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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작가 세트
고래+고령화 가족+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문학동네+예담 201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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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구성 소개

책소개

목차

고래

1부 부두
2부 평대
3부 공장

심사평
수상작가 인터뷰 / 이야기, 혹은 소설의 미래
수상 소감

고래

1부 부두
2부 평대
3부 공장

심사평
수상작가 인터뷰 / 이야기, 혹은 소설의 미래
수상 소감

저자 소개 1

인간의 길들여진 상상을 파괴하는 이야기의 괴물을 만드는, 소설계의 프랑켄슈타인. 1964년 경기 용인 출생. 골프숍의 점원, 보험회사 영업사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이 넘어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영화 「미스터 맘마」의 극장 입회인으로 시작해 영화사 직원을 거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 「총잡이」 「북경반점」 등의 시나리오는 영화화 되기도 했으며, 영화화 되지 못한 시나리오도 다수 있다. 연출의 꿈이 있어 시나리오를 들고 오랫동안 충무로의 낭인으로 떠돌았으나 사십이 될 때까지 영화 한 편 만들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진 마흔 즈음, 먹고 살기가
인간의 길들여진 상상을 파괴하는 이야기의 괴물을 만드는, 소설계의 프랑켄슈타인.

1964년 경기 용인 출생. 골프숍의 점원, 보험회사 영업사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이 넘어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영화 「미스터 맘마」의 극장 입회인으로 시작해 영화사 직원을 거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 「총잡이」 「북경반점」 등의 시나리오는 영화화 되기도 했으며, 영화화 되지 못한 시나리오도 다수 있다. 연출의 꿈이 있어 시나리오를 들고 오랫동안 충무로의 낭인으로 떠돌았으나 사십이 될 때까지 영화 한 편 만들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진 마흔 즈음,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동생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3년 문학동네신인상 소설 부문에 「프랭크와 나」가 당선되었으며,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에 『고래』가 당선되었다. 이 외에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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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0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1435g | 크기확인중

책 속으로

고래

살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자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天刑)의 유니폼처럼 그녀를 안에 가둬놓고 평생 이끌고 다니며 멀고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다시 이곳 벽돌공장까지 데리고 온 그 살들을 춘희는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햇볕에 그을리고 군데군데 상처를 입었지만 그녀의 피부는 아직도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춘희는 자위행위를 하듯 부드럽고 은밀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냈다. 목욕을 하는 동안 文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래 전, 의붓아버지인 文은 이미 몸무게가 백 킬로그램에 가까워지는 그녀를 펌프 옆에 세워놓고 몸을 씻기며 말하곤 했다.

춘희야, 너의 이 굵은 다리로는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진흙을 이길 수 있고 이 두꺼운 팔로는 누구보다도 벽돌을 많이 들어옮길 수 있으니 그게 다 너의 복이란다.

그녀에게 벽돌 굽는 방법을 가르쳐준 文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서서히 눈이 멀어갔으며 깊은 고독 속에서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춘희는 문득 가슴이 먹먹해져 몸을 닦는 손을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목욕을 끝내고 그녀는 옆에 벗어둔 수의를 짓이기듯 꼼꼼하게 빨아 풀 위에 널었다.
멀리 계곡 쪽에서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거대한 알몸을 핥고 지나가는 바람을 음미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산뜻한 기분이었다. 이제 그녀의 예민한 감각은 목욕을 통해 새롭게 되살아나 바람 속에 섞여 있는 계곡의 음습한 기운과, 그 계곡 아래 바위틈에 숨어 잠들어 있는 너구리의 누린내와, 벌판을 지나오는 동안 묻혀온 온갖 풀들의 향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비로소 자신이 의당 돌아올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그녀는 오랜 긴장에서 서서히 풀려나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사람들이 그러지, 하우스에 드나들면 신세 망친다. 거기서 돈 따는 놈 못 봤다. 알고 보면 다 사기다. 그런데도 꼭 그런 데 가서 돈을 쑤셔 박는 놈들이 있어. 참 이상하지? 그런 부조리한 현상에 대해서 누가 이름을 붙였는데 그걸 맨홀의 법칙이라고 그러더라고. 맨홀의 법칙, 그게 뭐냐? 맨홀 뚜껑을 열어놓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빠지게 되어 있다, 그런 거야. 그래서 애초에 맨홀 뚜껑을 열어놓으면 안 되는데, 뭐 어떻게 해? 벌써 빠진걸. 쏙!
--- p.21

