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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영웅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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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영웅 히딩크
어린이를 위한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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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 어린이들에게 주는 글

개구쟁이의 공놀이
어려서부터 지고는 못 살아
사냥개와 함께 한 극기 훈련
공부보다 축구가 더 좋아
'꿈'의 자전거 페달
스포츠교육대학 시절
축구 코치에서 프로 선수로
비행 청소년 교육과 미국 선수 생활
프로 감독에서 국가대표 감독으로
한국팀과의 첫만남
한국 국가대표 감독이 되다
수치스런 별명 '오대영'
스물세 명의 태극전사들
16강은 시작일 뿐이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가슴 졸이던 승부차기
꿈은 이루어진다

히딩크 사진첩
2002년 한일 월드컴에서 한국 축구팀은 어떻게 싸웠나

저자 소개 1

거스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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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네덜란드 바르세펠트에서 태어났다. 1967년 고향 인근 도시인 두팅헴을 연고로 하는 '데 그라프샤프'팀의 코치로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감독의 제의로 선수로 변신한 그는 이후 PSV 아인트호벤과 데 그라프샤프 등 네덜란드 프로팀과 워싱턴 디플로매츠를 시작으로 미국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1980년대 초 선수 생활을 접고 데 그라프샤프, PSV 아인트호벤과 데 그라프샤프 등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PSV를 유러피언컵(현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명감독 대열에 합류한 이후 스페인의 발렌시아, 레알 마드리드, 레알 베티스의 감독을 역
1946년 네덜란드 바르세펠트에서 태어났다. 1967년 고향 인근 도시인 두팅헴을 연고로 하는 '데 그라프샤프'팀의 코치로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감독의 제의로 선수로 변신한 그는 이후 PSV 아인트호벤과 데 그라프샤프 등 네덜란드 프로팀과 워싱턴 디플로매츠를 시작으로 미국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1980년대 초 선수 생활을 접고 데 그라프샤프, PSV 아인트호벤과 데 그라프샤프 등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PSV를 유러피언컵(현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명감독 대열에 합류한 이후 스페인의 발렌시아, 레알 마드리드, 레알 베티스의 감독을 역임했다. 1995년 네덜란드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히딩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으로 이끌었다. 2001년에는 한국 대표팀을 맡아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루며 전 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2002년 9월 현재 네덜란드 1부 리그 PSV 아인트호벤 감독을 맡고 있다.
그림 : 정민희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어릴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작가는 독학으로 만화를 공부하였고, <만화 세계사>,<만화 한국사>(계몽사),<웅진 애니메이션 세계의 역사>,<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사회평론) 등에 그림을 그렸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96쪽 | 436g | 165*225*20mm
ISBN13
9788973653782

책 속으로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빨간 머리 학생 하나가 내게 느닷없이 칼을 들이댔다. 그 학생은 운동이 끝난 직후 무슨 이유에선지 내게 화를 잔뜩 내더니 잠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칼을 들고 라커룸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이 칼로 당신의 자동차 바퀴에 펑크를 내버리겠어!"
그 학생은 아주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평소 난폭하지도 않았고 사고뭉치는 더욱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긴장했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나는 내성적인 아이들이 한 번 이성을 잃으면 거잡을 수 없는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칼을 든 학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동안 주변에 서 있던 다른 학생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내가 다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만약 그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큰일이 아닐수 없었다. 일단 라커룸에서 그 학생을 나가게 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내 자동차 타이어를 펑크 내려면 얼마든지 내도 좋아!"
내가 말했다. 차는 라커룸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 학생이 거기까지 가는 사이에 화가 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 pp.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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