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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책머리에_왜 그렇게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가 1장 이토록 정치적인 일상성 지하철 방송의 정치학 내가 시험 보면 빵점 맞을 교과서 자유주의가 부족하다 ‘희생’을 찬양하는 문화 - ‘희생’의 미화 개인주의가 부족하다 ‘안티’ 수재 의연금 통일과 룸살롱, 그리고 리조트 지역감정 지방감정 병역의무에 관한 명상 ‘지불유예’하는 사회 분재를 생각하며 공부를 잘하는 법- 혹은 못해도 좋은 법 이런 대학이 한국에 존재한단 말인가 이영표의 정치사회학 이민 3 국가 혹은 초대받지 않은 기계 2장 젊은 벗들이여 갈치조림 정치학 당신은 당신인가 사람 그냥 놔둘 수 없을까 내 몸속의 괴물, 혹은 일상적 파시즘 졸고 놀자, 조금만 일하고 나는 뇌물을 받고 싶다 전쟁문화와 평화문화 가부장적 감수성과 성평등 홀로 따로,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의 연습을 생각하며 억울한 자기희생이라고 생각하면 생명의 별은 없다 생긴 대로 살아라 인성평가를 반대함 실컷, 맘껏, 원 없이 놀아라 3장 정치라는 담론, 정치라는 안줏거리 임명장 문화 국익이라는 환상 인권위는 ‘무국적’이 옳다 학자의 정치참여에 대해서 아는 것이 ‘힘’은 아니다 북한은 나에게 무엇인가 반(反)정치주의를 넘어서 민족주의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제3세대 정치학자의 몫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유 내가 정치인을 좋아하는 까닭 볼리비아 정글 속에 체 게바라를 잠들게 하라 내가 ‘서민’을 싫어하는 이유 4장 내가 만난 텍스트 - 책과 영화 이야기 초보적인 인권 확보를 위하여 생명의 흐름과 결을 따라 생명권 정치학 사회 생태론의 철학 물은 부족하지 않다 ‘행복’의 에콜로지 정치학을 생각하며 〈오아시스〉와 장애인 이동권 치열한 현실과의 대결 잃어버린 세대의 길 찾기 인생을 낭비한 죄 인권 불감증 문화 저자 소개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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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세상에는 계란으로 바위 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생각한 것보다 현실은 만만치 않지만 겁낼 만큼 견고하지도 않았다. 무서운 것은 현실이 아니라 그걸 새삼 강조하고 주변에 주입하려는 사람들의 태도다. 그건 현실을 바꿀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바꾸기 싫다는 자신의 주관적 생각이나 이해관계에서 나온 입장일 뿐인데 말이다.”_책머리에
며칠 전 지식인들과 저녁을 먹었다. 안쪽 중앙 자리에는 제일 나이가 많은 남자교수 A가 앉았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그가 주도했고, 그가 다리와 어깨를 쭉 펴고 앉는 바람에 옆에 앉은 사람들은 다리를 오므려야만 했다. 우리가 주문한 갈치조림 정식은 양이 많지 않았다. A는 옆 사람 상황에 관심 없이 자신의 코앞에 놓인 갈치조림을 빠르게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갈치를 먹으려면 팔을 길게 뻗어야 했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바로 앞에 있는 나물이나 김치에 손이 더 자주 갔다. 갈치조림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고, 식사를 끝내자마자 거의 모든 갈치를 혼자 먹어치운 A는 다른 약속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올해도 월급봉투에서 수재 의연금이 나갔다. 수재 의연금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냈다. 거의 40년쯤 ‘자발적으로’ 냈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매년 꼬박꼬박 의연금을 세금처럼 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식의 ‘의연금’ 시리즈가 남기는 것은 뭘까? 정부와 언론의 진단과 대응에는 ‘수재’가 사실은 ‘인재’이며 ‘구조적·정책적’ 문제라는 인식이 빠져 있다. 그것은 주민과 공무원 개개인의 ‘철저한 자세’와 일반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씨’만을 강조하는 피상적 관점을 보여준다. 결국 “온 국민이 다 같이 힘을 합하여 수재민들을 도웁시다”라는 목소리 속에서 물난리가 어떤 지역과 계층에 어떻게 집중되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등에 대한 문제를 매섭게 따져보고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요구는 실종된다. 그것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거의 조건 반사화된 대응이며 문화다. 한국에서 정치를 찬양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모두 욕하고 불신한다. 정치인이란 만날 치고받고 싸우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권력만 좇는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인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치 불신은 ‘자연적 현상’이 아니다. 특히 민주화 이후에 국가를 대신하여 정치적 헤게모니 주력으로 급성장한 일부 언론이 정치는 불필요한 소모전이고 갈등만 부추기며 정치인들은 퇴행적인 정쟁과 권력싸움에 눈먼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전파했다. 그 과정에서 항상 강조된 것은 국익, 화합, 단결, 통합이고 비난받은 것은 국론분열, 파벌싸움, 정쟁, 권력욕 등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비판에는 갈등, 대립, 싸움을 본질로 하는 정당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대단히 위험한 이데올로기적 함의가 들어 있다. 정단 간 혹은 정파 간의 불가피한 싸움에서 드러나는 차이에 의해 선별적으로 따지기보다는 뭉뚱그려 ‘정치인들은 만날 싸우기만 한다’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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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벗들은 갈치조림을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나눠 먹는가?