그는 자신이 더는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동안 참한 마누라도 얻었고 연수동에 제법 유명한 고깃집도 가지고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기분이 우울했다. 한 마디로 사는 재미가 사라진 것이다. 그즈음 그가 관심을 돌린 건 좋은 차와 멋진 슈트였다. 값비싼 이태리제 양복으로 잘 차려입고 나서면 잠시 기분이 근사해지곤 했다. 그래도 가끔은 경마장에서 마권 다발을 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시절이 그리웠다. 남자의 인생이란 대개 그런 거였다.
--- p.126

지니는 자신의 지난 삶이 언제나 항성의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부터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손에 잡을 수도 없는 행복을 꿈꾸었지만 정작 그녀는 그 행복이 무엇인지, 어떤 느낌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리 마셔도 늘 목이 마른 삶이었다. 언제나 항성을 그리워하며 떠돌았지만 끝내 그 중심으로 다가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항성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성간을 오갈 수도 없는 신세였다. 그리고 드디어 항성의 중심에 다가가나 싶었는데 그곳은 그녀가 견디기에 너무 뜨거운 곳이었다. 다 녹아버릴 신세였다.
--- p.269

양 사장은 문득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가 세상살이에 대해 배운 건 모두 그의 아버지가 가르쳐준 거였다. 미끼를 어떻게 꿰는지, 어떤 물살에 낚시를 던져야 고기가 올라오는지, 어디를 때려야 상대가 한 방에 쓰러지는지……. 살아 있는 동안 그는 아버지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증오했지만 그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양 사장은 자신을 너무 사랑했고 그의 아버지는 평생 자신을 너무 증오했다는 거였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해를 받을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죽고 없어 세상엔 그 혼자뿐이었다. 양 사장은 아버지가 죽었을 때의 나이보다 자신이 더 오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사는 건 내남없이 모두가 외로운 일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멀리 희붐하게 서해가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막막한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던 양 사장은 문득 어깨를 떨며 울기 시작했다.

--- p.280

출판사 리뷰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고래』 출간!
고래

제1회 『새의 선물』의 은희경, 제2회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의 전경린, 제3회 『예언의 도시』의 윤애순, 제5회 『숲의 왕』의 김영래, 그리고 제8회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의 이해경……
말 그대로 ‘대형 신인’의 산실인 ‘문학동네소설상’이 또 한 명의 걸출한 신인을 선보이게 되었다. 올해 수상자인 천명관씨는 바로 지난해 여름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신인 아닌 신인. 데뷔는 했으나 등단작 「프랭크와 나」를 제외하곤 단편 하나 발표하지 않은 진짜 ‘초짜’다.

“작년에 신인상으로 등단했지만 단편 하나로 소설가의 이름을 얻은 게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상을 받게 된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 이름으로 책이 한 권 나온다고 생각하니 이제야 비로소 등단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진짜 ‘초짜’가, 완전 ‘생짜’ 소설로 그야말로 대형 사고를 친다. ‘작가’라는 이름을 얻고 처음 내는 책인 이 소설 『고래』로, 읽는 이를 웃게 하고, 울게 하고, 마음 졸이게 하고, 한숨짓게 하고, 미소짓게 하고, 긴장하게 하고, 몸 달게 하고, 얼굴 붉히게 하고, 전율하게 하고, 실소하게 하고, 허탈하게 하더니, 급기야는 감동까지 ‘던져’놓는다. (그렇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려’, 누군가를 감동‘시키려’ 부러 애쓴 것 같지는 않다. 그가 그저 ‘던져’놓고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다시 나름대로 또다른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었고, 그것(감동) 역시, 그 안에 그렇게 ‘던져져’ 있었다. 소설 속 춘희가 견디어낸 시간 속에, 그리고 그 시간과 공간의 여백 속에……)

“『고래』는 가히 소설이 무엇인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 전지전능하고 고압적이며 시공을 초월한 이야기꾼의 입담에 힘입어 소설은 엄격한 형식의 규제를 뚫고 민담과 전설, 기담들, 무협지와 장르영화의 부스러기들, 동화와 환상적 요소 등이 뒤섞이는 환상의 도가니로 돌변한다.”--신수정, 문학평론가

