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살아 있는 언어로 벼락 치듯 우리를 전율시킨 시성
형태파괴적인 기법으로 비판과 부정, 절망과 분노, 풍자와 독설 등의 주제를 말해 온 시인 박남철의 일곱 번째 시집 《제1분》이 출간되었다. 그는 시의 전통적인 미덕이라 여겨 왔던 수사의 미나 구조의 미와는 멀찌감치 거리를 둔 채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찬 현실에 대해 날을 세워 왔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 <제1분> 외 네 편의 작품은 《제3회 불교문예》의 작품상이 선정되어 일각에서는 ‘신선한 충격’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불교문예》는 “자유자재한 비약과 과단성이 불교의 정신과 상통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인 역시 “언어는 기본적으로 논리의 도구이지만 선의 언어나 화두의 언어는 논리를 벗어난 데에서 그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시 세계는 실험적 형식을 빌려 오묘한 세계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진공(眞空)을 찾고 있다. 초기 시에서부터 보여 준 파격적인 해체적 시관을 지속적으로 흐트러짐 없이 일관하고 있는 유별난 장인의 경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변함없는 파격과 문법, 해체시 선두에 선 시인 박남철 1979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하여 줄곧 해체시의 선두주자로 불려 온 박남철은, 2005년 변함없는 파격의 문법으로 시 인생 27년 만에 <경희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번 시집 《제1분》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작품은, 기존의 작품과 차별성을 보이는 <제1분> 외 4편이다. 연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시들은 마치 길고 실험적인 한 편의 작품 같다. 각각의 시에다 《금강경》의 형식대로 <제1분>부터 <제5분>까지라는 제목을 달았을 뿐만 아니라, 또 모두가 각각 제1절과 제2절로 나누어진 일관된 형식을 취하면서 한 편의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 시의 제1절에는 시인이 직접 번역한 《금강경》의 분절들이 인용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잘 알려져 있듯, 석가모니와 수부티의 대화로 구성된다. 각 시의 후반부인 제2절에는 제1절에서 인용한 경전 내용에 대한 후세의 깨달음-발견-발화의 방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연작의 맥락에서 꺼내어 따로 읽어도 여전히 펄떡거리며 살아 있는 한 편의 작품이며, 연작시로 한꺼번에 읽을 때는 마치 냇물에 풀어 준 물고기처럼 리드미컬하게 물을 차고 있다. 이러한 효과가 가능한 이유는 이 연작들이 내용-방법(론)적인 차이와 반복을 동시에 구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순간의 형식적 재창조 연작 속에서 시인은 2500여 년에 달하는 시간을 공시적인 것으로 재창조하고, 한 화면씩 동시에 구성해 놓고 있다. <제1분>에서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시적 자아가 깨달음을 느끼는 순간을 쓰고 있으며, <제2분>부터 <제5분>까지는 각각 당나라 시대의 황벽 스님, 송나라 시대의 청원 유신 스님, 고려 말의 경한 스님, 그리고 1981년 성철 스님이 깨달음을 발화하는 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띄엄띄엄한 통시적 시간들은 매번 각 시의 제1절에서 행해진 석가모니와 수부티가 대화를 나누는 순간으로 다시 소환된다. 이는 2차원적인 평면의 이미지에다 3차원적인 정보를 담은 그림처럼, 얼핏은 모순 같아 보이지만, 분명한 진리를 보여 주고 있는 형식이다. 문학평론가 이수정은 “시인은 이러한 방식으로 ‘진리의 시간’인 ‘순간적 영원’ 혹은 ‘영원한 순간’을 형식-방법(론)적으로 재창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영원은 단지 지속성을 의미하지도 않으며, 언제나 순간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의 시 속에 사진이 들어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순간적 영원’을 시가 시각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일찍이 시도해 왔던 방법(론)적 실험이다. 박남철의 시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처음 발화된 순간의 뜻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방법적으로 보여 준다. 그것은 때 묻거나 낡거나 휘발되지 않으며, 깨닫는 자에게 매번 새롭게 재생되는 진리다. 시적 자아는 자신을 ‘신용불량자’로 명명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호칭은 오늘날의 대부분의 시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현실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파산 난 언어와 비루한 인식과 파탄 난 세계의 잔고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인은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를 창조-생산하여 인식과 감각을 새롭게 하고, 이 새로이 닦은 두 개의 렌즈로 힘겹게 세상을 바라본다. 이혼을 하고서, 아들한테서도 ‘드러내놓기 싫은 아버지’로 버림을 받고서, 신용불량자이기도 하다는, 어느덧, 의료급여대상이기도 하다는 나, 혹은 ‘뻔뻔스러운 전과자’이기도 하다는 나, 바로 그대여. ―<서울의 사글셋방에서 사시는 ?리 어머님> 부분 새로운 시 쓰기의 부단한 노력, 독자의 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 해설에서 이수정은 “언어를 통해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것으로 다시 세계에 새롭게 다가가려는 방법은 사실 소모적이고 소비적일 수가 있다. 그것은 세계의 본질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주관의 끝없는 도전일 것이다. 실체화라는 명목으로 붙잡아 낼 수 없는, 입체적이고도 변화무쌍한 세계에 끝없이 새로운 언어-인식을 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주관의 그물로 계속 덧씌우거나, 새로운 언어로 포장하고, 벗기고, 포장하고 벗겨지는 소모적이고도 소비적인 수사의 남발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막대한 소비를 감당할 만한 잔고를 가진 시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번 《제1분》 시집 역시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소재와 그 일상에서의 문득 느낌을 인터넷 속어나 욕설 등 속된 언어들로 말하고 기존의 시적 관습에 얽매지 않은 자유로운 시작을 보여 준다. 박남철 시인이 파격적인 해체시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지도 수십 년이 되어서인지, 이제는 그의 이야기가 우리의 사는 모습인 듯하여 친근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그의 새로운 시 쓰기의 부단한 노력은 자기만을 위한 시가 아니라 독자의 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