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독일헌법 기본권 일반론
베스트
법 top20 1주
가격
10,000
10 9,000
YES포인트?
100원 (1%)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책소개

목차

머리말 _

제1장 독일 기본권의 역사와 발전 _
Ⅰ. 이념적 기원과 발전
1.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
2. 중세 기독교
3. 계몽주의
Ⅱ. 명문상 기본권의 등장과 발전
1. 영국의 인권관련 문서들
2. 미국의 버지니아 권리장전
3.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4. 독일의 기본권역사
5. 근대인권사상의 확립
Ⅲ. 현행 독일헌법(Grundgesetz)에서 기본권규정
1. 헌법제정
2. 헌법개정
Ⅳ. 우리나라에서 의미와 실제

제2장 독일 기본권의 개념과 의미 _
Ⅰ. 기본권과 구별되는 개념들
1. 기본권과 기본권조항
2. 기본권과 유사기본권
3. 기본권의 개념요소
4. 기본권의 개념
Ⅱ. 기본권의 분류
1. 인권과 시민권
2. 자유권과 평등권
3. 실체적 기본권과 절차적 기본권
4. 원리로서 기본권과 규칙으로서 기본권
5. 사회권 문제
Ⅲ. 우리나라에서 의미와 실제

제3장 기본권의 이중적 차원
Ⅰ. 주관적 권리 차원
1. 방어권으로서 기본권
2. 급부권으로서 기본권
3. 평등권으로서 기본권
Ⅱ. 객관적 차원
1. 기본권의 파급효과
2. 기본권 보호의무
3. 조직과 절차의 보장으로서 기본권
4. 제도보장
Ⅲ. 우리나라에서 의미와 실제
1. 기본권의 이중적 성격과 객관적 내용의 재주관화?
2. 기본권의 제3자적 효력
3.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
4. 제도보장

제4장 기본권의 주체와 수범자 _
Ⅰ. 기본권의 주체
1. 자연인
2. 법인
Ⅱ. 기본권의 수범자
1. 집행의 주체
2. 집행의 형식
3. 私人의 기본권 구속성
Ⅲ. 우리나라에서 의미와 실제

제5장 기본권 침해여부의 심사구조 _
Ⅰ. 기본권의 보호영역
1. 보호영역의 개념
2. 보호영역의 획정
3. 기본권의 경합
Ⅱ. 기본권의 제한
1. 전통적인 기본권 제한의 개념
2. 사실상 기본권 제한
3. 기본권의 포기
Ⅲ. 기본권 제한의 헌법적 정당성 심사
1. 기본권 제한의 형식적 요건
2. 기본권 제한의 내용적 한계
3. 기본권 제한에 대한 위헌심사의 목차구성
Ⅳ. 우리나라에서 의미와 실제
1. 기본권의 보호영역
2. 우리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근거
3. 기본권 제한의 정당성
4. 기본권 제한에 대한 위헌심사 목차구성

제6장 독일연방헌법상 기본권과 주헌법상 기본권, 국제법상 인권, 유럽법상 기본권 _
Ⅰ. 독일연방헌법상 기본권과 주헌법상 기본권
Ⅱ. 독일헌법상 기본권과 유럽법상 기본권
1. 유럽법상 기본자유
2. 유럽법상 기본권
3. 유럽인권협약(EMRK)상 인권
4. 유럽연합기본권, 유럽인권협약상 인권, 독일헌법상 기본권
Ⅲ. 독일헌법상 기본권과 국제법상 인권
Ⅳ. 우리나라에서 의미와 실제

부록 독일헌법의 기본권 관련 조항 _
색인 _

저자 소개

저자 : 정문식
한양대학교 법과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법학사, 법학석사)하였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서 법학을 수학(LL.M., Dr. jur.)하였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2006~ )로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11쪽 | 422g | 182*257*20mm
ISBN13
9788975987243

