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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르르
2. 새처럼 3. 달빛가난 4. 초록 5. 풀 6. 푸른 넝쿨 7. 은어 8. 화개 9. 길 위에 있는 동안 행복하다 10. 작은 평화 (...) 발문 - 손을 씻고 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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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도 담 위에도
널어놓고 거둬들이지 않은 멍석 위의 빨간 고추 위로도 달빛이 쏟아져 흥건하지만 아무도 길 위에 나와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부지, 달님은 왜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나요?' '잠이 안 와서 그런 거지' '잠도 안자고 그럼 우린 어디로 가요?' '묻지 말고 그냥 발길 따라만 가면 된다' 공동묘지를 지나면서도 무섭지 않았던 건 아버지의 눌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부지 그림자가 내 그림자 보다 더 커요' '근심이 크면 그림자도 큰 법이지.' 그날 밤 아버지가 지고 오던 궁핍과 달리 마을을 빠져 나오며 나는 조금도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달빛가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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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옷 벗어 걸어놓고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나? 마당에 서 있던 목련나무 허리가 굵어졌고 벽 위에 박았던 못 그대로 있는데 어디로 가신 건지 아버지 소식을 알 길 없다. 환한 햇살이 창호지에 비치던 방 입고 계시던 모시옷의 깔깔한 감촉만 아물거리며 손끝에 남아 있는데 껄껄, 웃음을 터뜨리던 아버지는 그날 밤 누이가 꾼 꿈을 끝으로 나타나지 않으신다. 우리 살던 옛 집에 해 지면 분꽃 피고 허물어진 부뚜막 아래 귀뚜라미 소리 들린다. 물기 빠진 광목을 팽팽하게 맞잡으며 세월을 두드리는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 슬픔도 늙는 건가? 슬픔도 우리처럼 나이를 먹는 건가? 내 모습 속에서 문득 나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우리 살던 옛 집에 저녁이면 불 켜지고 찬바람 불면 자전거 타고 돌아오실 아버지를 기다리며 아랫목에 묻어둔 밥그릇 하나 자르르, 기름기 흐르는 밥알들을 껴안고 있다. ---<우리 살던 옛 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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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그리고 떠남의 아포리즘!
가을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시인이 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스칠 때면 문득 기다려지고 문득 그리워지는 시인이 있다. 바로 김재진 시인이다.
그가 또 한 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신작 시편들에다 독자들의 가슴에 오랜 여운을 남긴 시들을 아우른 이 시집은 그동안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낯선 세계로 끝없이 나아가려는 시인의 굳건한 의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즉 『달빛가난』의 주요 테마는 '가난'과 '여행'이다. 세수를 해도 씻겨지지 않는 가난 데리고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꽃잎처럼 화르르 떨어지고 있다 믿기 시작했지. -「화르르」에서 어느덧 우리는 '가난'이라는 낱말이 생소하게 들린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이 겉으로는 풍요로워졌다. 밥걱정 안 하고 사는 것만도 다행이라는 시대가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토록 질기게 달라붙던, 그토록 무겁게 짓누르던 '궁핍'도 달아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시인은 왜 가난에 대한 생각을 쉽사리 지워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시인은 지난 시대의 가난이 '조금도 가난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역설적인 표현 속의 '가난'은 마음의 가난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 사라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정신적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눌변'이 더욱 생각날 수밖에 없다. 이 시집의 발문을 쓴 송재학 시인은 '그에겐 명상의 냄새가 따라다닌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의 시는 욕망의 냄새가 나지 않고, 담백하다고. 그렇다, 김재진 시인은 봄가을로 히말라야와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 마치 그곳을 '처갓집'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때마다 그는 새로운 시를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여행지는 주로 티베트와 인도. 이미 그는 오래 전부터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진리를 찾아 방랑 중이다. 마음을 여는 수행법 '아봐타(Avatar)'에 입문하기도 한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 사람들의 닫혀진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삶에 지친 이들의 가슴에 환한 불길이 일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누군가를 보듬어줄 수 있는 말 한마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그리운 때다. 이 한 권의 시집이 삶에 지친 당신의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