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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역자 서문 저자 서문 1부. 급진 민주주의와 자유지상적 사회주의 미국적 관점의 후퇴: 1968년과 이후 30년_ 슈티븐 에릭 브로너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1968년 ‘프라하의 봄’ 혹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_ 헬레나 캐냐-베커 베를린 코뮨과 베를린 공화국 사이: 루디 두치케의 내독정치 구상_ 뤼디거 헨첼 좌파자유주의: ‘인본주의 대학생 연합’의 예_ 클라우스 크레펠 학생운동의 이중성과 생산적 효과: 자조운동_ 프리츠 필마 반反정신의학과 정치: ‘하이델베르크 사회주의 환자공동체SPK’에 대하여_ 코넬리아 브링크 2부. 비판과 전복 반권위주의 저항운동에서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역할에 대하여_ 알프레트 크로포차 시민권으로서의 교육과 사회적 의무를 진 학문_ 볼프 디터 나르 짧은 봄: 1968년 전후 독일 사회학_ 에어하르트 슈텔팅 칼 맑스: 1968년과 2001년_ H. D. 키트슈타이너 청년헤겔주의자와 68혁명운동가_ 베르너 포스트 후기구조주의의 도전_ 클라우스 리히트블라우 3부. 좌파란 무엇인가? ‘급진적 사고 전환’, 어떻게 할 것인가?: 2001년 9월 11일 이후 탈정상화의 시각에서 본 정상주의이론의 정신적 충격_ 위르겐 링크 ‘상상과 도덕’: 도덕 비판이론의 이정표_ 울리히 콜만 유토피아의 종말은 없다: 8가지 명제_ 리하르트 파버 보론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의 혁명과 반혁명: 68혁명운동의 의미와 교훈_ 정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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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은 사건이었다. 40년이 지나도록 영향력을 잃지 않는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성찰적 재평가를 필요로 하는 철학적 사건이다.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상상력에 권력을!”, ‘1968’의 교훈은 바로 이 세 마디로 압축된다. 이 세 가지 요구는 다시 반권위주의적 탈물질주의로 요약되며, 기성 질서의 권위주의를 파괴하는 혁명적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다. 상상력은 불가능을 모른다. 68혁명운동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며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러한 새로운 사고가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뿌리박힌 권위주의로부터 환골탈퇴할 때가 온 것이다. ‘1968’은 우리에게 바로 그 계기를 제공해준다. 물론 이것은 비단 역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때문에 그동안 ‘1968’과 관련된 문헌들이 적지 않게 번역되어 나왔으며 연구논문들도 꽤 축적되었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평가와 관련된 문헌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으며, 그러한 연구도 드문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1968년 이후 30년을 기념하며 다양한 사회과학적 평가를 내린 글들을 모은 이 책은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독일에서도 이 책은 그에 상응하는 호응을 얻고 있다. 2002년에 이 책을 출간한 Philo 출판사가 EVA(Europaische Verlagsanstalt) 출판사에 합병된 후 EVA사가 이 책의 유용성을 인정하여 2008년에 다시 발간한 것이 그 방증이다. 무엇보다 비판적 평가에 충실하면서도 ‘1968’을 재음미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은 또한 ‘1968’ 전체에 대한 평가를 아우르면서 개별 운동들에 대한 상세한 고찰을 병행하고 있어 균형된 시각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68혁명운동은 전통적 좌파들이 보지 못한 권위주의와 물질주의적 모순을 지적하고 일상성의 민주주의와 탈물질주의적 사람사회를 제기함으로써 ‘하나의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지금 여기에서’ 성찰해야 할 매우 중요한 계기이다. 유럽과 미국의 68혁명운동을 평가한 이 책의 의미를 ‘지금 여기에서’ 되살릴 필요가 절박하다. 「보론」으로 첨부한 역자의 논문은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 저자 서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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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008 촛불’로 되살아나는 ‘68혁명’?『/B』
