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책을 펴내며
역사 발전 위한 소통의 근간 증언록을 엮으며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5?18 강대일|묘지번호 2-56도장을 찍어주세요 강영종|묘지번호 3-98어느 기자가 맞은 5월 김동혁|묘지번호 3-74죽어서 명예를 남긴 남편 김병학|묘지번호나는 지상의 지옥을 보았다 김봉수|묘지번호 4-56새우잡이 선원으로 죽기까지 김승현|묘지번호 4-55다음 세대를 위한 고생 김여수|묘지번호 기동타격대원이 된 용접공 김영철|묘지번호 1-17짧은 희망, 긴 고통 김용대|묘지번호 5-22비장한 각오 김의기|묘지번호 4-12거울처럼 맑은 영혼의 소유자 김점열|묘지번호 108일 만에 돌아온 남편 김종태|묘지번호 4-13서울 신촌에 타오른 5월의 불꽃 김태진|묘지번호 5-18가슴에 묻고 떠난 고난의 시간 김행주|묘지번호 3-67일곱발의 총탄과 짧은 생 김형영|묘지번호 3-47첫 시민장의 주인공 노종복|묘지번호 37일 만의 석방 노준현|묘지번호 4-44소망을 안은 채 가버린 동생 명노근|묘지번호 4-40용기 있는 지도자 명재용|묘지번호 3-52핏자국 투성이인 옷가지를 들고 박관현|묘지번호 민주화의 열정을 온누리에 박귀주|묘지번호 2-54남편의 우유배달과 회한 박동섭|묘지번호 5-20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가혹사 박상언|묘지번호 3-91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죽음 박성수|묘지번호 4-745월로 시작된 한 집안의 불행 박용준|묘지번호 2-385월은 너무 큰 최악이자 수치 박이선|묘지번호 3-44가슴에 대못처럼 박힌 아들 박재진|묘지번호 5-4참으로 다감하고 선량했던 사람을 박정용|묘지번호 기억을 잃어버린 교통사고 박종화|묘지번호 세월 가면 무뎌진 줄 알았지만 박찬채|묘지번호 3-32결코 벗을 수 없는 멍이 박태조|묘지번호 3-45혼자 먼길을 떠난 동생 박효선|묘지번호 4-6고생을 사서 한 사람 배한식|묘지번호 비석 하나만 남겨둔 사연 백대길|묘지번호 4-3민간요법으로 치료했지만 석성진|묘지번호 4-82만신창이가 된 아버지와 아들 성시균|묘지번호 3-51너무 강해서 부러져 버린 사람 손영완|묘지번호 4-434대가 한방에 누워 잠을 청한 그밤 송수현|묘지번호 3-94장하게 자란 아들 한번 못보고 송용완|묘지번호 2-67구천을 떠돌 것만 같은 동생 송진광|묘지번호 3-20기동타격대에게 총검술을 교육시킨 예비군 중대장 신명호|묘지번호 3-75영혼만은 편안하리 신용국|묘지번호 무덤 없는 죽음 신정호|묘지번호 4-81저는 지금도 고문 당하고 있습니다 신충식|묘지번호 여보, 천국에선 부디 아프지 마세요 |
|
5·18민중항쟁 피해자 92명의 증언
이 책은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상해를 입은 뒤 사망한 영령들의 삶을 담고 있다. 그 가족과 지인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관련 자료를 검토하여 작성되었다. 잘못된 공권력으로 피해를 입은 한 사람의 불행이 당사자는 물론 어떻게 한 가정을 몰락시키는지, 국가폭력으로 인한 피해의 정도가 항쟁 당시만이 아니라 얼마나 기나긴 시간 동안 지속되는지, 이를 통한 사회적 손실은 또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통절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항쟁과정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피해자 가족들, 그리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면면이 담겨 있는 이 책이 5.18민중항쟁의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돼 줄 것으로 기대한다. “아무리 거대한 사건과 상처도 세월이 흐르면 망각 속으로 사라지기 쉽습니다. 해마다 5월이면 5?18민중항쟁을 기념하며 항쟁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나누지만 사망자를 비롯하여 그 유가족들, 그리고 아직도 혹독하기만 한 피해자들의 삶 앞에서는 번번이 숙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1980년 5월의 진실을 보전하고, 이를 토대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이 5월을 화두로 끊임없이 소통하여 5?18민중항쟁이 한국은 물론 세계의 역사에서 늘 새로운 테제로 생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때입니다.” - (재)5·18기념재단 이사장 이홍길 “자료집을 출간하기 위한 기초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만난 5.18민주희생자 유가족들의 삶은 대부분 ‘국가유공자’라는 명예와는 다른 삶을 영위하고 있었고, 이들에게 들씌워진 1980년 5월, 그 순간부터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정신’과 ‘기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1980년 5월의 상처는 국가유공자법으로 치유된 것이 아니라 더욱 깊어졌고 씻을 수 없는 현실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온전한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돌아볼 때입니다.” - 사단법인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 정수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