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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
서명수
아르테 2007.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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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의 말

제1부 라오바이싱(老百姓), 그들의 삶
1. 지붕 위의 예술가 장지엔화
2. 삼륜차 아저씨 티엔(田占軍) 선생
3. 디산저(第三者)
4. 문혁(文革)을 넘어. 문화대혁명을 헤치고 살아온 인생
5. 티에판(철밥통) 공무원
6. 자동차로 꾸는 창춘사람의 꿈
7. 폭발호
8. 허난(河南) 사람은 요괴인가. 중국의 지독한 지역 차별
9. 민영기업의 천국, 저장성을 가다

제2부 라오바이싱(老百姓), 그들은 누구인가
라오바이싱(老百姓)은 누구인가

저자 소개

저자 : 서명수 (徐明秀)
고려대학교 불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 석사)하고 매일신문사 정치부, 경제부 기자로, 2005~2006년 중국 베이징 중국사회과학원 사회학연구소 고급 진수생으로 활동했다. 현 매일신문사 차장으로 재직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9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11쪽 | 56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5958469

책 속으로

‘인민복’은 중국 혁명의 상징이다. 20세기 초 닝보의 홍방재단사가 쑨원을 위해 만들어 준 옷이 최초의 인민복이다.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쑨원 선생이 즐겨 입으면서 ‘중산복’(中山服)으로도 불렸다. 이후 중국 혁명을 완성시킨 마오쩌둥주석이 즐겨 입으면서 인민복(人民服)이라는 보통명사로 진화했다.
인민복은 위로는 마오쩌둥 주석에서부터 당원은 물론 농민공(, 농촌 출신의 도시 노동자)과 노동자, 농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입었던 ‘국민복’이었다.

개혁개방은 인민복을 벗어던지게 만들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민영기업가들부터 무채색과 회색 일색인 인민복을 벗어던졌다. 인민복을 벗어 버리자 돈을 벌기 시작했다. 젊은 여자들은 도시로 나가 돈을 벌기 위해 칙칙한 인민복을 벗었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전통 복장인 ‘치파오’(旗袍)로 갈아입은 젊은 여자들은 밤거리로 쏟아져 나갔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치파오마저 벗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제는 누구도 인민복을 입지 않는다. 강요하지도 않는다. 후 주석도 인민복 대신 양복을 입고 외국으로 가서 정상 외교를 한다. 50년 이상 천안문 광장을 지키고 있는 마오 주석은 그래도 인민복 차림이다. ‘인민복을 입고 있는’ 마오를 라오바이싱은 그리워하지 않는다. 마오가 인민복을 벗어던진다면 라오바이싱들도 기꺼이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개혁개방의 거친 파고를 넘은 라오바이싱. 경제성장의 주역이 되었든, 벼락부자의 꿈을 안고 도시로 상경했으나 뿌리 없이 떠도는 농민공이든, 삶의 무게에 지친 농민이든, 그들 모두가 중국의 라오바이싱이다.
---본문 중에서

매년 10%가 넘는 경제성장률과 상하이의 고층 빌딩, 와이탄(外?)에서 반짝거리는 다국적기업의 화려한 네온사인에 현혹된 나는 중국이라는 껍데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13억 중국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

중국은 후진타오(胡錦?) 주석을 비롯한 소수의 공산당 지도부가 이끄는 나라다. 그러나 13억 거대 중국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후 주석도 원자바오 총리도 쩡칭홍 부주석도 아니다. 수천 년이라는 중국이라는 역사를 이끌고 온 것은 ‘라오바이싱’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다.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현실과 그들의 희망과 꿈이 바로 중국의 실체이다. 중국이 ‘문화대혁명’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딛고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9억 농민 등 ‘라오바이싱’의 희생과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문 중에서

관련 자료

저자 서문
한 중국인 친구가 있다.

