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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중원에서 사이(四夷)까지 : 지리적 시야의 확대
서역의 실크로드-양한 영역과 역외 지리 지식의 확대 서역에서 온 부처-진나라 당나라 고승들의 지리 발견 몽고 대칸의 채찍-몽고 제국 시대의 서역 탐색 파도를 헤지며 창해를 누빈 함대-명나라 초 정화 함대 7차에 걸친 원양 항해 해상의 아름다운 진주-남중국해 여러 섬들의 발견과 관할 2장 평지에서 고산까지 : 지리적 인식의 심화 인문 지리의 이정표-심괄『몽계필담』의 독창적 견해 천하만큼 넓은 자연을 음미한 두 여행가-서하객과 왕사성 황하는 하늘에서 흘러오는 것일까-황하 발원지에 대한 탐색 쉼없이 지평선 너머로 흐르는 장강-장강 발원지 탐색 죽음의 바다, 희망의 바다-타클라마칸 사막의 탐험과 유전 샹그리아를 찾다-티베트 고원으로 들어서다 여신의 고향-초모룽마 봉의 발견 3장 높은 언덕이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언덕이 되다 : 지리적 환경의 변천 캄브리아기의 성지-지구 생명 탄생의 비밀 생명의 진화, 그 증거를 보다-희귀 동물의 발자취를 찾아서 창해가 뽕나무 밭으로 변하다-황해 깊숙한 곳에 묻혀버린 이야기 모든 강물의 으뜸 황하의 일생-역사 속의 황하와 담기양의 발견 입신의 경지로 빋은 장강-유사 이전 장강의 비밀을 밝히다 바람일까? 물일까?-황토 고원의 생성 원인 여산의 진면목, 황산으로의 여정-제4기 빙하 유적의 발견과 탐색 황야의 신비한 호수-비밀에 싸인 롭 노르 사막의 선율-‘우는 모래’의 수수께끼 4장 누가 첫번째 발견자인가? 서복은 왜 동쪽으로 갔는가-서복, 일본을 발견하다 아메리카를 발견하다-법현이 태평양을 건넌 까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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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유함·문명·발달 등이 유럽 탐험가들의 탐험에 대한 열정과 신항로 개척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여 ‘지리상의 대발견’을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였다. 그러나 중국인이 ‘지리상의 대발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크게 낙후되고 타격을 받게 되었다는 점은 흥미진진하고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주제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반성적 고찰을 했다. 예를 들어 장전(張箭)은 원거리 항해에 대한 유약하고 단견, 협소한 대지관(大地觀), 전통 지도의 결여, 육지를 중시하고 바다를 경시하는 관념과 취향, 지리적 조건과 지역연고 정치의 제약, 우월한 경제 지리적 상황의 부정적인 작용 등이 중국으로 하여금 ‘지리상의 발견’ 대열에 끼지 못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저자의 글 중에서
1장 『중원에서 사이(四夷)까지 : 지리적 시야의 확대』에서는 ‘실크로드’ ‘현장스님’ ‘몽고의 4대 제국’ ‘명나라 정화 함대’ ‘남중국해 제도(諸島)' 등을 통해 중국의 중원문명 시야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확대되었는지를 통시적으로 조망했다. 2장 『평지에서 고산까지 : 지리적 인식의 심화』에서는 '송나라 심괄의『몽계필담』' ‘황하의 발원지 가일곡' '장강의 발원지 티베트의 타타하' '타클라마칸 사막의 탐험과 석유 부자 중국' ’초모룽마(에베레스트)의 신비' 등을 통해 중원에만 머물지 않고 오랜 세월을 통해 점차적으로 지리적 인식을 심화한 중국의 인문·자연지리의 성과를 조목조목 살펴본다. 3장 『높은 언덕이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언덕이 되다 : 지리적 환경의 변천』에서는 '고대 희귀동물의 천국 중국' '뽕나무 밭이던 황해가 창해(蒼海)가 된 사연' '정치의 근본인 황하 치수의 역사' '장강과 황하가 만나던 시절의 이야기' '황토고원의 생성원인' '여산의 진면목' '타클라마칸의 움직이는 호수 나포박' '우는 모래의 수수께끼' 등을 통해 지대물박(地大物博)의 중국대륙이 왜 신비롭고 매력적인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4장 『누가 첫 번째 발견자인가』에서는 '서복이 동쪽으로 가 일본의 개국천황이 된 사연’와 '동진의 고승 법현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처음 발견했다는 논쟁'을 풍부한 사료와 논쟁비화사로 독자들의 상상력에 나비효과를 일으켜준다. ---본문 요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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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Digest 중국지리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디스커버리 중국지리
