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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 임경석(편집위원장)
기획 1.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는 어떻게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뒤흔드는가? 1. 역사교과서 파동의 전말과 우리의 대응 / 윤종배(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2. 교육에 대한 이데올로기 조작 - 안보교육과 친재벌적 경제교육 / 진영효(전교조 교과연합 의장) 기획 2. 국내외 역사교과서 발행제도 1. 일본의 교과서 제도와 역사교과서 / 권오현(경상대 교수) 2. 미국의 교과서 발행제도와 그 문제점 / 김현숙(성균관대 강사) 3. 유럽의 교과서 발행제도 -영국?프랑스?독일의 사례를 중심으로- / 이용재(전북대 교수) 4. 한국사 교과서 발행의 과거와 현재 / 이신철(성균관대 연구교수) 기획 3. 교육 현장의 목소리 1. 교과서 교체 압력에 맞서는 역사교사들 / 이성호(배명중 교사) 2. 나는 왜 일제고사를 반대하는가 -평가권은 교사자율권의 문제다- / 설은주(전 서울 유현초 교사) 3. 역사교재가 이적표현물이 되기까지 / 최보경(간디학교 교사) 기획 4. 역사 교과서에 담긴 한국근현대사 인식 1. 개화기 역사 교과서의 당대(19세기) 인식 / 양정현(부산대 교수) 2. 이념이 실증을 압도하다 : 검인정기 한국사교과서(1946~1973) / 김정인(춘천교대 교수) 제2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령작, 심사평 1. 나의 박사학위논문 「조선총독부의 ‘총동원체제’(1937~1945) 형성 정책」을 말한다 / 안자코 유카 2. 총동원체제의 전개 과정 및 전제적?군사적 성격의 규명을 통한 식민지시대 역사인식 확대 / 제2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심사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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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역사 교과서
역사교과서가 수난을 겪고 있다. 역사적 진실을 탐구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할 교과서가 당리당략과 이념 공세의 수단으로 전락될 위기에 처했다. 역사 교육과 연구가 정치 권력의 개입으로 인해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 표류할 지경에 놓였다. 위기의 조짐은 이미 5년 전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2004년 10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은 교육부 국정감사장에서 검인정 제도를 통과한 6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가운데 하나를 들어서 색깔론을 제기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친북?좌파적’ 편향성을 띠고 있다고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국감장은 파행으로 치달았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 고교등급제 논란 등 시급한 교육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이념 논쟁이 전면에 부각됐다. 의회권력에 뒤이어 언론권력이 불씨를 지폈다. 신문 시장의 강자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권의원의 주장을 대서특필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사회적 갈등이 증폭됐다. 교과서 집필자들은 물론이고 학계와 교육계가 나서서 교과서를 볼모로 하는 색깔논쟁의 부적절성을 지적했다.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역사교육연구회 등 역사학계와 교육계를 대표하는 3개 학술단체는 공동 학술회의를 열어, 한나라당과 몇몇 신문사가 일으킨 역사 교과서 색깔 논쟁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나 위기는 종식되지 않았다. 그것은 4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훨씬 심각하게 확대된 형태로 말이다. 그 사이 대통령 선거를 통해 집권한 한나라당 이명박 정부는 역사 교과서 위기를 더한층 심화시켰다. 의회 정당과 언론권력에 더하여 ‘뉴라이트’를 자칭하는, 그러나 기실은 새로울 것도 없는 낡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지지자들과 기업가 단체, 각급 정부 기관이 가세한 탓이었다. 2008년 3월,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 포럼’이 포문을 열었다. 국가주의 이념에 입각한 이른바 ??대안 교과서 한국근현대사??를 출간한 것이다. 그에 뒤이어 대한상공회의소는 교육과학기술부에 역사교과서 수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방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정권을 미화하고 반공을 강조하는 내용의 고교 교과서 개정 요구 공문을 교육과학기술부에 전달했다. 자유교육연합과 뉴라이트학부모연합 등 11개 사회단체도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을 요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들이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채택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봇물이 터져 나오듯이 기득권층의 개입이 뒤를 이었다. 