세계를 뒤흔든 68혁명 40주년을 맞아 서구에서는 68혁명을 재조명하는 기념 국제학술대회와 영화제, 서적 출판 등으로 분주했다. 그리고 ‘68혁명의 경험담’과 ‘68혁명에 대한 평가’도 다양한 지면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에 걸쳐 68혁명을 소개하는 단행본 몇 권, 그리고 40주년을 맞이하여 몇 신문사에서 기획한 기사가 전부이다. 그래서 한국은 ‘68혁명’과는 무관하고 무관심한가? 68혁명 ‘40주년’이 기념하거나 평가할만한 가치도 없는 먼 과거의 일로 혹은 먼 나라의 일로 치부되고 있는가? 오히려 2008년 한국에서 ‘68혁명’은 기념하거나 평가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2008년 5월~7월의 ‘촛불’을 통해 40여년이란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권위주의적인 국가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문제제기, 직접적인 소통과 토론에 바탕한 직접행동이라는 직접 민주주의의 구현, 축제와 저항의 결합, 10대와 여성이라는 새로운 정치 주체의 등장, 그리고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과 주요 언론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68혁명이 보여주었던 ‘창의력’과 ‘상상력’과 ‘자발성’과 ‘역동성’이 40여년만에 부활했고 진행 중이다. 아직 그 누구도 예견할 수 없지만, 과연 이 촛불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아니 촛불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 만약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68혁명’ 40주년을 평가할 수 있고 평가해야 한다면, 바로 그것은 ‘촛불의 미래’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이다. 『b』‘상상력에 권력을?’『/b』 68혁명 3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사회과학적 평가를 모아 2002년에 발간한 『상상력에 권력을?-1968 혁명의 평가』는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68혁명에 대한 절대적인 찬양서가 아니다. 68혁명 당시 내걸었던 ‘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구호에 대해 ‘상상력에 권력을?’이라고 대비시키고 있다. 『상상력에 권력을?』은 68혁명 후 30여년이 지난 다음, 당시 68혁명에 실천적이든 이론적이든 적극 뛰어들었던 주체들의 ‘학술적인 논평’이다. 68혁명이 제기했지만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문제들에 대해, 급진자유주의적 입장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 이르기까지, 철학과 사회학과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진 ‘사회과학적이고 논쟁적인 비판적 평가서’이다. 물론 15개 논문의 저자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특히 독일에서 실험되었던 사례를 중심으로 68혁명이 과연 ‘상상력’에 ‘권력’을 가져다주었는지를 추적하고 평가한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의 경험, 독일 68혁명의 주역의 하나였던 루디 두치케의 ‘평의회 민주주의’의 구상, 독일 좌파자유주의의 ‘인본주의 대학생 연합’과 SDS(사회주의독일학생동맹)의 ‘하이델베르크 환자 공동체’ 실험의 의의와 그 실패 원인, 그리고 학생운동이 끼친 건설적 효과의 하나로 평가되는 ‘자조운동’에 이르기까지, 68혁명 과정에서 등장한 새롭고도 창조적인 시도들에 대해 평가가 이루어진다.(1부. 급진민주주의와 자유지상적 사회주의) “인습에서 성(性)성을 해방시키고 일상을 변혁하며 새로운 감수성을 창조하려는 시도는 정당하면서도 선동적이었다. 신좌파가 문화를 사회적 통제체계의 하나로 보고 토론하며 유익하게 활용하려는 최초의 운동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당하다.”(p32) “1960년대는 지나갔다고 확신한다. 신좌파들이 이전 좌파들과 겨루었듯이, 하나의 새로운 운동이 신좌파들과 겨루어야 한다. … 그러나 새로운 운동은 68혁명운동의 성과들, 즉 일상적 삶의 인습성에 대한 도전, 문화산업에 대한 대항 시도, 참여의 강조,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으로서 이상주의라는 당시의 성과들을 통합해 내야 한다. 68혁명운동처럼 이 새로운 운동은 국가 개입의 가능성들을 기각해서는 안되지만, 그와 동시에 일국적 주권에 대한 격세유전적 집착은 극복해야 한다”(p36∼37) “프라하의 봄은 현실사회주의 체제를 평화적으로 전환하려는 최초의 시도이자 유일한 시도였다. 