이 인간, 처음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십수 년을 등단하기만을 꿈꾸어온 문학청년들을 제치고 등단하던 순간에도 ‘오랫동안 꿈꾸어왔’다는 따위의 소설 얘기가 아니라 “나에게 영화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며 다소 ‘건방진’ 수상소감을 밝혔던 그였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저는 문학, 좁게 얘기하면 소설 그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는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 사람, 뻔뻔하다. 문학은 죽었다고, 더이상 문학의 자리는 없다고, 이미 오래 전부터 문학의 위기가 말해지고 있는 이때에도 여전히 문학에 ‘목을 매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고 점잖게 내뱉는 말투에는 약간의(? → 상당한!) 뻔뻔함과 당당함이 묻어난다. 자세가 안 됐군! 그래, 어디 한번 보자.
……어어……
……!!!……
……일단은 KO패……
꼼꼼하게 따져 읽기도 전에, 기승전결을 구분하고 인물들의 캐릭터를 파악하고 작가의 의도를 따져보기 전에, 단숨에 1800매짜리 소설을 다 읽어버린다. 숨가쁘게, 정신없이 읽어내려가고 보니, 한 편의 ‘이야기’로서의 ‘소설’에 궁했던, 거대한 서사에 목말랐던 독자들의 숨을 틔워줄 만한 작품인 듯싶기도 하다. 어어, 이게 아니었는데……

“이 소설을 ‘특별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소설에 대해 우리가 가져온 기존의 상식을 보기 좋게 훌쩍 비켜서는, 놀랄 만한 다채로움과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처음엔 낯설음과 기이함, 동시에 상당한 당혹스러움과 저항감을 안겨주며 시작되는 이 소설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뜻밖에 굉장한 흡인력을 발산하면서 결말까지 숨가쁘게 몰입하게 만든다.”--임철우, 소설가,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심사평을 좀더 세심하게, 꼼꼼하게 따져 읽고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했었어야 했다. 저 낯설음과 새로움에 당황하지 않기, 저항감이 생기면 주저 말고 완강하게 거부하기! 마음을 가다듬고, 냉정을 되찾고, 다시 읽기 시작!
『고래』의 1부와 2부는 산골 소녀에서 소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하는 금복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그녀를 둘러싼 갖가지 인물 사이에서 빚어지는 천태만상, 우여곡절을 숨가쁘게 그려내고, 3부는 감옥을 나온 뒤 폐허가 된 벽돌공장에 돌아온 금복의 딸이자 정신박약아인 춘희의 생존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한 편의 복수극”이라는 작가의 말대로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을 품고 죽은 박색 노파가 등장해서 주인공을 파국으로 이끈다는 설정이다. 별거 아닌 듯 간단한 듯하지만 이거, 만만치가 않다.
일단 이야기를 흩어놓는다. 조각조각 떼어놓으니 하나의 이야기가 끝없이 나누어진다. 수십 개의 에피소드가 각각 독립된 이야기가 된다. 이거야 뭐 나도 할 수 있겠다.(?) 수상자의 표현대로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 한자리에 모아놓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들었음직한 옛날이야기,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본 것 같은 신화와 설화, TV연속극이나 영화에서 본 듯한 이야기, 인터넷에 떠도는 엽기 유머, ‘빨간 책’에서 본 듯한 유사 포르노…… 모두 뻔~한 이야기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뭐, 어쨌거나 솔직히 쉽지 않아 보이긴 한다. 이 많은 이야기를 한데 집합시키는 것도.)

“이 소설에는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백과사전 같은 느낌이 들 정도, 또는 구비문학자료집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물론 이것만이 아니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나 연극 등의 고급 장르로부터 엽기 시리즈, 농담, 야설, 포르노 등등 하위 장르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것을 연상시키는 에피소드나 그것의 변주가 무궁무진하다. 말 그대로 이 소설은 장터의 시끌벅적한 카니발을 연상시키고, 또 키치적 아우라도 물씬 풍긴다. 이 작가의 이야기 수집벽이 남다른 것은 소설 몇 쪽만 들쳐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고, 더 읽어나가면 놀랄 수밖에 없게 된다.”
--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국문과 교수)

