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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 한국에 중독된 터키 사진작가, 서울의 일상을 담다
한국인 무스타파 /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 우연들 / 색맹 / 빨리빨리 / 서울, 다시 올지도 모르겠어 / 아줌마, 내 인생을 바꾸다 / 나의 한국어 어휘사전 / 재떨이와 숏다리 / 중매쟁이 / 전 세계의 한국인들이여, 단결하라! / 단테, 《신곡》 지옥편 / 저 어때 보여요? / 내 젊은 시절의 아이콘 / 채식주의자 vs 육식주의자 / 기계와 세대 차이 / 장미 도둑의 고백 / 맛있는 아기들 / 호떡의 뜨거운 추억 / 카르푸 vs 이마트, 맥도날드 vs 롯데리아 / 먹고 죽자! / 가슴 아픈 과거 / 주식회사 대한민국 / Made in Korea / 모난 돌이 정 맞는다 /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도시의 소리 / 기억상실증 / 골고다 언덕과 시시포스의 전설 / 이스탄불의 김치 동호회 / 교회는 얼마짜리? / 서울의 향기 / 러브모텔 / 한국의 이미지 감사의 글 Photo by Arif Graffiti Art in Seoul |
Arif As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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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아리프 아쉬츠, 서울을 스케치하다
이웃집 털보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의 자칭 ‘58년 개띠’ 사진작가 아리프 아쉬츠는 디지털카메라가 대세인 지금도 필름만을 고집하는 올드보이다(그는 기계문명이 세대간의 단절을 낳는다고 역설하지만, 이는 아마도 자신이 컴맹에 기계치이기 때문인 듯하다). 또한 음주를 금하는 무슬림 나라에서 왔음에도 복분자주에 백세주, 막걸리까지 닥치는 대로 한국 술을 탐하는 술고래다(그는 무신론자이지만 술을 마실 때만큼은 알라신께 기도한다. “제 간을 굽어살피소서.”). 그는 지나가는 아기만 보면 ‘먹고’ 싶어 사족을 못 쓰는 탐식가이며, 친구에게 선사하기 위해 상습적으로 남의 꽃밭의 장미를 훔치는 도둑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지난 25년간 40여 나라를 여행했으며, 1년 6개월간 1만 2000km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걸어서 횡단하기도 했던 이 베테랑 사진작가가 한국을 찾았다. 한-터 50주년 기념 사진전 때문이었다. 그때 받은 인상이 너무도 강렬해서일까. 아리프는 한국어를 전혀 못하면서도 한국에서 서울에 관한 책을 내겠다고 결심하고, 지하철과 버스를 무작정 잡아타고 아무 곳에나 내려 서울의 뒷골목 일상의 풍경을 찍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렇게 아리프가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 서울에서 7개월간 머물며 스케치한 작은 코리아 인상기다. 아줌마, 아리프의 인생을 바꾸다 아리프는 이전까지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특별히 관심도 없었다(한국전 참전용사였던 이모부의 사진에서 본 희뿌연 배경 속의 이미지가 전부였다). 서울에 처음 도착한 그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온 듯 현기증을 느낀다. 모든 것이 느긋하게 돌아가는 이스탄불에 비해 서울은 모든 것이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 속도를 강요하는 공간이었다. 스피드 쇼크보다 더한 것은 컬러 쇼크였다. 온통 잿빛투성이인 이스탄불에 비해 서울은 현란한 색깔과 무늬로 가득했다. 10년 넘게 흑백사진만을 고집해온 그로 하여금 컬러필름을 꺼내들게 만든 일등공신은 바로 한국의 아줌마들이었다. “지하철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자리를 차지하는” 아줌마들이 입은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 무늬는 그에게 어느 인상파 화가나 야수파 전시회보다도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는(건물 유리창, 건설현장 그물, 골프연습장, 간판, 표지판, 가로수, 길거리 노점상 천막 등) 한국만의 아름다운 청잣빛 물결이 흘러넘쳤다. 그 속에서 아리프는 환경과 인간이 자아내는 미묘한 조화의 순간, 무의식중에 환경과 동화되는 한국인의 모습을 재미나게 포착해낸다. “꽃무늬 옷을 입은 아줌마는 꽃을 팔았다. 반복되는 마름모꼴 무늬의 셔츠를 입은 아저씨는 옷 무늬와 비슷한 보도블록 위에 앉아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의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아가씨는 횡단보도 앞에서 녹색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주변 환경의 문양은 사람들의 옷 무늬로 되풀이되었다. 사람들은 환경을 흉내 내는 카멜레온 같아 보였다. …… 나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인간과 환경을 연결시키는 중매쟁이가 된다.” 