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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고독 내부 세계 모래톱에서(삽화) 에고 성운적 신비 허상 불꽃놀이(삽화) 시간 첫사랑 가녀린 어깨(삽화) 인간적 정열 여배우(삽화) 소유 자각 맹점(삽화) 이해 미로 음악회(삽화) 심연 쾌락 눈의 아사마 산(삽화) 조화 지속 세월(삽화) 통일 이상 융정작용 낚시를 다녀와서(삽화) 실연 사랑의 시도 옮긴이의 말 |
Takehiko Fukunaga,ふくなが たけひこ,福永 武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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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우리는, 일상의 소란스러운 소음 속에서 문득 자신의 영혼의 희미한 숨소리를 듣는다. 어떤 때는 그것이 극히 사소한 것, 예를 들면 빌딩의 옥상에서 바라본 흰 구름의 모양이라든가, 바다 저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배의 돛이라든가,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일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또 타인과의 말다툼이나, 부음이나, 몸의 이상이나, 일에서의 실패 등이 마음속에 공허한 부분을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싫든 좋든 간에 그것을 들여다보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럴 때, 지금까지 우리의 바깥을 자동적으로 물리적으로 흐르고 있던 시간은 이제 우리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 된다. 거기서는 시간이 멈추고, 혹은 시간은 완전히 다른 차원을 흐르기 시작한다.’ --- p.13
‘아무런 의식 없이 산다는 건 거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고독을 의식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사랑을 찾고, 사랑을 가지고 갈증을 달래려고 한다. 사람은 사랑이 있어도 여전히 고독하고, 사랑이 있기 때문에 더 한층 고독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랑이 없는 고독이고, 그것은 하나의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 --- p.24 ‘사랑의 시작에는 많은 우연이 작용하지만, 어떠한 사랑의 경우에도 거기에는 신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고독과 고독이 접촉할 때, 바다 위의 신기루처럼, 사막 가운데의 오아시스처럼, 홀연히 사랑은 생겨난다.’ --- p.43 ‘진실한 사랑이 눈뜰 때, 그때 일어나는 건 그의 내부에 대한 응시이다. 눈앞에 나타난 한 여자에 의해, 그의 안에 있는 허상이 드디어 선명한 이미지로서 성립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대상을 통해, 그는 자신의 내부를 뚜렷이 본다. 결국 그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충분할 정도로 자신의 고독과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고, 거기에다가 환영을 그리고 지우고 했지만, 하지만 지금 여기에 하나의 대상, 하나의 광원이 나타나기까지는, 이 고독의 황무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 p.54 ‘첫사랑은 대체로 담담하게 끝나기 쉽다. 그것은 이 경험이 아직 젊디젊은 영혼에 고독을 인식하게 하고, 그 가능성을 보여 주고, 일시적으로 고독으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을 그 사명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 경험에 의해 자신이 하나의 정신, 사랑과 고독을 겸비한 정신으로까지 성장한 것을 자각하고, 거기에서 일단락을 짓는다.’ --- p.76 ‘되풀이해 말하자면, 사랑은 항상 타자를 위한 것이고,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가 타자를 사랑하고 타자의 고독을 메우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자기의 고독이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아니, 타자를 사랑하면 할수록 그는 자기의 고독을 의식하고, 게다가 그의 사랑은 자기의 고독이 지닌 중독 작용에 의해 여러 가지 불쾌한 정열 - 질투, 의혹, 불안, 분노 등을 동시에 불러일으킬 것이다.’ --- p.116 ‘사랑받는 인간은 그 고독이 진정되고, 그 상처가 회복돼, 그 가시가 사라질 때, 사랑한다고 하는 자각을 잊고 마는 게 아닐까. 사랑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말로서는 둘 다 사랑이고, 사람은 사랑받는 것에 의해서도 같은 사랑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두 가지 사이에는 무시무시한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사랑받는 것은 언제나 심연의 앞쪽에 있는 것이고, 사람은 거기에 있는 한 안전해서 발이 미끄러져 떨어질 염려가 없다. 그에 반해 사랑한다는 것은 심연을 통나무 하나를 걸쳐놓고 건너든가, 혹은 그 가장자리를 따라 걷든가, 어찌됐든 항상 위험에 몸을 내맡기고 게다가 타는 듯한 기갈에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 것이다. 