그에 힘입어 마침내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의 개악에 착수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6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 253개 항목을 문제시 삼았다. 그중 102건은 집필진이 스스로 고치도록 했고, 55건에 대해서는 수정 지시를 내렸다. 교과서 집필자들은 길고도 고통스런 싸움에 내몰렸다.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자들로 구성된 집필자협의회는 “검인정의 취지를 훼손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권고를 거부한다”고 천명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외롭지 않았다. 다시 한번 학계와 교육계가 호응해 나섰다. 먼저 1,301명의 역사교사들이 “역사학의 전문성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전국 역사교육자 선언을 발표했다. 그에 뒤이어 역사학자 676명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과 ‘출판사와 집필자에 대한 외압중단’ ‘정치적 목적하에 진행중인 교과서 수정작업 중단’ 3개항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에는 해외의 외국인 한국학 및 동아시아학 학자들도 가세했다. 학문후속세대도 이 대열을 뒤따랐다. 역사전공 대학원생들이 ‘역사 교과서 개악 저지를 위한 전국 역사 전공 대학원생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고 수정 반대 운동에 나섰다. 이처럼 역사 연구자와 교육자들이 대대적으로 의견을 표출한 배경에는 역사에 대한 정당한 신념이 깔려 있다. 역사는 정치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는 신념 말이다. 역사적 진실을 결정하는 것은 의회와 정부에 포진한 정치가들의 입맛이 아닐 터이다. 그것은 오직 학문적 탐구에 의해서만 확립된다. 역사학자는 과학적 방법으로 인간의 기억을 수집하고 분석하며, 자신의 연구 성과를 문서와 증거에 의거하여 확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역사는 특정한 정치세력의 요구에 따라 자의적으로 뜯어 고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지시는 검인정 교과서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검인정 제도는 획일적인 역사관을 강제하는 국정 교과서 제도와는 달리 다양한 역사 해석을 포용한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학기술부는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의 내용 수정을 강제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사실상 과거의 국정 교과서 체제로 후퇴하는거나 진배 없다고 하겠다. ‘교과서 포럼’이 출판한 이른바 ‘대안 교과서’가 현 정부의 구미에 부합한다면, 그것을 검정 심의과정에 상정하는 것이 옳다. 검인정 제도의 틀 속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때 한국의 뉴라이트는 일본의 극우 세력만도 못하다. 일본의 극우 세력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만들어 독자적인 검정 교과서를 쓰는 방식을 택했다. 그들은 침략적 배외주의를 조장하는 위험한 역사관을 유포하고자 한다. 하지만 교과서 검정제도라는 틀 속에서 행동하는 점에서는 한국의 유사한 세력보다 훨씬 더 세련됐다고 하겠다. 이제 역사교과서 문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패를 가르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금성출판사 집필자들은 교과서 수정금지 가처분 신청을 사법부에 제기했었다. 그러나 이 신청은 올해 1월 9일 기각됐다. 그래도 집필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 조치를 취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 지시문에 따라 교과서를 고치려는 출판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정지 청구소송을 냈다. 올해 1월 29일의 일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이번 호의 대주제를 ‘위기의 역사 교과서’로 설정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자들을 돕기 위해서이다. 역사 연구의 자유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검인정 교과서 제도의 후퇴를 저지하기 위해, 교육 현장의 획일화를 막기 위해,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분투하는 그들과 보조를 함께 하기 위해서이다. 이번 호는 대주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관련된 네 개의 기획 만으로 전 지면을 꾸몄다. 평소의 격식을 깨트린 셈이다. 역사교과서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잡지를 내자는 것이 편집위원회의 뜻이었다. 발간 시점의 실천적 요구에 부응하고,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도 찾아 읽고 싶어하는 잡지를 내려는 뜻이었다. 그 때문에 부득이 고정란들이 한 호 쉬게 됐다. 이해해 주실줄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