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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부업 소독 전염 도마뱀이 숨 쉬는 방 공생 닻 택배 작품 해설 과거도 미래도 없는 현세적 삶 - 김만수(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작가의 말 수록 작품 발표 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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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에 모여 앉은 주민들은 불행이 비껴간 자리에서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시와 당국에 환경관리 보상금을 청구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이장 강씨는 모여 앉은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며 또다시 자신이 나서서 할 일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열정을 느꼈다.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밤이 늦도록 마을회관엔 불이 밝혀져 있었다. 안전관리를 위한 보상금에 대해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잔칫날처럼 설레는 밤이었다.
강가에는 까맣게 녹아 형체를 알 수 없어진 검은 물체가 놓여 있었다. 털이 그을려 까칠한 강아지 한 마리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냄새를 맡으며 그 주변을 서성댔다. 이따금 강아지는 심하게 몸을 떨면서 환하게 불이 켜진 마을회관 쪽을 건너다보았다. 하지만 강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컨테이너」중에서 “이 징한 것을 나라고 하고 싶어서 하는 중 아나? 못할 짓인 건 내가 할 소리네. 내 가진 거라곤 이놈의 집배끼 없는데, 허리도 못쓰는 우리 집 양반 일자리 털어묵고 나댕기지. 나도 몸뚱이는 아퍼 쌓고, 내가 무슨 재간 있냐고. 그 집 애덜은 그래도 에미 애비는 있잖어. 불쌍한 우리 조카 새끼덜 데려다 멕이지도 못허고 입히지도 못허고 사는디. 내 맘 졸이는 걸 누가 안가, 개새끼라두 팔어묵어야 내가 산게. 사람이 살고 봐야지. 인자 집 떠날 날도 머잖았는디, 불쌍한 그 새끼덜 고등핵교는 갤켜야 헐 거 아닝가. 나 내놀 것은 목숨배끼 없어. 가덜 델고 있는 동안은, 날 죽인대도 할 수 없당게……” ---「부업」중에서 라인! 라인을 생각하자 정신이 명료해진다. 그녀에게 전염병자라고 말하는 손가락들이 보인다. 추파를 던지는 동창들의 얼굴도 보인다. 하지만 상관없다. 라인이 있는 한. 라인을 키울 수만 있다면. 브레이크를 밟은 다리와 운전대를 잡은 팔에서 연소되지 않은 기이한 힘이 뻗쳐 올라온다. 마치 그녀의 몸안에 무쇠 같은 힘이 갇혀 있어 이 순간 출구를 찾는 것 같다. 심호흡을 하고 핸들을 돌려 갓길을 벗어나면서 유빈은 턱이 으스러지도록 어금니를 문다. 네트워크를 거느린 사업자로서 완벽하게 성공한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이대로 가속기 페달을 밟고 방향 조정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물의 벼릿줄은 이미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다. 유빈의 얼굴에 떠오른 살기 띤 웃음이 입술 근육을 따라 눈가로 옮겨간다. ---「전염」중에서 쓰레기통 뒤에서 도마뱀이 느리게 모습을 드러낸다. 리모컨을 집어던진다. 쓰레기통을 맞추고 떨어진 리모컨에서 야단스럽게 건전지가 굴러나온다. 용케도 조준을 피한 채 벽으로 기어오르는 놈의 꼬리가 유연하다. 소름이 돋는 목덜미를 문지르면서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갑자기 온 집 안이 도마뱀 소굴 같다. 방 안 구석구석에 사냥감을 노리며 숨어 있는 놈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집 안뿐이 아니다. 도처에 우글거리는 놈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축축한 혓바닥을 날름대며 단물을 찾아 눈을 번들거리는 저놈의 유연한 몸뚱이. 그 징그러운 살비늘 속에서 화 한 번 낸 적 없는 최사장의 얼굴이 느물대며 웃고 있다. ---「도마뱀이 숨 쉬는 방」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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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명주의 첫 소설집이 나왔다. 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탁명주는 1990년 시집『통째로 가슴이 멍들다』(뿌리)를 상자한 바 있다. 2004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부업」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등단했고, 2015년 단편「컨테이너」로 아르코창작기금을 수상했다. 등단 12년 만에 내어놓는 첫 소설집에서 작가는 “이 시대를 통과하면서 기록자로서 펜을 들고 암중모색하는 동안 내가 다루고 싶었던 담화를 누르고 먼저 튀어 오른 이야기들”을 담았다고 말한다.