즉 거기까지 온 사람에게는 이미 구원의 손길도 있을 리가 없고, 그런 의미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위험한 모험 바로 그것이다.’ --- p.138 ‘사랑 안의 쾌락의 요소는, 따라서 극히 얼마 안 되는 것이고, 환멸에 의해 실망할 가능성이 항상 크다. 그러나 사람은 그 사랑에 진지한 한은, 몇 번이고 환멸을 맛보아도 다시 이 착각 속에 자기를 맡기려고 한다. 쾌락이란, 사랑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한 초원 가운데의 일종의 신기루 같은 것이다. 사람이 거기에 도달했다고 생각한 순간, 들판 위를 부는 바람이 여행자의 마음을 스산하게 만들면서 지나가는 것처럼.’ --- p.158 ‘따라서 그는 자기의 고독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랑에 도취되고 싶다는 기분과 자기의 고독에 전율하는 것은 상호 모순되지만, 그러나 사람이 자기를 아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보다도 항상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사람을 만들고, 그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그 고독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야말로 필요한 것으로, 술이나 아편처럼 시간을 잊게 하고, 의식을 몽롱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고독을 응시하고 그것을 자아의 기준으로 삼고 서로의 고독을 이해하는 것, 거기서부터 사랑은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다. ...항상 도취되어 있으면서도 깨어 있는 것, 정신없이 빠져 있으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 것, 이데아의 세계로 비상하면서 지상을 응시하는 것, - 사랑에서의 시도란 것은 그러한 것이다. 그 시도는 결코 쉽지 않지만, 사랑은 그것을 요구한다.’ --- p.175 ‘그것은 헛되이 구원이 오기를 바라는 고독이 아니다. 사랑에 의해 자기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기다리는 고독이 아니다. 고독 쪽에서 사랑을 향해, 사랑을 얻으러, 용솟음쳐 가려고 하는, 그러한 일종의 정신적 행위인 것이다. 사랑이 실패로 끝나도, 잃어버린 사랑을 슬퍼하기 전에, 우선 고독을 충실하게 해, 상처는 상처로서 자기의 힘으로 치유하려고 하는, 그러한 강력한 의지를 관철하려고 하는 것에 의해, 사람은 운명을 돌파해 가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사랑을 시도한다는 것은, 운명에 의해 그의 고독이 시험받는 것에 대한, 인간의 반항 바로 그것이다.’ --- p.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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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퇴색되지 않을 사랑의 본질에 관한 치열한 사색
『사랑 수첩』은 서정성 풍부한 작품들로 일본 문학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작가 후쿠나가 다케히코가 사랑을 주제로 한 단상들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일체의 타협을 배제한 엄밀하고 격조 높은 언어들로, 고독이라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과 그 주어진 조건에 대한 인간적인 반항으로서의 사랑의 여러 가지 양상과 의미를 묻고 있는 이 작품은 일본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었으며, 괴테의『시와 진실』이나 몽테뉴의 『수상록』에 비견된다고 할 정도로 일본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명문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 책은 <고독>, <에고>, <신비>, <허상>, <쾌락>, <사랑의 시도> 등 23개의 키워드를 제목으로 한 사랑의 짧은 단상들과 삽화(揷話)로 <모래톱에서>, <맹점>, <가녀린 어깨>, <여배우> 등 9편의 장편(掌篇)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단상들에는 고독이 운명으로서 주어진 존재인 인간이 에고의 자각과 함께 사랑에 눈뜨고, 그 사랑이 인간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런 작용들의 의미는 무엇인지가 꾸밈없는 간결한 언어로 설명되고 있고, 장편소설들은 얼핏 관념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단상들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면서 전체적인 어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사랑으로 고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나침반’이라는 일본 어느 독자의 표현대로 이 책은 발표된 지 반세기를 넘어선 오늘날까지도 사랑의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지침서로 자리 잡고 있다. 시류에 영합하는 사랑의 테크닉이나 사랑을 호르몬의 작용이나 번식을 위한 생물학적 본능으로 환원시키는 과학적인 시도와는 선을 긋는 이 책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결코 퇴색되지 않는 사랑의 ‘인간적’인 의미 추구를 통해 사랑으로 고뇌하는(혹은 고뇌했던) 사람들에게 진정한 위안과 격려를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