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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
레온 플라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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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제이콥슨
슈투트가르트 실내악단,Stuttgart Chamber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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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즐겁게 하는 곡"
피아노 협주곡 A장조, K. 414 웅대하고도 의미 깊은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23번은 지극히 매혹적인 여동생을 데리고 있다. 역시 A장조로 되어 있는 K. 414가 그것이다. 모차르트는 1782년 12월에 이 곡을 빈 대중의 취향에 맞게 특별히 작곡한 일련의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로 썼다. 그는 빈의 청중이 특정 스타일을 요구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기교적으로 까다로우면서도 기존의 틀 안에 머물러야 했다. 작곡가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삼부작 K. 413~415에 대해 스스로 내린 평가는 후세에 전해졌다. "이들 협주곡은 너무 쉽지도 않고 너무 어렵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에 있습니다. 대단히 화려하고 귀를 즐겁게 하면서 지루한 느낌이 없이 자연스럽지요. 전문가라도 만족해할 만한 악구가 여러 군데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악구들은 덜 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분명히 즐거워할 수 있을 방식으로 작곡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왜 즐거운 것인지 이유를 알 수는 없겠지만요." 오늘날 사람들이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직관적인 천재성의 산물인 게 아니라, 사전에 시장 가치를 철저하게 계산한 결과였던 것이다. 모차르트는 전문가들이 K. 414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작품에 자신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들보다 더 많은 자유를 부여했다. 독주자는 많은 악구에서 간단한 즉흥 선율을 삽입함으로써 자신의 취향과 예술성을 보여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한 대목은 작품의 우아한 선율미와 장난기 깃든 고상함, 낙천성에 기여한다. 전문가를 위한 또 다른 즐길 거리는 2악장의 생동감 있는 동기이다. 이 동기는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가 오페라 장르를 탐구하는 데 인도자적인 역할을 한 작곡가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La Calamit?'에서 차용한 것이다. 바흐의 네 마디 악구가 일종의 공공연한 비밀처럼 삽입된 것은 대단히 존경하는 거장에 대한 경의에 찬 추모로 볼 수도 있다. 비록 바흐가 죽은 것은 거의 1년 전인 1782년 1월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차분하면서도 존경에 찬 어조로 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영국의 바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는지요? 음악계에 이 얼마나 큰 손실이란 말입니까!" "매우 희귀한 사건" 3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F장조, K. 242 "영광입니다, 친애하는 애국자여!" '아우크스부르크와 학자들을 위한 신문'(Augsbuerg Staats- Und Gelehrten-Zeitung)은 1777년 10월 21일자 기사에서 아첨 어린 논조로 어떤 특별 방문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런 작곡가가, 이런 동포가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에 대해 온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가 부러워하고 있다. 정치 신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방금 언급한 나라들에서 지극히 경이로운 능력을 보여주었던 기사 볼프강 아마데 모차르트 씨(Herr Chevalier Wolfgang Amad? Mozart) 외에 다른 누구에게도 적용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가 이런 능력을 우리에게도 보여줄지 지켜보자. 내일, 10월 22일 수요일에 기사 모차르트는 음악회를 열 예정이며", 이 공연에서는 "적절한 편성의 교향곡"뿐만 아니라 "세 대의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협주곡도 연주되게 된다. 매우 희귀한 사건이 행운 덕에 이루어졌다." 이 '행운'은 모차르트의 부친인 레오폴트의 고향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함머클라비어의 기능을 향상하는 데 초석을 놓은 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이 제작한 세 대의 신품 피아노포르테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모차르트는 이 기회를 활용하기에 알맞은 작품을 써둔 상태였으며, 이 곡을 슈타인 및 대성당의 오르간 주자인 요한 미하엘 데믈러와 함께 연주했다. K. 242에 해당하는 F장조로 된 이 곡은, 이때보다 1년 반 전인 1776년에 마리아 안토니아 로드론 백작부인의 위촉에 응해 작곡되었기 때문에 일명 '로드론 협주곡'이라고도 한다. 잘츠부르크의 유명한 가문인 모차르트 일가에게서 환영받았던 이 백작부인은 '로드론 세레나데'라 불리는 두 디베르티멘토, K. 247과 모차르트가 그녀의 명명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K. 287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3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백작부인의 요구에 맞춰 특별히 작곡된 곡이다. 