그는 지독하게 중국 정부와 공산당을 불신했다. 한여름 베이징의 기온이 38℃라고 보도되면 40℃는 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지방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1~2명이 사망했다고 하면 5~6명 이상의 사상자를 축소 발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그의 ‘불신’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중국인들은 유난히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100위안짜리 인민폐(人民?, 런민비)를 받으면 누구나 가짜 돈이 아닌지 손으로 만져 보고 확인한다.

그의 가족사는 중국 현대사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그의 부친은 인민해방군의 고급 간부였다. 1928년생인 그의 부친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종전 후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5년간 더 군사고문단으로 북한에 머물러 있었다. 중국으로 되돌아왔지만 전쟁 영웅인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문화대혁명’이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파로 낙인찍힌 그는 감옥에 갇혔다. 결국 그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1985년 옥사(獄死)했다. 어머니와 그, 살아남은 두 사람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 대한 배신감을 키우면서 버텼다.

개혁개방이 세상을 바꿨고, 1990년대 후반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아냈다. 쥐꼬리만 한 보상금보다는 문혁 당시의 공산당과 정부의 과오를 인정받은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제대로 취직을 하지 못했다. 유달리 총명한 학생이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국가기관에 배정받지 못했다. 그가 졸업할 때까지는 국가분배제도(대학 졸업생을 직장에 배정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그는 대상이 되지 못했다.

“국가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 중국 정부가 무엇을 하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 나에게는 나와 가족밖에 없다. 가족이 잘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국가는 나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 공산당과 국가는 존경하는 아버지를 빼앗아 갔을 뿐 우리 가족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쩡치엔!(??!), 쭈안치엔!(??!)’(돈을 벌어라!)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다. 베이징올림픽? 그건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베이징올림픽을 이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서 좋긴 하다. 돈을 번 다음에는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중국을 벗어나고 싶다.”

그는 다시 말했다. “세상에 믿을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 길을 가다가 강도를 당해도 당이나 공안(公安, 경찰)이 구해 주지 않는다. 내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의 이야기가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매년 10%가 넘는 경제성장률과 상하이의 고층 빌딩, 와이탄에서 반짝거리는 다국적기업의 화려한 네온사인에 현혹된 나는 중국이라는 껍데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13억 중국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출판사 리뷰

세계 최대의 시장이자 공장,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21세기 초강대국, 하나의 대륙이자 국가인 중국에 대해서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국 관련서적들은 역사, 경제, 사회, 정치를 논하는 담론이거나 관광서들이 주를 이루는 것이 사실이고, 반면 중국의 살아있는 면모, 즉 시시각각 변모하는 중국의 실질적인 구성원들인 인민들의 생생한 실상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는 아직 그 소개와 접근에서 요원한 감이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은 크게 2개의 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9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들 ‘라오바이싱’들의 작은 만화경이다. 그들의 다채로운 면모를 9개의 케이스로 살펴보는 동시에 적절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예술가(1장, 장지엔화), 하층민(2장, 삼륜차 운전수), 불륜(3장, 디산저), 문혁의 피해자(4장, 노 교수 부부), 철밥통 공무원(5장), 창춘의 비즈니스맨들(6장), 벼락부자들(7장, 폭발호), 지역차별의 피해자(8장, 허난인), 민영기업자들(9장, 저장성) 등으로 소개하면서 아직껏 알려지지 않은 중국 인민들의 실상과 현재, 그 속에서 치열한 삶을 꾸려나가는 이들 인민들의 고뇌와 애환을 가까이에서 차분하게 조감하고 있다. 2부에서는 ‘라오바이싱’의 의미와 위상에 대한 전체적인 개괄을 시도하고 있다.

◈일러두기- 간체(簡體) 표기에 대해
본문에 나오는 명사와 고유명사의 한자 표기는 중국식 간체 표기를 원칙으로 했다. 1960년대 이후 중국에서는 90%가 넘는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간체를 개발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라오바이싱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자, 번체(繁體)를 모른다. 교과서에서부터 간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한자는 간체다. 간체 사용에 대한 논란이 없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는 중국의 라오바이싱들이 쓰는 그들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간체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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