프라하의 구조개혁은 소련 페레스트로이카(1995)의 모델이었다. … 프라하의 봄은 훌륭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점령은 소비에트의 종말을 20~30년 앞당겼다. 1968년의 봄이 없었다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가능할 수 없었을 것이다.”(p66) “혁명적 실존은 곧 ‘고유한 해방과정’이자 ‘주체적 조직’이었다. 그에 대한 대안은 ‘관료기구 안의 삶’이고 ‘냉소적인 무료함’이며 ‘전문가적 바보의 고루함’에 다름 아니었다. 1967년의 전선은 노동과 자본사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주체적 조직’과 ‘비인간적인 국가기제’ 사이에 쳐져 있었던 것이다”(p73) “두치케는 이상주의자였지만, 소련의 붕괴를 내다 볼 정도로 충분히 현식적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사회주의로 가기 위해 서구 사회의 변혁과 동구 국가노예제의 변혁을 맑스적으로 결합하기를 희망했다”(p95) “1967년까지의 인본주의대학생연합이 여전히 다른 단체들, 즉 사회주의독일대학생동맹과 같은 단체들을 위한 ‘순간 온수기’로 인정되었다면, 1967년 이후의 인본주의대학생연합은 자신의 개인주의적-자유주의적 이념을 ‘사회화’하려고 시도하고 ‘형식적’ 자유주의에서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로 발전해 갔다는 의미에서 회원들의 성향을 좌경화 방향으로 사회화하려고 시도했다. 그에 따라 인본주의대학생연합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시민권’ 영역을 고수하는 예전 회원들과 모조직인 인본주의연합의 사고와 결별했다.”(p119) “학생들은 사회구조의 문제를 제기하며 그 구조를 뒤흔들고 민주화를 도정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 운동은 자신들의 저항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 개혁을 이끌어 낼 정도로 충분한 정치적 적극성을 띠지는 못했다. … 이 운동은 매우 추상적으로 혁명적 경향을 띠었으며 그로 인해 진정으로 의도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효과를 목표로 삼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밖에 없다. 독일에서 다수의 반응은 실질적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치명적인 보수주의 역습에 기여하였다. … 좌파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은 다수 국민들에게서 전체적으로 희망과 신뢰보다 공포를 더 많이 야기했다.”(p122∼123) “독일은 매우 작은 공격적인 혁명지향적 소수파와 개혁지향적 다수파의 매우 험난하고도 삭막하며 파괴적인 대립을 겪었다. 이 대립은 사민당-자민당 연정 시기가 1983년에 종식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경제위기가 자비의 일격을 가한 것이다. … 새로운 사민당-자민당 연정 시기는 좌파가 매우 어려운 기술을 습득할 때, 더 정확히 말해 공감할 수 없는 전망을 가지고 민중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보적인 개혁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는 기술을 익힐 때 비로소 오래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p138∼139) “‘하이델베르크 사회주의 환자공동체 사례’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 문제, 현대 정신의학과 신좌파간의 접점 문제, 대학개혁과 병원조직의 문제, 붉은 세포조직들과 이들의 투쟁을 의료계 내로 침투시키는 문제, 그리고 병원과 환자들의 불가침성을 정치적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혼합된 주목할 만한 현상을 내포하고 있다.”(p141) “하이델베르크 사회주의 환자공동체의 관점에서 질병은 ‘개인적 불행이나 유산 그와 유사한 것들이 아니라, 일상적 노동에서 발생하는 소모 과정의 표현’이었다. … 질병의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인지는 혁명행동으로 발전하고, 환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혁명 주체로 그리고 그들의 질병은 무기로 전환된다. 질병을 ‘절반쯤 진행된 해방과정’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정의와 더불어 치료와 건강의 개념도 변해야만 했다. 병이 들었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것에 대한 길항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길항으로 이해되었다. … 치료는 소외이며, 질병의 박탈과 건강함은 산 채 죽어있음을 의미했다. … 하이델베르크 사회주의 환자공동체를 둘러싼 논쟁은 무엇이 병든 것이고 무엇이 건강한 것인가라는 문제가 현저하게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규명했다.”