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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품격 사이 남자의 멋
“여전히 서툴다. 이전보다 더 어렵다. 하지만 40대가 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빠와 남자, 본능과 제도,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남자를 위한 현실적인 조언. 배트맨, 닥터 하우스 등 대중문화 속 영웅 이야기를 통해 남자의 민낯을 솔직하고 시원하게 담아냈다.
2016.07.12.
자기계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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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프롤로그: 당당한 마흔앓이를 위해1부 그렇게 기로에 서다호두과자와 브루스 웨인외로움과 결핍감 사이의 줄타기- 남자는 왜 뮤즈가 필요한가가족의 관계를 그리워하는 사회40대 남자는 아빠다- 남자는 왜 길을 묻지 않는가2부 스스로 구원하라괴물의 눈물진짜 젠장- 남자는 왜 여왕에게 충성하는가조커의 승리켄신으로 살아남기- 남자는 왜 수염을 기르는가3부 본능에도 이유가 있다세상과 세상의 틈무언가에 미쳐야 산다- 남자는 왜 미식에 빠지는가자신만의 플레이를 찾아라욕망과 품격 사이-남자는 왜 근육을 키우는가4부 아직, 선택할 수 있다어떻게 죽을 것인가거짓 자유를 이어갈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남자는 왜 허세를 부리는가삶이 다했을 때 후회하지 말라뒤늦게 철이 드는 남자- 남자는 왜 정치판을 기웃거리는가‘관심’이라는 철갑 수트이제는 선택할 시간- 남자는 왜 피규어를 사 모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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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40대는 끝까지 가야 한다. 그러니까, 호두과자 할아버지한테 값싼 선의 따위를 베푸는 게 아니었다. 잔돈 좀 안 받는다고 세상이 훈훈해지는 게 아니다. 할아버지한테 기계에서 갓 나온 호두과자를 달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따뜻한 호두과자가 아니면 안 산다고 말했어야 했다. 잔돈이 없으면 돈을 바꿔올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운전을 시작하기 전에 호두과자 품질을 점검했어야 했다. 뒤늦게 알았다면 차를 되돌려야 했다. 각박해 보인다. 치사해 보인다. 냉정해 보인다. 하지만 그랬다면 할아버지는 이제 따뜻한 호두과자를 팔았을 것이다. 잔돈은 늘 준비해 뒀을 것이다. 누군가는 따뜻한 호두과자를 먹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보며 측은해하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기계화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도 커졌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 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 p.21~22 현대사회에서 어디에 가 봤다는 건 공간 개념이 아니다. 거기에서 돈을 써 봤다는 뜻이다. 한 남자가 도산공원 명품 거리에서 에르메스 매장을 찾아 헤매고 있다면 그 남자는 분명 한 번도 에르메스 매장에서 돈을 써 본 적이 없다. 에르메스 매장은 그의 영역이 아니다. 도산공원은 그의 서식지가 아니다. 길을 안다는 건 단지 공간 지리를 안다는 것 이상이다. 청담동 지리를 잘 안다는 건 청담동 번지수를 외우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청담동 이곳저곳에서 돈을 써봤다는 의미다. 저 레스토랑과 이 와인바에서 카드를 긁어댔기 때문에 남자는 길을 안다. 청담동에서 길을 몰라 헤맨다는 건 스스로 이방인이란 걸 드러내는 행위다. 길을 모른다는 건 길만 모른다는 게 아니다. --- p.59 권위주의 시대의 한국 사회는 갈등을 힘으로 해결했다. 강하고 다수인 쪽이 이겼다. 폭력의 시대였다. 민주화 시대의 한국 사회는 갈등을 논리와 설득으로 해결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이성의 시대였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갈등은 이해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갈등의 내면에 감정적 상흔들이 있어서다.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공감 없는 논리는 흉터를 헤집는 차가운 흉기일 뿐이다.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아직도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강남역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공감의 시대다. --- p.78 문제는 중년이다. 중년은 세상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믿어본 적도 있고 믿지 않아본 적도 있기 때문이다. 40대는 진정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40대의 선택이 그 사회의 선택이 되곤 한다. 40대가 불신으로 가득 차 있으면 세상도 불신투성이가 된다. 40대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 세상도 욕망덩어리가 된다. 선택의 기준은 결국 주변 여론이다. 주변 사람들이 세상을 믿으면 40대도 한 번쯤은 다시 세상을 믿어보고 싶어진다. 그 반대면 역시나 별수 없구나 싶다. 엄마 부대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시민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고 싶었다. 세월호가 잊고 싶을까. 세월호를 잊지 못할까. 그렇다면 40대로서 세월호를 잊어도 될까. 잊으면 안 될까. --- p.100 현대인은 외로운 섬과 같다. 