책 속으로

본서를 쓰게 된 직접적 동기는 대학원수업에 기원한다. 드라이어(H. Dreier) 교수가 편찬한 독일헌법 주석서 1권의 기본권 일반이론부분을 텍스트로 삼아 원서강독수업을 하면서, 주로 기본권 일반이론에 대한 독일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 배경을 이해하며, 질문하고 토론했다. 번역서를 내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짧더라도 독자적인 단행본을 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번역에 중점을 두다보면, 단어나 문장 자체가 갖고 있는 배경이나 그 밖에 상황 등에 대한 내용전달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 독일헌법원론』(K. Hesse), 『독일기본권개론』(B. Pieroth/B. Schlink), 『기본권이론』(R. Alexy) 등 잘 번역된 독일 기본권 일반이론서들도 있다.

바이마르공화국 헌법부터 현재 독일의 실정헌법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헌법학관련 이론은 제헌헌법부터 지금까지 한국헌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기본권부분은 더욱 그렇다. 독일의 기본권 이론과 대한민국의 기본권 이론은 유사한 점은 많지만 일치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독일 기본권의 일반이론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로부터 독자적인 한국 기본권의 일반이론에 대한 정립노력이 필요하다. 각 장의 말미마다 그러한 노력을 시도해 보았다. 그런 점에서 본서가 2009년부터 개원하는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과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시간과 능력부족으로 미처 깨닫지 못한 오류나 오해 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본서에 대한 다른 견해나 문의사항, 오류 등에 대해서는 jeongabr@chonnam.ac.kr로 보내주면 감사히 반영하겠다.

연구 작업을 마칠 때마다 은사이신 양건 선생님의 학은과 인격적 영향을 결코 지나칠 수 없다. 선생님의 날카로운 분석과 평가는 지금도 동경의 대상이다. 고인이 되신 배준상 선생님의 인자한 가르침은 아직도 그리울 뿐이다. 독일의 기본권이론에 대한 이해는 은사이신 클뢰퍼(M. Kloepfer) 교수의 영향이 전적으로 크다. 이분들의 학은과 명예를 가리지 않고, 청출어람이 되길 희망한다.

대학원 박사과정의 이광원 선생은 수업에서 진지한 질문과 토론으로 뿐만 아니라, 교정작업에서의 도움으로 투박한 원고의 약점을 보완해 주는 노력까지 보태주었다. 본 도서의 출간을 위해 도움을 주신 전남대학교와 연구진흥과 이영미 선생, 출판부 박방배 선생 및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결혼 후 유학시절부터 줄곧 옆에서 공부하는 것을 지원해주고, 가사일과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늦은 귀가에도 인내하며 배우자의 모자람을 감당하고 채워준 아내 진희와 “아빠랑 놀고 싶은” 소망도 계속 뒤로 미룬 채 실망을 안겨주었던 예문과 예진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여기에 고마운 마음을 남긴다.

2009년 2월 2일 연구실에서
정문식

--- '머리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본서의 실제 목표는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과 학부학생들을 위한 보조교재다. 로스쿨 강의에서 기본권 일반이론의 전체적인 틀에 대한 이해를 강화시키고, 각각의 요소가 구체적인 사례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각 개별적 기본권이해에 있어서 전제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보조자료인 것이다.

바이마르공화국 헌법부터 현재 독일의 실정헌법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헌법학관련 이론은 제헌헌법부터 지금까지 한국헌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기본권부분은 더욱 그렇다. 독일의 기본권 이론과 대한민국의 기본권 이론은 유사한 점은 많지만 일치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독일 기본권의 일반이론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로부터 독자적인 한국 기본권의 일반이론에 대한 정립노력이 필요하다. 각 장의 말미마다 그러한 노력을 시도해 보았다. 본서가 우리 헌법상 기본권 일반이론의 이론적 공급처로 이해되고 있는 독일 기본권의 일반이론 내용이 본래 독일 헌법에서 어떻게 생성, 발전, 활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킴으로서, 실제 헌법수업을 위한 기초자료 내지 참고자료로서 활용되기를 기원한다.

