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위징魏徵 우세남虞世南 왕적王績 상관의上官儀 노조린盧照? 낙빈왕駱賓王 왕발王勃 양형楊炯 이교李嶠 두심언杜審言 심전기沈佺期 송지문宋之門 유희이劉希夷 장약허張若虛 진자앙陳子昻 장설張說 소정蘇? 하지장賀知章 장구령張九齡 노선盧? 손적孫? 왕지환王之渙 맹호연孟浩然 기무잠?毋潛 저광희儲光羲 최국보崔國輔 이기李? 왕창령王昌齡 유신허劉?虛 조영祖詠 상건常建 왕만王灣 구위丘爲 최호崔顥 왕한王翰 왕유王維 배적裴迪 이백李白 두보杜甫 이가우李嘉祐 고적高適 장위張謂 잠삼岑參 장욱張旭 찾아보기 |
|
唐詩를 노래하라 ― 당시에 주목하는 배경
당나라(618-907)는 근대 이전의 중국 역사상 대외적으로 가장 개방적 시기로서, 적극적으로 여러 이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스스로 융화하여 여러 방면에 풍성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그 중 시가(詩歌) 또한 유례없는 성대함을 이루어서, 당시(唐詩)는 중국 시가사(詩歌史)에서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로 평가된다. 이후 당시는 후대의 시가창작에 한 전범으로서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 또한 당시와의 인연이 유구하다. 당나라 시인들이 신라의 사신, 빈공과 출신(崔致遠·金可紀 등), 승려(無著禪師 등) 등 여러 사람들에게 직접 지어준 시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어떤 신라의 재상은 당나라를 오가는 신라상인들에게 거금을 주고 백거이(白居易)의 시집을 구입하여 읽고서 그 시에 정통했다고 한다. 고려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 “문안공(文安公)이 일찍이 말하기를 ‘대개 우리나라의 제작(制作)은 고사(古事)를 인용할 때 문(文)에 있어서는 육경(六經)과 삼사(三史)이고, 시에 있어서는 문선(文選)·이백(李白)·두보(杜甫)·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인데, 이 이외의 여러 사람들의 문집은 근거로써 인용하기가 마땅하지 않다고 여긴다’고 했다”고 했다. 이처럼 고려 때에도 당시는 시가 창작에 있어서 중요한 전범이었다. 조선에서는 당시풍이 더욱 유행하였는데, 중국의 당시 선집들이 많이 수입되어 통행되었다. 신흠(申欽)의 「청창연담(晴?軟談)」에 “당시를 뽑아놓은 것에는 「품휘(品彙)」·「당음(唐音)」·「전당시선(全唐詩選)」·「만수선(萬首選)」·「백가시(百家詩)」 등이 있는데, 「품휘」와 「당음」이 가장 정밀하다”고 했다. 물론 이들 외에도 많은 선집들이 읽혔고, 나아가 조선에서 간행된 독자적인 당시선집 또한 적지 않다. 내용 소개 이 『당시선』 상·하권은 당나라 시인 117가(家)의 시 556수를 선발하여 번역한 것으로, 시인별로 구분하여 시를 배열하였다. 그 배열은 대략 시대 순을 따랐는데 몇몇 여류와 도사 및 승려시인들은 시대를 무시하고 맨 뒤에 붙였다. 그래서 상권은 초당과 성당시인들이고, 하권은 중당과 만당과 여류·도사·승려시인들이다. 작가 이름과 함께 작가에 대한 설명을 두어 독자가 시인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춘 후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작가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한 후 펼쳐지는 시 작품들은 원문 옆에 번역문이 따르는 형식이다. 시 원문과 번역문 아래에는 자세한 주석이 놓여 있다. 주석은 대부분 어구 풀이를 상세하게 담고 있고,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중국의 역대 평설(評說)을 덧붙여서 작품 감상 및 이해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시의 선발은 역대의 여러 선시집을 참고했으며, 그중 몇몇 시는 작품성에 관계없이 한국과의 관련성에 의거하여 선발하였다. 각 판본에 따라 출입하는 글자는 「전당시」의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또한 번역은 직역을 원칙으로 했지만, 간혹 의역을 한 부분도 있다. 이 『당시선』은 보고사의 기획물 한중역대한시선(韓中歷代漢詩選) 중 「한위육조시선(漢魏六朝詩選)」에 이은 두 번째 간행물이다. 『송시선(宋詩選)』과 『고려시선(高麗詩選)』도 조만간 간행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