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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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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Bede 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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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가 보기에 예루살렘 회의는 어느 교회에서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이 일이 지금껏 전개된 투쟁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고, 그 배후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두 개의 문제가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새로운 종교, 즉 진정한 종교를 창시했는가? 혹은, 달리 말해서, 그는 하나님인가 인간인가? 바울의 입장을 따른다면 기독교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그의 입장이 기각되었다면 예수의 가르침은 유대교의 한 종파에 그치고, 고대 신앙의 주류에 파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 p.20
이에 비해 성전은 타는 제물에서 나오는 연기로 자욱했고 여기저기서 겁에 질린 짐승들의 울음소리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으며, 도살된 짐승들의 피가 배출구를 통해 흘러가면서 대단한 악취를 풍겼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은 그 규모만큼이나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한마디로 예루살렘 성전의식은 일종의 산업이었다. 그러니 디아스포라 유대교를 유대교의 전부로 알고 있었던 로마 지식인들의 입장에서는 팔레스타인에 파견된 로마의 관리들이 왜 그토록 유대인들을 혐오했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 p.36 예수의 십자가 사건 후에 일어날 수 있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었다. 예수 운동이 유대교를 흡수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하나의 가능성이라면, 좀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또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유대교가 기독교를 흡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유대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종교였다. 유대교 체제는 전제적인 중앙집권 체제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유대교는 다양한 흐름(적극적인 열광주의자들로부터 소극적인 방관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향)을 용납할 수 있는 관용의 틀을 발전시켜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운동의 역동성은 너무나 크고 엄청나서 유대교 내부에서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다. --- p.73 이방인들이 기독교인들에게 받았던 가장 크게 감동한 것은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상호 간의 사랑과 공동체적인 자선활동이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 기독교인들은 원할 때마다, 그리고 할 수 있을 때마다 얼마간의 동전을 가져왔다. 어느 누구도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모인 자금은 ‘축제나 파티’를 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그들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는 비용으로 사용된다. 아무런 재산도 없고 부모도 없는 고아들과 나이 많은 노예들과 파산한 선원들, 광산이나 섬,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 … 이들은 모두 기독교인이 낸 자금의 수혜자였다.” 기독교인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행했던 자선활동의 전통을 광범위하게 확대시켰다. 그들은 사회복지가 전무했던 로마 제국에서 소규모 복지국가를 운영한 셈이었다. --- p.151 국가가 성직자 계급에 대해 호의를 베풀기 시작하자 성직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성직자 신분은 순식간에 한층 높아졌다. 이에 비례하여 성직자들의 세속적인 욕심도 커져만 갔다. 예를 들면 341년에 발칸 반도의 사르디카에서 개최된 공의회에서는 자신이 현재 소속해 있는 교구보다 더 큰 교구로 옮기려는 주교들의 행위를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아직까지 큰 교구에서 작은 교구로 가려는 주교를 본 일이 없다. 주교들은 탐욕에 불붙어 있으며 야망의 노예가 되고 있다.” --- pp.154-155 베네딕투스 수도원의 사업을 계기로 유럽에서 행해진 산림벌채와 늪지대에 관개시설을 설치하는 일은 중세 전반기를 통틀어 경제적으로 가장 눈여겨볼 만한 성과였다. 