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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뭉 선생의 좌충우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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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글
1부 사랑한다고 전해줘
2부 내 이름 좀 빼줘
3부 꼴찌에게 갈채를
4부 잘 있었나, ‘70-80 초상들’이여
추천글 방법으로서의 기억 - 미니마 모랄리아, 미니마 메모리아(임지연/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저자 : 강병철
‘삶의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해직당한 바 있다. 쌘뽈여고를 거쳐 학원과 신문사, 출판사 비정규직을 나뭇잎처럼 떠돌다가 복직한 후 충남 탄천중, 공주여중, 공주중, 고북중, 서산여중에서 근무했으며 지금은 유구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시집 『유년일기』, 『하이에나는 썩은 고기를 찾는다』, 소설집 『비늘눈』, 『엄마의 장롱』, 성장소설 『닭니』, 『꽃 피는 부지깽이』, 산문집 『선생님 울지 마세요』를 발간했으며,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작가회의 대전충남지회장을 역임했다. 유년시절에 서울 뒷골목에서 유학 생활을 한 이후 내 몸에는 무심하면서도 남들의 행보에는 지나치게 민감할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문체주의자 기질이 교단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지천명의 몸과 소년의 마음’을 지닌 천부적 선생 체질이긴 한데 여전히 비탈길을 걷듯 어설프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10g | 153*224*20mm
ISBN13
9788990492562

책 속으로

나는 네 손에 '사과 두 알'을 쥐어준다. 닦고 또 닦아서 반들반들해진 사과알에 네 눈빛과 내 눈빛이 동시에 쏟아진다. 첫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이만큼 두려울까. 나는 꽁꽁 뭉쳐두었던 그 한마디를 간신히 던진다.
"너를 사랑한대."
아이가 화들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눈빛이 마주치자 내가 먼저 움찔한다.
"나 말고…… 느이 아빠가."
숙희 눈에 이슬이 맺히는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네가 고개 숙인 채 닭똥 같은 눈물 흘리기 전에 나는 눈곱을 떼면서 교무실로 쏜살같이 도망쳐왔다. 나 이제 정말 ‘사랑의 우체통’ 노릇 다시는 못하겠노라 되씹으며.
---「사랑한다고 전해줘」 중에서

“…… 선생님.”
경수가 억울한 표정으로 뜸을 들인다.
“저 ‘미친놈’이라고 안 했는데요.”
눈빛이 늪처럼 젖어 있다. ‘괜찮다, 괜찮다’ 주술을 외우며 숨을 푸우푸 내뿜는다. 그런데 이 자식이 어깨를 감싸자 갑자기 울음을 꺼이꺼이 터뜨리며 으스러지게 껴안는다.
‘아아, 진짜 괜찮다. 사랑하는 내 아이야’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콧등이 찡해서 가슴에 손을 얹고 진정하는 중이었다.
“‘싸이코’라고 한 건데요.”
바람이 불자 포플러 잎사귀가 일제히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나는 오늘도 그렇게 아이들의 자양분을 먹으며 비탈길을 버텨가는 중이다.
---「‘미친놈’이라고 안 했는데요」 중에서

그런 그림이 있었다. '일등도 꼴지도 없는 교실'을 꿈꾸던 순수 교사 한 명이 운동장 가운데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풍경이다. 바람 빠진 풍선으로 늘어졌던 그 부류 아이들이 꼴찌교사를 보면서 일제히 일어나더니 꽃대궁 세우며 우우우 에워싼다. 덩달아 발그스레 상기된 그니의 머리 위로 햇살이 우수수 쏟아진다. 아, 여기가 내 자리구나.
"선생님 꼴찌했다."
자신만만한 고백에 아이들이 '와-' 웃음꽃을 터뜨린다. 들국화 쑥부쟁이 살사리꽃 꽃사태로 온갖 향기가 몸을 적신다. 그 선생에 그 제자는 동질성과 안도감으로 눈시울이 짠해진다.
"힘 내유."
동규가 어깨를 주무른다. 손가락 힘이 너무 강해 우두둑 뼈가 아프다. 씨름판에서 다섯 명째 메다꽂던 악력의 손마디다. 그러거나 말거나 듬직한 제자에게 어깨를 맡기면서 편안한 몸 냄새에 젖는다. 잠들고 싶다. 이대로 꿈결에 취해 잠들고 싶다. ‘네놈과 치킨 다리 씹으면서 동병상련으로 사랑하리라.’ 그렇게 다짐하면서 얼마나 설레였는지 모른다.

