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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클린느 뒤 프레
예술보다 긴 삶 개정판
마티 20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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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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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Part 1
1장 ㅣ 2장 ㅣ 3장 ㅣ 4장 ㅣ 5장 ㅣ 6장

Part 2
7장 ㅣ 8장 ㅣ 9장 ㅣ 10장 ㅣ 11장 ㅣ 12장 ㅣ 13장 ㅣ 14장 ㅣ 15장 ㅣ 16장 ㅣ 17장 ㅣ 18장 ㅣ 19장 ㅣ 20장

Part 3
21장 ㅣ 22장 ㅣ 23장 ㅣ 24장 ㅣ 25장 ㅣ 26장 ㅣ 27장

음반 녹음 연보
옮기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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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캐럴 이스턴 (Carol Easton)
샘 골드윈의 평전을 비롯해 두 권의 전기를 집필했다. 자클린느 뒤 프레의 말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은이는 개인적인 지식과 기억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회상을 더해 이 글을 썼다. 그 결과 아주 놀랍고도 가슴 저린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그녀는 "궁극적으로 온전히 다 꿰뚫기 힘든 복잡한 한 인물의 여러 측면들을 조명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지만 그 이상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한 인물의 초상화를 선사한다.
역자 : 윤미경
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중국황제』를 공역했으며 『로마황제』『혁명을 팝니다』『로버트 카파 평전』등을 번역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한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71쪽 | 498g | 153*224*30mm
ISBN13
9788992053242

출판사 리뷰

신동의 조건, 형제들, 친구들 사이의 외톨이로
저자는 우선 신동이라 불리는 아이들과 그 가족이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 그리고 이 일들이 신동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주목한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신동은 소외와 고립감을 경험한다. 물론 이 경험은 신동의 형제들 역시 똑같이 느끼게 마련이다. 자클린느 뒤 프레만큼이나 뛰어났던 그녀의 언니 힐러리의 음악적 재능은 자클린느에게 집중된 관심과 교육 아래에서 잊혀져야만 했다.

(언니와의 이 관계는 평생 회복되지 못했고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영화 「힐러리와 재키」에서는 힐러리가 더 재능이 풍부한 아이였고, 자클린느는 언니를 끊임없이 질투하는 독선적인 심술쟁이로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 개봉 후 로스트로포비치를 포함한 그녀를 익히 아는 사람들이 이 영화에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어머니 역시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에 가급적 데뷔 무대를 늦추고 정규 교육에 충실하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신동이 신동인 까닭은 일상적인 생활의 영역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자클린느는 기본적인 산수 이외의 수학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출신을 표시하는 이름(프랑스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를 배우는 데에도 능숙치 못했다. 그녀의 음반을 들어본 이라면 쉽게 알 수 있듯이 뒤 프레의 연주는 본능적인 기운이 넘쳐난다. 그만큼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음악을 익혔기에 그녀는 놀랍게도 악보를 보는 데에도 서툴렀다.

음악 신동은 역설적이게도 음악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아이의 다른 이름이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아이가 또 다른 신동이 되길 바라며 신동 출신 연주자의 공연장을 찾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

영국의 장미와 이스라엘의 선인장
그녀의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은 뒤 프레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다. 아르헨티나 출신 유대인인 바레보임은 뒤 프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에고의 소유자였고 본능적이고 즉각적이라기보다는 분석적이고 객관적이었다. 말 그대로 ‘영국의 장미와 이스라엘의 선인장’의 만남이었다. 물론 이 시기에 뒤 프레는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지만, 그 거리만큼 자신이 익숙했던 것과 멀어져야 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하기 직전에 감행한 유대교 개종으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던 가족과의 거리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서구 사회에서 유대교 개종은 “성전환 수술보다 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훗날 병에 걸려 누워 있는 뒤 프레에게 가족을 비롯해 수많은 친구들이 공공연하게 “병에 걸린 것이 유대교로 개종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뒤 프레는 자신의 음악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바렌보임에게 맞추어야 했다. 음악적 재능을 계발하는 데 누구보다 열성이었던 어머니와 소원해지고 오히려 시어머니와 친해지기 시작한 때도 이 무렵이었는데, 어머니와의 관계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호전되지 않았다. (후에 그녀의 가족은 돈을 주지 않으면 방문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를 짐처럼 여겼다고 전한다.)

뒤 프레는 바렌보임이 이끄는 일군의 엘리트 음악가 무리(이작 펄만, 핀커스 주커만, 주빈 메타, 아이작 스턴, 피셔-디스카우 등)에서 홍일점의 역할을 자처했고, 이미 그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연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로부터 진심어린 인정을 받고자 노력했다.

징후가 산발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다발성경화증은 뒤 프레가 최고의 찬사를 받던 때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참기 힘든 피로감과 집중력 저하는 곧장 연주의 질로 나타났고, 뒤 프레와 바렌보임은 원인을 육체적 결함이 아니라 정신적 결함에서 찾았다. 다시 말해, ‘게으름 또는 나태함’이라 여겼던 것이다. 뒤 프레는 이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프로이트학파 계열의 정신분석의의 상담을 받는다. 이 정신분석의들이야말로 뒤 프레가 꾸미거나 감추지 않고 내면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대화 상대자였다.

한 발짝도 발을 뗄 수 없거나 아무 이유 없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음에도 바렌보임은 언제나 그녀에게 “좀더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그녀 또한 자괴감에 시달렸다.

2년 후, 병의 원인이 다발성경화증, 즉 물리적이 질병이라는 것을 진단받자마자 뒤 프레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병리적 원인을 찾았다는 데 즐거워하며 온갖 부류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난 괜찮아, 내가 미친 게 아니래….” 이 일화는 지독한 아이러니다.

“삶을 어떻게 견디지요?”
뒤 프레의 이야기가 영웅담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가로 활동했던 시기보다 더 길었던 침대에서 보낸 시기가 전형적인 투병, 말 그대로 병과 싸우는 이야기이어야 한다. 하지만 뒤 프레는 다발성경화증과의 싸움에 전념할 수 없었다. 여전히 자신의 심리, 고립감, 무력감과의 싸움에 전력을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다. 다발성경화증을 앓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 연설을 하기도 했지만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이따금씩 첼로 레슨을 했지만 자주 찾아오지 않는 가족과 남편을 기다리는 것 말고 뒤 프레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신분석 상담을 받는 것뿐이었다. 집안일을 돕기 위해 방문한 남자와 관계를 가질 만큼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이 여전히 여성임을,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끊임없이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면서도 그녀 역시 주체하기 힘든 욕망을 가진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 욕망은 매순간 파고드는 음악과 점점 멀어지는 “사랑하는 인간들”로 인한 상실감으로 더욱 주체할 수 없었다. 뒤 프레는 여러 겹의 소외와 고립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15년의 삶을 보냈다.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엘가와 드보르자크, 하이든의 협주곡과 베토벤, 브람스의 소나타와 함께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 이전에 삶이, 단지 비극적이라고 하기에는 복잡한 삶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도 흥미롭고 유익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예술보다 긴 삶을 산 자클린느 뒤 프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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