(p162∼163, p167) 『신좌파의 상상력』의 저자 조지 카치아피카스에 따르면, 68혁명이 그 국제주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내부에 ‘민족적 특성’이 무의식적으로 재생산됐는데, “독일의 신좌파는 이론적인 측면이 강했고, 프랑스 신좌파의 행동은 낭만적인 동시에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미국의 신좌파는 군사적 실용주의를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바로 독일 신좌파가 갖는 ‘이론적’ 특징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부분이 『상상력에 권력을?』의 ‘2부. 비판과 전복’이다. 여기서 필자들은 68혁명 과정에서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역할, ‘대학과 교육체계의 개혁’ 속에서 드러나는 학문의 사회적 중요성의 문제, 68혁명 과정에서 해방지향적 경향을 띄었던 사회학의 문화비판적 고발로의 변화 혹은 몰락, 그리고 68혁명을 경험을 통한 19세기 맑스주의의 극복과 비판적인 재구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68혁명이라는 현실의 경험이 학문과 사상?이론에 끼친 영향, 거꾸로 학문과 사상?이론이 68혁명에 끼친 영향 등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다. “이론은 선동과 동원 및 동원된 사람들의 자기확신-이것이 결정적이다-에 기여한다. … 자신의 고유한 생활사가 갖는 수수께끼는 역사과정과 사회를 이해할 때 풀릴 수 있다. 이론의 이러한 기능변화에서 심리학적 요소는 지극히 명백하다. 저항운동에서 맑스와 프로이트의 이론이 동일하게 서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p187) “독일연방공화국에서 교유체계는 총체적으로 현대화되어야 한다. 3등급 교육체계가 적절하게 지양되어야 하며, 정교수가 지배하는 대학은 적어도 앵글로색슨식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세습 농노 같고 개인적으로 배정되며 거의 철저하게 종속된 조교들로 구성되는 제도는 진부하고 학문을 훼손하는, 정교수 지배대학의 외형적 전제인 교수자격증 제도와 마찬가지로 폐지되어야 한다.”(p199) “개혁시도의 나쁜 조건과 한계 및 더 나쁜 조건과 한계, 그리고 좋은 조건과 한계 및 더 좋은 조건과 한계들을 고찰하지 않고 개혁의 시기와 필요한 시간을 계산하지 않는 순진한 개혁 형태들로 인해, 다수파는 조기에 체념하는 오류를 범했고, 소수파인 공산주의 그룹들은 폭력중심적 오산에 극단적으로 갇히게 되었다.”(p210) “1968년 사회주의독일대학생동맹의 자진 해산은 비록 오래 지연되기는 했지만 해방지향적 사회학의 종식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후 강단 사회학이 세인의 주목을 끌며 확고하게 발전해 나갔던 것이다.”(p222∼223) “독일 대학은 나치즘에서 도덕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독일 문화과학은 독일 민족주의의 형성에 일반적으로 참여했으며 독일의 오만함 형성에 특수하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래서 독문학과 심리학 및 민속학 등에서 소장 전공학자들을 중심으로 자기 비판적인 분과학문의 역사가 생겨났다. 대학체계의 사회적 담지자들, 특히 독일의 교육받은 시민계급은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저항적 대학생들의 눈에 나치즘의 시기는 이 교육받은 시민계급의 도덕적 정치적 파산으로 비쳤다. … 따라서 민주화는 학문적 성찰과 대중적 사고의 결합도 가능하게 해야 했다.”(p230) “1960년대 대학생운동은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반항이었지만, 총체적으로 가정의 영역을 넘어 사회의 영역으로 전환되었다. 1967년 함부르크 대학에서 학생들이 총장과 학장들에게 제기한 구호가 ‘학위 가운 아래-천년 묵은 곰팡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완벽한 대안 학문이 대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발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모든 학문분야들이 독일에서는 1933년에 중단되었으며, 망명한 곳에서 어려운 조건 아래 이어나갔다. … 대학생 저항은 독일에 남아 있던 사상에 대한 추방된 학문의 복수를 실현했다.”(p238∼239) “자본주의는 종말에 이르고 새로운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바로 희망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 사회는 동유럽과 같은 사회는 아니어야 했다. 