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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_ 섬 2부_ 타관살이 3부_ 숨비소리 에필로그 해설|황광수_ 물질적 근원에 밀착된 삶의 언어 작가의 말|내 안의 당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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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경을 치고 들어올 듯 어린 고기 떼들이 내 머리 위를 휙휙 지나갔다. 물안경 없이 맨 눈으로 재미 삼아 미역 오리며 바위에 간당간당 붙어 있는 소라를 주을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그래서 어른들은 물질을 시삐(쉽게) 볼 일이 아니라고 했던가. 무슨 일이든 그랬지만 마음먹고 덤벼들어도 ‘일’이라는 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나는 테왁에 몸을 의지해 가쁜 숨을 뿜어내며 한동안 출렁이는 바다에 떠 있었다. 여기저기 퍼져서 자맥질을 치며 작업하는 무리들이 내뿜는 날숨소리가 가파르게 들렸다. 해녀들은 홀로 떨어져 물질을 하지 않았다. 해물에 욕심을 내고 정신이 팔려 혼자 멀리 떨어져 작업을 하다가는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물 위로 떠오르며 내뿜는 날숨소리는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고 내가 작업하는 곳을 알리는 신호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작업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맥없이 가쁜 숨소리만 짧게 내뱉을 뿐이었다. 깊은 바다에 들어가 작업을 하는 상군 해녀일수록 그 숨소리는 길고 가늘게 치솟았다. 흡사 풀피리를 불어대는 듯, 폐부 깊은 곳에서 떨려나와 차츰 가늘게 잦아드는 날숨소리는 그만큼 숨을 오래 물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 pp.47~48 날이 선 사내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등골에 와 박혔다. 시어머니는 당신의 이름자 석 자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그들은 더듬거리며 내가 불러주는 대로 내 이름자와 시어머니의 이름자를 받아 적고 지장을 찍게 했다. 날인을 받은 사내들은 그날 아무런 해코지 없이 떠났다. “무슨 일이라게. 나가 멩이 열 개라도 모질라켜.” 사내들이 가고 나자 시어머니가 겁먹은 얼굴을 풀지 못한 채 말했다. 그 일은 우리 집뿐만이 아니라 이웃 삼동네가 다 당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테니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세상물정 모르는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이쪽저쪽으로 몸을 사리면서 쥐 울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 pp.99~100 “아이구 엄마요, 병원 갈라꼬 나왔는교?”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뺀 연희엄마가 더디게 걸어오는 나를 보고 소리를 지르더니 버스 앞문까지 쫓아 나와 허둥대는 내 손을 잡아 안으로 끌어올린다. “일보레 나감시냐?” 연희엄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숨을 고르며 묻는다. 가슴에서 따갑게 올라오는 피리 소리 같은 날숨이 쉬 가라앉질 않는다. “버스 타고 나갈 일이 있으만 연희아버지 새북에 갔을 때 이르지 그랬는교. 다리도 올찮은 양반이 어짤라꼬 고집은 피워쌌는지. 이럴 때 자석 부려 먹지 언제 쓸라꼬요.” 내 말에 대답은 잘라먹고 연희엄마는 나를 어린애에게 하듯 나를 나무란다. 자식이라는 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는 세월이 무참하게도 아직도 가슴이 설컹거린다. 쉴 새 없이 깜빡이는 의안은 아예 초점이 없지만, 항시 어긋나 있는 듯 희뜩한 그 눈을 나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평생을 저 눈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하고, 인공 눈물을 넣어 주어야 하고, 반쪽밖엔 보지 못하고 살면서도 누가 뭐래도 연희엄마는 내 움딸 노릇을 했다. --- pp.313~314 이 글을 쓰기 두 해 전, 처음으로 제주 4ㆍ3항쟁 기념식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한림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 옆자리 앉은 할머니는 자꾸만 내게 말을 붙였다. 나는 할머니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건 내 어머니, 아버지가 평생을 버리지 못한 말이었고, 숨결이었다. 그 말이 따뜻해서 처음 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낯선 길을 물었다. 제주도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일 뿐 내게는 생면부지의 땅이었다. 어머니가 살아서는 다시 딛고 싶지 않다던 그 섬에서 나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역사가 날것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단 내 육친만이 아닌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 거친 바람 속에서 웅웅거리는 그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어머니가 잊고자 한 그들 역시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가 감추어 버린 덧버선 한 짝을 찾는 마음으로 묻어 두었던 원고를 꺼냈다. 퇴고를 하는 내내 카세트테이프에서 풀려나오던 어머니의 어둡고 칙칙한 목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다정다감하진 않았지만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 당신의 생을 사랑했다. 고통스런 시간을 살아내면서도 가슴 깊이 묻어 둔 그리움을 한 톨도 버리지 않은 여인이었다. 아픔 없이는 사랑할 수 없음을 어머니는 내게 가르쳐 주었다. 순간순간 삶을 사로잡았던 격정과 고통이 들끓지 않았다면 내 안에 숨 쉬고 있는 당신을 다시 만나지 못했으리라. ---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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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단편소설 「바퀴의 집」으로 전태일 문학상을 받고 2008년에 소설 「터틀넥 스웨터」로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홍명진의 첫 장편소설 『숨비소리』가 나왔다. 