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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 머리말 01 영국 혁명 : 싹트는 꿈 02 프랑스 혁명 03 파리코뮌의 여성 04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 여성운동 05 독일 혁명과 사회주의 여성운동 06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와 여성 노동자 07 산업혁명 이후의 영국 여성운동 08 프랑스의 슬픈 이야기 09 러시아 혁명과 반혁명 10 미국 현대 여성해방운동 : 실패한 성공 11 영국 현대 여성운동 12 여성운동의 계급적 뿌리 13 가족의 존속 14 가족은 무정한 세상의 안식처인가? 15 사회주의와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 후주 찾아보기 단체 약어 |
Tony Cl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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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혁명 당시 한 집단이 일부일처제에 반대했는데, 랜터파가 바로 그들이었다. 지도자들 가운데 한 명인 존 로빈스는 “제자들에게 아내와 남편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고 ‘모범을 보이기 위해’ 본인의 아내를 바꾸었다.” 로렌스 클라크슨은 이것을 완전한 성의 자유에 대한 이론으로 정립했고, 곧이어 아비에셀 코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부일처제 자체를 공격하면서 “진절머리 나는 가족의 의무를 버리시오” 하고 썼다. 클라크슨에게 간통은 기도와 다를 바 없었는데, 왜냐하면 둘 다 인간의 내면적 접근에 의존하기 때문이었다. “순수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실로 간통을 포함한 모든 것이 순수하다”고 강조했다.---p.27
국민방위대원들, 여성들과 아이들, 작업복 입은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서 죽게 될 방어 시설을 만들었다. 팡테옹 광장에서는 긴 스카프와 붉은 리본을 단 여성들과 ‘출발의 노래’와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는 아이들이 바리케이드를 세웠다. 클리쉬 가의 블랑슈 광장에서는 1백20명의 여성 부대가 전설적인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화요일에 그들은 격렬하게 그 바리케이드를 지켰지만, 바리케이드가 무너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18구의 동부에서는, 1848년 리옹 봉기에서 한 구실로 이미 ‘바리케이드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지역 클럽 회원이었던 조세핀 쿠르투아가 두도빌 가와 스테팡송 가의 길모퉁이에 바리케이드를 쌓는 것을 돕기 위해 빈 나무통을 징발하고 있었다. 쿠르투아는 탄약을 나눠 주었고 어린 딸을 보내 싸우는 사람들에게 탄약을 전달했다. 에디스 토머스는 코뮌 기간의 여성을 다룬 책에서, 바리케이드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훗날 체포된 이와 비슷한 다른 많은 인물들의 목록을 작성했다.---p.75 야로슬라프 공장의 1895년 ‘4월 폭동’은 여성 직조공들의 도움과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성 노동자들은 1894~1896년에 산발적으로 벌어진 경제 파업에서 동지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1896년 여름, 방직 노동자들의 역사적 파업이 일어났을 때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들과 혼연일체가 돼 파업에 동참했다. 천대받고 소심하며 권리를 갖지 못했던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은 투쟁과 파업의 순간에 갑자기 성장해 주체로서 우뚝 서는 법을 배운다. 노동운동에 참가함으로써 여성 노동자는 노동력 판매자로서뿐 아니라 여성·아내·어머니·주부로서 자신의 해방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p.156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대담하게 경계선으로 다가가 총을 움켜잡고 간청하거나 거의 명령하다시피 말한다. “총검을 내리고 우리에게 동참하시오.” 군인들은 흥분하고 부끄러워하며, 불안한 눈길을 주고받고 동요한다. 누군가 먼저 마음을 먹는다. 그러면 죄를 진 것 같이 병사들은 전진하는 대중들 사이에서 총검을 치켜들고 투항한다. 경계선이 뚫리고 기쁨에 넘치는 “만세!” 소리가 공기를 뒤흔든다. 병사들은 포위된다. 어디서나 논쟁, 질책, 호소가 벌어진다. 혁명은 또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p.181 혁명 6주 뒤 교회법 대신 민사혼이 실시됐고, 1년도 안 돼 적자와 ‘서자’의 완전한 권리 평등뿐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완전한 권리 평등을 토대로 한 혼인법이 제정됐다. 1917년 12월 19일 법령으로 이혼이 아주 간단해졌다. 서로 합의한 경우 즉시 이혼할 수 있었다. 배우자 중 어느 한쪽이 요구를 할 경우에는 간단한 법정 신문을 거쳤다. 아무런 조건이나 논쟁도, 증거나 증인도, 그리고 성가신 공식 추천서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렇듯 소비에트 러시아는 세계에서 완전한 이혼의 자유가 보장된 유일한 국가가 됐다. 