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聲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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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의 신하였던 능산의 옛 동지들에게 실상을 알려 협조를 얻은 왕건 일행은 드디어 쇠둘레로 진격하고 궁성에 갇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선종과 그 가족을 구해낸다. 죽음을 눈앞에 둔 왕후 설리는 종희와 함께 마지막 고향길을 떠나고 정신이 잠깐 든 선종은 양위를 결심하며 은부의 처리는 그 이후로 미뤄달라고 부탁하는데 결국 은부는 양위식 전날 선종을 추동하여 설리와 왕자들을 처참하게 살해한다. 이제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고 원로들의 추대를 받아 42세의 왕건은 대위에 오른다. 등극 초기 기반이 미약했던 왕건은 껍데기뿐인 신라에도 칭신을 마다치 않으며 평화를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라도 고개를 숙이는 겸손을 보인다. 항복해 오는 장군들은 그대로 머물게 하고 각 지방 호족들의 딸을 비로 맞아들이는 등 통합을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한편 견훤은 고려에 붙은 신라를 징치함으로써 왕건을 유인하는 전략을 구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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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의 시대에 통합의 리더십을 읽다
역사소설의 거장 김성한이 흠모한 군주 왕건 일대기. 김성한의 《왕건》은 한고조 유방을 능가하는 덕(德)의 인물 고려태조 왕건을 복원해 낸 최고의 작품이다. 당대의 경세가 선종과 걸출한 용장 견훤을 넘어 덕장 왕건이 한반도를 통일한 창업군주가 되기까지 세 영웅이 펼치는 서사극 선종과 견훤의 재평가 선종과 견훤도 작가의 붓끝에서 새로 태어났다. 작품이 처음 선보였던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선종과 견훤은 폭군의 이미지에 갇혀 있었지만 작가는 이들 불운한 영웅에게도 남다른 애정으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선종은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을 규합하여 강력한 무장세력을 육성한 출중한 지도자로 되살아났다. 그는 불과 수년 만에 한반도 북반을 점령하여 독립왕국을 개창했으며 건국 직후 해군을 건설하여 견훤의 배후 나주를 틀어쥐는 전략가로 그려진다. 선종은 정신이상으로 자신이 건설한 것을 고스란히 왕건에게 빼앗기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지만 선종의 기반 없이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바라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견훤도 기병전에서는 당할 자가 없는 당대의 용장이며 건실하게 나라를 경영하는 창업군주로 묘사된다. 왕건이 특유의 유연성으로 능소능대하다면 견훤은 기골이 장대하고 우직한 무장이었다. 특히 왕건과 견훤이 부딪치는 전투 장면들은 무장 견훤의 타고난 감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작가가 매 작품마다 보여주었던 군사 관련 묘사의 탁월성 덕에 흥미가 배가되는 대목들이다. 선종과 견훤의 재평가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러하듯 선악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낳은 산물이며 역사적 인물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주목되는 부분이다. 확 트인 시대, 거인들의 생동하는 모습과 그 무대 김성한 역사소설의 핵심은 철저한 고증에 있다. 역사소설 처녀작인 《이성계》부터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인 작가는 《왕건》 연재시(동아일보) 옛날 여자들은 성(姓)만 남아 있고 이름이 없기에 소설에서는 필요에 따라 이름을 창작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리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했을 정도로 사실(史實)을 골격으로 하는 역사소설이라는 원칙을 엄격하게 지켰다. 《왕건》 역시 자료 수집에 4년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즉위 초기 입지가 탄탄하지 못했던 왕건이 지방 호족들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무려 스물아홉 명에 이르는 아내를 두게 되었던 사정의 이해라든지, 비록 망해가는 나라이지만 천년사직의 정통성을 지닌 신라를 포섭하여 민심 잡기에 성공한 왕건의 2(고려+신라) 대 1(후백제) 전략 묘사 등은 사실(史實)을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김성한표 역사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이다. 작가는 통일신라 말기의 난맥상과 겹쳐 혼란기로만 여겨지기 일쑤인 후삼국 시대를 이렇게 말했다. “모함으로 지새우던 조선왕조의 답답한 분위기와는 달리 신라 말기에 등장한 선종, 왕건, 견훤 세 사람이 엮어낸 후삼국 시대의 확 트인 풍경은 어느 다른 세계의 일같이 속 시원한 느낌을 준다. 우리 역사에도 이런 인물, 이런 시대가 있었다. 천 년 전 당당하게 살고 당당하게 대결하여 역사를 창조하던 이들 거인의 생동하는 모습과 그 무대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것이 이 작품이었다.” 또한 작가는 고려는 유불선을 마음대로 믿고 남녀가 같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연애하며 과부도 개가도 자유로운(《고려도경》) 열린 사회였다며 이렇게 열린 사회에서 개인의 재능이 발휘되고 세계적 명품인 고려청자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통합의 지도자 왕건 일대기를 통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생각하는 동시에 고려시대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