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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머리말 제1장 양성지의 가계 제2장 양성지의 관직 생활 제3장 정조대에 부활한 양성지 제4장 양성지의 학문 - 실용적 관학파 성리학 제5장 양성지의 사상 맺음말 양성지 연보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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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1415~1482)의 생애와 사상을 처음으로 정리한 {조선 수성기 제갈량 양성지}가 나와 화제를 모은다.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이 창업기(創業期) 조선(朝鮮)을 설계하고 튼실하게 왕조의 주춧돌을 놓았다면, 여기에 양성지는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어 수성기(守成期) 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구실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조선왕조 중흥기(中興期)에 정조(正祖)로 말미암아 다시 찬란하게 부활하여 그의 꿈인 규장각이 실현된 사실만으로도 조선 수성기의 제갈량이라는 평가에 충분히 값할만하다. 세종~성종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정치·경제·국방·사회·문화에 관련되는 수십만언(數十萬言)의 상소문을 바쳐 뛰어난 경륜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한 그를 일러 세조는, “비상한 사람”, “왕좌(王佐)의 재주를 가진 사람”, 심지어 “나의 제갈공명‘이라고까지 극찬했다. 그를 빼놓고는 문종·세조·성종의 치세를 논할 수 없고, 조선 초기 문물의 정비와 정책의 완성 또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저자 한영우 교수(서울대 명예교수이자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는 처음 {눌재집}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는 고백과 아울러, “흔히들 조선의 선비들은 지나치게 중국을 숭상한 사대주의자들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정조가 명을 내려 편찬한 양성지의 {눌재집}을 읽고 나면 이러한 생각이 편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양성지는 단군 이래의 우리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예부터 만주가 우리 영토라는 점을 일관되게 피력하고 있으며, 그러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정치·문화적 자주성을 지켜나가고 드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방안들까지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정조가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던 양성지. 300년 전에 양성지가 입안한 규장각을 실현해 그를 바탕으로 왕조의 중흥을 이끈 정조. 규장각을 사이에 두고 시공을 뛰어넘어 감응한 이들의 관계는, 곧이어 나올 저자의 다음 책 {규장각 그 영광과 수난의 역사}(가제) 또한 기대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날마다 촛불의 물결로 일렁이는 오늘의 우리 정치현실을 보면서 “왜 우리 시대에는 양성지처럼 확신에 찬 경륜과 구체적인 정책을 겸비한 인물을 찾아 볼 수 없고, 백성과 신하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국리민복과 소통의 정치를 최우선의 화두로 삼았던 정조와 같은 지도자가 없는가.” 하고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대가 인물을 낳고, 인물이 또한 시대를 만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2008년 지금, 우리 사회가 ‘오늘의 양성지’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