제1장 독일 기본권의 역사와 발전

Ⅰ. 이념적 기원과 발전

1.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
기본권은 정치질서나 국가질서와 관련된 것으로, 개인의 자유와 정치질서간의 관계에 대한 결과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서로 간에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이 국가에 대하여 가지는 주관적 청구권으로서 기본권은 근대(특히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대혁명)의 산물이며, 자유주의 헌법국가의 핵심적 요소다. 기본권의 이념적 기원을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제가 인정되었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사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에 대하여 개인이 주관적 권리를 갖는다는 것도 생소했다. 하지만 스토아(Stoa)학파의 자연법사상에 내포된 모든 인간의 평등 내지 자유를 강조한 측면이나, 세계에 내재하는 보편적 이성(logos)에 모든 인간도 참여한다는 생각 등은 오늘날 인간의 평등과 자유ㆍ보편성 같은 성격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서, 인권 이념에 중대한 출발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태어나면서부터 노예인 사람은 없다’는 구체적인 주장들은 정치적 지침 등에 불과했지, 국가에 대한 실제적인 요구로서 체계화되거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2. 중세 기독교
인권사상의 기원으로서 기독교사상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기독교사상은 인권사상이 극복하기 위한 대상이기도 했다. 예컨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Dei)을 닮았다는 인간존엄의 사상이 중세 교부들이나 신학자들에게서는 실현되지 않았는데, 영의 세계와 정치질서는 서로 다른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장이라는(만인제사장주의) 사상도 일반적인 인권이념의 시초로 보기는 어렵다.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이며, 평등도 하나님 앞에서 평등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노예제는 기독교에 의해서 여전히 인정되었다. 교황 피우스(Pius) 6세는 프랑스 인권선언이 교회의 이성과 계시에 맞지 않는다고 공식 선언했고, 이러한 반발은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19세기 말이 돼서야 카톨릭 교회는 노예제가 인간의 형제애와 원칙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20세기 초 인권사상과 조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의 효시로 인정되는 루터(M. Luther)의 경우에도 인간의 죄인으로서 상태를 인정하고, 국가를 하나님의 나라와 세속적인 나라로 구별하였기 때문에, 전제군주에 대한 저항도 세상에서 받아야 할 고난이나 순교정도로만 이해하고, 어거스틴(Augustine)의 영향으로 오히려 세상적인 고난도 영혼의 순결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 때문에 루터의 사상에는 종교의 자유를 위한 법적 자기주장과 권리를 위한 투쟁의 윤리도 있지만, 다른 한편 법의 무본질성과 무저항, 법적투쟁의 포기라는 교훈도 내재한다. 모든 사람의 자연적인 자유와 평등을 정치적으로 강조한 것은 노동과 직업의 소명윤리를 강조했던 칼뱅(J. Calvin)이다.

3. 계몽주의
인권사상의 확실한 기원은 역시 17세기부터 시작된 계몽주의 시대 자연법사상이다. 자연법사상은 i) 국가이전에 개인의 자연상태와 ii) 공동체(국가)구성에 있어서 계약을 전제로 한다. 예컨대 홉스(T. Hobbes)는 타인에 의한 침해와 외국의 침입이라는 위험하고 불안한 자연상태로부터 개인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개인 상호간 계약을 통해 국가(Leviathan)가 탄생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로크(J. Locke)에게 있어서 개인은 자유롭고 평등한 자연상태에서 이성의 법칙(자연법)을 따라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며 노동에 따른 사적 소유(소유권)를 갖게 된다. 다만 자연상태에서는 개인들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할―일반적으로 승인된―법이 없고, 법을 적용할 공평한 재판관이 없으며, 판결을 집행할 권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에 의해서 개인의 자유를 위협받을 수 있는 불편과 불확실성에 처한다. 자연상태에서 위협받을 수 있는 개인의 재산(생명, 자유, 재산)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정치사회)가 필요하다.

