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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운동의 역사
구경거리에서 해방의 무기로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센터 프리즘 엮음
서울출판미디어 200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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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1. 영화운동의 10월ㅣ에이젠슈테인이나 베르토프도 이뤄내지 못한 영화혁명의 과업 / 조동원

2. 미국 무성영화시기, 노동계급의 '함성'ㅣ“5센트를 무기로!” / 이재희ㆍ정한석

3. 좌파적 영화운동을 위한 필요충분조건ㅣ독일 바이마르 시기, 사민당과 공산당의 노동영화운동 / 조동원

4.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매체의 만남ㅣ중국, 1930년대 좌익영화 / 김정구

5. 1950년대까지, 프랑스 영화와 노동계급 / 앙투안 코폴라(번역: 김지숙)

6. '꿈의 공장'을 점거하다!ㅣ1940년대,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의 게급투쟁 / 조동원

7. 시네마 베리테, 신화와 역사 사이ㅣ1960년대 다큐멘터리 운동에 대한 비판적 소고 / 강준상ㆍ이선화

8. 비디오를 통한 대안 혹은 대항의 역사ㅣ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미국의 비디오 액티비즘을 중심으로 / 서종환

9. TV를 민중의 손으로!: 퍼블릭 액세스를 향한 역사적 실천ㅣ1966~1972년 기간의 캐나다, 미국 사례를 중심으로 / 박채은

10. 1970년대 일본의 다큐멘터리 운동ㅣ쓰치모토 감독과 <미나마타> 시리즈 / 조두영

11. 흔들리는 칠레의 모든 기억: 다시 민중에게 권력을!ㅣ제3세계 영화, <칠레 전토>와의 토론 / 조동원

12.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파업하라!ㅣ1980년대 영국, 탄광노동자 파업과 노동영상운동 / 조동원

13. 독립미디어센터(IMC, Indymedia Center)ㅣ21세기 진보적 영상운동의 새로운 실천 / 하주영

14. 1980년대 이후 진보적 영화운동의 전개과정ㅣ상승, 퇴각, 재편: 본원적 축적, 정체를 거쳐 나선형적 발전으로 / 김명준

참고문헌

저자 소개

엮은이 :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센터 프리즘
1997년 노동자뉴스제작단 연구팀으로 시작하였다. 2001년 2월 노동자 뉴스제작단에서 분리하여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센터 프리즘'으로 개편, 퍼블릭 액세스, 미디어센터, 커뮤니티 라디오, 웹 캐스팅, 미디어 리터러시 등 진보적인 미디어운동 전반에 대한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2000년 4월부터 웹진 <프리즘>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2000년 10월 그동안의기사들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프리즘>을 냈다. 또한 2001년 20월, 전국의 미디어센터 설립운동 주체들과 함께 '제1회 전국 미디어센터 네트워크 세미나'를 주최하였다.
저자 : 조동원 외
조동원 :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센터 프리즘 연구원

이재희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예술사 과정

정한석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예술사 과정

김정구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동아시아영화 전공 전문사 과정 수료

앙투안 코폴라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환 교수

김지숙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영상문화이론 전공 전문사 과정 수료

강준상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예술사 과정

이선화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졸업

서종환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예술사 과정

박채은 :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센터 프리즘 연구원

조두영 :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센터 프리즘 연구원

하주영 :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센터 프리즘 연구원

김명준 : 영상미디어센터 MediACT 소장.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센터 프리즘 연구원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57쪽 | 670g | 153*224*30mm
ISBN13
9788973081202

책 속으로

초기 영화의 역사를 지보의 지층 안에서 이해하는 작업은 낯설기만 하다. 초기 영화사는 그 탄생의 순간으로부터 예술로서 걸어온 노정, 그 안에서 발견된 기념비적인 작품들의 목록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영화사를 기술함에 있어, 일정 정도 영화적 형식의 진보를 중심으로 삼는 방식이기도 하다. '움직이는 그림'에 대한 오랜 열망의 실현으로서, 영화의 탄생은 인간의 열망과 과학이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마술적인 매혹과 과학기술의 만남은 최초의 영화들을 놀라운 '구경거리'로서 등장시켰지만, 영화의 역사는 영화가 매혹적인 구경거리 이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영화가 공유한 다른 예술적 전통들의 유산을 토대로 더 나아가 특유한 영화적 표현과 양식을 획득하는 과정에 대한 기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영화들을 정치적 진보성이라는 측면으로 새롭게 맥락화하는 일은 낯선 동시에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이 글은 1905년부터 1929년까지 미국 노동계급의 영화및 영화운동을 다룬다. 이는 할리우드라는 고유명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바, 영화가 산업과 자본에 의해 점유되어 특정한 형식과 제작과 배급의 양태로 코드화되기 이전의 미국 무성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실천의 다층적인 양태들을 조명하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은 미국에서도 1990년대에 들어선 후에야 학문적 성과물들이 생산될 정도로 기존의 영화사 연구의 맥락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측면이다. 특히 미국 영화사에있어 이 시기는 1920년대 이전의 전-고전 양식의 영화들이 어떻게 서서히 '고전적 할리우드'의 서사 및 재현양식을 발전시켜나갔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서술되곤 한다. 혹은 구체적인 역사와의 연관망으로서 이해되는 과정 속에서도 노동계급을 축으로 하는 영화적 양상들은 여전히 빈 자리로 남아 있다.