결혼한 부부의 이름에 관해서는 1918년 10월 17일 법에서 이렇게 규정했다. “결혼한 사람들은 공동의 성을 사용한다. …… 혼인신고할 때 남편(신랑) 성이나 부인(신부) 성, 또는 그 둘을 합친 성을 쓸지를 선택할 수 있다.” 트로츠키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 아내 나타샤 세도바의 성을 사용했고, 아들들도 나타샤의 성을 물려받았다.---p.240~241 심지어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생각하는 여성해방운동의 가장 급진적인 구성원들조차 개인적 자유의 전제조건으로서 집단적 향상보다는 개인주의를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말한 ‘쁘띠부르주아 사회주의’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쁘띠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자본주의 비판 능력을 칭찬하면서도, 그것이 그다지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 줬다. 왜냐하면 개인주의 때문에 쁘띠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소심한 우울증의 발작”으로 끝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부르주아 사회의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개인의 자유라는 부르주아적 이상을 분리해 내고자 한다. 즉, 그들은 사회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을 빼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여성해방운동의 구호에 요약돼 있다. 이것은 정치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고, 그것을 재규정하며, 정치적 변화를 목적으로 한 집단행동을 부정한다. 여성운동에서 지배적인 주장, 예를 들면 저메인 그리어의 ‘침실의 혁명’ 같은 것은 여성이 스스로 억압적인 가부장적 태도에서 해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태도가 아니라 사회 조건, 자본주의라는 실재하는 힘,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다. 그리고 남성들과 아이들은 물론이고 여성들 역시 이러한 것들에서 해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p.331~332 오늘날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과거에 노동계급 여성들은 가정 밖에서 일하기를 열망했지만 남편들의 반대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가정한다. 이 가정은 제2차세계대전 이래 기혼 여성을 포함한 여성들이 대규모 ― 농업 노동이 초창기 공장으로 흡수되던 것에 필적하는 규모 ― 로 고용시장에 편입되면서 완전히 파탄이 났다.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 한 세기 동안,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에서 사실상 모든 기혼 여성을 가정에 매어 두는 가족을 방어하려는 남녀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대한 요소였다. 반면, 이제는 여성 노동자들이 가정 밖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약화된 ‘가족임금’이 여성들의 투쟁에서 중요한 요소가 됐다. 페미니스트들은 19세기 ‘가족임금’의 등장을 잘못 설명하고, 오늘날 모든 여성을 임금노동자가 아니라 주로 가정주부로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노동계급 여성들은 다른 무엇보다 임금노동자다. 유급 고용은 노동계급 여성이 힘과 자신감을 획득해 여성해방을 쟁취하는 열쇠다. ---p.348-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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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지워졌던 페이지를 복원하다 : 민중의 관점에서 본 노동 여성들의 역사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History’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Herstory’를 쓴다. 여성이 역사에서 은폐되고 역사가 남성 중심으로 서술된 사실을 봤을 때, 그런 생각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History’의 어원인 그리스어 ‘Historia’가 ‘발견(finding out)’이나 ‘앎(knowing)’을 의미하고 실제로는 여성 명사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남성들 중에서도 오직 소수만이 역사에 등장하는 특권을 얻었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역사는 언제나 통치자들 중심이었고, 이것은 여성들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잔 다르크나 엘리자베스 여왕과 같은 인물 중심이 아니라, 착취받고 좌절하면서도 언제나 새롭게 일어서는 여성 민중의 관점에서 은폐되고 알려지지 않은 노동 여성들의 역사를 복원한다. 저자는 역사에서 여성의 지위를 ‘피해자’로 규정한 시몬 드 보부아르와 같은 생각이 오히려 여성을 역사의 객체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역사에서 제외된 여성들의 역사 속에는 빵과 일자리를 요구하며 싸운 노동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린 평범한 우리 어머니, 언니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여성들을 역사의 주체로 일으켜 세운다. 