대학생운동의 초기에는 이른바 동구블록 사회주의로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점에 대해 더하든 덜하든 명백한 동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곧 이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을 내세우는 정당이 오히려 노동자계급을 지배하고 있는 전체주의적이고 경직된 체계였다.”(p243∼244) “적군파의 자기파괴적인 자포자기적 전략은 이론적 광기와 과대망상 및 억압적 고립이 심각하게 뒤섞인 현상과 무관하지 않았다. … 68혁명가들은 1945년 이후에 예 독일의 연속성을 돌파하려고 진지하게 시도했다. 그들은 아우슈비츠를 모든 문화적 정치적 전통에 대한 재평가로 귀결되어야 할 파국적 단절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 이제 중요한 것은 세계를 꾸준히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실천적으로 변혁하는 것이었다. 이제 문제는 ‘철학의 실현’이냐,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냐라는 것이었다.”(p265) “후기 구조주의는 확실히 특정한 부문에서는 계급, 정당, 교회, 노동조합 같은 사회조직의 정치적 탈정당화에도 기여했다. 우선 그 고유한 ‘미시정치’는 개인적 삶의 기획에서 인간적 자기주장을 위한 기준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는 존재의 미학을 겨냥했다. 그러나 서양에서 관찰되는 민중의 탈정치화는 후기 구조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비록 주식가치는 높지 않은 상황일지라도 경제적 가치를 선호하는 현 시대의 일반적 징후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후기 구조주의는 발전된 사회에서 발견된다.”(p286∼287) 그리고 ‘3부. 좌파란 무엇인가’에서는 ‘지속적인 산업적 비상질서’(PINO)라는 개념에 바탕하여 2001년 9·11 사건이 정상주의 이론에 끼친 충격을 다루고 있으며, 이어 68혁명에 커다란 사상적 영향을 미친 호르크하이머-마르쿠제-아도르노 등으로 이어지는 비판이론에 대한 검토를 통해 도덕비판이론의 새로운 과제, 좌파의 새로운 이론적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19세기 이래 서구 사회에서 부분적으로 작동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결정요소들 중의 하나는 ‘정상주의’인데, 이는 현대사회에서 정상성들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담론행위들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행위와 결정요소 및 심급과 제도들까지 모두 포괄하는 총체성을 의미한다. 이 때 본질적인 것은 특히 대량 데이터화라는 결정 요소, 즉 넓은 의미에서 통계학적 결정요소이다. … 효과적인 정상주의적 조정은 무엇보다도 경제, 기술, 의료, 보상적 사회국가, 그리고 이중적으로 통치 가능한 의회주의에 본질적이다.”(p293) “매스미디어가 공개적이고 다원적인 시민사회에 대한 논쟁에서 결정적인 촉매제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시민사회와 국가 사이에 위치한다. 이상적으로 그것은 무엇보다 국가에 맞서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여야 한다. 그것이 단지 국가의 목소리라거나 심지어 비상기구의 경향을 띤다면,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고와 같은 초대형 사고가 될 것이다. … 그와 관련하여 시민사회의 다원성과 이견의 보장이 얼마나 본질적인지도 입증된다. … 결론적으로 시민사회의 예측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바로 지금 시급히 요청되며, 그것에는 정상주의 연구가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p309) “마르쿠제는 해방된 자발적 감성의 억압을 근거로 기존 질서를 비판하듯이 기성 신념 유형들로부터의 개인적 일탈이 사회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68혁명운동의 사회적 저항을 질책했다. … ‘그들은 장막 뒤에 숨은 구조는 건드리지 않는다.’ … 여기에서 마르쿠제가 얼마나 옳았는지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와서야 증명되었다. 표준화된 대량생산 상품들에 맞추어진 포드주의적-코포라티즘적 자본주의가 후기포드주의적 생활양식-자본주의로 전환할 때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변증법은 정착되었다. 