어떤 점에서 이 같은 성과는 유럽의 역사를 결정짓는 사건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유럽이 세계적으로 우위를 확보하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도원 운동이 거의 1천 년 동안 유럽 곳곳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본다면 유럽 사회를 형성한 요인들을 말할 때 어느 한 가지만을 독점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메로빙거 왕조 시대에 건립되었던 이 수도원들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유럽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개간사업은 상당히 긴 세월이 필요한 일인데, 항구적으로 존재했던 수도원과 평생 자리를 옮기지 않은 수도사들에게 이러한 일은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능숙한 재능을 발휘하여 유럽 사회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들은 흡사 19세기에 산업가들이 했던 것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 p.281 성물에 대한 인기가 높아질수록 이에 대한 범죄도 함께 뒤따랐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위조품들이었다. … 심지어는 그리스의 수도사들이 일반인들의 시신들을 훔쳐내서 이를 성인들의 뼈로 둔갑시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같이 성물을 모조하는 범죄들이 늘어나자 성물에 교황의 인장을 찍어 진품을 보증해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이 같은 사태는 교황들에게 엄청난 기득권을 안겨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왔다. 교황청도 성 암브로시우스 같은 이의 시신들을 ‘발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 p.305 6세기에 프랑크족과 잉글랜드에 기독교가 전파될 때만 해도 기독교와 기존 관습은 어렵지 않게 융합될 수 있었다. 그러나 9세기에 오면 상황이 달라졌다. 이미 기독교 체계가 굳어져 융통성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즉, 기독교는 삶의 거의 모든 분야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던 것이다. --- p.332 로마 교회와 교황이 수위권을 주장했던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자신들이 성 베드로의 대리자라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주장이 더욱 확대되어 교황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별도로 왕이나 황제들 또한 자신들이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주장했으며, ‘대관식’은 이에 대한 하나의 훌륭한 전거로서의 기능을 했다. --- p.349 7세기부터 돈을 받고 참회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교회는 이 같은 행위들을 금지시켰으며 어떤 형태로든지 참회자에게 죄를 감당케 하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제도를 빠져나갈 방도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방법은 무상으로 참회를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었으며, 이 방법은 교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사랑으로(혹은 두려움이나 희망 때문에) 다른 사람의 참회를 대신 맡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어떤 유력 인사가 7년 동안 금식하며 참회할 것을 선고받았는데 그를 대신하여 840명의 사람들이 3일씩 돌아가며 참회를 해주기도 했다. --- p.412 이단자들은 독방에 가두어야 했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서 종교재판이 행해지면 그 지역에서 운영하는 감옥은 머지않아 이단자들로 넘쳐났다. 위생상태가 불량했던 감옥에 많은 사람들이 넘쳐나면 그만큼 열병과 전염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세속통치자들은 교회의 의지와는 별도로 상당수의 이단자들을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 p.446 루터가 주장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았다. 성경에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행위는 구원받은 존재의 외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성경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루터는 에라스무스와 닮았으나, 위의 주장은 에라스무스에게는 매우 낯선 사상이었다. 여기에서 그 두 사람의 길이 갈라졌다. 에라스무스의 추종자들은 도덕적인 개혁을 믿었고, 루터파는 기독교의 새로운 이론을 믿었다. --- p.487 하지만 실제로 자본주의와 신학은 별다른 관련이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기독교 자체는 자본주의의 걸림돌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이든 칼뱅주의든 상관없이 기독교가 완고하게 자리 잡은 곳에서 자본주의는 자라날 수 없었다. 16-17세기에 일어났던 자본가들의 대이동 또한 특정한 교리에 반대해서라기보다는 교리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통제하려 했던 기독교를 피하기 위해서 이주했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은 에라스무스의 주장, 즉 기독교에서 필요한 것은 신학이 아니라 도덕적인 변화라는 입장을 지지했다. … 자본주의가 특히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은 가톨릭 국가들보다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성직주의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 p.542 독일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어떻게 이처럼 무기력하게 나치에 협력할 수 있었을까? 