---「꼴찌에게 갈채를」 중에서

출판사 리뷰

『쓰뭉 선생의 좌충우돌기』는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며 여러 작품을 발표하였고, 일선 학교에서 20여 년간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강병철의 산문집이다. 이 책을 통해 강병철은 『민중교육』지 사건(1985)으로 학교를 떠나야 했던 해직교사, 오랫동안 전교조 조합원으로 활동하며 참교육을 꿈꾸었던 현장교사,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문학청년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보여준다.

교단에서 실패한 교사의 좌충우돌기
강병철의 글은 재미있다. 해학과 유머가 넘친다. 가령, 그에게 ‘미친놈’이라고 했던 아이가 울먹이자 끌어안으며 ‘괜찮다, 괜찮다’를 속으로 연발하고 있는데, 아이가 말한다. “‘싸이코’라고 한 건데요.”(「‘미친놈’이라고 안 했는데요」) 이러한 그의 해학과 유머의 근원은 그가 교사로서의 권위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실패담을 솔직하게 들려준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컴퓨터 연수에서 꼴찌를 하고 학교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이를 털어놓는 식이다.(「꼴찌에게 갈채를」)

이렇듯 강병철은 실패담을 통해 삶의 진솔함을 보여주고 있다. 교사로서의 외형적 성공이란 진정한 교사로서의 실패이며, 따라서 실패와 성공의 의미를 새롭게 쓰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성공의 언어인 ‘출세했다’는 말은 ‘거짓말을 많이 했다’고요, ‘정직하게 살았다’는 얘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미와 맥이 통합니다."(「거품을 모아 꿈을 만들며」) 그래서 그의 교사로서의 실패담은 교사의 권위적이고 계몽주의적인 태도를 벗어버리는 일이며, 성공이라는 허울에 들린 인간들을 향해 자신의 아름답고 쓸쓸한 실패를 고백하는 일이다.

기억, 사랑의 다른 이름
강병철의 글에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지금은 불쑥 커서 아줌마가 된 제자들,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거나 전교조 활동을 함께 한 동료 교사들, 같이 술을 마시며 시국의 아픔을 달래던 문인들. 열혈청년이자 교사, 작가의 삶을 통해 그가 얻은 건 마치 사람들과 그들과 얽혀 있는 기억뿐이라는 듯이 글 속에서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이러한 나열이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임을 알 수 있다.

강병철의 사랑은 쑥스러움과 쭈뼛거림과 두려움으로 어눌하다. 딸에게 대신 사랑을 고백해 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사과 두 알로 대신하려 하고(「사랑한다고 전해줘」), 최루탄을 터뜨리며 시위대를 향해 다가오는 전투경찰들을 향해 ‘너희들을 사랑해’라고 외치려 하지만 전봇대에 부딪치고 만다.(「잘 가라 내 이빨」) 그런 그에게 사람을 기억하고, 그들을 다시 호명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을 사랑하는 한 방법인 것이다.
가끔, 쭈뼛거리며, 쓰뭉하니, 별일 아닌 척, 강병철은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너를 사랑한대.

뜨거운 가슴으로
젊은 날, 그런 스승의 모습을 꿈꾸었던가. 종소리 울리는 계단이나 운동장 후미진 구석 어디쯤이었을 게다. 쏟아지는 저녁놀 그리고 사내아이 계집아이 함께 모인 그 자리에서 오그르르 옛날 얘기에 빠진 늙은 교사의 파안대소 풍경이다. 털지 않아도 풀풀풀, 먼지가 뭉게구름처럼 솟구치는 사랑의 공동체를 그리던 그때의 나는 어지간히 순수했었다. 시장골목을 돌아오면서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자르르 가슴 설레며 자전거 페달을 멈추기도 했던가.

혁명을 품던 청춘도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으로 번민하며 비로소 세상의 실체를 체득하던 아픈 젊음이었다. 분하다. 공든 탑 푸른 꿈들을 잘근잘근 짓밟던 군홧발 시국의 기억이 밥풀처럼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도심지 한복판으로 호루라기 불어제끼면 하수구에 숨었던 자라목들이 일제히 뛰쳐나올 것만 같아 밤마다 숨고르기에 지성을 모았다. 그 어금니 갈던 혼돈 속에서 학교를 쫓겨난 것도 당연한 숙명이다. 이제는 ‘누님 같은 꽃’이 된 예전의 ‘두고 떠나온 소녀들’이 오래도록 감싸주기도 했다.

