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나는 몽유하리라
라일락 향기 여름에서 겨울 사이 일영에서 보낸 나날들 낯선 사내와 술 한잔 점골에서 생긴 일 개구리―시대에 관한 一表象 해설_복도훈 작가의 말 |
김영현의 다른 상품
|
“지성의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 21세기 지식인의 고독한 독백
이번 작품집에서 발견되는 주요한 특성 중 하나는 ‘이야기 들어주기’이다. 한 작중인물이 다른 작중인물에게 숨겨놓은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다른 작중인물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방식으로 요약되는데 이는 다분히 쓸쓸하고 고독한 팬터마임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이때 일인칭 화자의 자칫 장황할 법한 독백을 피하기 위해 삼인칭의 주인공과 그 주인공의 분신으로 어울릴 만한 배역을 별도로 설정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말하거나 듣도록 함으로써 서술상의 단조로움을 피하는 등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 예로 「개구리」는 주인공에게 보내온 ‘이공의 편지와 일기, 그리고 그가 주인공에게 남겼던 말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를 통해 주인공인 화자, 그리고 더 나아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수록작 중, 가장 먼저 쓰여진 「개구리」의 주인공인 ‘이공’의 분열된 의식은 『라일락 향기』의 다른 단편에 등장하는 작중인물들의 의식과 경험적 정황을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즉 의식의 분열을 겪는 ‘이공’의 처지와 이 소설집 전체 작중인물들이 처한 정신적 상황이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열의 한 축에 작중인물들의 속절없는 망각이, 다른 한 축에 그들의 먹먹한 추억이 자리잡아 서로를 잡아당기고 있다. 한마디로 김영현의 이번 소설집 『라일락 향기』는 ‘시간’에 관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망각은 시간으로부터의 궤도이탈이며, 추억은 시간의 주름이고, 글쓰기는 시간의 경계에 대한 체험이자 대결이 되는 것이다. 이를 다시 수록작 하나하나와 대비하자면 ‘망각’의 이야기는 「낯선 사내와 술 한잔」, 「나는 몽유하리라」, {추억}의 이야기는 「라일락 향기」, 「점골에서 생긴 일」, 글 쓰는 작업을 중심에 둔 이야기는 「여름에서 겨울 사이」와 「일영에서 보낸 나날들」로 정리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을 통해 독자가 표면적으로 읽게 되는 것은 글을 쓰지 못하는 그들의 외롭고도 고독한 자화상들, 추억으로 줄달음치거나 망각 속으로 빠져드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통해 글쓰기가 힘겹고 고단하기만 한 21세기 지식인(작가)의 초상이다. 존재가 풍경이 될 때 서사는 향기가 된다 과거와 속절없는 추억으로 이끌어가는 이번 소설집 전반에 걸쳐 반복 환기되는 ‘무기력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책을 펼쳐든 순간 우리는 듣게 될 것이다. 현실에 대한 고통스러운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갈등하는 대신, 현실 그 자체를 회의하고 부정하면서 자기 내부의 공화국으로 망명해버런 인물들의 비통한 외침을. 그러나 우리는 다소 길다 싶은 분량의 [작가의 말]을 통해 이들의 비통한 외침이 무기력과 자포자기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나는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한시도 내가 철학도라는 사실을 잊어본 적이 없다. 사실 나의 일관된 관심은 세상에 대한 문학적 서술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해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작가의 말」) 자신을 은둔시키는 방법으로 침묵과 다변을 함께 권유한 철학자도 있었다고 하지만, 『라일락 향기』에서 보이는 의식의 분열은 회복의 격렬한 기미이며 언어에서 느껴지는 무기력감은 활기찬 글쓰기를 예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좋겠다. 그가 {존재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해명}에 천착하면 할수록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엮여질 서사는 깊은 봄, 어지러울 만큼 진하고 깊은 향기로 걸음을 멈춰 세우는 라일락 향기와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