이러한 일방향적인 시선이 결코 대상으로 포착하지 않았던 흐름들 중에 노동계급의 삶을 다루는 영화적 운동들이 존재했음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이 글이 출발하는 전제가 된다. 중심화된 영화산업이 등장하기 이전이었던 만큼,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쉽게 제작되고, 또 관객을 만날 수 있었던 이 시기에, 노동게급 영화들 엯 상대적으로 쉽게 생산되고 대중적으로 상영되었다. 그러므로 이때의 영화는 문화적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의 문화적 전선으로도 이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무식하고 비참한, 지칠 대로 지쳐버린 노에들과 그들의 구경거리'와 같이, 때때로 마주치게 되는 이 시기 영화에 관한 악의적 평가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진보적 가능성의 표현으로 역전될 수 있다.

이 '노예'들의 조건을 직접 겨냥한 영화들의 제작과 상영의 역사는 초기 무성영화의 역사를 정치성이라는 맥락에서 다시 읽을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영화자적 질료로 삼게 될 노동계급 영화들은 소재나 주제적인 차원이 영화 내에 반영되어 있는 수준에서부터 일정한 목적을 지닌 주체들에 의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되는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걸쳐 있다. 이 글을 통해 서술되는 미국의 무성영화사에서는 익히 들어온 기념비적인 작품들과 작가들의 이름들을 발견하기 힘들것이다. 혹은 낯익으 이름과 마주친다 하더라도 기존의 맥락과는 다른 방식으로 언급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글의 소재는 결국 영화의 역사인 동시에 미국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이다. 역사상 최초의 '노동당'이 만들어졌던 국가인 미국의 노동계급이 걸오온 투쟁과 후퇴의 역사와 노동계급 영화의 역사는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미심자앟게도 이 글이 조망하는 20세기 초는, 노동계급과 노동계급 영화가 가능서에 도전한 동시에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시기이다. 토착/이민, 숙련/미숙련, 신교/가톨릭, 남성/여성, 흑인/백인 등의 노동계급 내부적 갈등은 이 시기 노도처럼 몰아친 대중파업의 투쟁속에서도 결국 극복되지 못했고 심지어 전쟁을 계기로 외부적 공세까지 겪어내야만 했으며, 노동계급의 영화는 규모와 기술의 영화들과 경쟁을 치러야만 했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무성영화시기의 노동계급 영화운동이라는 이 주제는 '실패'와 대면하게 될 순간을 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이들 영화가 보여준 가능성의 역사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그것이 맞닥뜨린 장벽과 실패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기도 핟. 게다가 이 작업이 도달해야 할 지점은 저곳의 역사와 이곳의 현재를 이어줄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성찰이다. 미국의 무성여화시기의진보적 영화들을 살피는 일은 바로 그러한 이중의 무게감으로부터 출발한다.

--- pp.68~70

1920년대부터 이미 미국 영화의 90%를 제작하였고해외로의 대량 수출을 통해 세계적으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영화산업체를 형성한 할리우드는 1930년대에 이르러 제작, 배급, 상영 과정을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수직 통합을 이루어내면서 그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된다. 이때 이른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과 스타 시스템, 장르 시스템이 함께 구축되었고, 전세계적인 배급 체인망이 확보되면서 대량의 자본과 고도의 기술집약적인 생산 및 배급 체계가 정착되게 하는 것이다. 난공불락의 하리우드 스튜디오라는 산업적 틀은 이렇듯 1920~1940년을 거치면서 보다 굳건히 구축되게 된다. 이후 할리우드에 '흥행 이외의 미덕은 없다.'

자본주의 발전의 일반적인 과정과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그와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었다. 미국 영화 수출향을 제한하는 다른 나라들의 쿼터제가 그 위기를 낳은 원인의 하나라면, 수직 통합을 금지하는 독점금지법 소송에서의 패배가 또 다른 원인이었다. 아울러 개인창업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이 주어지면서 등장한 새로운 투자회사들을 배경으로 번성하기 시작한 독립제작자들도 무시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게다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던 텔레비전 산업과의 경쟁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에 의해 관객수는 감소하고 영화 제작 편수(혹은 그 이익의 환수)도 감소되며 그 결과 직종별 노조의 고용자수가 1946년에 2만 2,100명이었던 것이 1949년 1만 3,500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제작비를 많이 잡아먹는 고전물이나 배우가 많이 등장하는 작품보다는 현대물이나 현지촬영이 가능한 것으로 제작경향이 바뀌게 되는데, 말하자면 보편적인 시장경제의논리가 곧 영화작가 노릇을 하게 된 것이었다.

더군다나, 전쟁기간 동안의 반파시즘 경향은 친좌파적ㆍ친노동적 정서를 동반하면서 십장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전투적 평조합원들에 의한 직장 위원(shop steward)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게 했는데, 이와같이 노조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고임금을 강제할 수 있었고 영화 제작비를 높게 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이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도, 비록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에 반대하는 정도였지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스튜디오 자본가들은 높은 노동비용을 절감하고 미국 영화 수입에 대한 해외 구구가들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값싼 노동력이 존재하는 해외의 작업장으로 영화제작 현장을 이전하는 전략을 활용했고, 아울러 전쟁이 끝나고 쓷아져나온 산업예비군들은 고용안정과 고임금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 pp.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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