1968년 이전에 엄격하게 사적인 것으로 간주된 것들이 이제는 토크쇼와 신문에서 전례없을 정도로 공개 토론되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관련 당사자들의 공적 이해관계의 영역이었던 쓰레기 처리, 질병, 실업과 같은 영역들이 점차적으로 개개인의 담당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p315) “완벽한 도덕적 실천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덕은 도달 가능한 하나의 상태이지 끝없이 다가가야 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근대의 꿈이 괴물을 낳았다. 도덕적으로 볼 때, 실천은 도덕적으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끝없는 불안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실천 개념을 이론적으로 밝히는 것이 도덕 비판 이론의 시의적절한 과제이다.”(p327) 『b』‘평가’ 속에서도 68혁명은 계속되고 있다.『/b』 68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68혁명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68혁명이 제기한 과제들, 즉 역자가 밝히고 있듯이 탈권위주의와 일상적 민주주의의 문제, 탈물질주의 문제가 21세기에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68혁명의 성격과 그것이 끼친 영향을 둘러 싼 평가가 계속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68혁명이 무질서와 사회 기강의 이완을 낳았고,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보수적 비판은 뒤로 하자. 지난 40여년에 걸친 연구와 논쟁과 평가의 결과로 이제 68혁명은 더 이상 학생들만의 저항이 아니라 기층의 노동자들도 함께 했던 혁명이었으며, 선진국 일부에서만 일어났던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라 국제주의에 바탕하여 전세계에 걸쳐 일어난 새로운 유형의 혁명이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나아가 68혁명이 현실에 끼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들과 인간의 삶과 의식에 끼친 영향 역시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평가 속에서 68혁명은 잊혀진 과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실로서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상상력에 권력을?』에서 이루어지는 68혁명에 대한 사회과학적 평가는 그런 점에서 68혁명, 특히 독일에서의 경험을 비판적이고 학문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68혁명이 제기했던 ‘상상력’을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상상력에 권력을?』은 편저자인 리하르트 파버와 에어하르트 슈텔팅이 제기하듯, “험난한 시기를 거치면서 이룩한 숱한 진보들이 오늘날 유토피아에 적대적이고 호흡이 짧은 실용주의에 의해 폐기될 위기”에서 “68 당시의 해결 방안과 현재의 문제들을 부분적으로는 지속적 유용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학문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상상력에 권력을?』에서는 그간 68혁명에 대한 소개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지점들, 독일 68혁명의 주체들이 이론적 실천적으로 직면했던 딜레마들, 즉 부모세대를 규정했던 나찌즘과 그 유산으로부터의 단절 문제, 개혁과 혁명 사이의 분열, 그리고 그 결과로 드러나는 개혁의 실패와 적군파의 출현 및 고립화, 나아가 사회주의를 지향하되 현실의 사회주의와는 명백하게 단절된 새로운 사회를 모색해야 하는 절박함 등이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치열한 지적 성찰을 통해 평가되고 있다. 2008년 5월, 40주년을 맞는 68혁명의 5월에 한국사회에서는 ‘촛불’이 타올랐다. 40년 전 68처럼 ‘촛불’ 역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다가왔다. 물론 구체적인 지점에서 68혁명과 ‘2008년 촛불’을 완전히 동일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촛불’이 장기화되면서 ‘촛불’ 안팎으로 68혁명이 직면했던 여러 딜레마와 논쟁이 생기고 있다. 폭력과 비폭력 논쟁, 촛불의 정치 사회적 목표와 의제의 다원화 문제, 촛불의 의회주의적 수렴 문제 등이 그것이다. 『상상력에 권력을?』이 이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줄 수는 없지만, ‘2008년 촛불’에 대해 어떻게 성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상상력’은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상상력에 권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