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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프롤로그 나의 작은 영웅 어릴 적부터 성실했던 아이 ‘천하무적’ 존 베이커 “저 프리마 돈나가 나의 아들이에요” 죽음에 관한 경주 해켓 코치를 위해서 달리다 내 생애 최고의 시합 에스펜 초등학교에 부임하다 마지막 경기의 스톱워치가 눌러지다 벼랑 끝에서 삶을 만나다 “최선을 다한 사람은 1등을 한 사람과 똑같다" ‘부지런한 새’ 보충반 낙오자는 없다 육상팀 ‘듀크시의 질주자들’ 나의 사랑스런 ‘작은 잔디깎기’들 존 할랜드 코치 토스트와 토스터 릴레이 세계 신기록을 세우다 엄마표 유기농 당근 주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청년, 존 베이커 너희가 모두 챔피언이다 최고로 멋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존의 아이들 “코치 베이커를 위하여!” 존 베이커 초등학교로 학교명을 바꾸다 아이들 인생에 영향을 준 최고의 사람 어머니의 이름으로 조용한 후원자, 베타 머서 교장 ‘듀크시의 질주자들’의 해체와 비운의 선수 에필로그 책을 쓰고나서 존 베이커 약력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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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분을 만끽하듯 거친 사막 언덕을 향해 힘차게 내달렸다. 200미터 정도 뛰었을까. 갑자기 복부와 가슴에 예리한 것에 찔린 듯한 통증이 왔다. 그는 배를 움켜쥐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몸속에서 커다란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어서 무릎과 팔꿈치 얼굴에 상처를 입은 것일까? 바닥에 엎드린 채 생각했다. 들짐승으로 착각한 사냥꾼의 총에 맞은 게 아닐까? 통증은 너무나 날카롭고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잠시후, 정신을 차리고 차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다시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했다. “오. 세상에. 이런 통증이….” 존은 다시 쓰러졌다.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핏자국은 없다. 다행히 총에 맞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통증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의 눈앞에는 스톱워치가 떨어져 있었다. 스톱워치의 바늘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이대로 엎드려 고통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p.71 짧고 왼쪽 손도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장애를 갖고 있었다. 그는 하루 세 번 있는 쉬는 시간을 혼자 벽에 공을 던지며 보내곤 했다. 존은 이전부터 그애를 위한 일을 찾았고 장비 정리하는 일을 함께 했다. 존은 빌리의 어깨를 잡고 아이들을 향해 돌려 세웠다. “자. 빌리 너는 앞으로 ‘공식 장비 관리자(official equipment manager)’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너에게 ‘최선을 다한 사람’ 리본을 수여할 것이다.” 베이커 코치는 빌리에게 팀 스태프 옷을 입히고 ‘최선을 다한 사람’이라고 쓰인 리본을 달아 주었다. “와―.” 아이들은 빌리가 이전부터 열심히 장비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열렬히 환호했다. “너희들이 운동장에서 맘껏 달릴 수 있으려면 어떡해야 하지? 만일 너희들이 달리는데 잔디가 파여 있다든가 하면 너희들은 발목을 다치게 되겠지?” “우~~.” 아이들은 아파하는 시늉을 했다. 아이들은 이미 존과 함께 동화되어 있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매일 아침마다 우리 운동장 정리를 해주는 친구가 있지?” “제임스요!” 아이들이 다 같이 소리쳤다. “그래 제임스 나오너라! 우리 에스펜의 ‘운동장 정리 최고 책임자’다.” 제임스는 머뭇거리며 나왔다. 존은 스태프 옷을 입혀주며 “제임스, 너는 이제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이제 우리 육상팀을 위해 운동장을 정리해 줘야 한다. 아이들이 걱정 없이 달릴 수 있도록.”하며 격려했다. “네 알겠습니다. 코치 베이커!” 제임스가 군인처럼 대답하자 아이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자, 다음은 바비, 너다. 나오너라.” 바비는 휠체어를 탄 채 존 앞에 와서 아이들을 향해 휠체어를 돌려세웠다. 바비는 다리에 골결핵이라는 질환이 있어서 걸을 수가 없었다. 바비는 체육시간을 선택과목으로 신청했지만, 항상 운동장 밖에서 지켜볼 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존은 바비의 겉옷을 벗기고, 팀 셔츠를 입혔다. 셔츠 등에는 ‘호루라기 부는 책임자(Chief whistle blower)’라고 적혀 있었다. “바비는 우리의 공식 출발 신호원이다. 