루소(J.J. Rousseau)는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자연법적인 자유와 권리 대신에, 사회계약을 통해 성립된 공화국 정치질서 속에서 시민적 자유와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으로 보았다. 공화국가도 도덕적ㆍ집단적인 구성원들의 단체로 이해하여 국가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강조했는데, 다만 이 때 공화국가에서 향유하는 자유가 로크식의 자유국가에서 누리는 자유와 어떻게 다른 지는 불분명하다.
칸트(I. Kant)는 자유국가에서 하나의 권리만이 존재한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의 평등한 자유에 대한 권리를 의미한다. 칸트는 자기입법(Selbstgesetzgebung)과 도덕적 자주성(sittliche Autonomie)의 개념을 근거로, 공적 정의(?ffentliche Gerechtigkeit)가 확립된 법질서가 계약과정을 통해 국가로 성립되어 정당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칸트는 주관적 권리로서 인권을 정당화하는 법치국가질서 사상의 기초와 근거를 마련해준 것으로 평가된다.

Ⅱ. 명문상 기본권의 등장과 발전

1. 영국의 인권관련 문서들
기본권은 선험적으로 전제되거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정치적ㆍ사회적 노력을 통해서 획득하고 보장받은 것이다. 따라서 기본권은 개인적인 또는 집단적인 자유의 획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격의 침해나 자주적인 결정권의 위험상황이 있었음을 반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기본권을 “인간의 자유가 역사적으로 겪어온 위험상황에 대한 응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영국의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1215),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 1628), 인신보호령(Habeas Corpus: 1679), 권리장전(Bill of Rights: 1689) 등을 기본권 내용이 명문화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그나카르타는 중세 봉건질서 속에서 고위성직자와 귀족(유산)계급의 특권보호에 관한 것이었고, 권리청원과 권리장전은 왕과 유산계급 대표인 의회간에 주권문제가 주된 핵심이었다. 물론 인신보호령은 자의적인 체포로부터 보호를 다룬 것으로, 어느 정도 미래지향적이고 일반화되는 경향에 있었다.

옐리네크(G. Jellinek)는 이러한 영국의 헌법적인 문서들과 이후에 나타나는 미국과 프랑스의 인권선언들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영국의 인권관련 문서들은 계급적 헌법체제 내에서 자유의 보장에 관한 것이지, 일반적인 개인의 권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에서 보장된 인권은 왕과 유산계급간 계약을 통한 영국 특권층의 생득권(birthright) 강화와 개선이지, 버지니아 권리장전처럼 국가통치의 근거나 기초가 아니다. 영국의 의회는 전능하며 의회가 제정한 법률은 모두 동일한 가치를 가지지만, 미국의 기본권은 통상의 입법자보다 우위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2. 미국의 버지니아 권리장전
1776년 6월 12일의 버지니아 권리장전(Virginia Bill of Rights)은 프랑스의 인권선언과 함께 근대 기본권의 전형적인 모범과 확고한 기초로서 인정된다. 권리장전의 기본권은 영국의 전통적인 생득권(birthright) 사상에 기초했지만, 특수한 계층이 아닌 모든 인간의 권리로서 인정되고 있으며, 특히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구분하지 않는다. 따라서 권리장전은 개인들의 자주적인 결정에 따른 정치 공동체의 통합형식으로 이해되고, 기본권은 국가의 제한으로부터 보호되는 개인의 자유영역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국가통치의 근거와 기초가 된다.

