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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내 글을 팔아 언니에게 신발을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지하철의 사이비 철학자 꼬리 아홉 개 세상은 늘 의외다 사람과 사람 사이 통하였느냐 그 말씀 들어 받잡나니 김진규의 길 모녀 사이_외계인의 역사 개의 시간 아름다운 것은 독하다 그렇게 배우다 세상의 모든 집 영재와 둔재 어떤 꿈 관계, 그 어색함 봄날의 굿을 슬퍼하다 허약한 글질 한눈을 팔다 김진규의 삶에 녹아 든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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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의 저자, 김진규의 삶에 스며든 문장의 기록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수수방관하지 않기 위해 읽은 책들 2007년, 『달을 먹다』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소설가 김진규가 자신이 지금의 작가로 서기까지, 곁에 둔 책과 매혹된 문장에 관한 글을 책으로 엮어 냈다. 데뷔 이전, 그녀는 ‘단편 하나, 시 한 줄 써본 적 없는 전업주부’였지만 처음 쓴 장편소설로 상을 거머쥐면서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고, 이후 여러 매체에서 ‘갑자기 글을 쓴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곤 했다. “남편이 언젠가 그런 말을 했어요. 제가 매일 책만 붙들고 사니까, 쏟아내지 않고 그렇게 구겨넣기만 하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표면장력의 끝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 방울만 더 얹으면 바로 터질 것 같은 위태로움을 제 안에서 느꼈던 거죠.”_「수상작가 인터뷰」 중, 『달을 먹다』 비록 이 대답이 소설 쓰기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위태로움’은 작가로 하여금 글을 읽고 쓰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우울증의 늪에 빠졌던 시절, 저자는 ‘그저 스스로를 수수방관하지 않기 위해’ 책을 들었고 ‘빨갛고 파랗게 밑줄을 그으며 글자들을 포박했다.’ 책의 의미는 늘 달랐지만 작가는 언제나 문장들의 힘을 신뢰했고 그 기록을 늦추지 않았다.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작가 김진규가 오랜 독서 생활 끝에 자신의 삶에 녹아든 문장들을 선연히 되살린 ‘책에 관한 책’이다. 작가이기 이전에 ‘독서 생활인’으로서 그 면모에 걸맞게, 소재 불문(『우리 규방문화』의 바느질 문화에서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의 반려동물과 사람의 한집 살이까지), 동서 불문(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노』까지), 시대 불문(폴 오스터의 『유리의 도시』에서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까지)하는 독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책 곳곳에 별색으로 인용된 문장들은 작가만의 기억, 경험과 교차하며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고 독자를 맞는다. 어느 리뷰어의 덧글(작가는 이 글을 한 온라인 서점에 연재했었다)처럼 ‘오늘도 수많은 책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어떤 존재도 나에게 그렇게 해줄 수 없을 것이다 ‘왜 책을 읽는가?’ 이것은 너무도 평범해서 색깔 있는 답 또한 끌어내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에게 이 질문은 유년 시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기에 그 답 또한 변화하며, 이 답들을 한데 모으면 곧 저자의 자서전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청년 시절에는 무던히 자신을 괴롭히는 꿈의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 결혼한 뒤에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책을 읽어왔다고 고백한다. 나는 아버지의 책장을 뒤졌다. ……암호 같은 글자들을 향해 다이얼을 돌렸다. 지글지글 끓어대는 잡음을 조금만 견디면 어느 순간 공기가 뚫리면서 명쾌한 해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리라. 그렇게 기대했다. 그래서 안심하고 싶었다. ……책들은 저마다 제 언어로 지껄여댔고, 나는 내키는 대로 제목을 집어냈다._「책머리」에서 작가와 함께 그 모든 시간을 견딘 책들은 가족사의 아픔, 치명적인 사랑, 딸아이와의 관계 등 자전적인 이야기와 함께 소개된다. 김형경의 「민달팽이」에서 박탈감을 주는 집에 관한 문장을 읽으며 집에 대한 기억을 오버랩시키고, 황지우의 「게 눈 속의 연꽃」에서 ‘내 마음을 깨뜨려 이름을 빼내가라’를 읽으며 사랑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식이다. 이렇듯 가장 사적인 독서 이력을 고백한 끝에 다다른 작가의 독서론―‘김진규 태양왕설’―이 흥미롭다. 다시 처음의 질문, ‘왜 책을 읽는가’로 돌아간다면, 작가의 답은 ‘어떤 존재도 나에게 그렇게 해줄 수 없으므로’가 된다. 주섬주섬 모은 문장들을 난장으로 흩어지는 일상에 응용했다. 한데 나이가 들면서 그 작업은 좀더 지능적으로 변했다. ……자작 김진규 태양왕설說.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이론. 나를 중심에 두고 책들로 하여금 내 주위를 공전하게 했다. 책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혼자서도 빛나는 거룩한 행성들이 한낱 위성의 자리로 떨어졌는데도 묵묵했다. 세상 그 어떤 존재도 나에게 그렇게 해줄 수 없을 것이다._「책머리」에서 책으로 치유하고 책으로 성장하다 “한눈을 팔아 벌어온 것으로 큰다” 작가에게는 책의 효용 또한 다양하다. 작가는 책으로 삶을 성찰하며, 문장으로 치유받고 문장을 통해 또 다른 문장을 만든다. 이를 테면 오랫동안 결핍으로 휘청였지만, 『한낮의 우울』(앤드류 솔로몬)을 읽으며 우울증의 지붕에서 내려왔고,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비프케 폰 타덴)를 접하고는 딸아이 곁에 머무는 길을 고민했으며. 『혈통』(파트릭 모디아노)을 읽으며 혈연에 집착하는 인물을 창조할 수 있었다. 철그덩 철그덩 우아하게 흔들려가는 동안, 내가 가진 DNA의 내력을 곰곰이 따져보았다. 뭣 때문에 베었는지도 모를 상처가 세 군데나 있는 손이 갑자기 우스워지면서였다. 분리독립이란 있을 수 없는 세습의 세계에서 발전과 퇴화는 법칙에 의한 것일까, 순전한 우연에 의한 것일까? 어두운 유리에 비치는 불투명한 내 모습은 무엇과 무엇의 타협일까? 혹은 어떠함과 어떠함의 접점일까? 도대체 나는 어떻게 생겨 먹은 나무일까?_「지하철의 사이비 철학자」에서 그럼에도 그 모든 효용을 한마디로 간추린다면 결국 '성장'일 듯하다. 이 흔한 열쇳말이 ‘내간체 글쓰기의 새로운 미학’(김윤식, 『달을 먹다』 심사평 中)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작가만의 고전적이고도 적요한 글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다. 비단 작가의 글이 아니더라도, 취향에 따라 선택된 ‘문장 종합 선물세트’를 읽는 것만으로, 마주 읽고 겹쳐 읽는다는 독서 고수들의 비법을 한 자락 엿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비로소 삶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된 작가의 유머 또한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책들을 읽었다. 원하던 것을 얻기도 했고, 길을 잃기도 했으며, 원수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뻔질나게 한눈도 팔았다. 하지만 ‘한눈을 버리다’가 아니라 ‘한눈을 팔다’ 아니겠는가. 팔았으니 벌어온 것이 당연히 있는 법. 그렇게 벌어온 것으로 나는 하루하루 큰다._「한눈을 팔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