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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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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1. 모차르트: 대미사 중 'Cum Santo Spiritu'
라이프치히 발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2.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 중 라르고
알프레드 브렌델/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클라우디오 아바도

3. 모리코네: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뮌헨 방송교향악단/ 엔리오 모리코네

4. 베르디: 가면무도회 중 'Ogni cura si doni al diletto'
라이프치히 오페라/ 리카르도 샤이

5. 슈만: 교향곡 4번 중 Ziemich langsm - Lebhaft
빈 심포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6. 모차르트: 아베 베룸 코르푸스
빈 소년합창단

7. 자크 브렐: 르 부르조아
다닐 심킨

8.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 중 론도
빌헬름 박하우스/ 빈 심포니/ 칼 뵘

9. 바그너: 탄호이저 중 'Den Gott der Liebe sollst du preisen'
세릴 스튜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주제페 시노폴리

10. 멘델스존: 교향곡 2번 중 'Ich harrete des Herrn'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리카르도 샤이

11. 모차르트 메들리
이안 앤더슨

12. 하이든: 첼로협주곡 1번 중 알레그로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13. 베르디: 아이다 중 'Gia I sacerdoti adunansi'
플라치도 도밍고/ 아그네스 발차

14. 생상: 빈사의 백조
미야 플리세츠카야

15. 베토벤: 자유의 송가
레너드 번스타인

16. 모차르트: 바이올린소나타 K 304 중 템포 미뉴에트
길 샤함/ 오를리 샤함

17. 슈렉커: Die Gezeichneten 중 'Ah welche Nacht'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켄트 나가노

18. 르글랑: 셀부르의 우산
미셀 르글랑 쿼텟

19. 바그너: 로엔그린 중 'Durch Gottes Sieg ist..'
페터 호프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발데마르 넬슨

20.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 중 피날레
베를린 필하모닉/ 다니엘 바렌보임

21. 브룩크너: 교향곡 9번 중 2악장
빈 필하모닉/ 레너드 번스타인

22. 로시니: Il signor Bruschino 중 'Io danari vi daro'
슈베칭거 페스티벌/ 잔루이지 젤메티

23. 로시니: L'occasione fa il ladro 중 'Orsu spiegatevi'
슈베칭거 페스티발/ 잔루이지 젤메티

24. 브람스: 헝가리안 춤곡 5번
에후디 메뉴인/ 아돌프 발러

25. 베토벤: 장엄미사 중 글로리아 일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파비오 루이지

26. 슈만: 피아노협주곡 중 인터메초
마르타 아르헤리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리카르도 샤이

27. 말러: 교향곡 7번 중 5악장
루체른 페스티벌/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양