3. 프랑스의‘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유럽대륙에서 기본권수용에 있어서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프랑스 혁명 당시 인권선언인 1789년 8월 26일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이다. 여기서는 자유와 평등 뿐만 아니라 국민주권이나 권력분립같은 국가조직의 기본원칙도 규정되어 있다. 프랑스 인권선언을 초안한 라파예트(Laffayette: 1757-1834)와 제퍼슨(T. Jefferson)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프랑스의 인권선언과 미국의 인권선언이 상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미국의 권리장전이 직접적인 구속력이 있고 재판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목록인 반면, 프랑스의 인권선언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 공통으로 인정될 수 있는, 영구적인 사회철학 사상의 선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사상을 근거로 구체적인 프랑스의 정치ㆍ사회질서를 형성하는 임무는 입법자에게 부여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 밖에도 프랑스의 인권선언은 기존의 국가내에서 왕정체제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시민정치사회를 잰설하는 상황 속에서 이념적 지표를 표현한 것이지만, 미국의 인권선언은 식민사회로부터 독립하는 새로운 국가형성의 정당성을 나타내며, 국가에 대한 개인의 구체적인 권리들을 표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가 있다.

4. 독일의 기본권역사
1848년 3월 혁명이후 5월 18일 프랑크푸르트 성바울교회(Paulskirche)
에서 독일국민회의(Nationalversammlung)가 소집되고 독일 연방의회를 대신하게 되었다. 국민회의는 그 동안 논의되었던 기본권목록을 1848년 12월 27일 의결하고, 이를 파울스키르헤헌법(Paulskircheverfassung) 제6장 “독일국민의 기본권(Die Grundrechte des deutschen Volkes)”에 포함시켜 1849년 3월 28일 공표하였다. 그러나 국민회의가 제안한 황제추대를 당시 프로이센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거절하자 국민회의는 해산되고 헌법은 시행되지 못하였다. 파울스키르헤헌법은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서 기본권의 내용도 미국과 프랑스 인권사상의 영향을 받아, 거주이전의 자유, 법앞의 평등, 귀족특권의 폐지, 공무담임권, 병역의무, 인신의 자유, 영장주의 등 자유주의적 서구헌법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이후 바이마르헌법과 현재 독일헌법(Grundgesetz)의 기본권조항들은 파울스키르헤헌법을 모범으로 삼았다.

19세기 독일의 기본권역사는 파울스키르헤헌법의 역사적 운명이 보여주는 것처럼 역동적인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물론 19세기 초 남독일의 주헌법들에 기본권조항은 있었으나 국가이전의 자연권보다는 국가내의 시민권(staatsb?rgerliche Rechte)으로서 성격이 강하였다. 기본권은 법률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기본권이 입법에 대하여 법적인 구속력은 없었다. 기본권의 효력도 제한적이어서, 예컨대 기본권에 반하는 법률은 무효가 아니며, 평등원칙도 단지 형식적인 법앞의 평등을 의미할 뿐 귀족들의 특권도 여전히 인정되었다. 이는 독일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 예컨대 연방으로 분열된 상황이라든지 입헌군주제(konstitutionelle Monarchie)의 영향 때문이었다. 따라서 독일 시민계급은 비록 정치적 자유는 쉽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왕들도 유산계급의 경제적 필요에는 적응해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경제적 자유(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의 자유)는 인정받았다. 1871년 비스마르크헌법에도 기본권목록은 없으며, 단지 개별적으로 거주이전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만 인정되었다. 입헌군주제의 영향이 강한 독일에서 기본권은 파울스키르헤헌법을 제외하면, 국가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국가 내에서의 자유 또는 국가에 의한 자유라고 할 수 있다.