그래서 어떤 이야기냐고? ……난감하다. 소설의 줄거리를 설명한다는 건 무모한 짓이다. 하나의 이야기는 또다른 이야기를 낳고, 그 이야기는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한 편의 복수극”이었나 싶으면 산골 소녀와 부둣가 장수의 사랑 이야기가 있고, 보잘것없는 게이샤를 위해 손가락 여섯 개를 잘라 바친 어느 조직 보스의 인생 이야기인가 싶으면 주인공은 어느 사이 ‘올란도’를 능가하는 인물이 되어 있다. 그야말로 빈털터리, 맨몸으로 시작해 큰 사업가가 된 한 여자/남자의 이야기인가 싶으면 벽돌을 굽는 한 장인의 예술혼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시 여러 시대를 살다 간 인물들의 지난 세기의 이야기인가 하면, 이것은 오늘의 이야기이다.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란 본시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후에, 『고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이야기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춘희를 이야기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금복을 이야기할 것이고 또다른 이는 노파를 이야기할 것이다. 어쩌면 칼자국과 걱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며, 철가면과 청산가리, 쌍둥이자매와 코끼리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그 수많은 에피소드와 인물들 중에는 생각나지 않는 것들도 있으리라.
그런데 이건 뭘까. 이 서로 다른 수십 가지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얽혀드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로 어우러져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문학동네소설상 제1회 수상자인 소설가 은희경의 말대로,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섞임”과 “확장”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인물들과 여러 유형의 인물들, 여러 가지 사건들이 서로 섞이고 녹아 얽혀드는 동시에 이러한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점점 넓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소설 안에 이런 대목이 나오죠. ‘세상에 떠도는 얘기란 본시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 화자인 이야기꾼을 등장시킨 건 말하자면 놀기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어서였습니다. 어느 정도 파격도 가능하고, 구라도 치고, 능청도 떨고, 또 그러면서 백 프로 믿을 수도 없고, 그래서 의심은 가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말솜씨에 점점 빨려들고…… 이야기꾼은 자유롭게 영화 속 인물을 끌어들여 현실의 인물들과 뒤섞고, 괴담이나 야담에서도 이야기를 끌어와서 자연스럽게 버무리고…… 그렇게 마음껏 놀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이야기꾼이 있음으로 해서 가능해진 겁니다. 정색을 하고 덤비는 것보다 이렇게 느슨하게 한 발 물러선 형식을 택한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이 사람, 기분 나쁘다. 그래, 너 잘났다. 재주 있다. 이야기꾼이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암상’이다. 따로 구분 기준을 두지 않아도 ‘암상’인지 ‘심술’인지 알 수 있다는 그의 할머니의 두 가지 구분법에 따르면…… 그는 크지 않다. 작다고도 볼 수 있는 그 몸 안에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쉽게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거대한 물고기인가 싶으면 젖을 물려 새끼를 기르는 고래처럼,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유순해 보이기만 하더니 무엇 때문인지 뭍으로 올라와 자살하는 고래처럼,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그의 소설 『고래』처럼. 그는 그저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았을 뿐이라고, 본인은 별로 한 게 없다고, 또 자신은 문학에 목매는 ‘문청’이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영화연출 ‘준비중’이다. 등단하던 지난해, 일 년 전에도 그는 ‘준비중’이었다. 그렇게 준비만 한 지가 벌써 오래라면서도 그걸 놓을 생각을 않는다. 아니 그렇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쿨~한 척, 아무렇지 않게 문학을 이야기하는 그가 더욱 미더운 것은 왜일까.

“이 작가는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작품에 빚진 게 별로 없는 듯하다. 따라서 인물 성격, 언어 조탁, 효과적인 복선, 기승전결 구성 등의 기존 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약간 거창하게 말한다면, 자신과는 소설관이 다른 심사위원의 동의까지 얻어냈다는 사실이 작가로서는 힘있는 출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은희경(소설가)

그 무엇에도 빚진 게 없는 작가, 라면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디 그렇기만 할까. 굳이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의 몸속엔 한 세기를 살아온 특별한 할머니의 유전자 말고도 “지난 세기 위대했던 작가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을 것이고, “이야기 또한 그렇게 시간을 가로지르며 생명을 연장해나”갈 것이다. 그에게 “소설을 쓴다는 건 지난 시대의 작가들과 다시 만나는 일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그에게 물을 것이고, 그는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문답은 다시 이야기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다시, 계속될 것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고래』는 소설이 갈 수 있는 최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만은 틀림없다. 과연 소설의 확장이 어디까지인가 확정짓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소설이 할 수 있는 바는 그 경계 바깥으로 끊임없이 월경하는 것뿐일 것이다. 『고래』는 남미소설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느 순간 소설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또다른 공간으로 들어갔다.”--신수정, 문학평론가
* 인용문은 '심사평' 및 '수상작가 인터뷰' '수상 소감' 참조
고령화 가족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고래』의 작가 천명관 두번째 장편소설!

