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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
일본 최초의 시각 장애 변호사 다케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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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글(안경환)_그 얼굴에 햇살을

1장 손끝으로 법률을 배우다
소리를 통해 찾아낸 진실
곤경에 처한 사람이 내는 목소리의 진지한 ‘표정’
손끝으로 법률을 배우다

2장 암흑 속에서 품은 변호사의 꿈
노토 반도에 분 스모 열풍
스모와 눈, 뭐가 더 중요해?
변호사가 될 겁니다!
방황의 시간

3장 시각장애인에게도 변호사의 길을
대학 생활의 시작
법무성의 회신
법무성으로 몰려가다
복지의 도시, 교토

4장 점자 사법시험 제도를 이끌어내다
내 꿈은 장애인 전문 변호사
이상적인 변호사상을 발견하다
학생 부부로 첫발을 내딛다
무거운 문을 열기 위해
법무성이 내세운 세 가지 조건

5장 아홉 번의 도전
오자투성이의 점자 문제지
농부의 손
합격을 향한 머나먼 길

6장 시각장애인 사법연수생
합격 축하금을 받다
서독과 미국으로
사법연수원 월급을 집에 부치다

7장 변호사 배지를 떼버린 날
변호사 배지의 무게
첫 법률 상담
피고인과 신뢰를 다지다
변호사 배지를 떼버린 날
청각장애인 증인 신문

8장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다
거품 성장의 그늘
‘요세바’에 대한 보호행정을 질타하다
방심과 자만

9장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과 맞붙다
오사카 가마가사키 싸움
받아들일 수 없는 화해 권고안
뜻밖의 재회

글쓴이의 말_그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옮긴이의 말_진정으로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는 삶

저자 소개

저자 : 고바야시 데루유키 (小林照辛)
1968년 일본 나가노현 출생. 메이지약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92년, 의학 논픽션 『독사』로 가이코 다케시상 장려상을 수상하며 저술가로 데뷔했다. 1999년에는 『따오기의 유언』으로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역자 : 여영학
1963년 성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했다. 환경운동연합 상근 변호사로 법률가의 길을 시작했다. 새만금 소송과 북한산 관통도로 공사 중지 가처분 소송 등 공익소송을 많이 맡았다. 지금은 법무법인 ‘한결’의 구성원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1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38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2181238

관련 자료

다케시타 요시키 (竹下義樹)

1951년 일본 이시가와현 출생. 중학교 3학년 때 외상성 망막 박리에 의한 실명 판정을 받고 이시가와현립 시각장애인학교에 입학한다. 시각장애인의 사회적 진출이 극히 제한되어 있던 시절, 다케시타는 자원봉사를 나온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변호사의 꿈을 키운다. 교토부립 시각장애인학교에 편입해 공부를 계속하지만 성적이 좀처럼 오르지 않자, 공부에 흥미를 잃고 파친코에 빠져 지내는 등 방황의 시간을 보낸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여 2년 후인 1971년 류코쿠대학 법학부에 합격한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각장애인 다케시타의 꿈을 돕기로 한 평생의 반려이자 조력자 도시코를 만난 것은 대학 점자동호회에서였다. 그러나 다케시타 앞에는 여전히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점자 사법시험의 실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법위원회의 통고를 받은 것. 다케시타는 법무성에 찾아가 항의하고 시각장애인의 현실을 알리는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굴하지 않는 투쟁 끝에 결국 점자 사법시험 제도 도입을 이끌어낸다. 이 과정에서 일본 시민사회의 헌신적인 지원과 연대는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안마사로 일하면서 시험을 준비해야 했던 다케시타에게 사법시험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시간이 부족해 문제를 제대로 읽지도 못했던 첫 시험을 시작으로 번번이 고배를 마시다가 1981년 아홉번째 도전 만에 마침내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장애인이나 노숙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재판을 맡으며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98년 경찰관을 살해한 야쿠자 말단 조직원의 책임을 야쿠자 최고 보스에게 묻는 사건을 맡아 신변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6년여의 법정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냄으로써 일본사회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출판사 리뷰

시력을 잃고 변호사의 꿈을 갖기까지
다케시타 요시키는 1951년, 일본 이시가와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외상성 망막 박리에 의한 실명 판정을 받는다.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절망보다는, 좋아하던 스모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이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고 다케시타는 그때를 회상한다. 다케시타는 이시가와현립 시각장애인학교에 들어가 점자를 익히고 안마와 뜸 기술 등을 배우다가 자원봉사를 나온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변호사의 꿈을 키운다. 시각장애인의 사회적 진출이 극히 제한되어 있던 시절이라, 주변에서는 다케시타의 포부에 놀라면서도 그가 너무 큰 좌절을 경험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럼에도 다케시타는 자신의 꿈을 고집하여 교토부립 시각장애인학교에 편입해 공부를 계속한다. 하지만 이제 겨우 점자를 익힌 다케시타가 점자로 영어와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의욕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적이 좀처럼 오르지 않자, 다케시타는 공부에 흥미를 잃고 자원봉사를 나온 대학생과 연애를 하거나 파친코에 빠져 지내는 등 방황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여 2년 후인 1971년 류코쿠대학 법학부에 합격한다.