1919년 8월 11일 바이마르공화국헌법(Weimarer Reichsverfassung) 제2편은 “독일인의 기본권과 기본의무(Grundrechte und Grundpflichten der Deutschen)”라는 제목하에 기본권 규정들을 두고있다. 물론 독일인의 기본권이라고 해서 외국인의 기본권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제1장과 제2장은 1848년 프랑크푸르트헌법에서 규정되었던 자유권적 기본권의 내용을 주로 담고 있으며, 제3장은 국교는 없지만 공법인으로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제4장은 교육과 학교, 제5장은 당시 사회적 수요를 반영하여 사회적 기본권과 경제적 기본권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바이마르헌법의 기본권규정들을 단순히 프로그램규정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내용적으로 기본권은 유산계급의 당시 경제활동과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하여 자유권적 기본권들을 포함하고, 다른 한편 유산계급의 활동으로 발생한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기본권들도 담고 있다. 그러나 효력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어, 전통적으로 완비된 이론덕분에 자유권은 어느 정도 효력이 강화되었는데, 새로 규정된 사회권들은 프로그램적 성격밖에는 갖지 못했다. 제도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에 기본권의 법적인 의미가 약화되었다. 첫째는 헌법재판권의 부재다.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한은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 때문에 논란이 있었고, 헌법상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거의 행사되지 못하였다. 둘째로 아직 헌법의 우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여서, 기본권은 입법자들의 법률개정에 따라 그 실현 여부가 결정되었다. 결국 1933년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를 표방한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서 독재가 시작되었고, 바이마르헌법은 사실상 효력을 상실하였다.

5. 근대인권사상의 확립
그 동안 역사적으로 소수 특정 계급의 특권이나 기득권을 보호하는 다양한 권리사상에서 출발한 인권사상은 점차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하나의 포괄적인 자유의 개념으로 수렴되었다. 다른 한편 개인주의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근대의 인권사상은 법철학적ㆍ정치적 요구에서 점차 법적인 요구로 확대되었다. 홉스에서 시작된 사회계약사상은 로크, 루소, 칸트를 거치며 점차 자유주의적ㆍ민주적ㆍ법치국가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개인은 국가이전에 존재하는 것이며, 국가는 모든 개인의 평등한 자유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발전시킬 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근대 인권사상이 확립되었다. 여기에 영국에서의 헌법적인 문서들은 인권의 실정법적인 효력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고, 미국과 프랑스의 인권선언들은 국가존립의 근거와 기초로서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권 확립에 결정적인 진보를 확립하였다.

Ⅲ. 현행 독일헌법(Grundgesetz)에서 기본권규정

1. 헌법제정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이후, 연합국 점령군측이 독일의 장래에 대하여 합의한 제1 프랑크푸르트문서(Dokument I der Frankfurter Dokumente)는 독일헌법에 국가조직조항만 규정하고자 하였으나, 제헌문제에 관한 전문가회의였던 헤른킴제헌법회의(Herrenchiemsee Verfassungskonvent)나 1948년 9월 1일 연합국점령지역의 각 주 대표들로 구성된 제헌위원회(Parlamentarischer Rat)에서는 기본권의 법적 성격을 인정하여, 기본권을 단순한 선언이나 주헌법에 대한 지침정도가 아니라 직접적 효력을 갖는 연방법규범으로서 인정하고, 독일인이면 누구나 재판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로서 인정하였다.

제정과정에선 영국, 미국, 프랑스의 인권선언 전통과 독일기본권사의 특수성, 파울스키르헤헌법이나 바이마르헌법의 기본권조항들과 당시 1948년 국제인권선언 등도 고려되었으나, 바이마르헌법사의 부정적 영향 때문에 사회적 기본권들은 배제되고 주로 전통적인 자유권을 중심으로 규정되었다. 제헌의회는 입법자를 포함한 국가권력에 대한 기본권의 직접적 효력이나, 기본권마다 상이한 제한구조에 대해서는 합의하였는데, 이민의 자유, 헌법소원제도, 저항권 등은 논의과정 중에 삭제되었다. 나찌시대에 대한 반감으로 집총거부(제4조 제3항), 독일국적상실로부터 보호, 망명권(이상 제16조) 등이 포함되었다. 기본권조항들은 바이마르헌법과 달리 헌법 모두에 제1조부터 배치되어 1949년 5월 23일 공포되었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9,000
1 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