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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역자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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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 아주 작은 소리만이 들린다. 프레드가 사탕 껍질을 일정한 간격으로 비비고 있다. 이 짧고 반복된 음은 어떤 분명한 리듬을 만들고 있다. --- p.11
"저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훌륭한 감독과 작품을 했지만, 관객들은 저를 [미스터 큐] 속 멍청한 로봇으로만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심지어 90킬로그램이나 되는 갑옷을 입고 연기해서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죠. 그런데도 30분마다 누군가가 찾아와 제가 로봇이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처럼 선생님도 [심플송]의 작곡자로만 기억하죠. 사람들은 선생님의 [검정 각기둥]이나 [아드리아노의 삶] 같은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는 것을 잊고 있어요."--- p.19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던 순간, 프레드는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관자놀이에 새로 생긴 검버섯 하나를 마치 지우려는 듯 손가락으로 문지른다. --- p.22 이 거대한 곳에서의 일상이 시작된다. 이곳은 호텔인 동시에 고급 스파, 의료센터, 체육관, 재활치료소 같은 여러 시설이 있어 각자 미리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움직인다.--- p.30 프레드는 정신을 집중하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부드럽게 한 손을 움직이자 마치 마법이라도 부린 듯 몇몇 암소의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머지 방울들도 더 이상 제멋대로 울리지 않고 멜로디에 맞춰 울리기 시작한다. 그는 다른 손으로 박자에 맞춰 다른 방울 소리를 멈추게 하고, 남은 두 방울을 교대로 울려 음을 만들어낸다.--- p.46 아무것도 줘본 적이 없는 사람. 아빠는 아무것도 준 게 없어요. 엄마에게도, 제게도 아무것도요. 아빠는 음악에만 모든 걸 내줬죠. 그놈의 음악, 음악, 음악! 아빠 인생에서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죠. 그저 음악뿐이었어요. 감정도 메말랐죠.--- p.74 “젊었을 때부터 늘 스스로 다짐했지. 늙은이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왜, 늙은이들은 재미도 없고 뭐든 다 아는 척만 하잖아. 근데 내가 딱 그 꼴이 됐어. 어쨌든 미안들 하네.--- p.102 “저도 농담하는 거 좋아해요. 하지만 악의가 담긴 농담은 진정한 의도를 잃고 결국 다른 것을 드러내게 하죠.” “뭘 드러내죠? 어디 들어봅시다.” “좌절감이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제가 아니라 당신의 좌절감이죠.”--- p.121 군복을 입은 아돌프 히틀러는 차양으로 덮인 긴 산책로를 당당하고 진지한 자세로 걸으려 애쓰고 있다. 어느 정도는 나무 지팡이 덕에 가능하다. 그는 불안정하고 작은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말하자면 예순 정도 된 몸이 불편한 히틀러인 셈이다. 그러나 그는 히틀러가 아니다. --- p.143 “근데 저 여자는 우리 같은 인간들에겐 관심 없어. 자신에게 어울리는 몸에 관심 있지. 섹스는 음악 같은 거야. 조화를 추구하지. 당연해. 우리는 더 이상 그 조화를 선사해줄 수 없는 거야, 친구.”--- p.155 프레드는 눈을 감고 신경질적인 손동작을 보인다. 그러고는 팔에 더 힘을 담아 움직이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더 이상 집중하여 머릿속으로 작곡을 하지 못한다. 그는 지금 음악이 필요하지만, 음악은 아직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p.179 멜라니,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의 [심플송]으로 생각한다는 걸 아이들은 결코 알지 못할 거야.--- p.188 그들이 당연히 박수를 보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 p.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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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소렌티노의 ≪유스≫는 동명으로 개봉한 영화의 원작으로 ‘소설처럼 읽는 시나리오’라는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다. 지문과 대사를 소설적 서술 방식으로 기술한 창작 시나리오로 영화 제작 과정 중에 한계와 제약 때문에 포기한 것들도 찾아 읽을 수 있다. 즉, 영화 [유스]의 ‘감독판 정본(manuscript)’이라 할 수 있는 소설이다.