평생의 반려이자 조력자, 도시코와의 만남

다케시타는 류코쿠대학 점자동호회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도시코를 만난다. 비장애인이었던 도시코가 앞 못 보는 다케시타를 위해 책과 신문을 읽어주고 그의 가슴속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주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가까워진다. 도시코의 아버지도 장애인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갖고 있어서 다케시타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러나 막상 두 사람이 결혼할 의사를 밝히자 도시코의 아버지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도시코는 집을 뛰쳐나오고 아직 학생이었던 두 사람은 다케시타가 살던 작은 시영주택에서 무작정 동거를 시작한다. 다케시타가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여 합격하기까지 십 년 동안, 도시코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다케시타의 옆자리를 지키며 다케시타의 꿈을 믿어주었다. 그리고 다케시타가 변호사가 된 후에도 다케시타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다케시타의 평생의 반려이자 조력자가 된다.

사법시험 제도 도입을 이끌어낸 시민사회의 헌신적인 지원과 연대

류코쿠대학 법학부에 합격한 후, 다케시타는 이제 조금만 노력하면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난관이 있었다. 점자 사법시험의 실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법위원회의 통고를 받은 것. 다케시타는 법무성에 찾아가 항의하거나 시각장애인의 현실을 알리는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국회예산심의회에 출석해 시각장애인의 삶에 대해 증언을 하는 등 굴하지 않는 투쟁 끝에 결국 점자 사법시험 제도 도입을 이끌어낸다. 이 과정에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일본 시민사회의 헌신적인 지원과 연대는 큰 힘이 되었다.

쉰한 권의 점자 육법전서, 천 개의 녹음테이프……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안마사로 일하면서 시험을 준비해야 했던 다케시타에게 사법시험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처음 치른 시험에서는 문제를 끝까지 읽지도 못했다. 시험 시간이 일반 수험생들과 동일하게 주어진데다가 점자 시험 문제에 오탈자가 너무 많아 여러 모로 다케시타에게 불리한 시험이기도 했지만, 다케시타의 실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다케시타는 시험 조건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법무성과 교섭을 계속하는 한편, 더욱더 공부에 몰입했다. 많은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케시타를 위해 법률 책을 손수 녹음해 보내주었고, 다케시타와 마찬가지로 사법시험을 준비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교토대학교 학생들이 다케시타의 개인교사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시험 문제를 손끝으로 읽어내려가야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점자는 ‘히라가나’만 표현할 수 있어서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맥을 통해 알맞은 한자를 머릿속에 떠올려봐야 한다.(156쪽)

문제지는 30문항씩 클립으로 묶여 있었는데 답을 쓰기 위해 클립을 빼고 나니 문제지는 100장이 넘었다. 문제지가 헝클어져 앞에 있는 문제를 다시 볼 수도 없었다.(159~160쪽)

다케시타는 교토대학 재학생들과 졸업생들 10여 명이 다음 해의 사법시험을 대비해 꾸린 공부 모임에 들어갔다. 모임은 교토대학에서 일주일에 두 번,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이어졌다. 저녁 5시부터 마사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다케시타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세미나 도중에 자리를 떠야 할 때도 많았다. ……민법 조항을 주제로 공부를 할 때, 앞이 보이는 사람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법전을 펴서 조문을 확인할 수 있지만 다케시타한테는 누군가가 ?조문을 읽어주는 수고를 해야 했다. 또 판례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질 때면 모두들 돌아가면서 의견을 말하는데 다케시타 차례에서 흐름이 끊어지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다케시타는 그저 미안하기만 했다.(177~178쪽)

탈락을 거듭하면서 슬며시 시험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빚은 늘어갔고, 점자 사법시험 제도를 이끌어내기까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압박감으로 변해갔다. 그러한 어려움을 딛고 아홉번째로 치른 사법시험에서 다케시타는 드디어 합격을 거머쥔다.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권 변호사가 되다

다케시타의 인생에서 변호사가 된 것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했다. 변호사가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던 다케시타는 이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돕기로 마음먹고, 장애인이나 노숙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재판을 맡으며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변호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빈곤층 출신 절도범의 국선변호를 맡았다.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피고인의 마음을 열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씩 구치소를 찾아가며 노력을 다한 끝에, 다케시타는 집행유예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15년이나 지속되었던 나가이 소송도 중요한 재판으로 손꼽힌다. 중증 청각장애인이었던 나가이는 아동부양수당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해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다가, 여러 해가 지난 후 소급지급 소송을 제기한다. 청각장애인을 증인으로 세워 그 증언 내용을 다시 수화통역사가 다케시타와 판사들에게 전달하는 유례없는 재판 과정을 거친 이 소송에서, 다케시타는 1심에서는 승소하지만 2심과 최고심에서는 패소한다. 그러나 나가이 소송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행정기관이 사회복지 관련 제도를 사회복지 대상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는 의무를 강화하는 등 복지행정 전반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1990년에는 ‘인간 재판’이라고도 불리는 생활보호 사건을 맡았다. 일정한 거주지 없이 (입원치료가 아닌)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생활급여 대상에서 제외된 야나기소노의 재판이 그것이다. 거품경제가 끝나갈 무렵, 실업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일본 정부는 그동안 실시해온 복지정책을 대폭적으로 축소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심사청구가 진행 중이던 1992년 야나기소노는 세상을 떠났지만 지원단체가 소송을 승계해 결국 3년에 걸친 투쟁은 승리를 거뒀다.