제주도 특유의 입말을 고스란히 살려 소설의 재미를 더한 『숨비소리』는 제주에서 태어나 해녀가 된 뒤 제주 4?3항쟁이 안겨 준 끔찍한 악몽 때문에 타관살이를 해야 했던 한 여인의 일생을 담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제주 4?3항쟁을 거쳐 한국전쟁과 유신시대에 이르기까지 온전한 삶을 파괴시켜 온 시대의 질곡, 평생 고약한 술버릇과 대책 없는 무능함으로 가난과 폭력을 안겨준 남편이라는 족쇄,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허망함, 그리고 한 번도 헤어나지 못했던 지겨운 가난……. 고향마저도 그에게 포근하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저자는, 깊은 밤 어머니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를 수없이 되감아 들으며 이 소설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평생 물질만 해온 이 여인의 일생은 깊은 바닷속처럼 어둡고 숨이 막히지만, 그럼에도 질긴 목숨줄을 부여잡고 고난의 바다를 건너온 꿋꿋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오랜 물질 끝에 바다 위로 솟아 내뿜는 ‘숨비소리’처럼. 이 작품에 중요성에 대해 평론가 황광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뿌리 없는 환상들, 소비문화에 침윤된 허위의식과 믿을 수 없는 심층으로 도피하는 문학들, 난해한 작품을 선호하는 비평가들의 칭찬 속에서 물질적 근원을 상실해 가고 있는 문학들과의 대비적 관점에서, 이 작품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은 사건들이 발생하는 표면을 저인망처럼 훑고 있지만, 고무옷의 부력을 상쇄하기 위해 해녀들이 허리에 차는 납덩어리처럼 무겁게, 온갖 종류의 헛것들로 부박해진 우리의 감성을 물질적 근원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을 지니고 있다. 살벌한 시대를 헤치며 오롯이 살아온 어머니들의 자화상 『숨비소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존 이상의 것을 생각하기 힘든 삶을 살아왔다. 주인공의 가족들도 가난과 일제의 횡포에 억눌려 숨죽이며 살았다.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떠난 큰언니네는 생사조차 알 길이 없고, 이념대립이 첨예하던 시기, 한반도 끄트머리에 자리한 섬의 작은 동네까지 휘몰아친 살육의 바람에 작은오빠도 휘말려 행방불명이 되고 만다. 4?3의 회오리 속에 첫 남편을 잃고 다시 결혼한 남편은 그에게 편한 휴식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 역시 첫 아내를 잃었으며,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내면에 자리잡게 된 폭력성이 그를 압박해 왔고, 먼저 떠나간 자식들은 그에게 상처만을 안겨줬다. 그런 남편의 폭력과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사람들의 인연은 끈끈하다. 첫딸 복자의 남편, 즉 주인공의 맏사위는 복자가 세상을 뜨고 나서도 여전히 사위 노릇을 한다. 그리고 그의 아내, 연희엄마 역시 착실하게 움딸 노릇하며 그의 의지가 되어 준다. 숨 막히고 상처가 되는 시간들, 세상을 향해 큰소리 한 번 친 적 없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거친 역사 속에서도 어느 누구보다 오롯이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시간을 버텨준 이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한 여인의 몸과 의식에 새겨진 시대의 폭력에 대한 서사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어두울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일생도 마찬가지다. 숨이 막힐 정도로 시대와 가난에 억눌린다. 누구도 쉽게 살아낼 수 없었던 일제시대, 해방을 맞이하자마자 마음의 여유를 찾을 새도 없이 섬나라에 휘몰아친 살육의 바람.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쥐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죽여 살았다.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인지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주인공은 그 시대의 폭력을 몸과 의식에 새겼다. 평론가 황광수는 이렇게 말한다. 화자에게 닥쳐오는 불행한 일들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기에, 때로는 참담한 사건들의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사건의 발단―전개―종결로 이루어지는 서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 인간의 몸과 의식에 새겨진 폭력들을 통해 한 시대를 증언하려는 작가 의식의 소산이다. 그래서 “무서웠던 그 세월, 한 번도 입 밖에 내본 적 없던 얘기 (중략) 내 자식들에게도 입을 연 적 없는 얘기”(15쪽)를 하면서도, 화자는 좀처럼 격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무의식에 새겨진 억압과 폭력은 자식을 잃은 어미에게 눈물마저 삼키게 한다. 아들이 군대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의 장례 과정을 두 눈으로 똑바로 보면서도 그는 어디에서도 목놓아 울지 못했다. 다만 평생을 몸담아온 바닷속으로 침잠해서야 억눌러왔던 울음을 터뜨릴 뿐이다. 기나긴 침묵 끝에 터진 주인공의 울음은 오히려 독자들에게 한 숨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소설가 안재성은 『숨비소리』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현대사의 비극과 한 여인의 고난에 찬 일생이 주는 중압감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풍경에 얽힌 여러 세목과 등장인물의 심리까지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탁월한 능력은 제주 4ㆍ3을 비롯해 유신에 이르는 잿빛 가득한 시대의 음각화를 배경으로 평생 해녀의 삶을 살아온 한 여인의 일생을 오롯이 드러내 주었다. 그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이나, 서사문학의 위대함을 새삼 일깨워 줄 수작을 탄생시키기 위한 분투의 과정이기도 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