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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소개

DVD/ Blu-ray 구매시 참고 사항 안내드립니다.
※ 4K블루레이, 3D 블루레이 재생 관련 안내
1) 4K UHD 디스크는 대용량의 데이터 전송이 필요하므로 4K전용 플레이어를 사용하셔야 합니다. 더불어 플레이어 소프트웨어 최신 버전의 업데이트, 대용량 케이블 사용이 필수입니다.
2) 3D 블루레이는 전용 플레이어와 3D 지원 TV를 통해서만 재생 가능합니다.

※ 아웃케이스/구성품/포장 상태
1) 제작/배송 과정에서 경미한 아웃케이스 주름, 모서리 눌림 및 갈라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을 원하실 경우 미개봉 상태로 문의 부탁드립니다.
2) 스틸북 케이스 제작 과정에서 기포 혹은 경미한 인쇄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3) 렌티큘러 스틸북의 경우, 보호필름이 붙어 판매되기도 합니다. 보호필름 손상에 의한 교환/반품은 불가합니다.
4) 본품 보호를 위해 노란색의 카톤 박스로 재포장한 경우, 카톤박스 손상에 의한 교환/반품은 불가합니다.
5) 아웃케이스/구성품/포장 상태 불량에 의한 교환/반품 신청시 불량 확인을 위해 개봉 시의 동영상을 요청할 수 있으며, 동영상이 없는 경우 교환/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디스크 재생 불량
1) 기기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재생 불량 현상에 대해서는 반품/교환이 불가하니 최신 소프트웨어로 업데이트된 DVD/BD 전용 기기에서 재생하실 것을 권유해 드립니다.
2) 정전기와 먼지로 인해 재생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디스크를 마른 천으로 닦으시거나, DVD 클리너 등 전용 제품을 이용하면 대부분 해결됩니다.
3) 일부 PC 연결형 ODD의 경우 호환 상의 문제로 정상적인 디스크도 재생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독립형 전용 플레이어 사용을 권장드리며, ODD 사용으로 인한 재생 불량의 경우 교환 시에도 동일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디스크 외관 불량
디스크에 미세한 잔 흠집이 남아있거나 인쇄 면이 깨끗하지 않은 경우가 있으며, 상품의 불량이 아닙니다. 단, 재생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불량으로 인한 반품/교환이 가능합니다.

※ 교환/반품 안내
1) 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 요청 시에는 불량 확인을 위해 개봉 시의 동영상을 요청할 수 있으며, 동영상이 없는 경우 교환/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관련 사진과 동영상 및 재생 기기 모델명을 첨부하여 첨부하여 고객센터에 문의 바랍니다.
2) 사양 오인지, 오 구매, 변심 사유로의 반품은 제품 개봉 전에만 운임비 부담 후 처리 가능합니다.
3) 스틸북 한정판, 초회 한정판의 경우 제작 수량이 한정되어 있고, 택배 이동 과정에서의 손상이 발생하면, 재 판매가 어려우므로 신중한 구매 선택을 부탁드립니다.
4) 한정판 상품의 변심, 오구매로 인한 반품은 회송된 상품의 상태 확인 후 진행이 가능합니다. 택배 이동 중 파손이 발생하지 않도록 완충 포장을 부탁드립니다.

사양

한 제 : 스타비스키 영 제 : Stavisky, 1974 감 독 : 알랭 레네 배 우 : 쟝 뽈 벨몽도 장 르 : 드라마 상영시간 : 120분 화면비율 : 1.66:1 색상 : Color 상영등급 : 15세이상관람가 음향 : Dolby Digital 2.0 / 5.1 언어 : French 자막 : Korean, English 제작사명 : 키노필름 바코드 : 8809154156425

감독/출연진 소개 1

감독알랭 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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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in Resnais

누벨바그의 왼쪽 심장, 알랭 레네 알랭 레네는 영화역사에 하나의 흐름으로 시작, 사조를 거쳐 혁명적 세력으로 기억되는 누벨바그 작가군의 또 하나의 독립적인, 자기만의 독특한 연출미학을 완성시킨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1922년 프랑스 브리따니 반느에서 출생한 그는 1935년, 열 네 살때 8mm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한다. 1940년 파리로 나오면서 배우수업을 받기도 하지만 파리 국립 영화학교(IDHEC)에 입학하면서 촬영, 편집, 연출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된다. 고다르, 트뤼포 등이 `까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로 주로 활동한 것에 비하여 그는 50년대말,
누벨바그의 왼쪽 심장, 알랭 레네

알랭 레네는 영화역사에 하나의 흐름으로 시작, 사조를 거쳐 혁명적 세력으로 기억되는 누벨바그 작가군의 또 하나의 독립적인, 자기만의 독특한 연출미학을 완성시킨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1922년 프랑스 브리따니 반느에서 출생한 그는 1935년, 열 네 살때 8mm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한다. 1940년 파리로 나오면서 배우수업을 받기도 하지만 파리 국립 영화학교(IDHEC)에 입학하면서 촬영, 편집, 연출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된다.

