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3차 국내혁명전쟁 시기
항일전쟁 승리 후의 시국과 우리의 계획 (1945년 8월 13일) 장개석은 내전을 도발하고 있다 (1945년 8월 13일) 제18집단군 총사령이 장개석에게 보낸 두 통의 전보 (1945년 8월) 장개석 대변인의 담화를 평함 (1945년 8월 16일) 국민당과의 평화협상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통지 (1945년 8월 26일) 중경重慶협상에 관하여 (1942년 10월 17일) 국민당 공격의 진상 (1945년 11월 5일) 소작료 인하와 생산은 해방구를 지키기 위한 두 가지 중요한 일이다 (1945년 11월 7일) 1946년도 해방구 사업방침 (1945년 12월 15일) 공고한 동북근거지를 구축하자 (1945년 12월 28일) 현 국제정세에 대한 몇 가지 평가 (1946년 4월) 자위전쟁自衛戰爭으로 장개석의 공격을 분쇄하자 (1946년 7월 20일) 미국 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과의 담화 (1946년 8월 6일) 우세한 병력을 집중시켜 적을 각개 섬멸시키자 (1946년 9월 16일) 미국의 ‘조정’의 진상과 중국 내전의 전망 (1946년 9월 29일) 3개월의 총괄 (1946년 10월 1일) 중국혁명의 새로운 고조기를 맞이하자 (1947년 2월 1일) 연안의 일시적 포기와 섬감녕변구의 방위에 관한 중국 공산당 중앙의 두 문서 (1946년 11월, 1947년 4월) 서북전장의 작전방침에 대하여 (1947년 4월 15일) 장개석 정부는 이미 전 인민에 포위되어 있다 (1947년 5월 30일) 해방전쟁 제2차년도의 전략방침 (1947년 9월 1일) 중국인민해방군 선언 (1947년 10월 10일) 3대 규율, 8항 주의注意의 재공포에 관한 중국인민해방군 총사령부의 훈령 (1947년 10월 10일)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 (1947년 12월 25일) 보고제도報告制度를 확립하는 것에 대하여 (1948년 1월 7일) 현 당정책 중의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1948년 1월 18일) 군대 내의 민주운동 (1948년 1월 30일) 서로 다른 지구에서 토지법을 실시하는 데 있어서의 서로 다른 전술 (1948년 2월 3일) 토지개혁 선전사업에서의 ‘좌’경적 오류를 시정하자 (1948년 2월 11일) 신해방구의 토지개혁 요점 (1948년 2월 15일) 상업공정책에 대하여 (1948년 2월 27일) 민족자산계급과 개명신사開明紳士 문제에 관하여 (1948년 3월 1일) 서북지방의 대승리를 평하고, 아울러 해방군의 새로운 방식의 정군운동을 논함 (1948년 3월 7일) 상황에 관한 통보 (1948년 3월 20일) 산서 《진수일보晉綬日報》 편집자들에 대한 담화 (1948년 4월 2일) 낙양洛陽을 다시 공략한 뒤 낙양전선 지휘본부에 보낸 전보 (1948년 4월 8일) 신해방구에서의 농촌사업의 전술 문제 (1948년 5월 24일) 1948년의 토지개혁사업과 정당整黨사업 (1948년 5월 25일) 요심전역遼瀋戰役의 작전방침에 대하여 (1948년 9월, 10월) 당위원회제도를 건전화에 관하여(1948년 9월 20일) 9월 회의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통지(1948년 10월 10일) 회해전역淮海戰役의 작전방침에 대하여 (1948년 10월 11일) 전세계의 혁명세력은 단결하여 제국주의의 침략에 반대하자 (1948년 11월) 중국 군사정세의 중대한 변화 (1948년 11월 14일) 평진전역平津戰役의 작전방침에 대하여 (1948년 12월 11일) 두율명杜聿明 등에게 투항을 촉구하는 글 (1948년 12월 17일)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자 (1948년 12월 30일) 전범戰犯이 화평을 구걸하는 것을 평함 (1949년 1월 4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모택동 주석의 시국에 관한 성명 (1949년 1월 14일) 남경행정원南京行政院의 결정에 대한 중국공산당 대변인의 논평(1949년 1월 21일) 전 중국침략 일본군 총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의 재체포와 국민당 내전범죄자의 체포를 국민당 반동정부에 명령하는 것에 대한 중국공산당 대변인의 담화 (1949년 1월 28일) 화평조건에 일본인 전범과 국민당 전범의 처벌을 포함시키는 것에 대한 중국공산당 대변인의 성명 (1949년 2월 5일) 군대를 공작대로 변화시키자 (1949년 2월 8일) 사분오열된 반동파가 어째서 아직도 헛되이 ‘전면적 평화’를 외치고 있을까 (1949년 2월 15일) 국민당 반동파가 ‘평화 호소’에서 전쟁 호소로 바뀌었다 (1949년 2월 16일) 전쟁 책임 문제에 