행복과 사랑처럼 정서적 보상들은 혼자서는 결코 가질 수 없다. 다른 인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가장 뜻대로 안 되는 게 타인이다. 자칫 타인에게 사랑과 행복을 구걸하게 된다. 타인은 지옥이 된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인간은 행복과 사랑의 대체재로 식욕과 성욕에 집착하게 된다. 이내 결핍을 느끼고 중독돼 버린다. --- p.136 그러니까 중독은, 애처로워해야 할 일이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아니다. 적어도 지옥 같은 현대사회를 40년 넘게 살아온 현대인이 무언가에 중독돼 있지 않다면 그것도 정상은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행복과 사랑을 끊임없이 지연시킨다. 그런데도 행복하거나 사랑이 넘친다고 느낀다면 그것도 일종의 병리 현상일 수 있다. 현대인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중독될 수 있을 뿐이다. --- p.136~137 흔히 중독은 치료의 대상이라고 얘기한다. 관심과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40년을 투쟁과 고독 속에서 살아온 40대 남자한테 앞으로 남은 40년 인생은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할 거라고 말하는 것만큼 새빨간 거짓말도 없다. 남은 40년도 고독하고 적막할 가능성이 더 크다. 오히려 늙어가면서 보상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자신의 중독을 직시하고 함께 살아가는 게 맞다. 어차피 중독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중독을 달래며 살아갈 뿐이다. --- p.138~139 요즘 40대는 몸도 30대다. 잘 관리하면 30대 초반처럼 보일 수도 있다. 옷차림부터 젊어졌다. 예전 40대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양복바지를 입고 만두구두를 신고 다녔다. 넥타이 부대는 곧 40대의 대명사였다. 이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40대가 낯설지 않다. 티셔츠에 노타이 차림으로 배낭 하나를 메고 뉴발란스를 신고 다닌다. 예전 40대보다 지금의 40대가 훨씬 젊게 사는 건 맞다. 그래 봤자다. 40대는 40대지, 절대 20대는 될 수 없다. 20대의 몸매와 20대의 정신과 20대의 취향을 가졌어도 소용없다. 20대가 40대를 40대로만 보기 때문이다. 20대한테 젊은 40대는 젊은 아저씨일 뿐이다. 또래가 아니다. 언뜻 당연한 말 같지만 적잖은 40대들이 착각한다. 젊게 살면 정말 젊게 받아들여주는 줄 안다. 젊게 보이는 것뿐이다. 젊은 게 아니다. 그걸 모르는 40대는 품격을 잃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세상이 생각하는 자신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자기도 모르게 추태를 부리게 된다. 불쌍해진다. --- p.160~161 40대 이후 인생의 성패는 개인한테만 달린 문제도 아니다. 10대의 승리는 개인적 노력에 달린 측면이 크다. 20대의 승리는 패기만으로도 가능하다. 30대의 승리는 재능에 달렸다. 40대 이후의 승리는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일 수 있다. 영화 저널의 쇠퇴는 영화 기자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선배가 연민에 빠지고 또 다른 선배가 싸움닭이 되어 버린 이유다.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조류에 휩쓸릴 때 인간은 무기력을 느끼거나 분노한다. 40대부턴 그런 거대한 조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성실함과 용기와 재능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큰 파도다. --- p.184~185 꿈도 사랑도 사라졌을 때 남자는 정치에 매달린다.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고 싶어서다. 세상을 바꿔서 나를 바꾸고 싶어서다. 스스로 초인이 되려 할 수도 있고 초인의 곁에서 돈과 노력을 들이는 후원자가 될 수도 있다. 정치인들한테는 늘 그런 물질적 후원자들이 있다. 그들이 얻는 건 초인을 키워내는 초인이 됐다는 자긍심이다. 그것도 안 되면 추석날 방구석에 앉아 신문을 읽으며 자식들과 대선 얘기로 밤을 지새운다. 그들은 공감의 언어를 잃었기에 권력의 언어에만 의존한다. --- p.237~238 40대라는 건 그런 나이다. 이런 관심을 마다할 수 있는 40대 남자는 없다. 어린아이처럼 관심을 사랑으로 착각하게 된다. 어린아이처럼 외롭기 때문이다. 이미 적잖은 관계에 실패한 남자한테 관심은 마약과도 같다. 탐닉하게 된다. 40대 부장이 젊은 부하 직원들을 술자리에 불러 앉혀놓고 왕년 운운하며 아재개그를 떠들어대는 풍경이 이래서 빚어진다. 40대 부장은 관심을 착취하고 있다. 40대 부장은 관심이 필요하고 그걸 추출할 권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 p.244~245 지금 무리하지 않으면 나중엔 무리라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언제까지 직장을 다닐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신원 보장이 될 때 대출 창구를 찾아야 문전박대를 안 당한다. 이자라도 계속 갚으려면 벌이가 꾸준한 40대까지가 한계다. 더 늙으면 자신을 위해서든, 아이를 위해서든, 노부모를 위해서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빚을 내서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지금 시도해 보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기회가 없다. 