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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 머리말
화보 지은이 머리말 제1부 도쿄에서 엔지니어가 되다 장난꾸러기 어린 시절 아버지가 물려준 낚시 취미 도쿄로 유학을 간 소년 숨어서 배운 라디오 기술 강원도 산골의 창도광산 일제 말기의 다덕광산 제2부 해방된 조국의 빛과 어둠 속에서 '우환동포'의 창전사 빛과 소리가 열리던 고향마을 하동군청 방화사건 내 친구 강대봉의 죽음 소안도 피난살이 화평전업사와 미군 PX 시절 제3부 국산 라디오 1호의 탄생, 그 이후 금성사의 기술 간부 채용시험 한국 전자공업의 선구자들 금성 A-501호 라디오가 탄생하기까지 전자공업 초기의 실패를 넘어서 박정희 대통령과 라디오 히다치와의 기술제휴로 TV 생산 금성사 동래 공장을 설계하다 서울 본사의 기획부장으로 승진 삼화콘덴서와 한일 합작 회사들 가와다케와 신기상역 제4부 바람 속의 등불처럼 일가를 이루다 수호천사 아내 자랑 우리 집의 세 기둥과 자라나는 나무들 유별난 딸과 사위 박노해 뒷이야기 김해수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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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라디오 1호를 개발한 엔지니어의 일대기
이 책 『아버지의 라디오』는 국산 라디오 1호를 만들어 한국 전자산업의 새벽을 연 엔지니어 김해수(金海洙, 1923~2005)의 일대기다. 이 일대기 속에는 엔지니어로서의 행적만이 아니라, 장난꾸러기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부터 해방과 전쟁을 전후한 격랑기의 인생유전, 애틋한 연애담, 민주화의 격동기에 딸과 유별난 사위(박노해)로 인해 겪는 고통과 갈등까지 개인적 삶의 다양한 장면들도 함께 담겼다. 엔지니어 김해수는 큰 역사의 물줄기에서 보면 분명 ‘굵직한 인물’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인물 쪽에 더 가깝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가 교차하는 지점을 통과해야 했던 그의 삶의 기록은 단지 흥미로운 한 개인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에서 전기 기술을 배우고, 좌우가 대립하는 해방공간을 엔지니어로 통과하고, 산업화 제1세대로 ‘조국근대화의 역군’인 동시에 민주투사의 아버지로 살아야 했던 그의 기록 속에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그의 기록은 한국사의 한 부분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 첫 국산 라디오의 생산(1959년)은, 그때까지 일본이나 미국에 종속되어 있던 기술의 독립, 나아가 경제적 독립을 향한 고고성과도 같은 것이었고, 산업화를 통한 비약적 경제발전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이후로 김해수는 국산 TV와 콘덴서, 전자교환기 등 전자부품의 기술개발 현장을 이끌었다. 오늘날 ‘IT, 전자산업의 종주국’이라는 한국의 위상은 바로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산업역군’ 아버지가 쓰고 ‘민주투사’ 딸이 엮은 우리시대의 역사 ‘산업역군’으로 살아온 아버지 김해수가 쓰고, ‘민주투사’였던 딸 김진주가 논평을 더해 엮은 이 책 속에서 우리는 시대가 빚어낸 두 세대의 비극적 대립과 화해의 순간들을 엿보게 된다. 엔지니어 김해수가 ‘산업역군’으로서 신명을 바치는 동안, 산업화의 그늘 속에 사회경제적 모순이 자랐고, 결국 그의 아들딸들은 아버지 몰래 ‘민주투사’가 되어 길거리로 달려나갔다. 그의 딸 김진주는 약사라는 안정된 신분과 직업을 내던지고 가출해 스스로 구로공단의 보조 미싱사가 되어 노동운동에 투신하고, 혁명을 꿈꾸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라는 불온한 인물과 사랑에 빠져 아버지를 혼란 속에 빠트리기도 한다. 산업화에 기여한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받은 표창장은 그의 거실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가, 딸과 사위 박노해가 투옥되면서 책상 서랍 속으로 밀려들어가 퇴색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의 대결구도 속에서 이해되고 있지만, 한꺼풀 벗겨 들어가 보면 이 두 세력은 전혀 다른 뿌리를 갖는 남남이 아니라 한 지붕 아래에서 부대끼던 부모 자식이며 아버지와 딸이었다. 그렇게 산업화, 민주화로 불화와 대립의 길을 걸어야 했던 그 아버지와 딸이 책 속에서 다시 만났다. 