바비, 호루라기를 한번 불어봐라.” 휘리리릭~ 바비는 힘껏 호루라기를 불었다. “자, 이 소리를 들으면 너희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하며 존은 달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달려요!” 아이들은 박수와 함께 환호했다. 그런 식으로 ‘시간 기록 담당’ ‘장비 관리자’ 등 갖가지 스태프가 탄생했다. 그동안 체육시간에 잘 참여하지 못했거나 따돌림을 당하거나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각자 능력에 맞춰서 직함을 부여했다. “자. 이제 우리 모두가 정식 팀이 되었지? 그런데 팀이면 선수들이 있어야 하잖아? 그건 바로… 너희들 모두란다.”---- pp.94~95 “자, 오늘이 에스펜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이제 다음주부터 ‘듀크시의 질주자들’ 팀 코치를 할 것이다. 너희들 이것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나는 너희들을 정말로 정말로 사랑한단다. 우리 학교는 황량한 사막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 시의 그냥 보통의 초등학교다. 너희 앞에 있는 나도 그냥 평범한 학교의 보통 체육 선생님일 뿐이야.” 존 베이커는 아이들을 찬찬히 둘러본 뒤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존은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고 아이들 하나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챔피언이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챔피언이다.”--- pp.179~180 언제부터인가 에스펜 초등학교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를 존 베이커 초등학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 몇 명이었지만, 점점 많은 학생들이 부르게 되었고, 주민들도 그렇게 불렀다. 학교의 이름을 바꾸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마치 산불처럼 빨리 퍼졌다. 에스펜 학교는 이 일을 앨버커키 학교위원회에 의뢰하였고, 위원회는 학부모 투표를 하도록 제안했다. 1971년 이른봄, 520명의 학부모 전원이 투표에 참가했다. 결과는 찬성 520표, 반대 0표. 이제 에스펜 초등학교는 공식적으로 존 베이커 초등학교가 되었다. 아이들은 생전의 그가 늘 부르듯이 진짜로‘존의 아이들’이 된 것이다. --- pp.21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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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선생님에게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은 행복한 아이들의 이야기
존 베이커(John Baker, 1944~1970)는 1마일과 크로스컨트리 경기의 유망주로서, 1972년 뮌헨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던 중, 고환암으로 26세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청년이다. 이 이야기는 한 아름다운 청년이 어떻게 자신의 생(生)에 최선을 다했고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헌신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존 베이커는 육상선수로서는 불리한 체격 조건을 가진 선수였다. 그러나 첫경기에서 예상을 깨고 우승한 뒤, 뉴멕시코 주의 스타 선수이자 올림픽 유망주로 승승장구했다. 뉴멕시코 주립대학을 졸업한 그는 대학의 코치 자리를 마다하고 에스펜 초등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했다. 에스펜 초등학교에서 존 베이커는 아이들에게“우리가 우리를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는 챔피언이다. 우리 모두가 챔피언이다.”라며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문젯거리가 생기면 언제나 코치 베이커에게 달려가 의논했다. 25세가 되던 해, 베이커는 사타구니에서 심한 통증을 느껴 잠을 깨었다. 고환암이 그의 몸속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올림픽에 참가할 수도, 달리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교사 계약도 만기가 되었다. 존 베이커는 앨버커키 동쪽의 샌디아 산 벼랑 끝에 차를 세우고, 낭떠러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아이들이 떠올랐다.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는 오랫동안 운전대에 엎드려 울고 말았다. 잠시 후 그는 더 이상 두렵거나 괴롭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평온한 마음만이 있었다. “내가 생을 다하는 날까지, 나의 아이들에게 헌신하겠다.” 에스펜 학교와 재계약을 하고 그는 교육 프로그램에 새로운 것을 추가했다. 