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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o Paasili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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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제발 이 연금 받는 날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그러고는 수심 어린 눈을 들어, 헬싱키의 손님들이 찾아올 마을길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과격한 장교처럼, 남정네처럼, 험한 욕설을 크게 내뱉고 싶었지만, 교양 있는 노부인의 처지에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노부인의 눈길은 매서웠으며 노기가 번득였다. 고양이도 몸을 잔뜩 옴츠리고서 길을 바라보았다. --- p.7 카우코 뉘쇠넨은 버스를 타고도 얼마든지 시골에 갈 수 있다며, 도둑질한 친구들을 나무랐다. 무엇 때문에 조금 멀리 갈 때마다 번번이 자동차를 훔쳐야 한단 말야? 이런 식으로 경망스럽게 굴다가는 쓸데없이 골치 아픈 일만 생긴다고. 이러다 언젠가는 결국 콩밥 먹는 신세가 될걸. 카우코 뉘쇠넨은 자동차 좀 타고 즐기다가 감방에서 곰팡이 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머지 두 녀석은 푹푹 찌는 더위에 버스 안에서 곰국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바에는 가능성만 있다면 차라리 자동차를 타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 p.10 린네아 라바스카는 한숨을 내쉬며 핸드백에서 편지봉투를 꺼내어, 죽은 남편의 조카에게 건네주었다. 카우코 뉘쇠넨은 편지봉투 안에서 돈다발을 꺼내 들어 꼼꼼하게 세었다. 그러고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지갑에 돈다발을 집어넣으며, 돈이 너무 적다고 투덜거렸다. …… 정말 연금이 이렇게 적다니, 말도 안 돼요. 이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잘못된 거라고요. 장교의 미망인더러 이렇게 적은 연금으로 만족하라니,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뉘쇠넨이 너무 부당한 일이라며 흥분했다. 라바스카 대령은 조국을 위해서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고 적어도 백 번은 목숨 걸고 싸웠는데, 그 대가가 고작 이거란 말이에요? 젠장, 이 똥통 같은 나라의 사회제도는 모조리 똥값이라니까. --- pp.15~16 당직 경찰관은 수화기를 내려놓고서, 또다시 어느 히스테리컬한 노파가 전화를 걸어왔다고 동료에게 보고했다. 젊은 친척이 찾아와 사우나에서 술을 좀 마셨다고 전화를 하다니, 노인이 제정신이 아니야. 그래도 순찰대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 p.52 카우코 뉘쇠넨은 페르티가 정치에 대해 쥐뿔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는 선거에 아예 참여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결론 내렸어. 우리한테 아직 항의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이 길밖에 없어. 정치가들을 따돌리고 고립시켜야 해. 선거권자들이 모조리 선거를 거부해야만, 이 땅에 혁명이 일어날 수 있어. 입후보자가 단 한 표도 얻지 못하면, 당선자가 없는데 어떻게 의회가 소집될 수 있겠어. 그렇게 되도록 우리 모두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니까. --- p.71 요컨대 핀란드는 대기업 보스들의 축복 받은 땅이었다. 시시한 소규모 불법기업가는 타고난 능력을 증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저 절도나 신체 상해, 구질구질한 강도짓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보스들이 대규모 기습작전을 떠맡았으며, 국고의 돈을 삽으로 푹푹 호주머니에 퍼 담아서는 결국 외국에서 마음껏 탕진했다. 카우코 뉘쇠넨은 계급사회가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우울해지고 몸에서 기운이 쏙 빠졌다. 새로운 작전계획이고 뭐고 모조리 때려치우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한밤중에 길거리로 달려나가 누구든 먼저 눈에 띄는 놈의 목을 콱 졸라버리고 싶었다. --- pp.73~74 “어떤 때는 내가 마치 살인자들 틈에 끼어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니까.” 그러고는 덧붙였다. 나머지 두 녀석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카우코를 바라보며 실없이 허허 웃었다. 야리 파게르스트룀은 작년 가을에 루스케아수오에서 어느 연금생활자를 때려죽었으며, 페르티 라흐텔라는 몇 년 전에 살인죄로 케라바의 청소년 교도소에서 얼마 동안 복역한 경험이 있었다. --- p.76 린네아는 무엇보다도 아주 효과적이고 치명적인 독약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얼른 독약의 힘을 빌려 녀석들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잇을 것이었다. 힘없는 늙은 여인으로서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게다가 린네아는 중병에 걸릴 가능성도 직시해야 하는 나이였다. 병상에 누워서 시름시름 죽어갈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졌고, 암이나 고통스러운 종말이 끔찍하게 두려웠다. 오늘날에는 의사들이 아주 가망 없는 환자들도 끝까지 생명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데, 린네아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독약 병은 무엇보다도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도움을 줄 것이다. --- p.79 뉘쇠넨은 자신들이 범죄의 희생자라고 신음했다. 정말로 우리를 독살하려고 한 사람이 있다니까요. 전부 린네아 라바스카라는 이름의 과부가 꾸민 일이라고요. 그 여자는 나이가 거의 팔십이나 먹은 우리 양어머니인데 진짜 무서운 여자라니까요. 이 항의는 조서에 기록되지 않았다. 뉘쇠넨 패거리는 주취자 수용소의 유명한 단골손님이었다. --- p.105 이것을 계기로 군사정책에 대한 성의 있고 흥미로운 대화가 전개되어 아침까지 이어졌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트로이탈레프는 붉은 함대에서의 자신의 경력에 대해 소상히 이야기했다. (……) 트로이탈레프는 현재 금주령으로 고생하는 해상에서의 삶에 대해 말하는 동안, 바닷바람에 시달려 붉게 충혈된 눈에서 눈물 몇 방울을 닦아냈다. 린네아는 가슴이 뭉클했으며, 자신도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올 여름에 일어난 세 번의 사망사건과 이에 연루된 일들을 이야기했다. 두 늙은 군마軍馬는 악수를 나누며, 젊은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무엇보다도 노인들의 생활조건과 관련해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확정지었다. --- p.239 핀란드 민족 구성원들은 사후에 누구나 예외 없이 지옥에 떨어지듯이, 린네아도 적절한 때에 지옥으로 인도되었다. --- p.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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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 있는 노부인 린네아 라바스카는 연금 받는 날만 되면 걱정이 앞선다. 불한당 조카인 카우코 뉘쇠넨과 그 친구들이 연금을 갈취해 가려고 난동을 피우기 때문이다.