안토니아 로드론 백작부인과 그녀의 맏딸 알로이시아가 제1독주부와 제2독주부를, 열한 살 난 딸 요제파가 제3독주부를 맡았다. 이 세 번째 독주부는 대단히 단순하며, 기본적으로 화음을 반주하는 수준에 머문다. 따라서 모차르트가 1779년에 이 곡을 피아노 두 대를 위해 편곡했을 때도 한 자리에서 세 명의 독주자를 볼 수 있다는 희귀한 체험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누락된 요소가 전혀 없었다. 모차르트는 1777년 이전에는 슈타인이 제작한 악기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원래 하프시코드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 더 훗날 작성된 필사본에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편곡판과 마찬가지로, '제1하프시코드 독주'와 '제2하프시코드 독주'라고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었다. "주제적 창의성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는 곡" 피아노 협주곡 A장조, K. 488 모차르트 학자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곡은 모차르트의 '가장 특징적인 창조물'이었다. 사실 이 고전주의 피아노 협주곡에는 선구적인 작품이 있었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와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바겐자일이 피아노 독주와 관현악을 위해 쓴 협주곡 역시 '고전주의적'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그러나 독주자와 관현악 사이에 이상적인 균형을 창출한 사람은 그때까지 오직 모차르트뿐이었으며, 그의 작품 가운데 이 장르에 속하는 스물 세 곡을 작곡가의 작품 전체에서 절대적인 중심점에 두는 것 역시 지나친 일만은 아니다. 모차르트는 빈의 궁정에서 열린 가면무도회에서 인도 철학자로 분장한 채 화려하게 등장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1786년 3월 2일에 '피아노 협주곡 A장조, K. 488'을 완성했다. 이로써 이 장르에서 사실상 유일한 본보기가 된 작품이 탄생하였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이 작품의 첫 악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짜임새 면에서 이처럼 단순하고, 총주와 독주 사이의 주제 관련성이 이처럼 '정상적'인, 혹은 주제적 창의성이 이처럼 선명하게 드러난 1악장을 달리 쓴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 있는 이 악장에 대해서는 '고전적인 균형감'이나 '고전적인 평정'이라는 표현이 완벽하게 어울린다. 독주자가 실험을 행하거나 감정을 폭발시키는 경우는 없으며, 이상적인 모습에서 멀어지는 일도 없다. 이 악장이야말로 빈 고전파와 그들의 구성 원칙에 대한 전범으로 간주할 만하다. 음의 균형을 깨트릴 가능성이 있는 악기(예를 들어 트럼펫이나 팀파니)는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또한 다른 경우라면 오보에가 맡았을, 친밀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클라리넷이 대신 수행하고 있다. 모차르트는 자신이 빈에서 쓴 일련의 위대한 피아노 협주곡을 자신이 직접 개최하는 공연을 위해 썼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공연에서 그는 공연 수입으로 변제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비용을 혼자 힘으로 조달했다. 그는 교정을 보거나 어떤 종류의 사무적인 일로 바쁠 때와 마찬가지로 피아노포르테 앞에 직접 앉아서 연주할 때도 카덴차를 미리 써두지 않고, 그 시점에서 즉흥으로 연주했다. 이 사실은, 불행하게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의 카덴차 가운데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영할 만한 예외가 바로 협주곡 A장조로, 이 곡의 1악장에는 작곡가가 쓴 카덴차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도 K. 488은 협주곡 장르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모차르트는 마지막 론도 악장에서 별도의 카덴차를 두지 않음으로써, 이 악장의 엄청난 활기와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피아니스트의 기민함을 증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고 있다. 1악장이 이 A장조 협주곡의 형식적 핵심을 이룬다면, 감정적 정수는 느린 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칠리아노 리듬이 적용된 이 악장은 모차르트가 그 시점까지 쓴 것 가운데 어두운 분위기의 단조로 일관하는 몇 안 되는 경우에 속한다. 99마디에 불과하지만 날카로운 불협화음을 들려주며, 풍부한 악상을 지니고 있어 이 작품 내에서도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오함과 거의 뼈에 사무칠 정도의 슬픔을 아울러 지닌 신세계를 말이다. 글: 슈테판 시크하우스(Stefan Schickhaus) 번역: 황진규 레온 플라이셔 "지극한 우아함의 경지이며, 황홀함의 경지이다. 참으로 경이롭다. 어떤 말로 이걸 표현할 수 있겠는가? 건반에 대한 인식의 차원이 달랐다. 내가 내 손을 잡는 것과 같은 밀접한 접촉의 느낌이었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레온 플라이셔는 피아노계의 거인이자 교육자였던 테오도르 레셰티츠키의 문하생인 위대한 아르투르 슈나벨의 제자였다. 또 레셰티츠키는 카를 체르니의 제자였으며, 체르니는 베토벤에게서 배웠다. 1944년에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데뷔한 플라이셔는 머지않아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로서 지위를 확립했으며, 주요 오케스트라 대다수와 협연하는 한편 시금석이 될 만한 녹음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남겼다. 그의 연주 경력은 37세 되던 해에 국소성 이긴장증으로 알려진 신경질환으로 인해 오른손의 두 손가락을 쓸 수 없게 됨으로써 갑자기 중단되었다. 