고다르, 트뤼포 등이 `까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로 주로 활동한 것에 비하여 그는 50년대말, 유랑극단의 카메라 맨을 시작으로 편집기사로 주로 활약한다. 그는 내러티브 중심의 영화에서 내면과 영상의식이 주도하는 화면 구성과 침묵과 이미지의 영화미학을 표현하는 그만의 창조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1948년 35mm 첫 단편영화, <반 고흐>로 프로 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그는 화가 피카소의 일생과 작품들에 얽힌 에피소드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게르니카>, 나찌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참상을 폭로한 <밤 안개>로 `레네만의 스타일과 주제의식`의 첫걸음을 떼어놓는다.

누보로망의 대표적 작가, 마그리뜨 뒤라스 원작의 <히로시마 내사랑>(1959)은 잃어버린 시간과 사랑의 기억이 상처와 고통으로 남은 두 남녀에 관한 이야기로 일관되는 침묵과 영상의 이미지, 그리고 초월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당시로선 거의 혁명적인 영화스타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공존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교묘히 혼재되는 복합적 시간구성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1961)는 또 다른 작가, 알랭 로브그리예와, 그리고 <뮤리엘>(1963)에서는 장 까이욜 등의 작가와 함께 작업함으로써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 그룹과 폭넓게 교류한다.

최초로 사운드 트랙 앨범을 내며 대중적 음악을 히트시킨 1970년대의 <스트라비스키>(1974), 영국의 희곡작가, 데이빗 머서의 각본의 <신의 섭리>(1977)를 거쳐 80년대에 들어와 그는 <내 미국 삼촌>(1980)를 통해서는 좌초될 뻔한 그 자신의 영화미학의 세계의 복원을 시도한다. <인생은 소설이다>(1983)와 <죽을 때까지의 사랑>(1984)등은 현실과 교차되는 내면적 환타지의 세계로 몰입하는 그만의 작가적 경향이 뚜렷하게 표현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밖에 <멜로>(1986), <집에 가고 싶다>(1989)등이 그의 80년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많은 평론가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끈 `앨런 애크번` 희곡 원작의 <스모킹/노스모킹>(1993)에 이어 <우리들은 그 노래를 알고 있다>(1997)는 샹송 그 자체를 대화로 사용하는 파격을 시도하며 영화를 한 편의 노래로 완성하는 기이한 면모를 보여주며 75살의 노익장을 과시한다. 침묵과 영상미, 미장센으로 대표되는 그의 영화언의 키워드가 음악으로 마무리되는 아이러니한 순간인 것이다.

[필모그래피]

히로시마
내 사랑(1959)|감독
내 미국 삼촌(1980)|감독
입술은 안돼요(2003)|감독
공공장소에서의 개인적 두려움(2006)|감독
마음(2006)|감독

관련 분류

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매일
2016년 06월 14일
시간/무게/크기
120분 | 크기확인중
연령제한
15세 이용가

줄거리

< 배우 소개 >
주연 : 쟝 뽈 벨몽도
유명한 조각가 폴 벨몽도의 아들인 장-폴 '베벨' 벨몽도는 1957년에 영화에 데뷔했다. 그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1960)」에 출연하면서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의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다. 거기서 그는 사랑스러운 여배우 진 세버그 곁에서 태평스러움과 냉소와 상스러움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인물 유형을 탄생시켰다. 벨몽도는 사실 스타 배우가 될 만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그의 남자다움과 다소 오만한 매력은 그를 알랭 들롱?여러 면에서 그의 제2의 자아와도 같은?과 구별해 주었고 클로드 샤브롤과 프랑수아 트뤼포, 알랭 레네 등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들을 매혹시켰다. 그는 거의 모든 유형을 연기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장 피에르 멜빌의 「레옹 모랭 신부(1961)」에서는 사제 역으로도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로는 액션과 코미디를 잘 배합하여 그에게 아주 잘 맞았던 「카트만두의 사나이(1965)」 같은 부류의 영화에 출연하며 상업적인 영화로 방향을 돌렸고 곧 프랑스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가 되었다. 항상 자신의 스턴트를 몸소 해내던 벨몽도는 언제나 에너지가 충만해 있었다. 그는 파리 국립드라마예술학교에서 연기 수업을 받기 전에 이미 뛰어난 스포츠맨이었다.

아쉽게도 점점 대중적 연예인으로서 비슷비슷한 역할들에 고정되어 간 경향이 있지만 그는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자기 풍자를 선보일 줄도 알았다. 1989년에 그는 클로드 를루슈의 「여정(1988)」으로 세자르상을 수상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후기 영화들은 그의 찬란한 명성에 걸맞은 것이 드물다. 근년 들어 그는 영화보다는 무대 연기에 집중해왔으나 2001년에 뇌졸중이 일어난 이후로 무대에서도 스크린에서도 그를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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