지금으로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독일의 프로테스탄트들은 단 한 번도 국가에 반기를 든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루터 이후로 그들은 언제나 국가를 위해 헌신해왔고 스스로를 공무원처럼 생각했다. 그들은 영국 국교도들과 달리 국가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과 정부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교리가 없었다. 히틀러는 이 같은 독일 프로테스탄티즘의 독특한 역사 전통의 수혜자인 셈이었다. --- p.7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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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에서 기독교란 무엇인가?
영국의 석학 폴 존슨이 대가의 통찰로 써내려간 2천 년 기독교 역사의 빛과 그림자! 로마 제국 변방, 유대교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던 기독교는 어떻게 세계 종교가 되었는가? 서양 문명의 성립과 역사 발전에 기독교는 어떠한 역할을 담당했는가? 매혹과 거부, 대립과 결탁, 투쟁과 배신으로 점철된 기독교와 세계의 만남을 역사 저술의 백전노장 폴 존슨이 인류 문화사의 맥락에서 다채롭고도 객관적으로 그려냈다.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에서 가져온 신뢰할 만한 정보, 밀도 높은 연구와 압도적인 글쓰기로 출간 이후 30여 년간 기독교인을 넘어 수많은 역사 애호가의 찬사와 사랑을 받은 독보적인 저작! 《모던 타임스》 《창조자들》 《르네상스》 등으로 국내에도 친숙한 영국의 역사가 폴 존슨이 2천 년 기독교의 전체 역사를 특유의 객관적이고도 명석한 필치로 그려낸 책 《기독교의 역사》가 포이에마에서 출간되었다. 지난 2005년 살림출판사에서 '2천 년 동안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세 권으로 분책해 냈던 것을, 같은 번역을 사용해 편집과 교정을 보완하여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는 방대한 자료를 아우르는 20여 년의 연구 끝에 나온 저작으로, 기독교의 역사를 다룬 단권 저작으로서는 가장 냉철하면서도 포괄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책으로 손꼽힌다. 무엇보다도 기독교가 역사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원서가 출간된 지 30년이 지나도록 기독교인을 넘어 역사학도와 고급 인문 독자들에게도 널리 사랑받는 걸작이다. # 기독교는 인류에게 무엇이었나? 인류 문화사의 맥락에서 본 기독교 기존의 기독교사 혹은 교회사 책은 신학자의 저술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것도 특정 종파, 교파의 입장에서 교회 제도나 신학, 교리사의 흐름을 기술하는 내용인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기독교의 역사》는 복잡다단한 기독교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인류 문화사의 맥락에서 접근해 서술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라는 인류 역사의 장면 하나하나에서 기독교가 인류와 어떤 만남을 가졌는지를 추적한다. 저자 자신은 가톨릭 교인이지만, 가톨릭에 편향됨 없이 관점과 내용에서 공정함을 견지하면서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폭넓은 서술의 묘를 보여준다. 때문에 독자는 기독교의 출현에서부터 이단과 이교 틈바구니에서의 투쟁, 그리고 유럽의 주류 종교가 되고 인류 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준 세계 종교로 자리하기까지의 과정 전반을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기독교 없는 인류는 생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가 만들어낸 문화의 기세가 주춤해진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제공했던 역동성으로부터 대학살과 고문, 편협성과 파괴적 교만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역동성이 없었다면 지난 2천여 년의 역사가 훨씬 더 무시무시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기독교가 인류를 안전하거나 행복하게 혹은 위엄 있게 만들어주지는 못했지만, 무엇보다 기독교는 인류에게 ‘희망’을 주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을 문명화하는 동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실질적인 자유를 엿보게 하고 합리적인 존재를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845쪽). # 편견 없이, 역사가의 엄정한 시선으로 기독교를 바라보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이 책의 미덕은 진실만을 추구하려는 저자의 노력이다. 오랜 세월을 비판적 저널리스트로 활약한 인물답게 폴 존슨은 외부의 평가나 검열을 의식하지 않고 기독교의 공과를 자유롭게 서술한다. 이는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역사적 진리 위에 선 종교로서, 기독교인은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다른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기독교의 실패와 단점, 그리고 기독교 제도의 왜곡된 점들을 포함해, 종래의 교회사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을 풍부하게 담을 수 있었다. 