운동 능력이 뒤처지는 아이들을 스포츠 활동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경기장 밖에서만 있어야 했던 그들은 이제 ‘트랙 담당 부코치’‘공식 장비관리자’‘출발신호원’같은 스태프가 되었다. 그애들은 만성 기관지염으로 뛰지 못하거나, 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아이들이었다. 학부모들은 그에게 수많은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내 아들은 아침에 깨워 학교 보내는 게 너무 어려워 ‘아침괴물’이라고 불릴 정도였는데, 지금은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입니다. 그는 ‘운동장 정리 최고책임자’입니다.” “우리 아이가 에스펜 학교에 슈퍼맨이 있다는 주장을 나는 믿지 않았는데, 학생들과 함께 있는 코치 베이커를 봤을 때 비로소 우리 아이가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학교에 있을 때 우리 손녀는 너무나 철이 없었습니다. 에스펜으로 전학을 온 뒤 베이커 코치는 그애에게 최선을 다했다며 A를 주었습니다. 우리 손녀 같은 소심한 아이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이 청년에게 신의 축복을….” 이미 종양이 그의 목과 뇌까지 퍼져 있었지만 그는 진통제를 거부했다. 맑은 정신으로 아이들을 응대하기 위해서였다. 1970년 초반, 베이커는 앨버커키 소재 소녀 육상팀 ‘듀크시의 질주자들’ 코치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에스펜 학생들에게 한 것처럼 헌신적으로 육상팀을 지도했으며 소녀들은 열정을 가지고 그를 맞이했다. 하루는 베이커가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자 이 박스에는 두 개의 상이 있는데, 하나의 상은 오늘 연습에서 가장 잘한 선수에게 줄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선수에게 주겠다.” 황금색 트로피는 베이커 자신이 경기에서 획득한 것으로,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아이들의 이름을 새겨넣은 것이었다. ‘듀크시의 질주자들’은 뉴멕시코 주는 물론 주변 주의 기록을 깼고, 베이커는 자신있게 예언했다. “질주자들, 너희들은 AAU(미국아마추어연합) 육상대회 결승에 진출할 것이다.” 육상팀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베이커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그의 예언대로 ‘듀크시의 질주자들’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리는 전국육상대회 결승에 출전하게 되었지만, 그는 그토록 소망하던 대회를 이틀 앞둔 추수감사절 날 눈을 감았다. 미국 아마추어육상대회 결승에서 ‘듀크시의 질주자들’이 우승을 차지했다. 작은 도시의 창단 2년차 무명팀이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다. 소녀들은 트로피를 치켜들며 이틀 전 죽은 자신들의 코치의 이름을 외쳤다. “코치 베이커를 위하여!” 언제부터인가 에스펜 초등학교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를 존 베이커 초등학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 몇 명이었지만, 점점 많은 학생들이 부르게 되었고, 주민들도 그렇게 불렀다. 학교의 이름을 바꾸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산불처럼 퍼져나갔다. 에스펜 학교는 이 일을 앨버커키 학교위원회에 의뢰하였고, 위원회는 학부모 투표를 하도록 제안했다. 1971년 이른봄, 520명의 학부모 전원이 투표에 참가했다. 결과는 찬성 520표, 반대 0표. 이제 에스펜 초등학교는 존 베이커 초등학교가 되었다. 그는 짧은 기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고 코치했지만, 누구보다도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거기에 이전보다 조금만 더 시도하라. 네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이미 시작했다면 결승점에 도달하기 전에는 절대로 주저앉지 말라.” 지금도 존 베이커 초등학교에는 훌륭하고 자신의 삶에 용감했던 한 젊은 선생님의 정신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암으로 숨진 한 운동선수의 얘기가 아니다. 최고의 선생님이자 코치였던 한 청년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은 행복한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뉴멕시코 주립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있던 중, 도서관에서 두 박스 분량의 자료를 찾아내어 이 책을 썼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읽으면서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며, “이 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조그만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