아리프, 한국에 중독되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리프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엄청난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사극 드라마와 막걸리, 부침개의 마니아가 되었고, ‘먹고 죽자’ ‘언니야’ 등 실전 한국어도 능숙히 구사했다. 잔인한 독재의 아픈 과거사를 공유해서일까. 그는 우리나라 386세대와 교감하는 바가 많다. 그네들과 술자리에서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하고 옛 운동권 노래를 같이 부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서 목도한 두 손으로 술 따르는 한국의 술 문화는 그가 이제까지 본 것 중 가장 의미 있는 제스처였다고 한다. 아리프가 한국을 스케치하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촛불시위 정국과 겹쳤다. 그는 시위현장을 가보고 처음에는 착각을 한다. 젊은이들이 미국 소 수입에 찬성하고 나이 든 이들이 광우병이 두려워 반대한다고. 그러나 그 반대임을 알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창 에너지가 필요한 젊은이들은 쇠고기를 먹지 말자고 하고, 콜레스테롤 걱정을 해야 할 노인들은 쇠고기가 괜찮다고 하고…….” 그는 시위를 거의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촛불시위에 경탄하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징적 향기를 바로 이 파라핀 냄새로 규정하고, 이를 ‘Il scentum politicus’(정치적 향기)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아리프의 한국 사랑의 최고봉은 단연 ‘김치’다. 그는 이 ‘경이로운 음식’을 처음 먹었을 때 거의 “번개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김치 세례를 받은 신도”로서 터키에 가서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던 그는 한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직접 김치를 담그기에 이른다. 자칭 ‘이스탄불 김치 동호회장’인 그가 터키 사진작가 친구들과 함께 김치를 담그는 모습은 마치 중세 연금술사들이 재료를 배합하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시식의 순간 아리프는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아, 터키 사진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도래했다. 김치 맛을 본 그들은 실수로 셔터를 누르는 데 필수적인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깨물었던 것이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손가락을 깨무는 버릇이 있다.) …… 터키 사진의 역사에 중대한 전환기가 도래했다. 우리들은 어느새 사진보다 김치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나라!? 아리프가 한국에 무조건적인 찬사와 호의만 보내는 것은 아니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당연하게도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다. 그에게 한국은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나라’다. 거리에는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너무나 많다. 그렇지 않아도 아름답고 섹시한 한국 여성들은 성형수술이라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한다. “서구형 미인이 한국미의 표준이 된 듯하다. 한국 사람들은 수술을 통해서 과거의 자신과는 다르게, ‘남과 같아 보인다.’ 한국 사람들은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남과 같아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정작 도시의 얼굴에는 둔감하다. 빌딩들은 높기는 하지만 모두가 사각으로 멋대가리가 없다. 세계적인 대도시들이 혁명적 디자인의 실험장인 데 비해 서울은 너무나도 보수적이다. 왜 거리의 차들은 모두 무채색뿐인가? 지난 100년간 미학의 슬로건은 ‘너 자신이 되어라. 남과 다른.’이었다. “개성은 미술과 건축, 패션의 발전을 이끈 견인차였다. 그러나 한국의 슬로건은 다른 것 같다. ‘더 열심히 일하라. 남들처럼.’” 아리프가 보기에 서울의 가장 심각한 키치적 상징은 도시 전체를 점령한 붉은 네온 십자가다. “서울의 어딜 가도 피할 수 없는 교회 건물들은 전혀 신성한 곳 같지 않았다. 낮은 시멘트 건물의 지하에는 노래방이 있다. 1층에는 땡 처리하는 속옷가게와 닭집, 핸드폰 가게가 있다. 2층에는 간판이 없는 회색의 유리창들이 몇 개 보인다. 그 위로는 독서실과 PC방이 있다. 영혼과는 무관한 가게들로 가득 차 있는 건물, 신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도, 배려도 없어 보이는 그곳의 옥상에 뾰족하고 가는 십자가 탑이 놓여 있다. 적어도 뚜껑은 교회가 분명하다.” 너무나도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이 풍경에서 그는 묘지를 연상할 뿐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어디쯤 있는가? 