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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Ⅰ. 발해의 건국 1. 7세기 후반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세 2. 고구려 멸망 후 유민의 동향 3. 대조영의 귀향과 발해 건국 4. 발해의 건국 주체와 국가 성격 Ⅱ. 발해의 변천과 융성 1. 발해의 대외 팽창 2. 문왕의 문치와 국가 체제 정비 3. 내분기의 왕위 계승 4. 선왕의 중흥 5. 해동성국의 구현 Ⅲ. 발해의 멸망과 부흥 운동 1. 발해 말기의 동아시아 정세 2. 발해 말기와 멸망 3. 발해의 멸망과 유민의 동향 4. 발해 유민의 부흥 운동 Ⅳ. 발해의 대외 관계와 제도 1. 발해와 당의 관계 2. 발해와 신라의 관계 3. 발해와 일본의 관계 4. 발해와 거란의 관계 5. 발해와 그 밖의 민족과의 대외 관계 6. 발해의 중앙 제도 7. 발해의 지방 제도 8. 발해의 군사 제도 Ⅴ. 발해의 사회·경제 1. 발해의 사회 구조 2. 발해의 농업 3. 발해의 수공업 4. 발해의 수산업과 수렵 5. 발해의 교통 6. 발해의 상업과 화폐 7. 발해의 무역 Ⅵ. 발해의 문화 1. 발해의 성곽 2. 발해의 조각·회화·공예 3. 발해의 묘제 4. 발해의 사상과 종교 5. 발해의 언어·문자·문학 6. 발해의 의식주 7. 발해의 음악과 무용 8. 발해의 건축 문화 Ⅶ. 발해사 관련자료와 인식 1. 발해 관련 한국 자료 2. 발해 관련 중국 자료 3. 발해 관련 일본 자료 4. 한국의 발해사 인식 5. 북한의 발해사 인식 6. 중국의 발해사 인식 7. 일본의 발해사 인식 8. 러시아의 발해사 인식 발해연표 왕위계승도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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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698년 고구려 유민의 부흥 의지와 당시의 국제 질서를 이용해 새롭게 탄생한 왕조이다. 발해는 건국 이후 228년간 지금의 북한 지역과 중국 지린 성, 헤이룽장 성, 랴오닝 성 일부,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남부에 걸쳐 번영하였다. 이는 고구려의 1.5~2배, 신라의 3~4배에 이르는 것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강역이라 할 수 있다.
발해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중국 사서에서 또한 왕이 죽고 난 이후 부여되는 시호 또한 ‘사사로이’ 사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발해의 자주성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국’으로 자칭하였고, 당나라를 침공할 만큼 국가 운영은 자주적이었다. 발해의 종족 계통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예맥·부여 계통의 고구려인이 주축이었다. 문화적으로도 발해인들은 고구려의 풍속을 이었고, 고구려의 석실묘와 석곽묘를 계승하였으며 온돌을 사용하였다. 발해의 문화는 고구려를 비롯한 그 지역의 토착 문화 위에 당나라의 문화를 수용한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발해는 신라도, 일본도, 거란도, 압록 조공도, 영주도 등의 대외 교통로를 통해 국제적으로 교류하였고, ‘담비의 길’을 통해 돌궐 등 중앙아시아와도 교역하였다. 6미터가 넘는 석등이나 거대한 벽돌로 쌓은 영광탑 등은 발해 문화의 국제성을 엿보게 한다. 발해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대부분 차지하고, 동북쪽으로 그 영역을 확대하면서 선왕에 이어 11대 대이진, 12대 대건황, 13대 대현석 대에 걸쳐 융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부흥으로 인해 마침내 당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게 되었다.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