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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대삼국지」의 지혜
이 지혜의 바다. 읽을수록 인생의 풍요와 진리의 다채로움과 영원한 시간을 꿈꾸게 하는 이야기! 거대한 지혜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 독자들은 무수히 이어지는 이야기 여운들에 잠겨 엄청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리라. 형언키 어려운 긴장과 문득문득 전율케 만드는 의로움을 맛보기도 하리라. 그리하여 천변만화 「고산대삼국지」는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 거대한 지혜의 우주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날 「고산대삼국지」 지모학을 연구할 때는 다음 원칙을 염두에 둔다. ‘옛것을 오늘에 이용하고, 병법을 민간에 적용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정치 군사 외교 경제 과학기술 등을 모두 아우르는 ‘싱크탱크’들이 나타났다. 이른바 미국의 랜드연구소, 일본의 노무라종합연구소, 영국의 런던국제전략연구소, 한국의 삼성경제연구소들이 그것이다. 인류의 생산력이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지모학’이 이미 하나의 ‘교차학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후한 끝무렵 난세가 조조의 위, 유비의 촉, 손권의 오, 삼국으로 이루어 나가는 과정은 실로 피가 튀고 살이 춤추는 천변만화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3세기 끝무렵 진수가 쓴 「정사삼국지」는 이 시대를 대상으로 한 역사서이다. 이를 모태로 「삼국지연의」가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천 년 세월이 흐른 뒤였다. 「삼국지연의」 저자 나관중(1330?∼1400년)의 역할은, 먼저 나온 많은 「삼국지」 이야기를 정리?편찬하고 줄거리가 일관된 장편소설로 완성하는 데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 나관중은 북송에서 원나라에 이르기까지 민간예술 세계에서 명맥을 유지하며 구전되어 오던 여러 형태의 삼국지 이야기를 수집했다. 그리고 이들을 「정사삼국지」 본문과 배송지의 주해, 사마광(司馬光:1019∼1086년)의「자치통감」 등 정통역사자료와 비교해 가면서 정리ㆍ집대성하였다. 이렇게 하여 대장편소설 「삼국지연의」(이하「연의」)가 태어난 것이다. 백화(白話:중국의 구어체) 장편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연의」의 지문 스타일은 한없이 문어(文語)에 가깝고 그 표현은 이해하기 아주 쉽다. 나관중의 깊은 역사적 소양이 뒷받침된「삼국지연의」는 민간 예술세계에서 전승된 드넓은 삼국지 이야기들과 역사를 명확한 의식으로 조합시킨 웅장한 소설문학이다. 나관중 이후의 「삼국지」 현존하는 소설 「삼국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인쇄본은 흔히 가정본(嘉靖本)으로 불리는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다. 17세기 후반, 청나라 강희제 때 모성산ㆍ모종강 부자가 ‘모종강본(줄여서 모본)’을 간행하여 널리 읽혔다. ‘모본’은 ‘가정본’을 기초로 하며, 역사에서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고 알기 어려운 부분을 재미있게 수정하는 등 손을 본 것이다. 또한 ‘모본’은 구성상 ‘가정본’ 2조항(2회)을 1회로 정리하고 전체를 120회로 꾸몄다. 각 회의 앞에 긴 평어를 붙이고 뒤에 총평을 달며 이야기 곳곳에 평어를 끼워 넣었다. 이 책이 완성된 시기는 강희(康熙) 초년(1666∼1686 사이)으로 추정된다. 모본「삼국지」는, 문자상 내용상 훨씬 완벽하고 정갈하게 정리되어 이로부터 300여 년간 거의 유일본으로 통용되었다. 우리나라의 「삼국지」 우리나라에는 현재까지 알려진 소설 「삼국지」의 텍스트 가운데 가장 빠른 가정본이 1522년에 출판되었으므로, 아마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듯싶다. 우리나라에서 「삼국지」는 1904년 박문서관에서 최초로 현대적 활자본이 간행되었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한문에 토를 단 세창서관 현토본, 한글로 뜻을 풀이한 영창서관 언해본, 이 밖에 번안 작품들도 상당수 전해진다. 이는 사대부만이 아니라 부녀자나 민간에서도 「삼국지」가 폭넓게 읽혔음을 나타낸다. 1929년 양백화(梁白華)가 매일신보에 「삼국지」를 연재했다. 그리고 1945년에 박태원(朴泰遠)이 모본(毛本)을 기초로 현대문 번역본을 정음사에서 출간하였고, 그 뒤, 김동성(金東成) 박종화(朴鍾和) 김구용(金丘庸) 황병국(黃秉國) 이문열(李文烈) 황석영(黃晳暎) 등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삼국지」 번역본을 펴내고 있다. 이런 역사를 보면, 「삼국지」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뜨거운 사랑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왜 「고산 대삼국지」를 쓰는가 현대적 소설 감각으로 민중의 꿈과 소망이 녹아들어 있는 역동적 삼국지를 쓰고 싶었다. 질풍노도시대를 달리는 조조의 결단, 유비의 덕치, 손권의 수성, 천하경영 대삼국지를 쓰고 싶었다. 한 제국이 몰락해가자 천하의 군웅들이 저마다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마침내 조조ㆍ유비ㆍ손권 세 영웅이 살아남아 천하를 삼분한다. 이들의 승부전략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위ㆍ촉ㆍ오 삼국 통치자가 무엇으로 사람 마음을 얻어 인재를 기용, 추진력을 이끌어냈으며 승부수를 띄웠는가? 존망 위기 때마다 CEO는 어떻게 결단해야 하는가? 그 질문의 답으로 인간 프리즘에 굴절된 찬탄의 지모 이야기들을 그리려 힘썼다. 지금껏 볼 수 없던 스펙트럼의 꿈과 열정, 비전과 전략을 치란흥망 천변만화로 펼치며 천하대세를 다투는 영웅들이 바로 이 시대 지도자들의 무지개로 떠오르도록 하고 싶었다. 영웅들의 꿈이란 결국 이루어지기도 전에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선명하고 강렬한 존재로 돋을 새김했다. 그리고 그들을 차례차례 죽여야만 했다. 이 세상에 나서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사나이들이여, 나를 용서하라. 하지만 그대들의 용기와 지혜는 이 시대 젊은이들 마음에 살아나 그들의 길을 열어주리라. 「삼국지」는 지혜의 보고이다. 모든 인간의 지혜는 선험적(先驗的)인 성찰이나 예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검증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류역사의 무수한 상황을 모두 경험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검증된 지혜를 어떻게 터득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를 읽어 경험을 빌려오는 것이다. 지혜는 철학적 명제의 규범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이고 삶의 실체이기 때문에 실물감 없는 정언(正言) 따위로는 체득되지 않는다. 역사를 지식으로 분석하고 논구하는 일은 역사학자들에게 맡길 일이다. 우리는 「고산대삼국지」에서 우리 삶의 닮은꼴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모(智謀)의 강가에서 사금을 줍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젊은 날 온갖 「삼국지」를 예순 번은 읽었다. 그리고 천명(天命)을 넘어 다시 읽으며 「고산대삼국지」를 쓰기 시작하여 누상촌에서 오장원에 이른 지 열 해가 넘었다. 「고산대삼국지」는 번역본이라기보다 천팔백 년 세월 세상에 태어난 무수한 「삼국지」들의 금과옥조 대목을 되살려낸 총화(總和)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본디 「삼국지」는 한 개인의 창작이 아니라 저잣거리 민중의 꿈속에서 부풀어 온 이야기들의 태산준령 인류지혜 큰 쌓임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