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내가 만난 외인부대원 홍성훈 선배/임영훈
프롤로그 1.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한번 바라보자 2. 한 점 바람처럼 살고 싶었다 3. 끝없는 탈출, 빠삐용처럼 살다 4. 나는 파리의 여행 가이드 에필로그 저자 후기 고마운 분들 |
|
외인부대에서 가장 즐거운 날은 바로 축제가 있는 달이다. 여러 번 축제를 경험한 장기근무자라도 축제가 있는 달에는 가슴이 설레게 마련이다. 특히 카메론 데이는 사랑하는 연인과 즐거운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도 가슴 뭉클하게 하는 것은 외인부대 출신들이 부대를 방문해 후배들과 함께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후배 외인부대원들은 백전 노장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그들이 프랑스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 외인부대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새해 첫날인 1월 1일이 되면 하사관들이 장교들에게 먼저 신년 인사를 꺼낸다. 그리고 장교들을 집에 초대하거나 식사에 초대해서 함께 신년을 축하하고 즐긴다. ---p.262 |
|
"미래를 위해 넓게, 멀리 보고 살아라!"
외인부대원 중의 외인부대원이자 영원한 빠삐용인 홍성훈의 인생 철학이다. 그는 이 책을 내는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대한민국 최전방에서 하사관으로 제대했다. 그후 원양어선을 타기도 했으며 스페인 외인부대와 프랑스 외인부대를 거쳐 술집 지배인, 막노동, 봉제공장 경영, 땡물건 장사, 식당 지배인을 거쳐 지금은 파리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우리네 모두의 인생이 소설 같기도 하고 또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고 맞는 말이다. 나는 영화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 그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젊고 건강한 몸뚱어리 하나만 믿고 살아온 삶의 흔적들을 껴안고 보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1970년대 초 고국을 떠나 5년이 지나서야 겨우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한 선배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고 싶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지금 젊음을 보내는 이들이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사회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의 의지가 약하다고 괴로워하는 사람,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 부모에게 의지해서 사는 마마보이, 인생의 밑바닥에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의 증거가 되고 싶다. 왜 좌절하지 않아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시쳇말로 인생은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다. 솔직히 말해 지난날의 나의 삶은 여러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펼쳐놓을 만큼 성공한 것도 잘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책을 낼 만큼 유명인은 더더욱이 아니다. 다만 그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하고 특이한 삶은 살아온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내 삶을 사랑했다. 그 무엇도 내 삶은 대체할 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마치 누가 대신 내 인생을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 비록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소위 말하는 성공은 아닐지 몰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 땀을 흘리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홍성훈(洪性勳)은 1949년 2월17일 경기도 양평에서 칠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60년대 중반 양평농업고등학교를 다니다 반항심과 우월감에 학교 기물파손으로 퇴학당하고, 서울 불광동 소년원에 보내져 2주간 그곳에서 지냈다. 학교를 퇴학당하고 소년원을 나오기까지 아버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자신이 한 일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활철학이자 교육방식이었던 것이다. 이후 1960년도 말에 육군에 입대(첫번째 군번이 생김)했다. 전방 12사단에 복무하던 중, 하사관에 차출당해서 원주의 제1군하사관학교(두번째 군번을 달다)를 졸업 후 분대장으로 근무하다 만기 제대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이 책에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끊임없이 넓은 세계를 열망하던 그는 원양어선 선원이 되어 드넓은 세계로 간다. 거친 바다와 세계 곳곳의 삶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다, 더 많은 보수를 주는 외국배(이탈리아)를 타게 된다. 그후 우여곡절을 겪고 스페인 외인부대에 입소함으로써 생의 세 번째 군번을 달게 된다. 스페인 외인부대의 매일같이 계속되는 지독한 훈련에 염증을 느끼고, 그 와중에 사고도 치고 영창을 가는 등 답답한 생활을 계속하다 14개월만에 휴가를 받는다. 휴가가 끝나도 그 는 스페인 외인부대로는 복귀하지 않는다. 스페인 외인부대 탈영 후 다시 이탈리아 배를 타게 되고, 극심한 향수병과 자포자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중 스페인 경찰과 한국 영사관에 체포되어 강제 추방을 당한다. 한국으로 압송되는 도중 파리에서 비행기를 환승해야 했는데, 그 틈을 이용해 탈출한다. 곧바로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하게 되고 생의 네 번째 군번을 달게 된다. 프랑스 외인부대의 훈련소 생활은 그에게 오랜만에 달콤한 '자유'를 만끽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세계 각국의 인종이 모인 곳에서 훈련 성적 1등. 그러나 불어를 잘 하지 못해 2등으로 밀리고, 선서를 하지 못한다. 훈련 성적이 5등 안에 들면 부대 선택권이 주어지만, 소대장이 그를 마음에 들어해서 원하는 부대로 가지 못하고 기아나로 가게 된다. 자유로운 생활도 잠깐, 기아나에서 생활은 최악이었다. 영창을 안방처럼 드는 기간이 18개월, 2년간 세 번이나 탈영했으며, 그 악명 높은 특수감방에서도 4개월이나 지내야 했다. 프랑스 외인부대 제대 후 스탠드 바 웨이터, 택시기사, 나이트클럽 지배인, 옷 장사 등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지 하면서 살았다. 옷 장사로 크게 돈을 벌었으나 옷을 가득 실은 트럭을 통째로 도난당해서 그 생활도 접어야 했다. 조그만 더 일하면 몽블랑 부근에 산장을 지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 해에 그 일생에 가장 기쁜 일이라 할 수 있는 아들을 얻었다. 수억 원 가량의 모든 재산을 도둑 맞고 낳은 아들, 다시 일어나라는 뜻으로 '웅기'라고 지었다. 1993년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그 이후 3년간 식당의 지배인을 시작했고, 아내는 면세점을 나가야 했다. 그러던 1996년 어느 날, '선천성 방랑벽'과 끊임없이 '자유'를 찾아 떠나려는 그의 성향을 잘 아는 아내가 여행 가이드 일은 제안했다. 그 때부터 현재까지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여행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9인승 미니버스를 몰며 파리를 떠나 스위스 - 독일 - 네덜란드 -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거쳐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는 10일 여정의 여행을 가장 즐긴다. 그의 꿈은 몽블랑 부근에 작은 호텔을 운영하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인생에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군번은 아마 '자유!'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