오디오 : DTS 5.1 화면비율 : 16:9 디스크포맷 : 1 DVD 9 지역코드 : 0 / NTSC 러닝타임: 167분 디스크수 : 1

감독/출연진 소개 7

지휘Claudio Abb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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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아바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음악원에서 지휘, 피아노, 작곡을 배웠다. 이 음악원을 졸업한 다음 빈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에게 지휘를 배웠다. 1958년에 미국의 탱글우드에서 쿠세비츠키 상(賞)을 받았다. 1960년에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린 갤러콘서트에서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 데뷔했다. 1963년에 뉴욕에서 열린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65년 8월 14일에, 빈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데뷔했다. 그 때의 작품은 말러의 [교향곡 제2번]이었다. 1967년에 처음으로 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음악원에서 지휘, 피아노, 작곡을 배웠다. 이 음악원을 졸업한 다음 빈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에게 지휘를 배웠다. 1958년에 미국의 탱글우드에서 쿠세비츠키 상(賞)을 받았다. 1960년에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린 갤러콘서트에서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 데뷔했다. 1963년에 뉴욕에서 열린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65년 8월 14일에, 빈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데뷔했다. 그 때의 작품은 말러의 [교향곡 제2번]이었다. 1967년에 처음으로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 시즌 최초의 공연을 지휘했다. 작품은 벨레니의 오페라 [카풀레티와 몬테키]였고, 1968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랴의 이발사]를 지휘했다. 그 해에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1970년에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를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하였다. 이 작품은 그 뒤에 런던의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도 지휘하였다. 1971년에 빈 필하모니의 수석 지휘자로 지명되었다. 뮌헨 음악제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베르디의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를 지휘하였다. 1972년에 베를린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첫날을 지휘하였다. 이해에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뮌헨에서 스칼라 극장의 오케스트라와 코러스를 지휘하여 베르디의 [레퀴엠]과 오페라 [아이다]를 연주한 것도 1972년의 일이다. 1973년에 빈의 모차르트 협회에서 모차르트 메달을 그에게 주었다. 이해에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및 필라델피아 관현악단과 함께 미국을 연주 여행하였고, 빈 필하모니와 함께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도 연주 여행하였다. 이때가 아바도의 첫 한국 방문이었다. 더욱이 이 해에는 런던교향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1974년에는 아바도로서는 최초의 모차르트의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을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바도는 착착 그 활동의 무대를 넓혀 온 셈인데 그 활동 무대 확대 방식은 용의주도하였다. 이것은 레퍼토리의 선택 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이제까지(1981년 봄) 아바도는 이탈리아의 지휘자이고 이탈리아 오페라의 메카로 이름난 스칼라 극장의 음악 감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푸치니에 의해 대표되는 베르디 이후의, 일반적으로 베리스모 오페라라고 불리는 오페라를 조심성 있게 피해 왔다. 한편으로 프로코피예프나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표시하고, 더욱 루이지 노노의 신작 초연을 종종 하기도 했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아바도의, 굳이 말한다면 지성파(知性派)라고 할 수도 있는 지휘자로서의 본연의 자세가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 사실 아바도의 연주는 열기에 가득 찼다든가 또는 정열적이라든가 하는 형용이 걸맞지 않으며, 오히려 지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하겠다. 그의 연주는 언제나 명쾌하고, 조금의 애매모호함도 없으며, 그 작품의 양식적인 아름다움을 뚜렷이 떠오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휘자로서는 아직도 젊다고 할 수 있는 아바도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마 그 정교하고 치밀함을 잃지 않으면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풍부한 표현일 것이다. 이제까지의 아바도는 문자 그대로의 수재 코스를 걸어 왔고 충분한 성과를 올렸다. 1989년 정식 상임 지휘자가 없는 빈 필하모니의 준상임 지휘자로 있었으며, 1989년 카라얀의 사망으로 그의 휘하였던 베를린 필의 제5대 음악 감독으로 취임해 세계적인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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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Daniel Barenbo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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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바렌보임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은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0년 8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식적으로 데뷔 연주회를 가지며 신동 아티스트로 유명세를 떨쳤다. 1952년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이고르 마르케비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나디아 불랑제 등을 사사했다. 1965년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본격적인 지휘자로 데뷔했으며, 1981년 이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 <파르지팔> 등을 지휘하며 대표적인 바그너 지휘자로 급부상했다. 1991년부터 15년간 시카고 심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은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0년 8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식적으로 데뷔 연주회를 가지며 신동 아티스트로 유명세를 떨쳤다. 1952년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이고르 마르케비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나디아 불랑제 등을 사사했다. 1965년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본격적인 지휘자로 데뷔했으며, 1981년 이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 <파르지팔> 등을 지휘하며 대표적인 바그너 지휘자로 급부상했다. 1991년부터 15년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또한 1992년부터 도이치 슈타츠오퍼 베를린의 음악감독 겸 이 극장의 상주 악단인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창단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현재 UN 평화대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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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트 나가노

지휘Leonard Ber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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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번스타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1918년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러시아 출신이며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어린시절부터 피아노 연주하기를 좋아했으며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다.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여 작곡을 전공했고, 1937년 모더니즘 음악의 대가였던 디미트리 미트로폴로스(Dimitri Mitropolous)를 만나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또한 하버드의 미학교수였던 데이비드 프롤(David Prall)로 부터 예술을 이해하고 음악을 표현하는데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39년 그의 졸업논문은 '인종적 요소가 미국 음악에 끼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썼다. 졸업 후에
레너드 번스타인은 1918년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러시아 출신이며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어린시절부터 피아노 연주하기를 좋아했으며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다.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여 작곡을 전공했고, 1937년 모더니즘 음악의 대가였던 디미트리 미트로폴로스(Dimitri Mitropolous)를 만나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또한 하버드의 미학교수였던 데이비드 프롤(David Prall)로 부터 예술을 이해하고 음악을 표현하는데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39년 그의 졸업논문은 '인종적 요소가 미국 음악에 끼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썼다.