당연한 말 같지만 정치는 엄중한 현실을 기반으로 작동된다. 하지만 엄중한 현실도 파헤쳐보면 사실과 경험이라는 원자적 요소에 의해 채워진다. 정치는 쉽게 말하면 일상적 사실로 채워져 있는 현실의 형편과 사정을 다양한 구성원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 논리는 본래 이타적이고 합리적인 합의에 기초한다. 이것이 우리가 숱하게 얘기하는 정치의 민주성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가 과연 이와 같은 본연의 속성을 지키고 있을까? 저자 권혁범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적시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의 인자로서의 일상적 사실 속에서 발견되는 허다한 정치적 위선과 무의식들이다. 저자는 어떤 사적 회동에 참석했다가 그 자리의 가장 연장자가 갈치조림 정식을 ‘특이한 방법’으로 먹는 모습을 보고 불편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사회에 암묵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정치적 함의의 폭력을 고스란히 고발한다. 저자에게 갈치조림이 있는 회동은 정치적 일상성의 ‘미니어처’로 간주되었고 그 안에서 곪아 터져버린 일상적 정치의 피폐함과 비루함을 끄집어낸 것이다. 권혁범의 글은 이처럼 은유적인 비틀기의 관점에서 현실의 맥락에 새겨진 정치적 메시지를 읽어낸다. 이와 같은 글쓰기가 권혁범에게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사회적 지위나 정치적 스탠스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자유롭고 당당한 비판정신의 본령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깊숙한 곳에 스며들어 우리의 식탁까지 점령해버린 정치적 무의식 혹은 폭력의 문제에 대해서 권혁범만큼 집요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도 드물 것이다. 이 책은 정치적 논의의 무대를 무한한 일상성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키고자 하는 매우 문제적인 칼럼니스트의 진심이 담긴, 풋풋하고 스타일리시한 시론집(時論集)으로서 일정한 성가(聲價)를 가지고 있다. 너무나 익숙한, 너무나 정치적인 우리의 일상들 해마다 여름에는 수해로 ‘삶의 터전’을 잃고 힘들어하는 우리 이웃을 위해 수재 의연금을 내고, 연말에는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을 내는 문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장면이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고운’ 마음씨는 교통법규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 의무적으로 시민들에게 요구된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수재 의연금’ 너머의 진실은 참혹하다. 지배층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이런 식의 ‘범국민적 온정주의’로 즉각 대응하면서 정작 필요한 사회적 비판, 문제 해부, 정책 마련과 구조 개혁에 대한 요구는 순식간에 뒷전으로 밀려나 버린다. 쌓인 헌 옷가지와 라면, 모포 뒤에는 책임지는 사람 한 명 없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또 가을이 온다. 그리고 다음해 수해는 반복된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우리의 일상적인 삶, 사소한 것들 곳곳에 숨겨진 ‘정치’라는 괴물은 곳곳에 숨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일상적인 정치성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기처럼 스며든 너무나 당연한 이런 현실이 우리가 우리 사회를 바로 보고, 다양한 문제를 구조적, 제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언제나 주장하는 국익 우선주의. 하지만 도대체 국가의 이익이란 과연 무엇이고, 그 실체가 있기는 한 것일까? 개인보다 전체가 중요하다는 전체주의. 하지만 개인의 행복과 이익 추구권을 도대체 왜 희생해야 하는 것인가? 저자는 이유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주입하려는 전체주의와 국가주의에 시동을 걸고, 우리가 정말 소중히 해야 할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소중함을 다양한 일상 사례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만날 씹기만 하는 정치라는 ‘안줏거리’를 넘어서 우리나라 사람치고 정치인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정치인을 욕하고 믿지 못한다. 정치인이란 만날 치고받고 싸우고, 거짓말 잘하고, 권력과 돈만 좇는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인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성인 남성들이 입만 열면 하는 이야기 제1순위가 바로 ‘정치’ 이야기라는 점이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정치는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정치란 한정된 자원과 권력을 어떻게 분배하느냐를 놓고 일어나는 세력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나 강조하는 ‘화합’은 사실 예외적 현상이고, 그 기본은 언제나 갈등이다. 그러한 갈등은 좀더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수준 높은 정치일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정치인들이 싸운다는 이유로 정치인을 싫어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즉 우리에게 뿌리 깊게 박힌 정치에 대한 집요한 부정과 혐오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정치에 대한 유별난 관심과 당연하게 생각해온 불신을 넘어 진실을 바로 봐야 한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총체적 사회구조, 통찰적 역사인식과 만나지 못하고 단편적인 지식에 그친다면, 문제의 구조적 성격에 대한 인식을 더 흐리게 할 뿐이다. 오히려 억압적인 사회질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정치지식에 토대를 둔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비난은 정치개선과 정치발전에 장애가 되기 쉽다. 혼란과 갈등으로 범벅이 되는 정치를 ‘정상’으로 받아들일 때 정치가 건강하게 살아나고, 경제도 제자리를 잡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