레온 플라이셔는 피아노 경력이 갑작스럽게 끊겨버린 뒤로 거의 40년에 걸쳐 왼손을 위한 피아노곡이라는, 그리 좁지는 않으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레퍼토리를 탐구하는 한편으로 지휘자와 교사라는 두 가지 경력도 함께 추구해 왔다. ?는 1967년부터 지휘를 시작했으나, 언젠가 다시 두 손으로 연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근육 마사지 요법과 보톡스 주사를 병행한 재활 치료는 플라이셔가 손의 움직임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최근에 그는 양손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가 2004년에 두 손으로 연주해 녹음한, 적절하게도 '양손으로'(Two Hands)라는 제목이 붙은 음반은 엄청난 갈채를 받았다. 플라이셔의 이야기는 2006년에 오스카상과 에미상에 지명된, 같은 제목을 단 다큐멘터리 영화(내더니엘 칸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플라이셔는 2007년에 워싱턴 케네디 센터가 수여하는 케네디 센터 상(Kennedy Center Honor)을 받았다. 이 해는 케네디 센터 상이 제정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레온 플라이셔가 80세 생일을 맞이한 2008년에 열린 기념행사 가운데는 소니 마스터웍스에서 그의 녹음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만 골라 제작한 선집 'The Essential Leon Fleisher'의 발매도 포함된다. 그는 2008~09 시즌에 독주자로서 혹은 독주자 겸 지휘자로서 공연했던 모든 곳(볼티모어, 보스턴, 시카고, 디트로이트, 샌프란시스코)에서 청중과 악단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으며, 연말에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한 공연은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그는 같은 시즌에 뉴욕, 보스턴, 볼티모어에서 독주회를 열었으며 런던과 브뤼셀, 루체른에서는 40여 년 만에 다시 두 손 모두 연주하는 독주회를 가졌다. 레온 플라이셔는 2009년 상반기에도 런던과 뉴욕, 워싱턴에서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과 협연 무대를 계속 갖고 있다. 플라이셔는 2005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예술과 문학 부문의 레종 도뇌르 코망되르' 훈위에 서임되었다. 지난해 5월에는 시카고 음악재단 측이 매년 주최하는 축연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라스베가스에서 세계 피아노 교육 협회(그는 이 협회의 임원이기도 하다)가 수여하는 상을 받았으며, 2009년 봄에는 암허스트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으며 자신이 교수회 임원으로 있는 피바디 음악원에서 기념 축연을 갖는다. 플라이셔는 현재 작가이자 음악 비평가인 앤 미드제트와 함께 더블데이 출판사에서 출간될 책을 집필중이다. 캐서린 제이콥슨 플라이셔 캐서린 제이콥슨 플라이셔가 독주자 및 피아노 이중주단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실내악 연주로서 쌓은 국제적인 경력은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그녀가 피아노 파트너인 레온 플라이셔와 함께 연주한 카네기 홀 데뷔 공연에 대해 '풍요로운 음악성과 세련된 기교'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녀가 협연한 오케스트라로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욕 현악 오케스트라, 일 드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 포르투갈의 굴벤키안 오케스트라, 아스펜 체임버 심포니 등이 있다. 그녀는 유럽과 캐나다, 스칸디나비아, 서인도제도, 한국, 일본, 싱가포르, 멕시코, 미국 등지에서 공연을 가졌다. 제이콥슨 플라이셔는 피바디 음악원에서 피아노 앙상블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인 레온 플라이셔와 함께 세계 각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 1945년에 창설된 슈트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60년이 넘도록 국제 관현악계에서 최상의 자리를 유지해 왔다. 직업적인 실내 관현악단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 단체는, 의심의 여지없이 나중에 등장한 다른 악단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들의 첫 녹음은 1948년으로 거슬러간다. 이들의 녹음은 프랑스의 '그랑프리 뒤 디스크' 상을 비롯해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세계 각지에서 가진 무수한 공연과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음악제에 참여한 것은 이 악단의 높은 수준과 엄청난 명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는 1995~2006년에 걸쳐 이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봉직했다. 20세기 음악을 다수 선곡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필립 글래스나 기야 칸첼리 같은 작곡가는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에 자신의 작품을 헌정하기도 했다. 2006년 9월부터는 미하엘 호프슈테터가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악단과 더불어, 바로크와 고전파에서 세계 초연작과 위촉한 신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실내악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있다. 2008년에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유럽 실내악상을 수상했다.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와 슈투트가르트 시, 로베르트 보쉬 유한회사의 후원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