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ason 1 Spring March.1-May.31
March Morning mist April Whisper pink May Blossom Season 2 Summer June.1-August.31 June Rainy day July Limeade August Mediterranean sea Season 3 Fall September.1-November.30 September Petit four October Almond November Picante Season 4 Winter December.1- February.28 December Fir January Violet ice February Lightest sky |
전소연의 다른 상품
|
그가 내 방에 온 날이었다.
“평생, 네가 끓여주는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는 나른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시간이 멈췄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가 돌아간 뒤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이 순간을 위해 건전지를 빼두었다. ---「Monday March 22 2010」중에서 [no_where] 어디에도 없는 혹은 [now---「here] 지금 여기에 한 단어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된다.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시선. 그러나 시선을 달리하면 움직임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 ---「Friday June 11 2010」중에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러니 사랑하면서도 외로울 수 있는 거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Saturday June 26 2010」중에서 그는 생각 없이 걷다가 길을 잃는 것을 좋아하고 그녀는 지도를 보고 어디쯤인지 알아차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좁은 골목에서 만나는 사소한 풍경을 좋아하고 그는 좁은 골목에서 풍기는 일상의 냄새를 좋아한다. 사랑은 사이좋은 동행자가 되는 조건을 발견해가는 여행이 된다. ---「Monday July 5 2010」중에서 그때 나는 알았다. 지킬 게 없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알았다. 자존심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사랑도 할 수 있다는 것을. ---「Tuesday December 21 2010」중에서 제법 쌀쌀해진 날이었다. 그는 밤늦은 시간에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내게 왔다. 자신의 기분에 대해 떠들지 않았다. 단지 피곤하다는 말로 자신의 상태를 알렸다. 그는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가 그의 삶을 흔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는 내가 내온 따뜻한 꿀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잠시 눈좀 붙이겠다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붉은색 기운이 감도는 이불이었다. 이불 속에 폭 잠긴 그는 몸을 벽 쪽으로 돌렸다. 내가 만질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차오른 뒷모습이었다. 울 공간을 찾지 못한 한 마리 짐승이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듯한.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그의 곁에 누웠다. 그의 숨소리에 맞춰 잠을 청해보았지만 딴생각으로 잠이 오질 않았다. 딴생각의 대부분은 그에 대한 생각이었다. 짐작할 수도 없는 그가 하는 생각에 대한 생각이었다. 나는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내가 가진 사소함이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고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감정이 있기에 그저 손을 잡는 행위가 위로의 전부였다. 깊이 잠든 줄 알았던 그가 내 손을 꾹 잡아주었다.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이. 이불 안은 우리의 체온으로 따뜻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이불 속에서만 손을 잡는 버릇이 생겼다. ---「November, Picante, p293」중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과의 사계절을 겪어보라고 이야기한다. 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설렘, 한여름 태양의 뜨거움 같은 열정, 깊어가는 가을을 닮은 감정의 무르익음, 그리고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겨울의 혹독함을 말이다. (……) 연인의 사랑스런 구석을 사랑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랑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사랑하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그 사람과의 사계절을 어쩌면 평생 함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January, Violet ice, 362~363」중에서 |
|
『오늘 당신이 좋아서』