졸업 후에는 F.라이너, S.쿠세비츠키에게 지휘법을, 톰프슨에게 관현악법을 배웠다. 1943년 뉴욕필하모니 음악감독이었던 아서 로진스키(Arthur rodzinski)의 인정을 받아 뉴욕필하모닉의 보조지휘자가 되었다. 그해 11월 14일 뉴욕필하모니의 지휘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가 급환으로 지휘를 못하게 되자, 그의 대신 뉴욕필하모니의 지휘를 맡았고 CBS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되었다. 번스타인은 이 한번의 기회로 유명세를 탔고 이름을 떨치게되었다. 1944년 피츠버그 교향악단을 지휘하였고 자신의 첫 교향곡 《예레미야 심포니 Jeremiah Symphony》을 연주했다.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2차세계대전은 러시아로 확전되었고 히틀러가 저지런 대량학살 소식이 미국 전해졌다. 부모가 러시아 출신인 번스타인은 러시아 난민을 돕자는 자선행사에 자주 초대되어 나갔으며 카네기홀 등에서 자선 연주회를 열었다. 번스타인은 음악뿐만아니라 정치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진보당 창당에 관여하였고 진보적 단체의 단결을 주장했다. 이때부터 그는 FBI의 조사를 받았으며 그의 정치적 성향은 공산주의로 분류되었다. 그는 CBS 방송국 출입이 금지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그의 음악과 공연은 취소되었다. 번스타인은 정치적인 성향 때문에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마침내 미국의 유력지인 라이프 지에 50명의 대표적인 좌파 블랙리스트로 번스타인이 소개되었고 뉴욕필하모니 지위자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1953년 7월 미국 국무부는 번스타인의 여권 갱신을 거부하였고 항상 FBI의 감시를 받으며 고립되었다가 자신의 활동과 신념을 부정하는 진술서에 서명하고 나서야 여권을 받아 유럽으로 갈 수 있었다. 그해 8월에 이탈리아로 건너가 연주활동을 하였는데 음악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으로 보수적 성향의 미국인임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 결과 컬럼비아 영화사의 승인을 얻어내 《워터프론트 Waterfront》(1954)라는 영화음악 제작을 맡을 수 있었다. 그후 포드 자동차의 의뢰를 받아 연주회를 열었고 CBS를 통해 방송되었다. 번스타인은 다시 뉴욕 필하모니로 복귀하게 되었으며 미국에서 지휘자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1957년 뉴욕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이듬해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였고 그가 연주하는 음악회는 최대의 흥행을 보증하게 되었다. 번스타인은 뮤지컬《웨스트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1957)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가장 미국적인 뮤지컬의 창작하였다는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진보적인 성향이 보수로 전향한 것은 아니었으며 미국내 민권투쟁과 인종차별 등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 참여하였다. 1964년 번스타인은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민권운동에 가담하여 마틴 루터 킹 목사(Martin Luther King)와 함께 앨라바마에서 열린 셀마 대행진에 참가하였다. 번스타인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닉슨 행정부가 일으킨 베트남 전쟁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종전을 주장하였고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였다. 이 시기에 자신의 사회사상을 표현한 교향곡《카디시 Kaddish》(1963)와《치체스터 시편 Chichester Psalms》(1965)을 발표하였다. 미국의 보수파인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자 미국내 진보세력의 몰락을 우려하였고 보수파가 추진하는 핵무기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이상과 다르게 변모하는 미국사회의 모습으로 번스타인은 상실감으로 실의에 빠져들었다. 20세기 미국을 표현하는 오페라를 구상하였으나 끝내 작곡을 완성하지 못했다. 1985년 세계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영국, 일본, 그리스, 헝가리 등지에서 연주했으며 이후에는 주로 유럽을 무대로 연주활동을 했다. 1990년 10월 14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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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샤이