≪유스≫는 세계적인 지휘자인 ‘프레드 밸린저’에게 영국 특사가 찾아와 [심플송] 연주를 요청하면서 시작된다. 실제로 소렌티노 감독은 영국 여왕으로부터 연주를 부탁받은 지휘자가 거절했다는 실제 사건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젊음과 늙음, 하나의 풍경 터키탕과 사우나의 훈김과 역광에 반사된 다양한 나이대의 나체가 열기와 땀에 젖어 버려진 시체들처럼 보인다. 탄력 있고 윤기 나는 몸들과 퉁퉁하고 둥글둥글한 몸들, 그리고 늙어 축 처진 몸들이 있다. 심신이 윤택한 삶을 위한 수고는 이런 것이다. 이렇게, 어떤 이들은 미래를 이어가려 애쓰고, 또 어떤 이들은 휘청대며 과거의 청춘을 따라가려 한다. _72p 스위스에 자리한 한 호텔을 배경으로 한 소설 ≪유스≫. 이 소설에는 수많은 인물이 모자이크처럼 얽혀 있다. 그리고 이 많은 인물 중에서 중심을 이루는 두 노인의 삶. 오랜 친구인 두 노인은 산으로 이 고급 호텔에서 조용한 휴가를 보낸다. 은퇴를 선언한 세계적인 지휘자 프레드 밸린저와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든 노장 감독 믹이다. 과거의 명성을 부정하며 무료한 휴가를 보내는 프레드와는 달리 젊은 시나리오 작가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유작을 구상 중인 믹.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비중의 인물들이 교차한다. 히틀러 연기를 위해 사람들을 관찰 중인 젊은 영화배우, 고도비만이지만 여전히 미래를 꿈꾸는 은퇴한 유명 축구선수, 남편에게 버림받은 프레드의 딸 레나,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등산가, 영화배우를 꿈꾸는 미스 유니버스, 반면 이제는 늙어버린 여배우, [심플송]을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년 등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작품 속에서 서로에게 의미를 던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평범하지만 그 누구보다 특별한 사람들의 삶의 단편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 [심플송], ‘청춘’을 위한 그 아름다운 연가(戀歌) 이 이야기의 시작은 영국 여왕의 특사가 밸린저를 찾아와 [심플송]을 연주해달라는 요청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은퇴를 선언한 뒤 건강검진과 마사지를 받으며 무료한 휴가를 보내고 있는 밸린저는 여왕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는 프랑스에서 보내온 회고록 출판 요청 또한 거절하는 등 삶의 의욕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반면 의욕적으로 작가들과 자신의 유작을 준비하고 있는 믹은 밸린저의 그런 소극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기도 한다. “이건 유일한 문제를 회피하려는 변명일 뿐이네.” “그 유일한 문제가 뭔데?” “죽음이지, 이 친구야! 목전에 와 있는 죽음.” “그렇게 다가올 죽음만 생각하면 살아 있어도 사는 게 아닐 거야.” _117p 즉 한 사람은 과거에 붙잡혀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미래를 꿈꾸고 있다. 노년을 대하는, 죽음을 대하는 두 노인의 다른 태도. 그러나 [심플송]에 숨겨진 밸린저만의 비밀이 있었고, 그 이야기가 점차 밝혀지면서 모든 인물의 감정과 풍경은 극에 다다른다. 제목에서부터 역설적으로 드러나듯이 ≪유스≫는 단순히 젊음과 늙음을 이분법적으로 가르지 않는다. 인물 간의 우정과 사랑, 상실과 미움 등 여러 감정으로 버무려 ≪유스≫, ‘청춘’이라는 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의 권태와 공허함에 빠져 열정과 의욕을 잃었다면, 다시 사랑에 빠지고, 다시 노래하라고 ≪유스≫는 말한다. 더불어 독자에게 묻고 있다. 노년의 삶에 접어든 독자에게, 이제 막 봉오리가 맺힌 20대 청춘에게. 당신이라면, [심플송]을 연주할 것인가? Italian Novel To Film 소개 출판 원작에서 영화화 소재를 찾고,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 다시 출판 원작을 구매하는 산업 간 시너지 효과는 영화 시장의 확장 및 제작비 증가와 함께 날로 높아지는 중이다. 이는 관객과 독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며, 출판 산업과 영화 산업의 교류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소설과 영화가 하나의 소스를 갖고 있는 경우 어느 한쪽이 흥행에 성공하면 파급 효과를 갖게 되므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분명 매력 있는 산업 분야다. 이러한 경우가 늘어나면서 영화를 통해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원작 소설을 칭하는 스크린셀러Screensellers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스크린Screen과 베스트셀러Bestseller를 합친 용어다. 또한 오늘날 활성화되고 있는 만화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추세다. 이탈리아 전문 출판사인 본북스는 ‘Italian Novel To Film’ 시리즈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영화의 특징 중 하나인 문학이 영화화되기 시작한 것은 초기 이탈리아 영화에 단눈치오가 등장한 때부터 네오리얼리즘 시기다. 또한 현대 이탈리아 영화에도 문학이 원전이 되는 영화들이 많다. 이러한 영화화된 이탈리아 소설들을 국내에 번역하여 이탈리아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한다. 2016년 출간을 목표로 진행 중인 네 권의 도서들은 오늘날 주목 받고 있는 감독부터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과 다수의 영화 원전 작가까지다. 『유스』는 올해 개봉된 예술 영화로 각광 받고 있는 저자이자 감독인 파올로 소렌티노의 작품이다. 『어머니』는 이탈리아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라지아 델레다의 작품으로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작가다.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경멸』은 장 뤽 고다르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라비아의 파트너였으며, 작가로 유명한 다치아 마라이니가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와 소설을 단순히 비교하는 차원에서 기획된 시리즈물이 아니라, 영화의 감동이 다시 소설의 감동과 교차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여 두 분야의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 Italian Novel to Film 도서 목록 1. 유스Youth, 지은이: 파올로 소렌티노 2. 경멸Contempt, 지은이: 알베르토 모라비아 3. 어머니La madre, 지은이: 그라지아 델레다 4. 사랑하는 사람들Amore coniugale, 지은이: 알베르토 모라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