아리프는 서울의 건축물들을 유심히 둘러보던 중 요상한 건물들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직접 탐방에 나선다. 바로 러브모텔이었다. “러브모텔의 입구는 다양한 스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부터 모더니즘까지. 고대 그리스 신전을 방불케 하는 기둥들이 건물 외관에 붙어 있는 곳도 많았다. 분홍색이나 빨강색, 파랑색 등 선명한 네온등은 필수요소였다. 각각 떼어놓고 보면 무척 키치스러운 건물의 요소들은 한데 모여서 독특한 ‘러브모텔 양식’을 만들어냈다. …… 러브모텔 양식의 최고봉은 주차장이었다. 입구에는 어두운 색깔의 플라스틱 스파게티들이 걸려 있었다. 검은 에쿠스 차번호가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이 국적 불명의 건축양식 속에서 자본주의적 소비 대상이 된 성의 비밀주의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폐쇄성을 느낀다. 2007년 그가 지켜본 TV 뉴스는 재벌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어느 큐레이터의 가짜 박사학위 사건으로 몇 달째 떠들썩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4700만의 인구를 가진 이 나라는 마치 한 여학생의 치마 밑에 숨겨놓은 컨닝 페이퍼를 찾아내기에 바쁜 것 같았다.” 당시 중동은 화염에 휩싸여 있었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반미정부가 들어섰지만 그런 “‘세상사’는 한국 뉴스에 등장하지 않았다. 한국 뉴스는 ‘한국산’만을 다루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 집착하는 한국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리프는 한국인들이 국내문제로부터 눈을 돌려 국제사회 공동체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한국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수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선교사 인질사건도 본질적으로 마찬가지다. 그는 이것을 미키 마우스가 북한에 들어가 자본주의를 선전하다가 붙잡힌 것만큼이나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사건이라고 비유한다. 타문화와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존중했다면 그런 행위가 얼마나 모욕적인 것인지 깨닫고 자제했을 것이다. 서울, 기억상실증의 도시 아리프는 한국의 대학에서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두 차례 강연을 했다. 강연이 끝난 후 그는 활발한 질의응답 시간을 기대했지만 한 학생도 질문하지 않았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담당교수가 아리프를 소개하면서 “터키는 좋은 무역 상대이며 경제적 잠재력이 풍부한 나라”라고 묘사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자기 나라를 ‘주식회사’라고 묘사하고 자신을 ‘CEO’라고 칭하는 나라, 실용주의와 세일즈 외교를 부르짖는 나라다웠다. 그러나 터키가 대한민국으로부터 수입을 많이 하기 때문에 ‘형제의 나라’라고 한다면 불쾌할 뿐이라고 아리프는 말한다. 이런 성장과 개발 만능주의 때문일까. 그는 한국사회에서 역사에 대한 존경심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질타한다. 그가 즐겨 찾던 동대문 벼룩시장은 이듬해 갔을 때는 이미 헐리고 없었다. 멋진 흑백사진 속 옛 서울의 집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술집이나 세트장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 공사가 끊이지 않는 이곳에 급기야 대운하까지 만들려 한다는 발상에 아리프는 누구보다 더 흥분해 외친다. “소나무와 산을 이토록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진정 산을 허물고 인공적인 물길을 만든단 말인가? 한국 사람들이 진정 눈과 코에 성형수술을 해대는 사람들처럼 자연 전체에 메스를 대고 싶어한단 말인가? 도시의 기억상실증으로도 모자라서 자연의 기억상실증을 만들고자 한단 말인가? 네덜란드만큼이나 부유한 나라인 한국 사람들에게 역사는 네덜란드 사람들보다 덜 중요하단 말인가? …… 몇 개월간의 서울 체류 기간 동안 나는 외국인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서울에는 관광객들이 드물다. 왜 한국에 와야 할까? 김치를 먹고 아파트를 구경하기 위해서? 한국의 자원은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다른 가치들이 있다. 한국 사람들 손안에는 외국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역사가 있고, 예술이 있다. 성장과 발전의 이름으로 이 가치들을 파괴하려는 정치가들이 한국에 필요할까? 이들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일 역시 한국 사람들의 손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