리카르도 샤이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음악원에서 프랑코 카리치오로를 사사하여 작곡의 디플로마를 얻은 다음, 페루자에서 피에로 과리아노, 시에나의 키지 음악원에서 프랑코 페라라와 같은 명교사를 사사했다. 1968년, 15세 때 클라우디오 시모네에게 인정을 받아 파도바에서 이 솔리스티 베네티를 지휘하여 데뷔했고, 2년 뒤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추천으로 밀라노 스칼라 극장의 부지휘자로 발탁되었다. 1972년 키지 음악원을 졸업한 샤이는 밀라노의 테아트로 누오보에서 마스네의 [베르테르]를 공연하여 오페라 지휘자로 데뷔했다. 1974년에는 미국으로 진출, 시카코
리카르도 샤이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음악원에서 프랑코 카리치오로를 사사하여 작곡의 디플로마를 얻은 다음, 페루자에서 피에로 과리아노, 시에나의 키지 음악원에서 프랑코 페라라와 같은 명교사를 사사했다. 1968년, 15세 때 클라우디오 시모네에게 인정을 받아 파도바에서 이 솔리스티 베네티를 지휘하여 데뷔했고, 2년 뒤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추천으로 밀라노 스칼라 극장의 부지휘자로 발탁되었다. 1972년 키지 음악원을 졸업한 샤이는 밀라노의 테아트로 누오보에서 마스네의 [베르테르]를 공연하여 오페라 지휘자로 데뷔했다.

1974년에는 미국으로 진출, 시카코 리릭 오페라에서 [나비 부인]을 지휘했고, 1977년 시즌에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오프닝에서 [투란도트]를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군도]를 지휘, 국제적인 주목을 끌게 된다. 더욱이 1982년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데뷔했다. 그는 이미 런던의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 함부르크의 슈타츠오퍼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오페라 지휘자로서는 제일 젊으면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는 주인공이 되었다. 다만 콘서트의 지휘 방면에는 아직도 충분한 캐리어를 쌓았다고 할 수 없지만 런던 교향악단이나 베를린 필하모니아, 뮌헨 필하모니, 로열 필하모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니를 지휘, 차곡차곡 캐리어를 쌓고 있다. 1982년 시즌부터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에 취임하였다.

1986년에는 볼로냐 시립 오페라 극장 음악 감독으로도 취임했고, 콘서트와 오페라의 양쪽으로 자기의 본거지를 가질 수 있게 된 샤이는 점점 활약을 넓히고 있다. 또한 1988년부터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관현악단 수석 지휘자도 겸하게 되었다. 그 동안 1984년에는 로열 필하모니와 함께 한국에 와서 세종문화회관에서 지휘했다.

샤이는 위와 같은 경력에 비추어 보더라도 연령적으로는 아직도 시작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수적으로는 적지만 시중에 팔리고 있는 레코드를 듣게 되면 소위 네거티브적인 의미의 젊음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마스네의 [베르테르](그라모폰)에서는 도밍고, 오브라스초바와 같은 베테랑 가수를 구사하여 실로 전체를 멀리 내다보는 안정된 음악을 이끌어 낸 솜씨는 실로 경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멘델스존의 [교항곡 제2번(찬가)][교향곡 제3번(스코틀랜드)](필립스)에서도 다분히 젊음을 느낄 수가 있지만, 스케일의 크기를 본다면 도저히 20대의 젊은이의 음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특히 [찬가]의 경우 코러스의 컨트롤, 오케스트라와 솔로의 퍼스펙티브 등은 숙달된 기량이라고 표현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많다고 본다. 역시 샤이가 오페라의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익혔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이만큼 흥미롭게 곡을 들려 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라 하겠다. 샤이는 21세기의 1장이란 라이센스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재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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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매일
2008년 03월 17일
시간/무게/크기
167분 | 크기확인중
KC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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