여성해방의 가능성이 싹텄던 혁명의 파노라마 대부분의 책들이 혁명의 역사를 다룰 때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의 절반인 여성들이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나아졌는지 궁금해진다. 이 책은 그런 갈증을 해소해 준다. 그리고 인간 역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혁명 속에서 여성해방의 가능성이 자라나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7세기 영국 혁명은 최초로 새로운 성 도덕이 얘기된 여성해방의 출발지였다. 오늘날 사람이 보더라도 매우 급진적인 주장들이 펼쳐진다. 도시 빈민들에게 지지를 많이 받은 랜터파(Ranters)는 일부일처제를 반대했다. 또한 디거파(Diggers)는 일부일처제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배우자의 자유, 경제적·법적 구속을 받지 않을 자유, 그리고 선택의 자유에 기초를 둔 일부일처제를 주장했다. 프랑스 혁명에서는 어땠을까? 시몬 드 보부아르는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이 여성의 운명을 바꿨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결코 없었다. …… 그 혁명은 거의 전적으로 남성에 의해 이룩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여성들은 프랑스 혁명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 “여성이 빠진 식량 폭동은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할 정도로 식량 폭동에서 주도적 구실을 한 여성들은 이후에 벌어진 정치적 봉기에서도 적극적이었다. 게다가 실질적 성과도 있었는데, 혁명으로 상속법이 바뀌어 딸과 아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됐고 혁명적 이혼 법은 남녀를 평등하게 다뤘다. 민중의 해방구였던 파리코뮌에서는 여자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최초로 설립되고 노동 여성을 위한 보육시설이 공장 근처에 세워졌다. 그리고 여성들은 코뮌을 방어하는 전투에서 최후까지 바리케이드 뒤에서 남성들보다 더 오래 버텼다. 러시아 혁명은 그야말로 여성해방의 이정표였다. 여성은 완전한 선거권을 갖게 됐고, 적자와 서자의 차별이 사라졌으며, 여성에게 동일임금을 지급했고, 전면적인 유급 출산휴가가 도입됐다. 간통, 근친상간, 동성애 처벌이 형법에서 삭제됐다. 2년 동안 소비에트가 이룬 성과는 다른 선진국들이 지난 1백30년 동안 한 일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컸다.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 못지않게 중요한 ‘부엌과 결혼의 분리’를 위해 공동 급식이 이뤄졌다. 1919~1920년에는 전체 인구의 거의 90퍼센트가 공동 급식을 이용했다. 위대한 성취와 비통한 실패를 반복한 오랜 성쇠의 이야기 혁명 속에서 여성들이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지만, 여성해방은 미완으로 끝났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차별받고 억압받고 있다. 왜 그럴까? 이 책은 여성들의 반복된 승리와 실패의 이야기들 속에서 그 원인과 한계를 친절히 설명한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엄청난 구실을 한 파리코뮌 당시 코뮌은 여성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공화주의 전통과 코뮌의 전반적인 정치적 미성숙 때문이었다. 또,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가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제도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 혁명이 독일로 확산되는 데 실패하면서 러시아 혁명이 타락하고 스탈린의 반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와 한계는 남성들의 탓일까? 이 책의 뒷부분에서 여성운동의 계급적 뿌리와 여성 억압의 기원 등을 다루면서,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여성 문제를 여성 대 남성의 문제로 바라보는 페미니즘과 달리, 이 책은 ‘여성’이라는 결속된 독자적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취한다. 저자는 남성 지배는 계급사회나 자본주의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초역사적 요소가 아니며,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과 국가의 기원≫에서 밝히듯이 사유재산과 계급사회의 등장이 여성의 종속을 낳았다는 주장에 지지를 보낸다. 또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여성해방운동의 구호는 정치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고, 정치적 변화를 목적으로 한 집단행동을 부정한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저자는 반복되는 승리와 실패의 역사가 완전한 승리로 끝나기 위해서는, 그리고 여성이 진정으로 해방되기 위해서는 개인적 해결책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