탁명주의 소설은 무엇보다 완미하고 튼실한 단편의 미학을 성취하고 있다. 오랜 적공(積功)이 느껴지는 문장은 “더하거나 뺄 단 하나의 어휘도 남겨두지 않는”(방현석) 팽팽한 밀도를 유지하며, 풍부한 함의와 열린 결말을 향해 촘촘하게 짜여 있는 서사는 신인답지 않은 원숙미마저 드러낸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만큼만 절제하는 가운데 탁명주의 소설은 잘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이면을 예리하고 풍성하게 포착한다. 믿을 만한 작가의 등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부업」「소독」「전염」이 모두 소외된 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전선을 다루는 듯싶으면서도, 그들 내부에 도사린 또 하나의 ‘균열된 인격’을 다루는 것은 현실의 모순을 반영하는 서사의 균열이라는 맥락에서 살필 수 있다. 이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이 소외된 자들이라고 외치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이 타인을 소외하는 주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표제작 「도마뱀이 숨 쉬는 방」은 필리핀 한인 사회에서 벌어진 사기 사건을 다룬다. 방구석에 붙어 있는 도마뱀은 아무리 보아도 이물스럽다. 도마뱀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리다가 먹잇감이 나타나면 재빠르게 혓바닥을 뻗어 먹어치우는데, 그 흉측스러운 모습을 받아들이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의 교육이나 사업을 위해 필리핀을 선택한 한인들이 있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방구석에 조용히 붙어 있는 도마뱀, 그리고 느려터진, 아무래도 근대 도시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현지인들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존재가 있으니 한인 사회 내부에 들어앉은 도마뱀 같은 사기꾼 족속들이다. 주인공이 부업으로 재봉틀을 돌려 마련한 비자금 칠천만 원을 송두리째 사기쳐 훔쳐간 ‘최사장’이야말로 도처에 숨어 있는 도마뱀인 것이다. “갑자기 온 집 안이 도마뱀 소굴 같다. 방 안 구석구석에 사냥감을 노리며 숨어 있는 놈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집 안뿐이 아니다. 도처에 우굴거리는 놈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축축한 혓바닥을 날름대며 단물을 찾아 눈을 번들거리는 저놈의 유연한 몸뚱이. 그 징그러운 살비늘 속에서 화 한 번 낸 적 없는 최사장의 얼굴이 느물대며 웃고 있다.” (177쪽) 탁명주의 소설은 서술되는 시간의 폭이 매우 짧다. 예컨대 남편의 사업이 기울어 아내가 부업 전선에 나간다는 상황이 소설의 출발점이라면, 소설의 결말은 부업 전선에서 고투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끝난다. 이들 인물을 움직이는 과거의 역사나 기억도 없고, 더군다나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희망 따위도 없다. 그저 생활 전선에서 고투하는 현재적 상황만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독한 리얼리즘에는 아예 ‘지독한 현세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을 정도이다. 추천의 글 이 독특한 긴장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쓸쓸함이 쓰라림으로 전환되는 아찔한 순간을 포착하는 탁명주의 능력은 탁월하다. 『도마뱀이 숨 쉬는 방』에 쓰인 모든 문장은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인간의 슬픔을 부축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탁명주는 더하거나 뺄 단 하나의 어휘도 문장에 남겨두지 않음으로써 거짓 위로가 불가능함을 입증한다. 방현석 (소설가·중앙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