서역과 천축에 대한 찬란한 기억과 발자취 고대의 중국인이 상상한 서역은 ‘긴 날개를 가진 묘민과 키가 33.3m나 되는 완거국 사람들의 땅’이었다. 심지어 ‘서왕모와 같은 신선이 큰 연못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목천자전』『산해경』등의 고대 신화서가 전하는 서역은 귀신과 죽음의 땅이었다. 하지만 역사시대의 사마천이나 반고가 전하는 서역은 '인간의 무궁무진한 호기심과 극한의 인내력'으로 탐험이 가능한 지리적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천산산맥을 따라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건, 흉노를 제압하기 위해 서역으로 출병한 표기장군 위청과 곽거병 그리고 그들의 주군인 한무제(漢武帝)는 대진(大秦 : 로마제국)과의 교역을 꿈꾸었다. 실크로드를 향한 중국인들의 지리적 인식욕망은 동한 시대의 반초ㆍ반용 부자, 광막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천축에서 불법을 구한 현장법사, 기마대를 이끌고 실크로드의 유라시아를 통일한 칭기즈칸의 후예들과 망국(요나라)의 설움을 안고 칭기즈칸의 기마 군대를 찾아 나선 야율초재의 여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의 지리적 시야가 황하 주변의 중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역사적 발자취이다. 이렇게 중국인들은 중원 너머의 세계를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넓고 깊게 바라보면서 후대의 지리적 인식과 확장의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중국이 석유부자 나라가 된 사연 ‘타클라마칸은 21세기 페르시아 만’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 부분에 자리한 타클라마칸 사막은 남북이 천산산맥과 곤륜산맥, 동서는 파미르 고원과 고비사막으로 막혀 있어 극도로 건조한 기후를 보이는 ‘사막 중의 사막’이다. 커다란 달걀 모양의 타클라마칸 사막은 투르크어로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리라’는 의미이다. ‘카라 부란(검은 폭풍)’을 만나 절멸한 것들이 유사 이래 부지기수일 만큼 죽음의 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천취경(西天取經 : 천축에 가 불경을 가져옴)에 나섰던 현장법사나 유명한 근대 탐험가 스벤 헤딘 등 수많은 사막 탐험가들도 줄줄이 늘어선 사람과 동물의 해골을 이정표 삼아서 죽음의 고비를 무릅쓰며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1980년대 말 타클라마칸 사막이 세상을 두번 놀라게 한다. ‘모래 바다’나 ‘죽음의 바다’로 불렸던 타클라마칸 사막이 수억 년 전에는 광활한 바다였다는 것에 놀랐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송나라 심괄이『몽계필담(夢溪筆談)』에서 예견했듯이 타클라마칸 사막이 세계 최대의 석유 저장고라는 사실이었다. 타림 분지의 반복된 지반침강과 해수면상승으로 바다가 육지를 덮는 해침현상 그리고 열대환경 생태계로 인해 이곳에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이 매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포함한 타림 분지 전체의 석유 매장량은 약 500억 톤에 달하는데 이는 쿠웨이트의 석유 매장량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 석유 매장량의 1/3에 해당한다. ‘21세기 페르시아 만’인 세계 최대의 석유 저장고 타클라마칸이 유혹의 손길을 내밀며 끝없는 모래 바다 아래에서 검은색 액체를 위로 내뿜자 ‘죽음의 바다’가 ‘희망의 바다’로 바뀌었다던 셈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자신의 정치적 통제 범위 안에 두기를 원하는 것처럼 중국이 신강성 위구르자치구의 독립을 거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타클라마칸 사막이 품고 있는 엄청난 석유 매장량에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옛날에는 황하와 장강이 서로 만났다는데 황하가 800년 동안 고요했던 수수께끼 현재의 황하와 장강은 두 개의 독립적인 수계(水系)이다. 그러나 지금의 소북평원 연해에 형성된 소북 여울목, 즉 오조사(五條沙) 삼각주는 고장강과 고황하(古黃河)의 하상이다. 다시 말해서 고황하는 산동성에서 발해로 유입된 것이 아니라 소북에서 황해로 유입된 것이다. 고황하의 남천(南遷)과 고장강의 북이(北移)로 인해 고황하 삼각주와 고장강 삼각주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고황하 - 고장강 삼각주’를 만들어낸 적이 있었다는 말이다. 중국에서 정치의 근본은 하나라 우왕이 증명하듯 황하의 물을 다스리는 치수에 있었다. 