마침내 책에 빠지기도 했다. 돈도 명예도 모두 부질없으므로 오로지 책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우기던 관념의 세월이다. 활자판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상처받은 공복의 자리를 포만감으로 채워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술 먹는 시간을 빼고는 당연히 날마다 책과 씨름했다. 도서관에 처박혀 글자 수를 맞추다가 동트는 새벽을 맞이하면서 가슴을 부풀리기도 했던가. 그러다가 공허함에 시달린 것이다. 그해 늦가을 파릇파릇하던 총기의 흔적들이 쏜살같이 빠져나간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장년이다. 분필 밥에 파묻힌 지 어언 기십 년, 강산이 몇 차례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예전의 그 거친 버전으로 살아간다. 아카데믹과 관료의 반열에 선 벗들이 킬킬대며 귓밥을 후비는데 나는 아직도 운동장 모래알로 남아 ‘안고 드잡이’에 취해 있다. 아이들은 내가 청소를 맡거나 시험 감독에 들어가면 키득대거나 박수를 치곤해서 민망하게 만든다. 그 해맑은 미소조차 경계하는 나는 필시 ‘대인기피증’일 게다.
핸드폰을 구입하기로 마음만 먹는 중이다. 빨랫비누를 집어던지고 샴푸로 머리를 감기 시작하면서 머릿결의 차이를 확연히 느낀다. 현금인출기에 카드를 넣으며 자본주의로 체화되는 장년의 사내는 이따금 순결을 확인하러 아랫도리를 훑어보기도 한다. 화들짝 놀라 아파트 텃밭에서 저녁놀에 취한 채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붉게 탄 겨울 하늘이 산그늘 아래로 쩌렁쩌렁 무너진다. 슬프지는 않다. 그런데 베란다에 앉으면 자꾸 눈물이 흐른다.

여덟 번째 출간인데도 여전히 출산의 설렘에 시달린다. 어깨가 아파 게시판 못질도 망설이면서 마음만은 팔팔 올림픽 시절 막바지 젊음처럼 팔팔한 줄 알고 있다. 어쩔 수없이 더 뜨거워야 한다. 서리 내린 머리칼과 굽은 등의 새로움을 첫 사랑 설렘으로 맞이해야 한다. 그게 인생인 줄 알면서도 무시로 가슴이 서늘하다. 배추 뿌리 뽑혀진 자리 너머 넘실거리는 억새풀 탓이다.

2008년 2월
강병철

추천평

문득 대관령 초원 지대의 풍차가 겹쳐진다. 사계절 바람 받으며 에너지를 뽑아 누군가에게 끝없이 보내주는 거대한 풍차. 사는 것이 버겁고 허허로울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 풍차를 보러간다. 강병철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세월을 살았고, 순하고 약해 보이지만 강한 자존심으로 살았고, 가르치는 일과 글 쓰는 일과 술 마시는 일로 인생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는 필경 묵묵한 바위일 게다. 새끼 물고기들을 키우고 그들이 커서 떠난 자리에 또 다시 어린 물고기들이 잠시 머물다 갈 자리를 내어주는 이끼 낀 바위. 이 책은 교단의 추억과 동시대 문우들과의 시대적 아픔과 희망을 넘어온 사람들의 발자취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일까, 세상은 아직도 살아갈 맛이 나는 곳이라는 안도의 웃음도 지을 수 있다. 어느 시골 마을의 열려진 교문을 들어서면 물방울 같은 아이들 속에 섞여 시와 인생을 이야기할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 박미옥 (화가)

어찌 손금 보듯 훤히 옛일들을 되살려내는지, 징그럽다. 누가 어중이떠중이들의 ‘시국이 아파서 내가 아팠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겠는가. 우리 외할머니는 심청이처럼 젖동냥으로 이 고을 저 고을 떠돌다가 민며느리로 남겨진 채 눈물바람으로 한평생 사셨는데, 어느 날 ‘내 사연을 글로 쓰면 소 구루마로 다섯 수레가 넘을 거다’고 하셨다. 순간 무덤 속 외할머니 입이라도 되어 다 풀어놓고 가셨으면 애달픔이 덜할 텐데 하는 생각이 겹쳐진다. 그의 말대로 문학은 ‘사연의 감동이요 구성의 감동이요 배경의 감동’일 뿐이다. 글은 ‘짓는’ 게 아니라 ‘쓰는’ 것이라는 논리는 그에게서 배운 것인지 그 주변인들에게서 들은 소린지 모르겠으나 오래 전에 뇌리에 박혀서 안 빠져 나온다. 그의 글은 기록성 강한 다큐멘터리 영화 같다. 놀라운 재생 능력으로 되살려낸 한 시대의 넋두리 같기도 하다. 그에 의해 ‘리핏-리핏-리핏’되는 이야기가 이제는 지겨워질 만도 한데, 세월이 갈수록 왜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걸까.
- 이은아 (대전 중앙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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