기존 소설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소설의 경계를 저 멀리 밀어내버린 문제작으로 높이 평가받았던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고래』의 작가 천명관이 두번째 장편소설을 선보인다. 『고래』가 하나의 이야기가 또다른 이야기를 낳고, 그 이야기가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며 한바탕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장’을 펼쳐 보였다면, 『고령화 가족』은 한 가족 안에서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벌이는 온갖 사건사고와 그들간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유쾌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낸다.

도대체, 이놈의 집구석엔 멀쩡한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인가!

아저씨, 내 이름 알아요? 조카 이름도 모르는 삼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기집애, 넌 싸가지만 없는 줄 알았더니 의리도 없냐?
저게 이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여?

데뷔 영화가 흥행에 참패한데다 ‘그해 최악의 영화’에 선정되기까지 하면서 십 년 넘게 ‘충무로 한량’으로 지내던 오십줄의 늙다리 ‘나’에게 남은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아내는 일찌감치 곁을 떠났고, 알량한 월세보증금은 밀린 방세로 다 까이고, 세간마저 하나둘 팔다보니 남은 거라고는 늙고 초라해진 몸뚱이뿐.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 회생불능의 상황에 처한 ‘나’에게 “닭죽 쑤어놨는데 먹으러 올래?”라고 무심한 듯 물어오며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엄마. 고민의 여지 없이 나는 다시 엄마 집으로 들어가 살기로 한다.
엄마 집엔 이미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사업한답시고 다 날려먹고 지금은 120kg 거구로 집에서 뒹굴거릴 뿐인 백수 형 ‘오함마’가 눌어붙어 사는 중이고, 곧이어 바람피우다 두번째 남편에게서 이혼을 당한 뒤 딸 ‘민경’을 데리고 들어오는 여동생 ‘미연’까지, 우리 삼남매는 몇십 년 만에 다시 엄마 품 안으로 돌아와서 복닥복닥 한살림을 시작한다.
‘사람은 그저 잘 먹는 게 최고’라며 자식들에게 매일같이 고기반찬을 해 먹이는 엄마, 그 고기 한 점 더 먹겠다고 아귀같이 달려드는 형, 허구한 날 남자를 갈아치우는 카페 마담 여동생, 맞춤법 하나 제대로 모르면서 피자 한 판은 저 혼자 다 처먹고 담배나 꼬나무는 조카. 도대체 이놈의 집구석엔 제대로 된 인간이 아무도 없느냐고 탄식해보지만,
어라? 지금껏 나만 모르고 있던 우리 가족의 과거사와 각자가 감춰두고 있던 비밀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집을 떠난 지 이십여 년 만에 우리 삼남매는 모두 후줄근한 중년이 되어 다시 엄마 곁으로 모여들었다. 일찍이 꿈을 안고 떠났지만 그 꿈은 혹독한 세상살이에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혼과 파산, 전과와 무능의 불명예만을 안고 돌아온 우리 삼남매를 엄마는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순히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다시 끼니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식들을 집으로 데려가 끼니를 챙겨주는 것뿐이었으리라. 어떤 의미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고기를 해먹인 것은 우리를 무참히 패배시킨 바로 그 세상과 맞서 싸우려는 것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몸을 추슬러 다시 세상에 나가 싸우라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엄마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엄마에 대해 내가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사생활은 물론 엄마의 성격에 대해서도 별반 아는 게 없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한 엄마는 그저 생활력 강하고 약간의 허영심이 있는 보수적인 노인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엄마는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젊은 시절, 외간남자와 눈이 맞아 자식들을 팽개친 채 야반도주를 하기도 하고, 어두운 진실을 사십년간 감쪽같이 덮어둔 채 배 다른 자식과 씨 다른 자식을 억척스럽게 한 집에서 밥해 먹여 키우고, 세상사에 실패하고 돌아온 자식들은 다시 거둬주고, 뒤늦게 재회한 옛사랑을 불륜의 씨앗인 딸의 결혼식장에 불러들인 엄마라는 여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세련되지도 쿨하지도 않은 이들 가족의 좌충우돌 생존기를 통해 작가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보금자리도 아닌, 인생을 얽매는 족쇄도 아닌 ‘가족’의 의미를 찾아간다. 우리 주변에 흔하디흔한 것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뻔하디뻔한 것이 가족에 대한 사랑 이야기라고? 찌질하지만 구차하지 않고, 애틋하지만 질척거리지 않는, 개성 만점의 톡톡 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것은 ‘희대의 이야기꾼’ 천명관이 들려주는 가족 ‘이야기’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제대로 돈이 되는 일엔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났다.
고급 오 데 코롱처럼 가볍고 상쾌한 냄새! 지금이 바로 그랬다.


