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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내가 두고 온 잊어버리고 있던
자식들이, 언니들이, 연극이, 나의 배역이 있다. “···밤마다 사람들은 잠을 자고, 낯선 기억들이 야금야금 들어온다. 오래 전 들었던 설화, 귀신이 된 옛사람의 기억, 공동의 기억··· 이 기억들이 내 기억이 되고, 어디까지가 너인지 어디까지가 나인지 잊어버린다. ···내 고향은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알에서 태어나고, 아내는 호수에 탑 그림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아이는 종 속에 녹아 ‘엄마야’라고 부르고, 절에는 용이 왔다갔다한다. 천여 년이 흘러도 그 이야기가 생겨난 그곳은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난 그 무대의 커튼을 걷고 언제나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이야기를 기다린다···” - 최주현, ‘작가의 말’ 중에서 꿈이 거침없이 건네는 이야기 <늑대 가죽 안에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로이거나,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이다. 현실이란 빛은 군데군데 작은 웅덩이를 만들 뿐, 발을 내디딜수록 더 깊어지는 어둠에 혼란스럽다. 잡으러 갔던 늑대는 오히려 내 혼을 쏙 빼놓는다. 늑대는 나무 뒤에, 아니면 나무 그림자 속에 숨어 있거나, 아예 나무가 되어 버린다. 나는 길을 잃거나 아니면 숲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어느새 나 자신도 어둠과 하나가 되고, 늑대의 뱃속에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과연 내가 늑대에게 먹힌 것일까, 아니면 그저 늑대 가죽을 덮어 쓴 것일까? 연극은 또 다시 시작되고··· 여성으로서 작가의 꿈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기존의 단편적인 꿈 작품들과 차별되게 꿈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한 편의 장대한 판타지의 세계로 이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성인 버전이며, 여성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들의 상징 세계이다. 이 세계 속에서 자아와 대상들은 고정되지 않고, 역할을 바꾸어 가는데, 이를 통해 우리가 인식하게 되는 것은 고정된 주체가 아닌 그것을 만들어 가는 공간이다. 무대에 오른 이상 연기하기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무대 위의 나는 배역의 감정에 사로잡혀 총을 들어야 하고, 대본의 대사를 그대로 말해야 한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배역을 주었는지, 왜 나는 무대 위에 서 있는지 자신은 알 수 없다. 나는 연극(늑대) 안에, 그리고 내 안에는 또 다른 늑대가 들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