야나기소노 소송으로 사회복지 소송에서 명성을 얻게 된 다케시타는 1996년에 1994년부터 진행 중이던 하야시 소송에도 참여한다. 노숙 생활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인 하야시는 사고로 다리를 다친 후 사회복지사무소에 생활보호 신청을 냈지만, 복지사무소 측은 병원의 ‘취로 가능’ 진단을 근거로 생활주거부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첨예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소송에서 다케시타 측은 1심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2심에서는 패소를 한다. 상소 진행 중 하야시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최고재판소는 생활보호 수급권은 상속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소송을 종결시킨다. 실패로 끝났지만 하야시 재판은 일본 사회복지 제도의 문제점을 알린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1998년에는 경찰관을 살해한 야쿠자 말단 조직원의 책임을 3만 5천 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야쿠자(야마구치파) 최고 보스에게 묻는 사건을 맡아 신변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6년여의 법정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냄으로써 일본사회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는 삶

2002년 다케시타는 히말라야 아일랜드피크(6,189미터) 등정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5년에는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초오유(8,201미터)에 도전했다. 거친 빙하와 건강 문제 때문에 정상을 150미터 앞두고 등정을 포기하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다케시타는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남들이 평범하게 스쳐가는 순간들을 다케시타는 끊임없는 극복의 시간으로 살아왔던 게 아닐까. 다른 이들과 같은 자리에 서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짐작하기 힘든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래서 다케시타에게 승리라는 것은 늘 유예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케시타의 이야기는 일견 거칠 것 없는 성공의 연대기처럼 비칠 수도 있지만, 늘 자신감 넘치던 다케시타가 주춤하는 순간마다 그가 남몰래 흐느꼈을 숱한 밤의 흔적들이 엿보인다. 그것은 한국의 첫 사법고시 합격자 최영 씨가 헤쳐온, 그리고 헤쳐나가야 할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다케시타의 삶에서 참으로 빛나는 순간은 시험에 합격하고 배지를 달고 승소 판결을 얻어내는 그런 때가 아니다. 여러 대학의 학생들 수십 명이 ‘시각장애인에게도 변호사의 길을’ 열기 위해 밤새워 토론하고 등사판을 긁고 윤전기를 돌리고 법무성으로 몰려가던 그 뜨거운 공감과 연대의 장면, 풋내기 변호사가 된 다케시타가 평생 가난 속에 살아온 절도범의 국선변호를 맡아 함께 눈시울을 붉히던 모습, 거품경제의 그늘 아래에서 신음하던 노숙노동자의 거친 손을 어루만지며 지루한 법정투쟁을 묵묵히 이어가던 시간. 그런 장면과 시간 속에서 다케시타는 진정으로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는 삶을 살았던 게 아닐까.--여영학(‘옮긴이의 글’에서)

추천평

1981년, 일본 사법시험에서 사상 최초로 시각장애인이 합격했다. 오랜 시일에 걸친 준비 과정이 있었다. 개인적 차원의 힘든 수험 준비 과정뿐만 아니라, 선례가 없는 제도의 정착을 위한 체계적이고도 광범위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로부터 27년, 우리 한국에서도 ‘최초’가 탄생했다. 일본 최초의 장애인 변호사 다케시타의 신화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 양념은 가히 무모한 가출로 이어진 결혼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그 무모한 청춘표류의 주인공은 몇십 년 후에 안정된 법률사무소의 공동 경영자로 정주했다. 장애인, 홈리스 등 약자의 후견인이 되고, 어둠의 세계, 야쿠자 조직을 상대로 ‘사용자 책임’을 추궁하는 법리를 개발하는 등, 사명감에 찬 전문가로서의 성공은 실로 경탄을 주문한다. 잃어버린 시각 대신 청각, 촉각, 후각, 미각(술)을 골고루 연마한 주인공은 그야말로 인간의 몸이 총체적인 유기체임을 입증한다. 수시로 미술관을 나들이하면서 멀리서 무지개 타고 오는 그 옛날 기억 속의 명화를 즐긴다. 그런가 하면 히말라야 등반에 나서 해발 8천 미터 인근까지 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갖가지 역경을 극복한 한 인간의 성공담이라는 진부한 신화와 통속의 차원을 넘어선 장중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ㆍ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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