빵집 아들 기욤은 주머니에 달랑 사탕 반쪽을 살 수 있는 동전만 있는 여자 아이에게 아무도 몰래 막대사탕을 쥐어주는 따뜻한 소년이다. 이렇듯 집으로 가는 길에는 여자 아이만이 알고 있는 작은 비밀들이 숨어 있다. 이 다음에 커서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 풍경, 사람들이 여자 아이의 세계에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 간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거짓으로 “엄마, 다녀왔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아이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쓸쓸할 수밖에 없다. 집에 도착한 아이는 더 외롭다. 아빠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엄마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지 며칠이 지났다. 아이는 냉동실 안의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저녁거리를 익숙하게 녹여 먹는다. 외롭고 슬퍼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지만 아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의젓하다. 아이는 저녁이 되어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수술이 끝난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엄마가 걱정할까 봐 꾹 참는다. 엄마가 퇴원하면 집으로 가는 길을 나란히 걸으며 그 길에 감춰진 비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 줄 생각에 부푼 가슴을 안고 잠자리에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