『가만히 거닐다』의 저자 전소연이 쓰고 찍은 365일 사랑하는 이야기 시인 K, 하루에 한 장씩 당신에게 엽서를 보내며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 출판계의 멀티 플레이어 필자 중 단연 엄지로 꼽히던 전소연 작가가 돌아왔다. 지난 2009년 『가만히 거닐다』로 깊이 있는 사진과 숙련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자랑하던 작가가 7년 만에 작심하고 펴내는 두번째 산문집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전소연 작가는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그렇게 만나게 된 특별한 아이들을 마음에 담기 위해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되었다. 그 마음이 결국 사랑일진대, 그 사랑의 구체적인 증거가 또한 사진일 것이므로 작가는 줄곧 그 사랑의 눈동자에 몸 편히 기대왔던 터, 그간 사진이 향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 렌즈를 들이대던 작가가 이번에는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목적으로 우리 앞에 섰다. 여전히 한 손에는 카메라를 또 한 손에는 펜대를 쥔 채,그러나 다소 발그레해진 뺨으로. 그러니까 작가 자신의 ‘사랑’을 말해보겠다고 작심을 했던 것이다. 사랑, 사랑, 말하기는 쉬워도 사랑, 사랑, 쓰고 찍는다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사랑이라고 하면 지극히 주관적이고 지극히 감상적이라서 그 어떤 계량 도구로도 잴 수 없는 무게가 그것인데 글이라 하면 사진이라 하면 다소 객관적이고 다소 덤덤해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그래서 작가가 우회하지 않고 지름길을 찾지 않고 택한 정공법이 하나 있으니 바로 ‘매일 기록하기’다. 365일 사랑에 빠져 있는 한 여자의 일상. 그것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데서 우리는 365일 사랑에 빠져 사는 우리의 일상을 대신 훔쳐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예견하지 못한 다툼의 순간도 헤어짐의 순간도 재회의 순간도 우리 대신 겪어주는 아바타가 있다면 꼭 지금은 아니더라도 다음에, 그다음에 오는 사랑 앞에서는 비교적 덜 헤매고 덜 아프지 않게 되지는 않을까. 꼭 그랬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가가 3년이 넘는 긴 시간을 들여 쓰고 다듬고 버리고 다시 작업하는 지난한 과정 속에 이 두꺼운 책 한 권을 완성해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이 책을 읽게 되는 이들이 있다면 저도 모르게 양날을 휘두르곤 하는 사랑의 칼날에 너무 무방비로 서 있지는 말라고, 어쨌든 다치는 수순이겠지만 그때 입게 될 내적 상흔으로부터 자신을 좀 지키라는 착한 마음의 발로에서. 2010년의 365일을 매일같이 사랑했던 그 남자 ‘시인 K'와 결국 결혼에 이르러 아들 둘을 낳고 오늘에 이른 전소연 작가. 그 사랑의 파도를 함께 맞으며 멀미를 견뎌냈던 그 시인 K가 누구인지는 읽다보면 어느 정도 힌트를 얻게 될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가 그렇게 큰 문제일 것은 없겠으나 작가가 사랑한 그가 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보다 풍요로운 페이지가 완성된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전소연 작가는 인생을 시처럼 살아내는 시인 K로 인해 참 고단했겠지만 말이다. 왜들 이렇게 어렵게 사나, 왜들 이렇게 피곤하게 사나, 하는 푸념의 머릿돌로 단연 시인이라는 이름을 놓는 데는 주저함이 없겠다. 어쩌겠나. 전소연 작가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그가 바로 시인이었던 것을! 작가의 말 “나는 사랑은 뭔지 모르겠고 앓다가는 삶을 선택했다. 넌 뭘 택할래?” 이런 질문을 던진 남자가 있었다. 나는 그 남자를 선택했다. 얼마나 더 앓아야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를 앓는 동안 써내려간 문장들과 사진으로 책을 엮었다. 나에게 보내는 엽서 같은 이 책에는 365개의 사진과 글이 담겨 있다. 하루 한 장의 사진과 짧은 고백들을 펼쳐 보이기까지 나는 꽤나 긴 시간을 끙끙거렸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무렵은 환절기였다. 크고 작은 변화를 지나야만 했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자연스럽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생각보다 큰 변화였고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였기에 뒤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책 속에 있는 여자는 봄이라는 계절에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처녀였는데 현실의 나는 여자가 아닌 엄마였다. 내가 하던 사랑은 다른 색을 입었고, 자유로운 여행의 방식은 포기해야만 했으며 내가 누리던 소소한 일상은 가까스로 얻어낼 수 있는 보너스였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변함없이 나였고, 여자이길 원했다.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책 속의 문장을 이어나갔다. 다행히 4년이 지나 원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긴 시간을 기다려준 김민정 시인과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여전히 나는 환절기를 보내고 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계절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 시절을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는가보다. 이제 한결 가벼운 시선으로 내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려고 한다. 2016년 5월 전소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