사마천은 일찍이 한무제가 호자하(瓠子河) 입구의 터진 제방을 막는 사업에 참여했다고 『사기』「하거서」에 기록했다. 동한 반고의『한서』「구혁지」는 한무제부터 서한 말기까지의 황하의 치수관리를 기술하고 있다. 청나라 호위(胡渭)의『우공추지(禹貢錐指)』, 근대 잠중면(岑仲勉)의『황하변천사(黃河變遷史)』그리고 황하관리위원회의 『인민황하(人民黃河)』등도 유명한 황하 치수 관련 저작물이다. 선진 시기에서 국민당이 통치하던 민국 시기까지 3,000년 동안 황하 하류가 범람한 것만 1,593번이고, 크게 수로가 바뀐 것은 26번이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3,000여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황하는 두 차례 긴 휴식을 가졌다는 점이다. 먼저 전국시대 중기에서 서한 문제(文帝) 때까지 황하는 백여 년 동안 평온하게 흘렀으며, 이후 동한 명제(明帝) 때 왕경(王景)이 황하를 다스린 때부터 당나라 시대 중기까지 800여 년 동안에도 범람하지 않고 평온하게 흘렀다. 어째서 ‘성질이 난폭한’ 황룡이 갑자기 조용해졌고, 또 휴식 시간도 800여 년에 달하는 것일까. 『중국지리 오디세이』는 이를 학술적으로 고증하고 있다. 황야의 수수께끼 '움직이는 호수 나포박'이 누란을 삼킨 까닭 신강성 타림분지 동부의 황야에 신비로운 색채가 가득한 호수 나포박(羅布泊)이 있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나포박 아래에 고대의 누란(樓蘭)문명이 묻혀있고, 인공위성으로는 '거대한 귀’ 형상의 모래더미가 촬영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왜 나포박 아래에 고대의 화려했던 누란문명이 잠들어 있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르제발스키와 리히트호펜 그리고 스벤 헤딘 등이 격렬한 논쟁을 펼쳤다. 리히트호펜의 제자였던 스벤 헤딘은 19세기 말 ‘움직이는 호수 이론’을 처음 제시했다. 나포박은 타림강에 매달아 놓은 시계추처럼 남북으로 이동을 반복했다. 왕복 이동 주기는 약 1,500년이다. 나포박이 남북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호수로 유입되는 호수물이 다량의 진흙을 가져와 분지가 퇴적되면 그로 인해 호수바닥이 상승하면서 호수물이 다시 저지대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 진흙이 높이 쌓여 상승했던 호수바닥이 다시 바람의 풍식작용을 받아 낮아지면 호수의 물은 다시 원래의 호수로 흘러들어간다. 고대에 갑자기 사라진 누란문명의 미스터리가 여기에 숨어 있다. Special Puzzle 중국지리의 최대 미스터리와 논쟁비사 서북은 일본의 개국 천황인 진무천황일까? 동진의 법현 스님이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했을까? 사마천의『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221년, 진시황은 방사(方士) 서복을 삼신산에 보내어 불로장생약을 얻어오게 했다. 그러나 서복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서복이 동쪽으로 간 것은 확실한데, 도대체 어디로 가 무엇을 했는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중국 지리의 수수께끼가 되었다. 학술계에는 몇 가지 주장이 있는데 그 중에서 유력한 설은 서복이 귀국하면 진시황에게 죽을 게 당연하므로 애초부터 동쪽으로 가 새로운 나라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오곡의 씨앗과 갖가지 기술을 가진 직인 삼천 명을 데려 간 이유이다. 그래서 결국 서복이 도착한 곳은 제주도를 거쳐 일본 규슈 휴가국(日向國 : 미야자키현宮崎懸)이고 그곳에서 진무(神武) 천황이 되어 일본을 열었다고 한다. 동진(東晋)의 법현 스님(337~422년)은 천축에서 불경을 구한 후에 뱃길로 귀향하였다. 그런데 폭풍우를 만나 90일을 정처 없이 항해하다, '야파제(耶婆提)'라고 불리는 곳에 도착한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지점은 '과연 야파제가 어디인가'이다. ①야파제가 자바 섬이라는 설과 ②멕시코의 야카풀코라는 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중국지리 오디세이』는 충격적인 가설이기는 하지만 만약에 야파제가 '야카풀코'라면 법현은 이미 1,600년 전에 아메리카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으로 세계 지리 역사를 다시 쓸 중국 지리 영웅이라고 한다. 또한 법현보다도 더 오래 전에 동아시아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건너간 정황과 증거물을 보여주면서 콜럼버스가 최초로 발견했다는 아메리카 대륙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땅이고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그리고 서양에 의한 '지리상의 대발견'이라는 지리담론은 서양인의 관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