대한 국민당의 몇 가지 답안을 평함 (1949년 2월 18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한 보고 (1949년 3월 5일) 당위원회의 사업방법 (1949년 3월 13일) 남경정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1949년 4월 4일) 전국으로의 진군 명령 (1949년 4월 21일) 중국인민해방군 포고 (1949년 4월 25일) 중국인민해방군 총사령부 대변인이 영국군함의 무도한 행동에 대해 발표한 성명 (1949년 4월 30일) 신정치협상회의新政治協商會議 준비회의에서의 연설 (1949년 6월 15일) 인민민주주의 독재에 대하여` (1949년 6월 30일) 환상을 버리고 투쟁을 준비하자 (1949년 8월 14일) 굿바이, 스튜어트 (1949년 8월 18일) 무엇 때문에 백서白書를 토론해야 하는가 (1949년 8월 28일) ‘우정’인가, 침략인가 (1949년 8월 30일) 관념론적 역사관의 파산 (1949년 9월 16일) 모택동 연보 |
Mao Zedong,毛澤東
마오쩌둥의 다른 상품
|
◎ 중국 인민출판사와 독점계약하여 펴낸 모택동 주석의 저작 선집
- 모 주석이 직접 편집 진행, 자신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여 4권으로 엮어낸 책! 『모택동 선집』은 모 주석이 직접 편집하여 엮은 것을 중문학자 김승일 박사가 번역하여 펴냈다. 50~60년대를 전후해서 나온 『모택동 선집』 초판을 60년대 초 모 주석이 직접 교열하여 제2판을 출간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한 『모택동 선집』(중국 인민출판사)에는 여타 저작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일부 중요한 저서들이 모두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저자의 교열을 직접 받아 발간한 것이다. 모택동 사상은 초기(1911~1920)와 중기(1921~1957) 그리고 후기(1958~1976)로 구분해 볼 수 있으며, 1차 국공합작과 장정 등을 거쳐 1940년대에 많은 부분이 완성되었다. 이 책에는 유격전술, 대중조직 방법, 토지개혁 방법, 민족통일전선의 형성과 구상, 신민주주의 의론, 사상개조운동, 실천운동과 모순론 등 중국혁명의 각 시기에 있어서의 모택동의 주요한 사상이 정리 집대성되어 있다. 이 책의 기조는 레닌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적 전통과 조건을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택동의 독창적 사상의 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중국혁명의 지도 이념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들은 아직도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모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 중국 베이징의 인민출판사와 독점계약(1999.11.1)하여 7년반 만에 4권 최종본 완간! (1권)-2001.8.20 / (2권)-2002.5.25 / (3권)-2007.11.20 / (4권)-2008.5.20 『모택동 선집』(제1~4권)의 초판은 50년대 초에서 60년대 초를 전후하여 출판되었다. 그로부터 30~40년이 지난 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는 중국공산당 창건 70돌을 맞이하여 『모택동 선집』 제1~4권을 수정하여 제2판을 출판키로 결정했다. 초판 편집은 모택동이 직접 참여하여 지도하는 가운데 출판된 것이기에, 제2판에서는 원래 수록한 글들을 그대로 두고 <서책주의를 반대하는자>는 글 한 편만을 더 보충하였다. 이 글은 한때 분실되었던 것을 60년대 초에 다시 찾은 것으로, 찾은 후에 모택동이 교열을 거쳐 1964년에 출판한 『모택동 저작선』에 처음 공개적으로 발표한 글이다. 거기에다 제2판에서는 초판에서 잘못 밝혀진 집필 날짜와 발표일을 고쳤고, 본문에 있는 서술 가운데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표현된 오식과 누락 등을 정정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수정 작업은 모택동의 의견에 따라 1962년부터 착수하여 근 20~30년간 지속되었으며, 이에 진행된 사료 수집과 학술 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에 근거하여 수정하고 보충하였다. 범우사는 이러한 『모택동 선집』 제2판을 지난 1999년 베이징 인민출판사와 독점계약하여 번역작업을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