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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코브스키의 『바하 편곡집』·『러시아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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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 - Bach : Transcriptions (Arranged by Stokowski)
CD 2
요한 세바스찬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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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Anthony Stoko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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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코브스키의 러시아 선집
러시아 음악에 대한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의 관심은 일생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직후의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무쏘르그스키가 남긴 『민둥산의 하룻밤』 오리지널 악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지 무렵인 성 요한의 날 벌어진 마녀들의 향연을 다룬 이 교향시는 줄곧 림스키-코르사코브가 편곡한 버전으로 연주되었으나 스토코브스키는 자신이 직접 오케스트레이션한 악보를 사용했다. 해골이 구르는 소리, 마녀들의 희롱이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30세 되던 해인 1912년, 휠라델휘아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된 스토코브스키는 같은 해 런던의 퀸스 홀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데뷔 연주를 갖는다. 일련의 연주 중 세 번째 날의 프로그램을 모두 차이코브스키로 짰는데, 이 때 연주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여기에 수록된 『슬라브 춤곡』이다. 그로부터 60년 후인 1972년 스토코브스키는 같은 장소에서 이 내셔널리즘으로 충만한 곡을 다시 앙코르로 연주해 열광을 불러모은다. 여기 수록된 스튜디오 녹음은 1967년에 이루어졌다. 재정 러시아가 나뽈레옹의 불란서에 항거해 승리한 사건을 골자로 한 곡으로, 『슬라브 춤곡』과 종종 짝을 이루는『1812년 서곡』 역시 스토코브스키의 장기 중 하나였다. 1960년대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특정 악단에 매이지 않고 햄프셔에 머물면서 프로미나드 콘서트 등에 등장했다. 1969년 로열 앨버트 홀에서 로열 휠하모니와 군악대, 합창단이 참여하는 스펙터클한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이 때 연주한 곡이 바로 『1812년 서곡』과 보로딘의 『이고르 공』 중 `달단인의 춤'이었다. 이 연주회는 즉시 여기에 수록된 스튜디오 녹음으로 이어졌다. 림스키-코르사코브와 글라주노브가 편곡한 보로딘의 곡은 오페라 무대에 좀처럼 서지 않던 스토코브스키가 즐겨 연주한 발췌부였다. 오페라와는 별 인연이 없던 그였지만, 1929년에는 휠라델휘아에서 세 차례에 걸쳐 무쏘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브』를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했다. 당시 그는 작곡가 사후 림스키-코르사코브가 재편한 악보를 거부하고, 오리지널 스코어를 고집했다. 뒤에 그는 여기에 수록된 것과 같은 `교향적 합체'라는 이름으로 연주회용 모음곡을 편곡해 연주를 갖는다. 그가 엮은 오페라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보리스에게 왕위를 계승하라고 부추기는 러시아 민중; 보리스의 대관식; 죽은 진짜 왕위 계승자인 척하기로 결심하는 젊은 수도승; 술에 취한 순례승 바를람의 기운찬 노래; 민중에게 버림받고 죽는 보리스. 데카의 `훼이즈 4'(Phase 4) 방식으로 녹음된 이 음반에는 죽을 때까지 정열을 잃지 않았던 지휘계 풍운아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곳곳에 담겨 있다. --- 정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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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 화려한 스토코브스키의 바하 편곡
스토코브스키 시대의 휠라델휘아 관현악단이 펼치는 연주 프로그램중의 하나로 그 자신이 편곡한 바하의 작품이 유명했다.
스토코브스키의 바하 레퍼토리에서 큰 특색의 하나는 관현악 조곡 같은, 바하의 오리지널 오케스트라곡이 거의 없고, 오르간곡과 칸타타 등의 편곡이 그 중심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이러한 경향이 스토코브스키의 바하에 대한 문제점이 되고 있으며 바하 전문가가 갖가지 비난의 화살을 쏘아 대는 표적이 되기도 했다. 휠라델휘아 시대에 스토코브스키는 바하의 작품을 직접 편곡하여 리허설 때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런던의 왕립 음악 학교 시대에 바하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배운 체험이 오케스트라 연습에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리허설 도중에 틈틈이 바하를 연주해 보는 일이 그 자신과 악단원의 한 가지 즐거움이 되고 아울러 공부도 되겠다는 스토코브스키의 아이디어가 악단원의 큰 호응을 얻어 여러 해 동안 계속했다. 그러나 일반 청중이 바하를 즐겨 들어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스토코브스키는 연주회용 프로그램은 엄두를 못 냈다. 우연히 리허설 때 바하를 듣게 된 한 친구가 그에게 "어째서 연주회 때 들려 주지 않소? 청중도 좋아할텐데!...." 하고 귀띔을 해준 말이 계기가 되어 실제로 연주해 보니 뜻밖에도 "청중은 열광적으로 바하를 환영해 주었다." 스토코브스키의 바하 편곡은 차츰 그 수가 늘어나 휠라델휘아 관현악단의 유명한 프로그램이 되었고 레코드는 물론 영화에까지 소개되었다. 스토코브스키는 바하의 원전(原典) 작품이 소중하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바하가 작곡한 그대로 연주했을 때 청중이 쉽게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바하 자신이 위대한 편곡자이며 비발디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많은 작품을 개작(改作)한 사실이 생각난다. 그 편곡은 원곡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웠다. 이 사실이 내게 편곡의 자유를 지닐 용기를 주었다. 물론 바하가 자기의 건반 악곡을 관현악으로 고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을 터이지만 혹시 했다 하더라도 나와는 방법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바하는 한 가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을 듯하다"고 스토코브스키는 말하고 있다. 사실 1920~1930년대에 바하의 작품을 연주회 때 대편성 관현악단의 연주로 들을 수 있는 기회란 좀처럼 없었다. 그러한 시대에 바하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일은 지난 날에 묻혀 있던 갖가지 바하의 대표작을 멘델스존이 발굴·공연한 사실에 버금가는 공적이었다. 스토코브스키의 바하 작품 편곡은 많은 사람이 바하 음악을 친숙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오르가니스트다운 스토코브스키의 아이디어가 빚어낸 산물이었다. 스토코브스키의 바하 편곡은 SP시대부터 유명했다. 그의 레코드 녹음 경력은 거의 60년이나 되며(첫 녹음은 1918년이었다.) 오늘날 그만큼 많은 악단과 레코드 녹음을 한 지휘자는 달리 없다. 이 디스크(Stokowski Bach Transcriptions)는 2회에 걸친 연주회 때의 실황 녹음이다(프라하 '예술가의 집'). 특히 그에게는 아주 드문 실황 녹음이라는 점이 소중하다. 생전 처음 지휘한 체코 휠하모니 관현악단을 놀라운 솜씨로 아무런 파탄 없이 장악하고 있다. 이토록 싱싱하고 스케일 큰 바하를 90세의 대지휘자가 펼쳐 보여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수록 곡은 스토코브스키의 바하 레퍼토리에서 가장 유명한 『토카타와 후가 D단조』 BWV. 565를 비롯하여 『전주곡 E훌래트 단조』 BWV. 853(『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 제8번의 전주곡 부분), 찬송가 『게세마네의 나의 주 예수여』 BWV. 487(『쉐멜리 가곡집』), 코랄 전주곡 『우리는 유일신을 믿노라』 BWV. 680 '거인 후가', 코랄(부활절 칸타타 BWV. 4), 『파싸칼리아와 후가 C단조』 BWV. 582 등이다. --- 안동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