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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과응보
이토의 심장을 뚫다 암살범은 따로 있다? 이토는 죽어야만 했다 2. 이토가 만든 위기들 조선은 일본이 지킨다 - 청일전쟁 걸림돌을 제거하라 - 명성황후 시해사건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 러일전쟁 3. 식민통치의 교두보 한국통감 조선은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고종 길들이기 한민족은 무능하다 남기지 말고 다 빼앗아라 4. 천민의 아들에서 리스케에서 이토로 부하를 '텐노(天皇)'로 우물 밖으로 주선의 귀재 - 정한 음모 2인자의 자리를 딛고 5. 재상이 되기까지 정상을 향하여 텐노를 등에 업고 텐노를 위하여 - '텐노제' 창안 '영계'가 좋아 당근과 채찍 - 장기집권의 비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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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는 대단히 계산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승산이 없으면 좀처럼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는 곧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는 뜻이다. 그는 가끔 바둑을 두었지만 항상 자기보다도 실력이 부족한 하수들만 상대했다. 이토는 하수가 어려움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이제 어떻게 하지' 라고 재촉하며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그는 구미 선진 문명국을 대단히 두려워했다. 앞서 말했듯이 특히 러시아에 대한 그의 공포심은 거의 병적이었다고 한다. 그가 본심과 달리 한국의 조기 식민지화를 머뭇거린 이유도 서구 열강들의 영향력을 민감하게 계산한 데 있었다. 이런 사실들로 볼 때 그가 심성이 여린 고종을 비롯한 한국 대신들을 어떻게 대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토는 이듬해(1906) 3월 2일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듯 수많은 수행원을 이끌고 서울로 부임해 왔다. 그가 가진 권한도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에게는 한국 주둔 일본군을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지휘권도 있었다. 당시 일본 제국헌법은 군은 텐노 직속으로 다른 문민에게는 지휘를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였다. 실질적인 군 통수 책임자인 참모총장 또한 텐노의 칙명을 받는 형식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토에게 군지휘권을 준 조치는 군부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토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통감 수락을 거부하겠다고 단호하게 맞섰다. 그의 부임이 다소 늦어진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에 군부의 최고 원로인 야마가타와 가쓰라 수상은 '통감은 한국 국민의 원한을 한 몸에 받는 자리이다. 한국 조정과 정계를 압도하려면 거물인 이토를 임명하는 수밖에 대안이 없다' 라며 군부의 반감을 진정시키고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 p.128~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