연금 받는 날이 되자 조카 일당은 어김없이 헬싱키 근교에 사는 린네아를 찾아온다. 린네아의 사우나실을 엉망으로 만들고, 가구를 파손하고, 어디선가 서리해온 돼지를 죽여 린네아에게 손질하라고까지 한다. 게다가 카우코를 유산상속인으로 지정하는 유언장까지 강제로 작성하게 한다. 더는 참을 수 없어진 린네아는 그 일당이 한눈팔고 있을 때 도망쳐, 옛 연인이자 오랜 친구인 야코 키비스퇴를 찾아간다. 그리고 조카 일당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 스스로 깔끔한 죽음을 택하기 위해 독약을 끓인다. 헬싱키 인구의 절반을 죽일 수 있는 강력한 독약이 완성되자, 린네아는 의도치 않게 악당들을 응징하게 되는데……. “젠장, 이 똥통 같은 나라의 사회제도는 모조리 똥값이라니까!” 선진화된 복지시스템의 대표 국가인 핀란드의 사회제도를 감히 똥값이라고 말하는 20대 청년 카우코 뉘쇠넨. 국가가 린네아 할머니에게 연금을 너무 적게 주고 있다고 불평하지만, 사실 할머니의 연금을 매달 강탈한다. 앞날이 창창한 20대 청년에게 지급하는 복지비보다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70대 노인의 연금을 더 많이 주는 핀란드의 복지제도도 불만이다. 슬슬 자신의 미래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면서, 엉뚱하게도 배움이 짧고 인맥이 없어서 거물급 경제사범이 될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리고 부당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투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기발한 자살 여행》의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는 《독 끓이는 여자》에서도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를 뽐내고 있다. 날건달 카우코 뉘쇠넨과 그 일당의 엉뚱하고 어설픈 범죄 행각, 불의가 정의가 되고 정의가 불의가 되는 비틀린 사회의식은 매우 우스꽝스럽지만 한편으로는 핀란드 사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꼬집는 역할을 한다. 이들이 괴롭히는 양어머니 린네아 라바스카와 그녀의 오랜 친구 야코 키비스퇴는 전쟁을 거쳐 현대 핀란드의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국가 재정이나 축내는 늙은이로 치부된다. 이제 일흔여덟 살인 린네아는 우아하고 현명한 노부인으로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고 싶었지만, 조카이자 양아들이 저지른 일들의 뒤처리 때문에 평화는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 참다 못해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히스테리컬한 노파”라는 소리나 들어야 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살하기 위한 독약을 끓이는 일뿐이다. 카우코 일당과 노부인 린네아가 벌이는 쫓고 쫓기는 대결은 긴박감 넘치게 진행되면서도 우연이 겹치면서 결국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종결된다. “파실린나 특유의 기발한 블랙 유머, 핀란드의 호탕하고 구수한 익살 속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인 문제와 가치관을 상실한 젊은 세대의 모습,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회시스템에 대한 풍자가 들어 있다. 이는 복지국가 핀란드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유효한 문제제기이자, 비판이다. 블랙 유머의 진수를 보여주는 아르토 파실린나의 대표작!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 한 편의 익살극! 파실린나의 다른 작품들이 핀란드의 청정한 자연 속에서 정화되고, 치유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이 작품은 착한 이들이 보답 받고 악한 이들이 벌 받는 전통적인 권선징악적 동화 구조를 갖고 있다. 나이 들고 힘없는 노부인 린네아 라바스카를 죽이기 위해 젊고 혈기 왕성한 카우코 일당이 갖가지 계략을 짜내지만, 동화에서처럼 마지막 승자는 핍박 받던 약자, 린네아이다. 파실린나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생생한 묘사로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적절하게 배치된 유머와 사회풍자로 ‘현대적으로 해석된 핀란드식 동화’를 완성했다. 린네아가 양아들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제조한 자살용 독약으로 본의 아니게 카우코 일당에게 복수를 하게 될 때는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의 묘미까지도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