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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 미술 저널리즘의 정립을 위하여(이경성) - 한국 현대미술의 생생한 증언(이구열) - 마치 이삭을 줍듯(오광수) - 내가 만난 이규일 :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정중헌) <화단의 파벌, 그 뿌리> - '서울대파'. '홍대파' 만든 장 발과 윤효중 - 국제전 대표 작가 선정의 꿍꿍이 속 - 이해따라 명멸한 미술 그룹 <사건 국전 30년> - 국전 작품 도난 사건 - 국전 오자 시비와 소전의 죽음 - 국전 심사를 뒤엎은 '장외 국전' - 국전 부조리의 흑막 - 국전에 반기든 낙선 작품전 <창작과 비평 싸움, 모방과 표절 시비> - 인신 공격으로 빗나간 이응로 남관 김흥수 미술 논쟁 - 서세옥과 문명대의 '창작과 비평' 싸움 - 미술작품 표절 시비 <역사 속의 미술인> - 친일 화가 파동의 속 얘기 - 세번 뒤집힌 '4.19 기념탑' - 이당과 월전의 충무공 영정 시비 <화랑과 그림 값 그리고 전시회 비화> - 그림 값, 어제와 오늘 - 화랑가의 '흘러간 별' - 한국회화 유럽 순회전의 명암 - 민중미술 탄압으로 중단된 「현발 창립전」과 「20대 힘」전 <예술가의 삶과 그 주변 이야기> - 왕대밭에서 왕대 난 미술인 가계 - 미술인의 결혼 풍속도 - 누드 미술 70년의 비화 - 근, 현대 미술인 아호 |
李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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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 김은호가 1930년에 그린 「매란방」은 그가 1929년 여름 의재 허백련과 함께 북경을 여행할 때 칠월칠석날을 택하여 무대에 오른 당시 중국 제일의 인기 미남배우 매란방과 그 일행의 가무극을 보면서 맨앞자리에 앉아 스케치, 매란방을 모델로 해서 그린 것이다. 이당은 생전에 매란방에 대하여, "그 표정이며 몸 움직임이 절색 미녀 이상이었고 몸맵시도 날렵했다. 살결 또한 화장을 했겠으나 너무나 희고 보드라워 보였다. 미녀인들 그럴 수가 있을까 싶게 매혹적인 사내였다."고 말했다.
이당이 1939년에 제작한 「춘향 초상」은 기생 김명애가 모델이었다. 호남은행 두취(은행장) 현준호가 돈을 내놓고, 김팔봉 김형원 김태준 송석하 이여성 유치진 등이 고증위원이 되어 이당의 춘향 초상 제작을 도왔다. 이당은 모델을 구하기 위해 조선권번에 사람을 넣었다. 술도 잘 마시지 못하는 그가 친구들을 앞세우고 기생집을 출입, 마침 조선권번에서 아주 예쁜 소녀기생을 발견했다. 김명애(기명)라는 예쁜 기녀는 이당의 간청으로 선선히 모델 노릇을 해주었다. 김명애는 국악원장을 한 함화진의 소실 딸이어서 명성도 있었고 가야금 솜씨도 좋았다. 그는 이당 화실에 와서 왼손으로 치맛자락을 가슴께로 사뿐히 걷어올리고 다소곳이 서서 모델 노릇을 톡톡히 했다. 소녀기생을 모델로 한 춘향 초상이 완성되자 동아일보(39년 5월 31일자)는 "길이 6척 5촌, 너비 3척 5촌의 화폭에 이당의 신필로 그려진 16세 춘향의 입상은 미와 열과 의와 이성이 결정된 여신같이 아름답고 신비한 녹의홍상의 단정한 입상으로, 다문 입에 숨은 굳은 의지와 뒷날의 암야의 수난을 물리친 샛별같은 두 눈하며 복스런 귀와 탐스런 머리 모두가 동양미의 최고봉이요, 선마다 춘향의 혼이 숨쉬고 색마다 이 땅의 신비한 꿈이 숨어 있어 흡사 춘향이 호흡하는 듯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한다."고 보도했다. --- p. 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