지옥문으로 가는 은행 창구를 찾게 된다. --- p.252~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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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40대가 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흔들리고 불안한 중년들을 위한 현실적 조언20대와 30대에는 자기만의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40대에는 시험 시간이 이미 절반이나 지났고 이제까지 써내려온 정답이 오답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때 그냥 나를 포기하고 싶어진다. 자기만의 스토리는 고사하고 타인의 스토리에 맞춰 살기에만 급급하게 된다. 그렇게 소시민으로서 자기를 합리화한다. 여기서 포기하면 그때부터는 그저 그런 중년 아재가 된다. 아재 개그나 거듭하며 늙게 된다. 『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는 그렇게 마흔앓이로 흔들릴 때마다, 자포자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써내려간 자기 고백이다. _본문 7~8쪽O tvN 〈비밀독서단〉 등에 출연 중인 방송인 신기주가 본업인 남성지 에디터로서의 내공을 십분 발휘해 ‘남자의 불안과 욕망’을 파고들었다. 그중에서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가장 처절하게 체험하는 나이, 40대의 이야기를 다뤘다. 저자는 ‘마흔앓이’라고 불리는 이 과정을 실패의 잔해들 속에서 나를 찾는 행위로 인식한다. 안정적인 직장과 가정이 있지만 청춘에 대한 아쉬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칫 자기 자신을 포기할 수도 있는 바로 그 시점에 필요한 이야기다.40대의 스토리는 이미 많이 쓰였고 잘못 쓰인 곳도 많아서 고쳐 쓰기가 어렵다. 정처 없이 흔들리던 마흔앓이의 끄트머리에서 『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를 정신없이 써내려간 이유다. 40대에 다시 나만의 스토리를 되찾고 싶었다. _본문 9쪽수년째 남성지 편집부에 몸담고 있으면서 정작 ‘남자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를 묻지 못했다는 저자는 이 책을 기회로 삼는다. 다음 스토리볼에서 누적 조회 수 250만을 기록한 연재물이 씨앗 원고가 된다. 저자는 여기에 자신의 스토리도 가감 없이 담기로 한다. 자신의 인생을 고백하는 것만이 남자의 인생을 논할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닫는다. 한 아이의 아빠이자 뜨거운 남자, 냉철한 기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40대 중년, 바로 자신의 ‘마흔앓이’를 마주하는 일이다. 아빠와 남자 사이에서, 본능과 제도 사이에서,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희미하게나마 답을 찾게 된다.40대 아빠는 20대 청년이나 60대 아버지와는 다르다. 남자와 아빠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선 여전히 남성 호르몬이 들끓는다. 스스로 남자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전투에 나서고 싶다. 세상과 맞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싶다. 40대 남자라면 그래야 마땅하다. 동시에 아빠로서 살고 싶다.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보다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는 게 더 소중하다. 둘 다 지킬 수 있으면 더 좋다. 때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_본문 53쪽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는 남자아직, 선택할 수 있다저자는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속 인물들로부터 40대 남자들이 흔히 겪는 삶의 주제들을 이끌어 낸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은 절망으로 세상과 맞선다. 만화 〈슬램덩크〉의 윤대협은 멋지게 질 줄 아는 선배의 표상이 된다. 20대 혹은 30대에 함께했던 대중문화 속 영웅들이라 공감의 폭은 더 크다. 욕망 대신 품격을 지킨 남자의 우아함을 이해하는 순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에서 나의 좌표가 확인된다. 배트맨이 되고 싶었던 소년이 악당 조커를 이해하는 40대 중년이 되었지만, 이 쓴맛 나는 깨달음이 40대의 특권일 수 있다.조커는 하비 덴트 앞에서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다. “계획은 가짜야. 질서도 가짜야. 모두가 조작된 것들뿐이지. 난 무질서를 만들어서 질서가 가짜라는 걸 보여줘. 난 무질서의 대행자야. 무질서는 공평하거든. 모두가 혼란스럽지.” 선거 결과를 보면서 선택의 허무를 느꼈다. 거짓 질서가 진짜 진실을 가렸다. 조커한테 끌리는 40대 아저씨를 발견했다. _본문 106쪽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능하고 비겁한 자신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했지만, 저자가 40대 남자에게 요구하는 다짐은 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전장에서 물러서지 말라는 것이다. 균형을 잃고 흔들릴지언정 끝끝내 경계 위에 서 있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고 희망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마주한 모든 패배와 함께 살아가는 게 40대 남자, 아니 인간의 운명이라고 말한다.중요한 건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올 이즈 로스트〉의 남자처럼 말이다. 늙은 남자는 현명한 게 아니다. 불굴의 의지를 갖게 될 뿐이다. _본문 228∼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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