정식 조직원을 꿈꾸며 형님 밑에서 애쓰는 어린 건달 울트라는 사설경마에 투자한 두목의 심부름으로 말을 손 보러갔다 우연히 종마를 훔쳐와 몰래 키우게 된다. 그런데 그 종마가 무려 35억짜리일 줄이야. 겁먹은 울트라는 종마를 끌고 도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한편, 인천 연안파의 양 사장을 중심으로 밀수 다이아몬드를 노리고 각지의 건달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부산의 손 회장, 영암의 남 회장 등 연식이 오래된 굵직한 건당 두목들부터 냄새를 맡은 조무래기 양아치들까지 모이는 결전의 순간이 다가온다. 과연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는 것은 누구일까. 울트라는 35억 종마를 데리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건달, 양아치, 삼류 포르노 감독, 대리 운전사, 사기꾼, 마사지사 등 밑바닥 군상들이 각자의 인생을 건 한 바탕 도박을 시작한다.
이 소설은 대하서사가 아님에도 꽤 많은 수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럼에도 치밀하게 짜여진 케이퍼 무비의 각본을 보는 듯 주인공들은 저마다 팀을 이뤄 동일한 타깃을 향해 움직인다. 물론 이 와중에 신뢰와 협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목표물을 먼저 손에 넣은 자만이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 얽히고설킨 건달들의 조직도 안에서도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천명관의 이야기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아찔하게 펼쳐진다.

인생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이번에도 역시 짐작할 수 없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명관의 이야기처럼!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4개월 동안 카카오페이지에서 사전 연재를 통해 독자들과 먼저 만났다. 문학보다는 대중적인 장르소설 위주의 작품들이 사랑받는 플랫폼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8만여 독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영화로 만들어달라는 댓글들로 넘쳐났다. 일찍이 한국 순수문학의 견고한 테두리 밖에서 서사적 내공을 쌓아온 천명관이기에 대중과의 교집합은 클 수밖에 없다. 문단의 취향이 아닌 철저히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천착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천명관이야말로 전통적인 서사의 맥락을 가장 착실하게 전수하고 작가일 것이다. 고래에서 시작된 기발한 상상력과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힘은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거치며 사회적 비판 의식을 갖춘 리얼리즘의 가능성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번 소설은 보다 대중적이고 영화적이다. 전통적 문학 독자만이 아니라 웹소설과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까지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결하다. 하지만 그 간결한 대사와 이야기에는 인생의 비애와 아이러니를 포착해내는 천명관 특유의 화법이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이 소설 속의 사내들은 평탄한 삶을 물려받지 못했다. 악다구니처럼 펄펄 뛰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내가 당하기 전에 먼저 상대를 공격해야 하는 생존의 법칙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구라와 허세, 험한 욕설을 무기처럼 장착하고 전장으로 나가는 수컷들의 삶을 작가는 냉소와 유머를 섞어 차지게 묘사한다. 그러나 허망한 인생들에게도 꿈과 순정은 남몰래 꿈틀거리는 것. 유일하게 등장하게 여성 캐릭터인 연희(지니)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남자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마력을 뽐낸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작가가 인용한 제임스 브라운의 노랫말처럼 ‘남자들은 여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현은 이 지질한 사내들의 텅 빈 내면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한번 붙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천명관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예상과 추측을 벗어나 이야기는 생명력을 부여받아 제멋대로 나아간다. 인물들의 운명은 어찌 될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을 집필해주는 작가가 있다면 물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그렇게 우리는 천명관의 다음 이야기를 또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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