결론부의 서술에서와 같이 이 책은 기독교가 지닌 잠재력과 역동성, 그리고 서양 세계의 형성에 끼친 긍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유럽 사회는 본질적으로 기독교가 창조해낸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바로 이처럼 영성과 역동성이 탁월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유럽의 독특한 힘을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는 형이상학적 문제로 씨름하던 사색가나 신비가들,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주었으며, 동시에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종교이자 목표를 향해 달려가도록 사람들을 격려하는 종교이기도 했다. 기독교가 가진 또 하나의 힘은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데 있었다. …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는 … 성장, 생명력, 이해를 추구했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독교가 유럽 사회에 지식과 도덕의 바탕을 제공해주었기에, 유럽은 경제적?기술적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843쪽). # 기독교는 어떻게 세계 종교가 되었는가? 그리고 미래는? 발생 초기,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겨지던 기독교는 어떻게 해서 세계의 종교가 되었을까? 역사가로서 저자는 기독교가 탄생한 그 순간부터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고 분석하면서, 기독교가 유럽 사회의 구석에까지 침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당시 눈부신 성장을 구가하던 지중해 문명의 지식인들은 지역 신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삶의 공포로부터 위로와 보호를 약속할 수 있는 유일신앙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이때 전능한 유일신을 믿으며 내세의 행복한 삶을 약속하는 기독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보편주의적 성격을 띠고 출발했고, 사도 바울은 기독교를 범세계적 구조로 개편하여 모든 민족의 종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으며, 이후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작업을 거쳐 유럽의 정치, 경제, 그리고 삶의 모든 측면에 파고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급속한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그리고 미래의 기독교는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한때 그토록 강력하고 포괄적이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공적 기독교 관념은 기독교를 굳건히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그 생명을 다한 것 같다. 대신 오늘날의 기독교는 사적인 기독교적 지성을 강조하는 에라스무스적 관념과 개별 기독교인이 도덕적 변화를 이루는 능력에 대한 펠라기우스적 강조에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 이와 아울러 새로운 사회들이 기독교 세계에 침투하고 있다. 기독교가 서구화라는 껍질을 벗고 신선한 정체성을 형성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844-845쪽). 이 같은 진단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상당히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의 수용과 발전 과정이 서양과는 사뭇 다른 한국 사회에서조차, 전일적인 기독교 사회를 구성하려는 이념은 퇴조하고, 기독교인 각각의 영적·도덕적 변화와 시민적 책임의 수행이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극복하고자 몸부림치며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기독교계의 움직임이 늘고 있는 이즈음, 기독교인은 물론 기독교가 만들어낸 문명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에게 이 책은 놀라운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추천평] 대가답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엄청나게 풍부한 학식,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는 문체, 이야기를 끌어가는 타고난 힘이 어우러져 지루해질 틈이 없다. _맬컴 머거리지 (뉴 스테이츠맨) 신학보다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사실에 바탕을 둔 재미있고도 도발적인 역사. 최신 연구를 아우르는 설명을 제공하며, 객관적이면서도 건조하지 않다. _로버트 커시(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역작 중의 역작. 기독교의 역사에 관한 지금까지의 그 어떤 시도보다 야심찬 연구인 동시에 가장 급진적이라 할 수 있는 저작! _W. H. C. 프렌드 (뉴욕 리뷰 오브 북스) 2천 년에 이르는 기독교의 영광스런 성취와 갈등을 따뜻한 시선으로 살피면서도 전혀 군더더기가 없다. 특출한 책이다. _마이클 맥컬리 (커먼윌) 단권으로 기독교 역사를 다룬 책 중 가장 탁월한 저작. _리처드 마리우스 (크리스천 센추리) 깜짝 놀랄 만큼 잘 쓴 책! _J. 이녹 파월 (데일리 텔레그래프) 야심차고 무게 있고, 끝내 낙관적이다. _메이요 모스 (타임) 냉철하고 믿을 만한 책. _마틴 E. 마티 (뉴욕타임스 북 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