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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머리말 고조선 ∼ 발해 단군, 유화부인, 주몽, 유리왕, 해명태자, 을파소, 소수림왕, 광개토왕, 장수왕, 영양왕, 보장왕, 을지문덕, 연개소문, 고선지, 소서노, 고이왕, 근초고왕, 성왕, 무왕, 의자왕, 계백, 흑치상지, 김수로,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지증왕, 진흥왕, 이차돈, 거칠부, 선덕여왕, 김춘추, 김유신, 김인문, 자장, 문무왕, 원효, 강수, 의상, 혜초, 장보고, 최치원, 경순왕, 견훤, 궁예, 대조영 고려 왕건, 광종, 쌍기, 서희, 강감찬, 성종, 천추태후, 최충, 현종, 문종, 의천, 이자겸, 묘청, 김부식, 이규보, 일연, 이승휴, 안향, 이제현, 문익점, 공민왕, 신돈, 최영, 정도전, 정몽주, 최무선, 조준 조선 초기 이성계, 이종무, 황희, 이방원, 세종, 김종서, 장영실, 한명회, 세조, 성삼문, 서거정, 김시습, 성종 조선 중기 유자광, 연산군, 조광조, 중종, 윤원형, 이황, 신사임당, 휴정, 이이, 정철, 김천일, 권율, 허준, 원균, 류성룡, 조헌, 이순신, 유정, 이원익, 선조, 곽재우, 김시민, 논개, 이항복, 허균, 광해군, 윤선도, 임경업, 인조, 소현세자, 효종 조선 후기 ∼ 광복 숙종, 정선, 영조, 이익,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 정조, 김홍도,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김정희, 김정호, 흥선 대원군, 김대건, 최제우, 김홍집, 김옥균, 명성황후, 고종, 전봉준, 지석영, 이완용, 손병희, 박영효, 서재필, 홍범도, 주시경, 김구, 안창호, 한용운, 안중근, 김좌진, 이광수, 전형필, 윤봉길 찾아보기 |
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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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발췌
광해군(1575 ~ 1641년) “명과 청이 교체되는 시기에 조선을 위해 외교적으로 노력한 왕이에요.” 선조의 첫째 아들인 임해군이 세자가 되어야 하나 어질지 못하다는 이유로 광해군이 세자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가 의주로 피란을 가 있는 동안 광해군은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왕을 대신해 병사를 모으며 정사를 돌봤다. 정유재란 때는 전라도에서 식량 조달과 군사 모병 등의 활동을 했고, 1608년 선조가 죽자 왕위에 올랐다. 1608년 선혜청을 만들어 경기도에 대동법을 실시하고, 경작지를 넓혀 세금수입을 늘렸다. 이 무렵 만주에서는 여진족이 후금을 세웠다. 명의 요청으로 후금과 싸우기 위해 1만 명의 군대를 파견했지만, 후금에게는 싸울 의사가 없음을 알리고 전투에 패한 척하고 항복하게 했다. ― ‘조선 중기’에서 인조(1595 ~ 1649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내쫓고 왕이 되었어요.” 인조반정을 성공시킨 세력들은 중립 정책을 썼던 광해군과 달리 청에 적대적이었다. 이런 조선의 자세는 1627년 청이 조선을 침략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청이 3만 명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침입해 의주를 함락시키자 인조는 강화도로 천도하고 협상을 벌여 서로 형제의 예로 대하기로 하고 청군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청이 다시 군신의 예의로 바꾸자고 요구하자 조선이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청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침입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했고, 계속 싸우자는 측과 화의를 맺자는 측이 대립하다가 결국 청에 항복했다. 청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잡아갔는데, 인조는 나중에 돌아온 소현세자를 의심해 독살시켰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소현세자가 죽은 뒤 세자비와 그의 두 아들까지 죽였다. ― ‘조선 중기’에서 흥선 대원군(1820 ~ 1898년) “고종의 아버지로 권력을 잡고 쇄국 정책을 펼쳤어요.” 왕족이었으나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1843년 흥선군이 되었지만 당시 세도 정치를 펴던 안동 김씨의 눈치를 보며 시장 바닥에서 깡패들과 어울려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그것은 안동 김씨의 감시를 벗어나려는 작전이었다. 몰래 왕궁의 최고 어른인 조대비와 만나 뜻을 모았고, 안동 김씨에게 원한이 있던 조대비는 철종이 죽자 흥선군의 아들을 왕으로 지명했다. 1863년 12세인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흥선군은 대원군이 되어 정권을 잡았다. 흥선 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막고 왕권을 강화했으며, 지방 호족들의 근거지인 서원을 정리했다. 또 각종 세금을 없애고 탐관오리를 처벌했으며, 양반도 세금을 내도록 했다. 왕권의 과시를 위해 경복궁을 다시 짓는 큰 공사를 벌였는데, 이때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해 원성을 들었다. 또한 천주교 박해로 6년간 8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을 죽였고, 이를 구실로 프랑스와 미국의 배가 조선을 침략했는데 통상을 거부하는 쇄국 정책으로 맞섰다. ― ‘조선 후기~광복’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