아버지 김해수는 술회한다. “‘조국 근대화의 주역’으로 산업현장에서 심혈을 바쳤던 우리 세대는 위대했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주를 위해서 희생을 당했던 고통을 강요하거나 외면해온 죄를 짓기도 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임무를 떠넘기게 됨으로써 우리 사회가 더욱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한편, 딸 김진주는 엮은이의 말을 통해 말한다. “20세기 초에 첨단의 전자공학을 공부한 엔지니어로서 그가 살아낸 한국의 현대사는 ‘희망의 시대’이자 ‘배반의 시대’였다. 아버지가 겪어온 날들의 희망과 배반을 잊지 않고 되새겨보는 일은 지금 이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 삶의 의미와 과제들을 좀더 뚜렷하게 밝혀주리라고 믿는다.” “아버지의 옛이야기가 풍요로운 기억의 공동체의 힘으로 축적되기를 바란다.”는 엮은이의 말 속에서 두 세대 간의 반목이 화해하는 지점을 목격한다. 그렇게 ‘기억의 공동체’ 속에서 화해하는 두 세대는 함께 다음 세대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지은이는 “후손들이 우리 세대를 향해 기립 박수를 쳐줄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둔다.”면서 “라디오 시대보다 소통의 기술이 훨씬 발달된 인터넷 세상을 경쾌한 걸음으로 누비고 다니는, 저 낯선 세대를 믿어도 좋을 것인가.” 하고 불안을 드러낸다. 엮은이는 “21세기의 험로를 함께 개척하고 있는 우리 세대와 신세대는 서로를 배반하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평범한 엔지니어의 삶, 그러나 평범치 않은 장면들 엔지니어 김해수의 삶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많다. 그는 소식에 목말라 있던 해방 전후 가는 곳마다 고장난 라디오를 수리해줘 ‘스타’로 대접받기도 하고, 물레방아에 발전기를 매달아 산골 마을 사람들에게 단군 이래 최초의 전깃불을 선사하기도 한다. 전기기술자가 드물었던 시기 좌익과 우익의 행사에 모두 불려가 음향과 전기 설비를 해주면서 양측의 첨예한 갈등에 휘말려 고초를 겪기도 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최초의 국산 라디오를 개발 전후와 이제 막 걸음마를 떼던 한국 전자산업의 현장과 시장 상황을 증언하는 장면일 것이다. 박정희 장군과의 조우 ‘금성라디오 A-504를 맑게 개인 가을날 /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김수영의 시 <금성라디오>) 일상생활로 급속히 파고들며 대중의 선망 품목으로 떠오르게 되지만, 국산 라디오가 처음부터 시장의 환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수준을 달리는 한국의 기술’로 ‘불안한 전압에서도 소리가 잘 나도록 만들었다’는 대대적인 홍보에도 초기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이 상황을 바꿔놓은 것은 김해수와 ‘박정희 장군’의 우연한 조우였다. 천신만고 끝에 개발한 국산 라디오를 창고에 쌓아놓고 실의에 잠겨 있을 무렵, 선글라스를 쓴 박정희 장군이 김해수가 혼자 지키고 있는 금성라디오 공장(부산 연지동)을 불쑥 방문한다. 국산 라디오에 관심을 보이는 박정희 장군에게 김해수는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일본과 같이 전자공업이 크게 일어나려면 일제 밀수품과 미제 면세품 라디오의 유통을 막아야 합니다. 장군께서는 오늘 저녁에라도 광복동에 즐비한 여러 라디오 가게의 진열장을 살펴봐 주십시오. 마치 외제 라디오의 박람회장처럼 무엇이든지 있지만, 국산 라디오는 단 한 대도 끼워주지 않는 현실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울먹인다. 며칠 후 ‘밀수품 근절에 관한 최고회의 포고령’이 발표되고, 공보부 주관으로 ‘전국의 농어촌에 라디오 보내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된다. 이때의 일을 김해수는 이렇게 회고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농어촌에 라디오를 보급함으로써 군사혁명에 대한 홍보와 지지세력 확대를 도모했던 박정희 장군의 의도와 우리나라 전자공업의 발전을 추구하던 시대의 요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던 게 아닌가 싶다.” 최초의 국산 라디오 금성 A-501의 현재 김해수가 만든 최초의 국산 라디오 금성 A-501은 유족인 엮은이의 손에도 제조사 금성사의 후신인 LG전자에도 남아 있지 않다. 남아 있는 진품이 전국을 통틀어 서너 대뿐이고,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반열에 들었다고 한다. 엮은이는 말한다. “그 라디오를 만든 엔지니어의 유족이 된 입장에서는 지금껏 소중한 유품 하나 간직하지 못한 내력이 부끄럽지만, 뒤늦게나마 그 가치를 깨닫고 사려고 해도 팔겠다는 이가 없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제조사인 LG그룹에서조차 모조품을 전시해 놓고 있는 형편인 것을 보면 우리 아버지의 시대가 얼마나 바쁘게 앞길만 응시하며 달려왔는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